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지방선거 특별기획(5) 지역르포] ‘여당의 심장’ 光州 민심 

“기울어진 운동장은 사실” vs “보이는 게 전부 아닐 수도” 

김명식 남도일보 기자 msk7234@nate.com
문 대통령·민주당 지지율 다른 지역보다 ‘압도적’ 우위…유권자 안중에 없는 듯한 여당의 오만한 태도 비판도

▎광주는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의 근간이다. 그래서 6·13 지방선거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대선 당시 한 여성이 지지 후보의 이름을 목청껏 외치고 있다. / 사진:박종근
“들러야 할 출판기념회가 또 있어서요.”

자영업을 하며 정당에 몸담고 있는 김형근(45)씨. 3월 4일 광주광역시 조선대에서 열린 한 광주시장 출마예정자 출판기념회장를 찾았던 그는 대학 선배의 ‘차 한잔’ 권유에 응할 수 없었다. 같은 당 소속 단체장 입지자(立志者)들의 출판기념회가 세 곳에서 더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3월 들어 지방선거를 겨냥한 출판기념회와 선거사무소 개소식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면서 김씨의 봄은 유독 바쁘게 시작됐다.

6·13 지방선거 D-100일을 전후로 광주에서는 입지자들의 각종 행사가 봇물처럼 이어졌다. 출판기념회의 경우 3월 둘째 주 주말·휴일에 집중됐다. 10일엔 5명, 다음 날에는 3명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월요일인 3월 12일에도 출판기념회가 이어졌다. 공직선거 법에 출판기념회는 선거일 90일 전인 3월 14일까지만 가능하기에 출마 예정자나 예비후보들이 ‘막판’에 앞다퉈 개최한 것이다. 출마를 위한 ‘필수 코스’인 양 현직부터 신인까지 ‘너도나도’였다.

출판기념회는 지지세를 과시하고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선거전 실탄(자금)도 마련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광주에서 출판기념회를 치른 정치인 대부분은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노린다는 점이 눈에 띈다. 3월에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15명 중 12명이 민주당이었다. 나머지는 민주평화당 2명, 자유한국당 1명이었다. 바른미래당·정의당·민중당에서는 한 명도 없었다.

“대통령이 잘돼야 광주도 잘되는 것 아닌가”


▎지난해 대선 때 한 후보의 유세를 듣기 위해 모인 광주 시민들. / 사진:박종근
출판기념회 현황은 현재 광주의 정치 지형(地形)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광주는 집권여당의 핵심 지지기반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민주당 공천장=당선’ 등식이 가능한 지역이다. 입지자들이 민주당에 쏠리는 이유다.

높은 정당 지지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민주당은 광주와 호남에서 60% 이상의 고공 지지율을 자랑한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실시한 3월 첫째 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호남에서 64.4% 지지를 받았다. 전국 지지율 47.6%보다 16.8%포인트나 높다. 민평당은 9.1%, 정의당 4.5%, 바른미래당 4%에 머물렀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역시 75.2%로 전국 평균 65.6%보다 높았다.

광주는 바른미래당과 민평당도 전략적 요충지로 삼는 곳이다. 두 당의 모태인 국민의당은 광주·호남을 발판 삼아 2년 전 총선에서 제3당으로 도약했다. 광주를 근거지로 둔 정당이 세 곳이나 된 이른바 ‘신(新)3당 체제’다.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광역의원·기초의원 등 각급 선거에서 시민들은 세 당의 텃밭 경쟁을 지켜보는 상황이 됐다. 자유한국당·정의당·민중당도 후보를 낼 방침이다.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거의 당선되던 상황에서 유권자의 선택 폭이 ‘아주’ 넓어진 구도로 변모했다.

하지만 겉모습과 속살은 다르다. 사실상 민주당 일당 독점 구조다. 야당의 지지율을 모두 합해도 민주당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2년 전 총선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당시 광주에서는 국민의당이 8석 전체를 싹쓸이했다. 정당 지지율도 민주당을 앞섰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반대였다.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압도하면서 대권을 거머쥐었다. 대선 여파는 10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는 시민들 반응에서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인 만큼 민주당을 선택하겠다는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광주 북구 중외 공원에서 만난 김병옥(73)씨는 지방선거 질문에 대뜸 목소리부터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가 밀어줘서 대통령이 됐어요. 문 대통령이 잘돼야 광주도 잘될 것 아니에요? 그래서 민주당 후보들 찍을래요. 시장이고 구청장이고 의원들 다 민주당이에요.”

