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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특별기획(1)] 진보-보수 합종연횡 시나리오 

평평한 운동장은 ‘일대일’ 구도를 부른다 

박성현·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주도권 쥔 더불어민주당, 다자 필승론으로 기울어… 박빙 승부처에선 보수 후보 단일화 압력 커질 듯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역대급 변수 두 개가 발생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과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이들 이슈는 얼마 전까지 정국을 후끈 달군 적폐 청산론이나 정권 심판론을 압도하는 형국이다. 지방선거 여야(與野) 연대의 함수도 더욱 복잡해진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과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왼쪽)이 3월 8일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북콘서트 ‘대통령의 글쟁이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양 전 비서관의 저서 [세상을 바꾸는 언어] 출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 사진:연합뉴스
3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腹心)’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북콘서트에 ‘깜짝 인물’이 초대됐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문 대통령과 등을 돌린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박 의원은 지난해 대선 유세 때 “문재인 후보는 대북 송금 특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완전히 골로 보냈다”는 격한 표현까지 썼다.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문 후보를 비판했던 그가 1년이 채 안 돼 문 대통령의 복심이 주최한 행사에 나타난 것이다.

박 의원은 “문 대통령이 (대북·대미) 특사 선정을 진짜 잘했다. 역시 나보다 낫다”고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행사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서울시장과 경기지사가 연대의 입구가 되는 것이고 나머지는 호남이 출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비록 ‘더불어민주당 2중대’ 소리를 듣더라도 민평당이 수도권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호남 광역단체장 세 곳 가운데 한 곳에서 단독공천을 하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고 말했다.

안철수와 갈라선 민평당은 범진보 연대와 함께 공동교섭단체 구성에 몸이 달았다.

국회에서 교섭단체와 비(非)교섭단체의 지위는 하늘과 땅 차이다. 교섭단체가 되면 국고보조금이 크게 는다. 정치적 위상도 높아진다. 법안 교섭권이 주어지고 출입기자진도 생긴다. 비로소 정당다운 정당이 되는 것이다.

민평당은 3월 5일 국회의원·핵심 당직자 워크숍 개최 후 정의당에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공식 제안했다. 이용주 원내대변인은 “정의당과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당 차원에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공식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정체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민평당이 정의당과 공동교섭단체 구성에 목매는 것은 교섭단체 지위를 얻는 것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는 “국회 의사결정 구조상 개헌·선거구 문제 등에서 우리 당이 소외돼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공동교섭단체 구성은 필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민평당으로서는 지방선거 이후도 대비해야 한다. 민평당이 안방인 호남에서조차 전패(광역단체장 기준)할 경우 선거 후 이탈자가 나올 수 있다. 미리 교섭단체를 구성해놓아야 원심력을 차단할 수 있다.

각자 강세 지역에서 ‘우선’ 공천하는 방식이 유력


▎장병완 민평당 원내대표(왼쪽)와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3월 5일 국회에서 만나 공동교섭단체 구성 관련 논의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양당의 공동교섭단체 구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 해석이다. 범진보 연대라는 ‘목적지’로 가는 기착지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평당과 정의당이 본격적으로 손잡은 뒤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포함시킨 ‘완전체’ 형성이라는 밑그림이 깔린다.

범진보 연대에 가장 적극적인 박지원 의원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보수 가속화와 국정 방해 등에 대해 적폐청산과 개혁을 하는 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남북관계 개선을 하는 데 (범진보 진영이) 합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범진보 진영이 합치면) 가장 좋은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 적폐청산, 개혁에는 자동적으로 민주당·민평당·정의당이 함께하고 있다”며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 문제에 공동보조를 하는 것에 적극 동조한다”고 덧붙였다.

양당의 공동교섭단체 구성이 곧 연대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석만으로는 공동교섭단체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바른미래당에 합류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남아 있는 이용호·손금주 의원 등에게 민평당이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의원은 양당의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전제로 동참 의사를 비쳤다.

민평당과 정의당은 그동안 사법개혁, 최저임금 인상 등 문재인 정부 주요 정책에서 민주당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왔다. 이 때문에 두 당 간 연대가 성사되면 민주당과의 정책 연대가 본격화되고, 최종적으로 지방선거 연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른바 범여권 ‘빅 픽처’의 완성이다.

