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지방선거 특별기획(3) 지역르포] ‘대통령의 도시’ 부산 민심 

‘찜찜한 승리’와 ‘희망을 본 패배’ 재대결 

박태우 국제신문 기자 yain@kookje.co.kr
오거돈·서병수 출마로 ‘문재인-홍준표 대리전’ 가능성 고개…유력 후보에 대한 각 정당의 거부감으로 제3 인물 모색설도

▎지난해 5월 대선 당시 부산 중구에서 열린 대선 후보 유세에 몰려든 유권자들.
중앙 정치권력을 잡기 위해 30년 넘게 치열한 쟁탈전을 벌여온 보수와 진보가 서로의 운명을 건 마지막 대결을 앞두고 있다. 무대는 90일도 남지 않은 6·13지방선거. 전쟁터는 단 한 번도 진보 정당의 발을 허용하지 않은 곳이자, 경남과 대구·경북으로 이뤄진 영남권의 핵심 지역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보수가 영남권을 움켜쥐고 중앙 정치 무대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이곳의 정치 지형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 2016년 4월 제20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에 한쪽 문을 연 부산은 지난해 5·9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보수 위기의 진앙지가 됐다.

남은 것은 차기 부산시장 선거. 단판 승부다. 민주당이 승리하면 ‘문재인 정권’의 앞길은 탄탄대로가 열리고 진보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자유한국당이 ‘고토(故土)’를 회복하면 보수 부활의 강력한 동력을 얻게 된다. 반대의 경우 문재인 정권은 조기 레임덕에, 보수는 전멸과 함께 근본적인 재편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 승부’는 8인이 쥐고 있다. 문 대통령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민주당 후보로 나선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정경진 전 부산시 행정부시장. 한국당 후보 자리를 노리는 서병수 부산시장과 이종혁 전 최고위원, 박민식 전 의원. 그리고 바른미래당에서 도전장을 던진 이성권 전 의원이다. 부산을 차지하기 위한 이들의 지략 대결에 대한민국이 숨을 죽이고 있다.

차기 부산시장 선거는 지난해 5월 대선의 연장전에 해당한다. 당시 문 대통령이 38.71%의 득표율로 한국당 홍 대표(31.98%)에게 6.73%포인트 차로 승리했다. 문 대통령의 부산 득표율은 전체(41.08%)보다 2.37%포인트 낮았고, 홍 대표(24.03%)는 7.95%포인트 높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사실상 보수 괴멸 상태에서 치러졌던 것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으로서는 ‘찜찜한 승리’였다. 반대로 홍 대표는 ‘희망을 본 패배’였다. 차기 부산시장 선거가 여야의 최대 승부처로 부상한 배경이다.

문 대통령의 ‘부산 예찬’, 홍 대표의 ‘우리가 남이가’


▎지난해 대선 당시 부산 중구 남포동 광복중앙로에서 유세를 벌이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민주당이 보유한 강력한 무기는 ‘문재인 프리미엄’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이후부터 10개월 넘게 60%가 웃도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 등 비핵화를 위한 큰 흐름도 여권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 때까지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어떤 행로를 보일지가 관심사다.

‘강력한 보호막’을 보유했지만, 부산 여권의 판세 전망은 극히 신중하다. 지난 여섯 번의 부산시장 선거에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고, ‘숨은 부산 보수’의 결집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리한 환경 조성을 위한 문 대통령의 간접 지원 전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부터 숱하게 부산 선거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누구보다 부산 정치 성향에 대한 전문가인 셈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부산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도 차기 부산시장 선거에 대비한 포석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기조연설, 같은 해 8월 부산에서 열린 동아시아-중남미 협력포럼(FELAC) 외교장관 회의 개회식 축사를 ‘부산 예찬’으로 채웠다. 또 1기 내각 인선 때 부산 출신을 화끈하게 밀기도 했다. 박성진 중소기업벤처 기업부 장관 후보자,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중도 낙마하지 않았다면 18개 정부 부처 중 5곳의 장관이 ‘부산사람’으로 채워졌을 수도 있었다.