김씨에게 바른미래당과 민평당은 어떠냐고 묻자 “안철수가 새누리당(바른정당 전신)과 손잡은 게 말이나 돼요? 그리고 민평당은 뭐예요? 호남 자민련이지. 말이 나왔으니까 한마디 더 하죠. 언제까지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팔 건가요. 호남에만 갇혀 있으라고 찍어준 줄 아나 보죠? 둘 다 싫어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김씨는 총선 때는 국민의당 후보를, 대선에서도 안철수 후보를 선택했다고 한다. 앞선 두 번의 선거와 지방선거 선택지가 달라진 것이다.

상무지구 식당에서 만난 직장인 김원철(50)씨도 비슷했다. 중형(中形) 병원 고위 간부인 그는 “찍을 사람(당)이 민주당밖에 없다. 예전에는 국민의당 사람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며 “민평당 사람들도 보이긴 한데 마음에 안 든다 정당은 많지만 눈길이 안 간다”고 민주당에 한 표를 ‘예고’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안철수나 박지원은 광주 사람들 마음에 상처를 줬다. 자기들 살려고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하면 되겠느냐”면서 “광주가 그렇게 밀어줬는데 서로 잘났다고 싸움이나 하더니 결국 갈라서고…”라고 혀를 찼다.

반면 오피니언 리더들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했다. 민주당 우세를 인정하면서도 광주가 일당(一黨) 독점 구조로 회귀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김동헌 광주경실련 사무처장은 “현재로는 기초의원까지 민주당이 휩쓸 가능성이 높다. 광주의 제2당을 자처하는 민평당도 일부 선거에서는 선전할 가능성이 보이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지는 미지수”라며 “바른미래당이나 자유한국당·정의당 등은 존재감이 너무 약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지방권력이 일당 체제가 되면 견제와 감시 기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수차례 목격했다. 오죽하면 지방의회를 ‘거수기’ ‘식물의회’로 불렀겠는가”라며 “집행부나 의회가 같은 권력 울타리 안에 있으면 지역에는 손해다. 지난해에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경쟁하면서 호남 예산을 역대 최대로 확보했다. 호남 KTX의 무안공항 경유도 관철시켰다. 두 당이 호남 민심을 얻으려고 경쟁한 결과다. 지방권력 독점화는 지방분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피니언 리더들 “일당 독점은 지역에 되레 손해”


▎봄을 맞아 무등산 입석대에 오른 등산객들이 반대편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사진:오종찬
광주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균형감각’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심연수 호남대 인문사회연구소장(경찰행정학과 교수)은 “광주 시민들의 정치 수준은 자타가 공인할 만큼 높다. 유권자보다 정당이나 유력 정치인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일당 독점의 폐해를 잘 알기에 독식을 막자는 투표 행태가 나타날 수 있다”며 “무조건적으로 민주당에 기울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지난해 대선 때도 투표 직전까지 안철수로 가는 듯한 분위기도 있었지만 결과는 문재인이었다. 말없이 지켜보다가 표로 보여줬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가장 관심이 쏠리는 건 역시 광주시장 선거다. 특히 민주당 공천을 누가 받느냐다. 이렇다 할 야당 후보가 눈에 띄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 공천은 곧 당선으로 받아들여진다. 민주당에서는 3선의 강기정 전 국회의원, 민형배 광산구청장, 양향자 최고위원, 윤장현 광주시장, 이병훈 광주 동남을 지역위원장, 이용섭 전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최영호 남구청장(가나다순)이 나섰다. 7명 가운데 일부는 일찌감치 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로 등록해 바닥 민심을 훑고 있다.

구도는 단순한 듯 복잡하다. 우선 이용섭 대 반(反)이용섭 대결 양상이다. 이 전 부위원장의 여론조사 1위 유지가 이런 구도를 만들었다. 그는 지난해 7월 전남일보 조사부터 올해 1월 전남일보와 광주KBS 조사까지 여섯 차례 여론조사 적합도에서 30% 안팎의 지지율로 모두 1위에 올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권리당원조사 50%+여론조사 50%’를 적용하는 민주당 광주시장 경선의 판세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감안하면 이 전 부위원장의 우세 속에 다른 후보들의 거센 추격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승부를 예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민주당 경선에는 다양한 ‘변수’가 도사린다. 그중에서도 이 전 부원장 측의 ‘당원명부 유출’ 의혹에 대한 검경의 수사 결과는 경선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 이 문제를 두고 치열한 공방 중인 이 전 부위원장이나 ‘반이용섭’ 연대를 형성하고 있는 나머지 후보군 중 한쪽은 수사 결과에 따라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민주당이 광역단체장 경선에 결선투표 도입을 검토하면서 공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결선투표는 1차 경선 때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위와 2위 후보 간 2차 경선을 치르는 것이다. 이 전 부위원장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지만 지지율은 대부분 30% 안팎이다. 고정 지지층이 견고한 나머지 후보도 결선투표를 고리로 ‘연대’할 경우 승부를 점치기 어렵다.