민평당과 정의당은 공동교섭단체 구성 여부와 별개로 정책 연대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최근 장병완 민평당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정의당은 원내 활동 관련 정책이나 입법 부분 관련 방향이 같거나 차이가 적다면 당을 넘어선 연대를 기본방침으로 늘 실현해왔다”고 했다.

민평당 역시 정책 연대,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 가령 호남에서는 민평당이, 울산에서는 정의당이 ‘우선’ 공천하는 식으로 선거연대를 하는 것이다. 물론 양당이 각각 민평당·정의당으로 이름으로 선거를 치른다는 전제하의 시나리오다.

민평당 관계자는 “당대당 차원에서 전국 모든 선거구에 동일한 방식의 연대가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의 공천 결과, 선거구 여건 등에 따른 부분적 연대가 가장 유력한 방식”이라고 예상했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 컨설턴트는 “군소정당에 불과한 양당 모두에 교섭단체 지위는 절실하다”며 “특히 지방선거 이후를 장담하기 어려운 민평당 입장에서는 교섭단체 구성이 곧 안전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정통민주당 트라우마가 되살아난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선거(2·8 전당대회)에 출마한 문재인·박지원 후보가 연초 제주도 당사에서 열린 단배식과 당원 간담회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문 후보는 “이번 선거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고, 박 후보는 “대권과 당권은 분리돼야 한다”고 맞섰다.
민주당 내에서도 범진보 연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평당과 정의당이 본격적으로 손을 잡는다면 여러 면에서 효율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그러다 보면 선거 연대도 논의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민주당에서도 연대에 긍정적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과거의 뼈아픈 경험 때문과 무관하지 않다. 제19대 총선을 한 달 앞둔 2012년 3월 12일 정통민주당이 창당됐다.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의 공천 탈락자들이 모인 당이다. 한광옥 대표는 “이번 민주통합당 공천은 친노 세력의 김대중(DJ) 민주계에 대한 대대적 학살극”이라며 DJ 마케팅을 펼쳤다.

한명숙 대표 등 당 지도부는 ‘노이사(친노·이화여대·486) 공천’이라는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끝내 정통민주당과 거리를 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놀라운 결과가 드러났다. 적어도 수도권 6곳에서 정통민주당 후보로 인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희비가 엇갈렸다.

정통민주당은 비록 정당득표율 0.22%의 군소정당이었지만 서울 등 수도권 6곳에서 야권표를 분산시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이끄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 은평을에서는 이재오 새누리당 후보가 6만3238표를 얻어 당선됐는데 2위인 천호선 통합진보당 야권 단일후보와는 단 1459표, 1.14%포인트 차이였다. 이 지역의 이문용 정통민주당 후보는 2692표(2.1%)를 얻었다. 의정부을에서는 홍문종 새누리당 후보가 4만1726표, 홍희덕 통합민주당 후보는 3만6661표, 고도환 정통민주당 후보는 4643표(5.46%) 순이었다. 홍문종 후보와 홍희덕 후보는 단 3.61%포인트 차로 당락이 갈렸다.

민주당 관계자의 말이다. “지방이야 선거 전에 어느 정도 승패가 정해진다고 하지만 수도권은 다르다. 막판에 바람이 어떻게 부느냐, 연대가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민평당에 대한 고민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대통령 지지율과 민주당 지지율 간의 격차도 민주당을 곤혹스럽게 한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3월 5~7일 조사해 8일 발표한 여론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44주차 국정수행 지지율(긍정평가)은 65.6%였다. 반면 민주당의 지지율은 47.6%로 대통령에 비해 20% 가까이 낮았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대체로 비슷하다.