▎지난해 대선 당시 부산을 찾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통령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 대표의 이번 지방선거 목표는 ‘6+a’다. 그는 지방선거 결과에 대표직을 걸겠다고 했다. 자신의 대선 출마로 지사가 공석이 된 경남도를 비롯해 한국당 소속 광역단체장이 차지한 영남권과 인천에서 이기고, 그 여세를 몰아 다른 지역에서도 승리하겠다는 것이다.

홍 대표 전략의 핵심은 ‘우리가 남이가’로 대표되는 ‘영남 보수’의 복원이다. 역시 성공 여부는 PK(부산·울산·경남)와 TK(대구·경북)의 중심에 자리한 부산에 달려 있다.

홍 대표는 과감한 물갈이와 보수 통합을 승리 전략으로 택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부산 18개 선거구 중 사하갑·서동·연제·북강서갑·부산진갑·해운대을 등 6곳의 지역조직책(당협위원장)을 교체하거나 새로 임명하는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이와 함께 바른정당에서 탈당한 김무성·김세연 의원의 복당을 허용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 부산 보수의 외형을 갖췄다.

하지만 불안 요인도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후보들이 여권에 우위를 보여주지 못했고, 정당 지지율도 민주당에 못 미친다. 바른정당 복당파와 한국당 잔류파 간 앙금도 남아 있다. 한국당 내부에서는 ‘홍준표 리스크’가 차기 부산시장 수성에 장애물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홍 대표의 막말 이미지와 지나치게 짙은 보수 색채 때문에 중도층과 젊은층 표심을 파고드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여야 상황과 각종 여론조사 등을 종합하면 ‘문재인-홍준표 대리전’은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서병수 부산시장이 수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4년 만의 ‘서병수-오거돈 리턴매치’다. 오 전 장관은 지난해부터 이어온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 적합도 및 차기 부산시장 후보 지지율에서 견고한 우세 흐름을 이어갔다. 서 시장도 한국당 후보 적합도에서 이종혁 전 최고위원과 박민식 전 의원 등 당내 경쟁자들을 앞섰다.

서 시장은 사실상 본선 준비에 돌입했다. 그는 3월 10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 오디토리엄에서 자신의 저서 [경계를 넘어라] 출판기념회를 열고 본격적인 세몰이를 시작했다. 이날 행사에는 윤상직·유기준 국회의원을 비롯해 한국당 부산시당 당협위원장, 기초단체장, 상공인, 시민 등 3000여 명이 운집해 재선 도전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홍준표 대표도 영상 메시지를 통해 “서병수 시장 임기 4년간 부산 경제의 체질이 바뀌면서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겼다”며 서 시장에게 힘을 실었다.

정경진·이종혁·박민식, 대역전극 기대


▎부산시청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서병수 부산시장(왼쪽)과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
오 전 장관도 2월 27일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여 년간 부산 정치권력을 독점해 온 일당 독점 정치 카르텔을 깨뜨리겠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재대결이 벌어진다면 두 사람 모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2014년 6월 지방선거 때 처음 대결한 서 시장과 오 전 장관의 격차는 1.31%포인트에 불과했다. 그 이후 민주당이 부산에 처음으로 4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고, 여당의 지위를 차지하는 등 정치 지형은 180도 바뀌었다. 하지만 서 시장도 강력한 현직 프리미엄을 갖고 있다.

서 시장은 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 “오 전 장관은 쉬운 상대”라고 도발했고, 오 전 장관은 자신이 앞선 여론조사를 언급하며 “서 시장은 어려운 상대지만, 부산시민들이 서 시장에 대해 잘 판단하는 것 같다”며 받아치기도 했다.

서 시장과 오 전 장관이 본선 무대에 서기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두 사람 모두 내부의 부정적 기류를 극복해야 한다.

민주당 부산시당에는 오 전 장관을 민주 적통 후보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4년 전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오 전 장관은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과의 단일화를 통해 야권 단일후보로 부산시장에 도전했다. 그런데 오 전 장관이 이 과정에서 지방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을 무시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민주당 내부에서 끊임없이 ‘김영춘 출마론’이 제기된 것도 오 전 장관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다. 김 장관은 3월 11일 불출마를 최종 결정했다.

하지만 당내 ‘오거돈 반감’을 감안하면 당심(黨心)이 막판까지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민주당 후보로 부산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정경진 전 부산시 행정부시장에게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 전 부시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교인 부산상고(현 개성고)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지내기도 했다.