“민평당·바른미래당 인물 경쟁 나서야”


▎나경원 자유한국당 공동중앙선대위원장이 지난해 5월 4일 광주 말바우시장 앞 유세차량에 올라 홍준표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왼쪽은 같은 당 신보라 의원. /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에 맞설 바른미래당과 민평당이 내세울 ‘대항마’도 관심사다. 두 당은 국민의당에서 분화해 창당과 조직 정비 등으로 어수선한 만큼 출전 선수를 아직까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국회부의장인 박주선(동남을) 의원이나 4선 김동철(광산갑) 의원이 거론됐지만 의석수 감소를 우려해 현역 의원 차출은 하지 않기로 했다. 6선의 천정배(서구을) 의원과 김경진(북구갑) 의원 등판 가능성이 점쳐지던 민평당 역시 당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현안이 되면서 현역 차출은 사실상 접었다.

양당이 광역단체장 후보에 현역 의원 불출마를 밝히면서 민주당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기울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양당은 지방선거를 포기하지 않고 광역 및 기초단체장 전 지역에 참신한 후보 공천을 통해 승부하겠다고 천명했다. 문제는 민주당 후보들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후보를 과연 양당이 공천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나마 경쟁력 있는 후보로 분류된 중진 의원들이 하나같이 출마를 꺼리면서 이미 승부는 끝났다는 말도 나온다.

양당 지지율이 낮아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현역 의원을 비롯해 인지도 높은 인사들이 출마를 꺼리는 것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양당은 광주·전남이 뿌리이자, 지지기반이다. 경쟁력이 약한 후보를 공천하겠다는 것은 지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광주·전남은 또다시 민주당 일당 체제로 돌아간다. 그럴 경우 지난해 예산정국에서 이뤄냈던 ‘경쟁 성과’를 다시 얻기 힘들어진다. 정치권이 투표 참여 저조를 부추겨 민의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평당의 ‘약한’ 후보는 민주당의 경선 과열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중앙당이 최근 계속해서 언론에 흘리고 있는 전략공천·조기경선·결선투표 등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실성이 약하지만 만약 전략 공천이 이뤄지면 지역민들의 민주당 후보 선택권은 사라진다.

이미 경선이 과열될 조짐은 나타났다. 민주당 시장 후보들은 오래전부터 당원 명부 유출과 이 부위원장의 대통령 발언 등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높은 지지율에 취해 유권자는 안중에 없는 듯한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민주당은 후보 공천에 따른 잡음이 이어질 경우 경제 상황과 맞물려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열악한 광주 경제는 금호타이어 문제로 연일 혼란스럽다. 채권단은 금호타이어 회생을 위해 해외 매각을 추진 중이지만 지역사회는 반대 목소리가 강하다. 민주당 시장 후보들이 경쟁하듯 금호타이어 노조위원장들의 송전탑 시위장을 찾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투 열풍’이 민주당에 더 몰아친다면 민심 이반의 원심력이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리얼미터의 3월 첫째 주 여론조사에서 비록 민주당과 문 대통령의 호남 지지도가 다른 지역보다 높았지만 ‘안희정 쇼크’ 영향으로 지지율은 직전 조사 때보다 떨어졌다.

광주에서는 유력 광산구청장 입지자가 15년 전 성희롱 사건을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던 중 안희정발(發) 미투가 터진 다음 날 출마 포기를 공식화했다. 광주 정가도 미투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김대헌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은 공천 과정이 중요하다. 높은 지지도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많은 입지자가 몰린다는 건 그만큼 공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잡음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는 걸 의미한다”며 “제2의 안희정 쇼크와 지역 경제 어려움이 덧씌워질 경우 민주당의 현재 지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민평당이나 바른미래당이 견제 당위론을 앞세워 인물 경쟁으로 승부수를 띄운다면 각급 선거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 김명식 남도일보 기자 msk7234@nate.com

201804호 (2018.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