그럼에도 민평당과의 연대에 부정적 기류도 만만치 않다. 지방선거 이후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는 정당과의 연대가 얼마나 효과가 있겠냐는 것이다. 민평당 의원들 중 일부가 정치적 고비마다 문재인 대통령과 각을 세워왔다는 점도 연대 불가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현재의 다자구도가 더 유리하는 분석도 나온다. 이른바 다자 필승론이다. 민주당 전략통은 “민평당이나 정의당이 민주당의 표를 빼앗는 정도는 미미할 것이다. 또 바른미래당의 경우 민주당보다는 한국당 표를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며 “상황이 이런데 민주당이 범진보 연대에 팔을 걷어붙인다면 되레 보수 결집을 부추기는 꼴이다. 민주당으로서는 민평당이나 정의당과 느슨한 연대 이상은 추진할 필요가 없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선거 막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가 결집한다면 그때는 민주당으로서도 고민이 커질 수 있다. 바른미래당이 한국당과 적극 연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공식 접촉’도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지방선거에 정치생명이 걸린 유승민 공동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달리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후반기 국회 원 구성 등이 더 중요하다. 당이 보수로 치우치는 것보다 중도개혁 노선을 유지하는 것이 이들에겐 2년 후 총선 때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거 후 정계개편 본격화될 듯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운데)가 2월 2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바른미래당 유승민(오른쪽)·박주선 공동대표의 예방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임현동
이번 지방선거가 완전히 진보 대 보수의 일대일 대결로 치러지긴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 전망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분 연대, 간접 연대 등 ‘느슨한 연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정리해보면 이런 식이다. ▷서울에서 바른미래당이 후보를 내는 대신 한국당은 공천을 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당은 현역 광역단체장을 보유하고 있는 인천·경기에 전념한다 ▷민평당이 수도권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민주당은 광주·전남·전북 가운데 한 곳을 무공천 지역으로 둔다 ▷정의당은 울산 등 승산이 높다고 판단되는 곳 위주로 후보를 내는 대신 수도권 등은 민주당·민평당과 보폭을 맞춘다.

그럼에도 이번 지방선거가 여야 일대일 구도로, 다시 말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51대 49 싸움을 벌였던 2012년 대선의 재판이 될 거란 전망도 없지는 않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전격 구속돼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범보수가 결집한다면 범진보 역시 한데 뭉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4월 말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보수층이 소외된다면 지방선거에서 보수 결집의 구심력이 커질 수도 있다.

만일 여야 일대일 구도로 재편된다면 어느 쪽에 유리할까.

지금으로서는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예단하기 어렵다. 여권 일각에서는 개혁세력 대 적폐세력으로 프레임을 만들면 범여권에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구도가 실제 선거에서 먹혀 들지 않을 거란 관측도 있다. 최근 ‘미투 태풍’에 이윤택 연출가, 고은 시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등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진보=도덕적 우위’ 공식이 깨졌다는 것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지난해 대선에서는 ‘촛불 메리트’로 인해 민주당이 초반 리드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면서 “그런 촛불 메리트가 이번 미투 태풍에 꺼져버린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민주당 관계자도 “안희정 파문 이후 한국당에서 ‘충남지사 선거에 민주당에서는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도덕 공세를 펼치고 있다”며 “미투 운동이 예상과 달리 진보 진영에 큰 타격을 입힌 것처럼, 만일 여야 일대일 구도로 선거가 치러진다면 이 또한 어느 쪽의 유·불리를 예상하기 어렵다. 되레 여권에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여러 상황을 종합했을 때 이번 선거는 ‘느슨한 연대’를 통한 범진보 대 범보수의 일대일 구도로 갈 수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새 판 짜기를 위한 전면적·전국적 연대가 아닌 부분적·국지적 연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범진보 진영에서 선택권을 쥔 민주당은 다자 필승론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

민평당 관계자는 “지방선거 때 국회의원 재·보선도 동시에 치르기 때문에 연대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의원직 상실 의원이 늘어나면 10곳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면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고 여론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는 여권보다는 붕괴 위기에 몰려 있는 야권에서 단일화 가능성이 더 크다. 실제로 야권에서 연대에 나선다면 여권도 앉아서 구경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지방선거에서 단일화는 선거를 통한 정치구도 재편, 즉 정계개편으로 이어지는 것을 예고한다. 바른미래당과 민평당 두 신생정당은 원내 캐스팅보트이자 ‘선거연대’ ‘후보단일화’ 대상”이라며 “어떤 경우든 지방선거 이후 정국은 제2의 정계개편, 정치 새 판 짜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누구도 선뜻 입에 올리길 꺼리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후보 단일화’라는 연대의 프레임이다. 정통 보수를 표방하는 자유한국당과 중도 보수를 자임하는 바른미래당은 야권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다. 배제하고 극복해야 할 상대와 손을 잡는다는 건 자기모순을 부르는 어법과도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작 쏟아낸 언명부터가 양당 지도부의 발목을 단단히 잡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원내 제1야당인 한국당이 미니정당(바른미래당)과 연대할 이유가 없다”(1월 24일 페이스북)고 선을 그었고,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역시 “한국당은 국정 농단 적폐 세력으로 청산의 대상”(3월 9일 부산 기자간담회)이라고 연대 불가를 못박았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이날 “중앙당에서 선거 연대가 없다고 결정하는데 지역에서 후보 간에 노골적으로 연대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아예 빗장을 내걸었다.