서 시장도 내부의 ‘본선 회의론’을 극복해야 한다. 서 시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야 가상대결 시 민주당 후보들에게 우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당이 안대희 전 대법관이나 장제국 동서대 총장 등 끊임없이 대체재를 찾는 배경이다. 당내 경쟁자인 이종혁 전 최고위원과 박민식 전 의원도 ‘서병수 필패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은 “한국당이 부산에서 승리하려면 새로운 인물로 감동적인 경선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서 시장의 공천 배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정경진·이종혁·박민식 등 세 후보의 뒤집기 전략은 ‘경선 드라마’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오전 장관과 서 시장에 대한 전략공천으로 전개되는 모습이다. 한국당 이종혁 전 최고위원은 “더 이상 무능, 무책임, 탐욕의 공천 놀음에 정치 희생양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3월 11일 마감한 한국당 부산시장 후보 공모에 응하지 않았다.

차기 부산시장에서 ‘이성권 변수’도 주목받고 있다.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한국당 후보 간 박빙의 승부가 벌어지면 바른미래당 후보로 나선 이성권 전 의원에 대한 표심이 당락을 결정 짓는 변수가 될 확률이 있다.

실제 설 연휴 직전 발표된 국제신문-리얼미터 2차 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에서 이 전 의원은 민주당과 한국당 후보와의 3자 가상대결에서 10% 안팎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4년 전과 같은 초접전 양상이 전개될 경우 이 전 의원이 어느 쪽 지지층을 더 흡수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바뀔 수도 있는 수준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이 전 의원의 ‘양면성’ 때문이다. 그는 보수야당 출신이면서도 40대로 젊다. 민주당과 한국당 지지층을 모두 공략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진 셈이다.

이성권, 캐스팅보트 혹은 다크호스?


▎한국 제2 도시 부산의 명소 해운대 마린시티의 야경
특히 한국당에서는 서 시장 측이 ‘이성권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전 의원의 출마가 ‘보수표 분열’로 이어져서 시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다. 국민의당 탈(脫)호남 세력과 바른정당이 합쳐진 바른미래당이 보수야당으로 분류되는 것도 보수표 분열을 예상하는 이유다. 이전 의원은 국제신문-리얼미터 2차 조사에서도 보수 지지층이 강한 부산 도심권에서 강세를 보였다. 이 전 의원이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 부산진을에서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것도 한국당 표 잠식을 전망하는 배경이다.

민주당은 ‘이성권 변수’를 평가절하하면서도 젊은층 표심 이탈 가능성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 전 의원이 여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2040세대의 표심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국제신문-리얼미터 2차 조사에서 3자 가상대결 시 이 전 의원은 2040세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나타냈다.

현재 상황은 ‘캐스팅보트’지만, 이 전 의원은 ‘다크호스’를 자신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나의 공약과 정책은 합리적인 진보와 중도세력도 포용할 수 있다. 젊은 층도 견인할 수 있다. 부산에 30%가량 존재하는 중도층 표심을 확보하고, 한국당과 민주당 양쪽 진영의 합리적 지지층을 설득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선에서는 이 전 의원과 한국당 후보 간 단일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이에 대해 이 전 의원은 “절대 단일화는 없다. 한국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할 수구세력”이라고 선을 그었다. 나아가 “손을 잡는 순간 보수는 같이 괴멸된다”고 강조했다.

‘부산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여야 간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지고 있지만 부산 민심은 예측불허다. 부산은 2016년 4월 총선 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 회초리를 들면서도 재기의 불씨를 살려놓았고, 지난 대선 때는 어느 정파에도 확실한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부동층(지지정당 후보 없음, 모름, 무응답)이 30%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이 어느 쪽으로 마음을 정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승부를 뒤집을 수도 있다. 한국당은 이들 대부분이 ‘샤이 보수’(드러내지 않은 보수 표심)라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부산 보수층이 다시 한국당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다.

반면, 민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부산 보수의 저변은 급격히 축소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6월 13일 부산 시민의 ‘손’에 여야의 운명이 판가름 난다.

- 박태우 국제신문 기자 yain@kookje.co.kr

/images/sph164x220.jpg
201804호 (2018.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