하지만 여론의 동향은 이런 호언장담이 6·13 지방선거가 현실로 다가올수록 안팎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리라는 예감을 갖게 한다.

[중앙SUNDAY]와 입소스코리아가 3월 5~7일 전국 10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한다는 응답이 75.2%에 달했다. 정당 지지율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45.5%를 기록했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각각 11.8%, 5.8%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두 야당의 지지율을 합쳐도 민주당의 절반에 못 미친다.

‘균형·견제론’에 담긴 보수 지지층의 열망


▎2월 13일 열린 바른미래당 출범대회에서 안철수 통합추진위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 사진:임현동
보수 진영에 불길한 소식은 이뿐만이 아니다. 남한 특사단이 방북할 즈음 한국갤럽이 실시한 3월 첫째 주(6~8일)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71%에 달했다. 무엇보다 60대 이상 고령층의 상승 폭이 가장 컸다는 점이 보수 정당에는 뼈아픈 대목이다. 1주일 전인 2월 27~28일 조사에서 48%였던 60대 이상 고령층의 국정지지율이 이번에는 61%로 13%포인트나 껑충 뛴 것이다. 안보 이슈가 보수층의 결집을 불러오기는커녕 그 반사이익을 여권에 안기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남북 화해·협력 기조가 강화된다면 사회 전반의 여론이 여권에 확 쏠릴 여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처럼 과반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를 받는 여당과 갈라진 야당의 대결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힘을 모아도 될까 말까 한 선거에서 분열은 필패를 부른다.

그래서일까? [중앙SUNDAY] 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자의 절반 이상(55%)이 바른미래당 후보와의 단일화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른미래당 지지자들도 10명 중 네 명(40%)이 단일화를 원했다. 특히 같은 조사에서 ‘여당 안정론’에 비해 ‘야당 견제론’이 우위를 보인 점은 야권에 자극제가 될 전망이다. ‘국정 안정과 개혁을 위해 집권 여당이 승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여론은 44.8%에 달했다. 반면 ‘견제와 균형을 위해 여당과 야당이 비슷하게 표를 얻는 게 바람직하다’가 36.9%, ‘정부와 여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야당이 승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가 15%에 달하는 등 균형·견제론이 51.9%를 기록했다. 야당의 지지율이 낮은 현실에서도 유권자들은 견제와 균형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방증이다. 입소스코리아 측은 야권 후보들이 여야 일대일 구도를 만들 경우 균형·견제론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고 봤다.

반쪽짜리 후보 단일화 시나리오


▎3월 8일 한국YWCA연합 회원들이 ‘3·8 여성의 날 기념 미투 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YWCA 행진’을 벌이고 있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이른바 무당(無黨)층이 두텁게 존재하는 현실도 야권에 고무적인 환경으로 해석된다. 한국갤럽의 3월 첫째 주(6~8일)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무당층은 27%를 기록, 더불어민주당(49%)에 뒤졌을 뿐 자유한국당(12%), 바른미래당(6%)을 앞질렀다. 한국갤럽은 이들 무당층이 선거 직전 태도를 정해 투표하는 경향을 가졌다고 설명한다. 이들이 누구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당락의 향배가 결정되는 만큼 야권도 승부를 겨뤄볼 토양은 존재한다는 말이다.

바른미래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유력하게 거명되면서 야권 연대론은 정치적 실체로 자리를 잡아가는 분위기다. 자유한국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않고 안 전 대표를 밀어주는 대신 경기도와 인천에서 자유한국당 남경필 지사와 유정복 시장을 바른미래당이 지원하는 조합이 정가에서 거론된다. 안 전 대표는 지지율 50%를 오가던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5% 지지율의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한 파격적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마땅한 서울시장 후보감이 없어 고민인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서울을 포기하는 대신 경기도와 인천에 화력을 집중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는 해석이 따라붙는다.

이와 관련해 일부 여론조사 전문가는 야권 후보 단일화 이득이 큰 쪽은 바른미래당이라고 말한다. 바른미래당은 기대만큼 지지율이 안 올라 애를 태운다. 자유한국당은 주변에 적극적 보수층만 남고 중도층은 떠난 상태다. 두 정당 모두 궁지에 몰렸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언급했듯이 ‘보수가 우세한 상황에서 보수가 분열한 경우는 있었지만 진보가 우세한 상황에서 보수가 갈라선’ 지금과 같은 상황은 한국 정치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나마 야권 후보 단일화를 통한 중도표 흡수가 유리한 정당을 꼽자면 바른미래당이라고 여론조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진단했다. 예민한 사안이라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보수·중도층의 정서는 바른미래당 지지자들이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것보다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바른미래당을 지지하기 더 쉬운 구조”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1년 전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다가 탄핵 등의 국면을 거치면서 지지를 철회한 보수·중도 유권자들 중에는 바른미래당으로 옮겨간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아직 자유한국당이 변했다는 걸 체감하지 못하는 단계다. 그래서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선 자유한국당 후보를 지지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상대적으로 바른미래당 후보로 단일화가 매듭된다면? 절대로 1번(더불어민주당)을 찍지 않을 자유한국당 지지층을 흡수하기가 쉽다. 중도층 유권자들을 흡수하는 데도 바른미래당 후보가 유리하다.”

이 전문가는 야권 연대에 앞서 자유한국당은 기존의 답답한 ‘색채’를 벗는 작업이 선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유한국당은 정책이든 인물이든 예전의 모습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단일 후보를 내더라도 바른미래당 지지층이나 중간층을 흡수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국정 농단 국면을 거치면서 신뢰를 상실한 자유한국당과 강경 보수 반감이 지금도 매우 강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자유한국당의 이런 곤궁한 처지는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 외부 인사에 대한 보수 진영의 기대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김 전 실장은 경북 고령 출신으로 영남대를 졸업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자유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감으로 거론되는 그는 보수층의 지지를 업고 중도·진보층으로의 확장력을 발휘할 인물로 평가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한국당은 바로 그 이유로 김 전 실장의 영입에 미온적이다. 홍준표 대표의 한 측근 인사는 김 전 실장 대망(待望)론과 관련해 “그는 실패한 참여정권의 정책 사령탑을 지냈다”며 “그런 그가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다면 현 여권의 실정과 정책 무능을 공격할 고리를 잃게 된다”고 부적격 사유를 밝혔다.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입장은 지방선거 야권 연대의 효과에 회의적이라는 뉘앙스를 물씬 풍긴다. 최대 승부처인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종국엔 제 1, 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양자 대결 구도로 압축되리라는 희망이 강하게 지배하는 탓도 있다. 자유한국당 여론조사를 담당하는 여의도 연구원의 김대식 원장은 “선거 당일엔 무당층, 중도층은 소멸된다”고 내다봤다. “강력한 구심력을 가진 보수와 진보 정당이 이들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무당파, 중도층은 학술적 용어에 가깝다. 여론조사 과정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부동층들도 선거에 임박하면 보수든 진보든 한쪽으로 흡수된다. 보수 성향의 중도층은 자유한국당으로 쏠리게 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바른미래당과 후보 단일화를 적극 추진하지는 않을 심산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북한을 방문 중인 정의용 수석 대북특사(왼쪽)가 3월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 사진:청와대
구청장, 광역의원 후보 반발도 걸림돌

자유한국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바른미래당에 양보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은 서울시의 25개 구청장 후보, 정수가 100명인 서울시의원 후보들에게 바른미래당으로의 시장 후보 단일화는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 이들은 중앙당 차원에서 교통정리가 어려울 뿐 아니라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와 무관하게 완주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의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들도 조직 기반을 유지하자면 구청장, 시의원 후보들이 끝까지 가주기를 바랄 공산이 크다. 결국 체면을 구기고 시장 자리를 양보한다고 해도 4대 지방선거에서는 반쪽짜리 단일화에 그치게 된다고 서성교 바른정치연구원장은 지적한다. “보수의 본진을 자임하는 자유한국당이 수도 서울의 시장 후보를 바른미래당에 양보하는 건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이는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선택일 뿐 아니라 당의 기간 조직을 통째로 뒤흔드는 악수이기 때문이다.”

바른정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방의회 비례대표 투표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이은 2등 득표를 겨냥한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자유한국당을 제치면 야권의 대표성을 획득하고 지방선거 이후 있을지도 모를 정계 개편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자면 가급적 많은 선거구에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 바른미래당 이태규 사무총장은 “바른미래당으로선 제1 야당을 바꾸거나 바꿀 잠재력을 보여주는 게 첫 번째 과제”라며 “연대보다 한국당을 이기는 게 목표”라고 속내를 밝혔다. 바른미래당은 자유한국당이 혁신과 인물 교체를 통해 지지기반을 확산할 가능성도 낮다고 내다본다.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 캠프의 미래기획실장을 역임한 김윤 바른미래당 동대문갑 지역위원장은 “홍준표 대표는 양강 구도의 복원을 노려 과도한 노이즈 마케팅에 몰입하고 있다”며 “거기에 호응하는 유권자들은 제한적이어서 바른미래당에 기회가 더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과 같다’는 말이 있다. 선거가 치열한 접전으로 갈수록 연대의 목소리는 힘을 얻어가게 마련이다. 여야의 팽팽한 판세에서 보수 야당이 분열해 여당이 거저먹는 결과를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보수 지지층 중심으로 형성될 전망이다. 지금은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 등 안보 이슈가 문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호감도를 끌어올리는 기능을 하지만 국정지지율 70%는 비상식적으로 높은 게 사실이다. 비핵화 이행 관련 북·미 간 견해차로 동북아 화해·협력 무드가 와해되거나, ‘미투(#MeToo)’의 여파로 여권의 유력 주자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경우 선거판은 안개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

실리가 없으면 명분이라도…

김윤 위원장은 “실적주의 조바심, 보여주기식 행정, 도덕적 결함이 누적되면서 정부여당이 조기에 심판대에 오를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의 구(舊)적폐 못지않게 문재인 정부의 신(新)적폐도 유권자들은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중도 보수의 가치와 실용적 콘텐트로 무장한 바른미래당이 수도권에서 양강 내지 적어도 3강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지방선거가 여야에 ‘평평한 운동장’에서 치러진다면 어떤 식으로든 보수 후보 연대가 성사된다는 게 야권 일각의 기대이기도 하다. 이명박·박근혜 대선캠프에 두루 참여한 보수 진영의 한 전략가는 양당 지도부의 숱한 연대 불가 언명에도 불구하고 연대가 가능한 사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지도부는 선거 전략상 고려와 향후 정국 주도권 구상에 따라 독자 노선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바른미래당의 유승민 공동대표는 성향상 본인의 발언을 거스르는 선택을 쉽게 못하는 정치인이다. 하지만 지방선거 연대는 당 차원이 아닌 후보 차원의 문제로 치환될 가능성이 짙다. 박빙의 승부처에서 후보들이 추진하는 연대마저 중앙당이 막아서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단 현장에서 연대의 물꼬가 트이면 당 차원의 방침은 후순위로 밀리는 게 선거의 생리다.”

앞서 봤듯이 선거가 팽팽한 접전 양상으로 갈수록 야권 후보 단일화 압력은 상승한다. 중앙당의 명분과 만류에도 개별 후보 간 연대가 가시화될 공산이 다분하다. 정반대로 어떻게 해본들 안 된다는 판단이 서면 두 야당은 각기 제 갈 길을 가자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다. 실리 대신 명분을 챙겨서라도 이후의 정국에 대비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면 말이다. 이처럼 지방선거까지는 야권 연대에는 많은 변수가 도사린다.

- 박성현·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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