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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대북제재에 ‘휘청’ 북한 경제의 속사정 

468개 ‘장마당’ 마비되면 北 체제 안정에도 ‘빨간 불’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김정은 집권 후 시장경제화 급속 확대, 동·리까지 퍼진 장마당 경제…신흥 부유층 ‘돈주’들의 전방위 투자 확산, 중국이 경제 제재 적극 동참하자 타격 커져

▎장마당이 없으면 북한 경제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지난해 북한 전역의 장마당 수는 468개로 7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장마당에서 북한 여성들이 운동화 좌판을 벌여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놓은 일은 다만 시작에 불과하며 당 중앙은 인민을 위한 많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5년 만에 열린 당 세포위원장 대회 폐회사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경제 건설과 인민생활 개선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이렇게 밝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으로 미국에 맞서면서 강력한 제재와 깊은 고립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건설과 인민생활 개선에 성과를 내고 신년사에서 언급한 북한 정부 수립 70주년을 ‘대경사’로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의 확고한 전망을 열고 나라의 경제 전반을 보다 높은 단계”로 올려세우기 위해 경제 건설에 주력하겠다고 피력했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소기의 경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않으면 경제 분야에서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뿐더러 체제 안정도 보장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을 법하다. 이번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우선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디딤돌 삼아 미국과의 현안 타결을 겨냥한 승부수를 띄울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넘어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경제 건설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립 탈피와 평화적 환경 조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의 경제는 어떤 상황에 있는 것일까.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북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북한은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자 하는 것일까. 제재가 지속된다면 북한 경제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측면에서 북한 경제 내부의 속사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북한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온 시장(장마당)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살펴볼까 한다.

북한에서는 원래 농산물에서 공산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비재의 생산과 공급을 국가가 통제, 관리하는 계획경제가 원칙이며 배급제도를 운영해왔다. 물품의 공급은 국영상점에서만 이뤄지며 특히 식량과 공업제품은 배급제도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에 개인 매매는 금지됐다. 그런데 유일한 예외가 있었다. 이는 ‘농민시장’ 또는 ‘장마당’으로 불리고 있는 시장이었다. 북한 정권 수립 이후 사회주의 계획경제 노선이 천명된 이후에도 소규모 시장은 늘 존재했다. 도시에서는 일종의 ‘야(夜)시장’ 개념으로, 농촌에서는 농민들 간 ‘물물교환’ 개념으로 명맥이 유지된 것이다. 규모도 매우 작고 거래량도 생필품이나 농산물이 대부분이었다. 북한 주민들은 이를 장마당이라고 불렀다. 시장(market)을 상징하는 ‘장’(場)이 서는 ‘마당’(filed)이라는 뜻이다. 국가배급제는 기간별로 계획된 물품이 공급되는 원리라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필요한 소소한 재화까지 순발력 있게 공급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때그때 필요한 생필품이나 기호품을 조달한다는 차원에서 북한 당국이 이를 묵인했다.

북한은 사회주의 개조에서 먼저 도시 지역의 계획경제를 추진하고, 농촌 지역은 협동화 방식으로 계획화를 추진했다. 농민은 토지 등 사적 소유에 익숙한 집단이라는 북한 당국의 논리 때문에 농민들이 개인 분배 중 일부를 팔거나 교환하는 것에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주변이 농촌으로 둘러싸인 소규모 지방 도시의 버스역을 중심으로 한 주요 거리에는 농민들 간 거래가 열리는 장마당이 있었다. 도시건 농촌이건 그 규모는 매우 작았고, 북한 전체 거시경제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미미한 것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국가 공급이 전면 중단되면서 장마당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팔아야 하고, 무엇이든 사야 했다. 그렇게 장마당의 수와 규모는 점점 늘어났다.

장마당 없으면 北 경제 돌아가지 않을 정도


▎북한 경제의 시장화가 급속도로 확산한 것은 김정은 집권 후부터다. 지난해 11월 평양 제1백화점에서 쇼핑 중인 시민들이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본래 북한의 ‘경제 관리’에서는 장마당이 포함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존재였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장마당이 아니면 북한 사회 자체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실질적 비중이 커졌다. 식량·의류·연료·공업 부품 등 거래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장마당으로 몰렸다. 시·군·구역급 도시에 존재하던 장마당이 동·리 단위까지 퍼져 나갔다. 2003년 김정일의 승인 아래 내각 결정이 발표되면서 시·군·구역급 단위로 ‘종합시장’이 들어서게 됐다. 장마당 시대에서 시장 시대로 발전한 것이다. 2004년 개장한 각 지역 종합시장은 외형상으로는 지붕과 울타리가 들어서고 각 지역 인민위원회 상업관리부문을 통해 국가 관리가 적용하는 공식 시장이었다.

이런 종합시장들은 각 (지역별) 시장관리소의 통제를 받았다. 시장에서 매대(賣臺)를 받기 위해서는 허가증을 받아야 했으며, 일정액의 매대 사용료를 납부해야 했다. 판매 시간이나 판매 물품도 통제를 받았다. 돈이 없어 매대를 분양받지 못한 사람들은 종합시장 울타리 주변에서 노점장사를 벌이기도 했다. 노점상은 종합시장 주변뿐 아니라 동·리 단위로 확산됐다. 유동인구가 많은 기차역, 버스역 주변 중심 거리에는 노점상들이 모였다. 심지어 주택 밀집지역에 20~30개 정도의 노점상이 거점을 잡는 경우도 흔해졌다. 각 도 인민위원회 소재지에 있는 유명 도시의 시장은 도매시장 성격으로 확대 발전됐다. 평성시장, 수남시장 등이 전국구 도매시장 규모로 성장한 것이다. 중국산 물품들도 대거 시장에 진열됐다. 재화의 거래뿐 아니라 노동·외화·서비스 등 비재화 시장도 형성되기 시작했고 외국 영화나 마약 등 암시장의 덩치도 커져갔다.

통일연구원이 구글 어스의 인공위성 이미지와 탈북민 면담을 통해 파악한 북한의 종합시장 수는 2016년 말 현재 404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커티스 멜빈(Curtis Melvin) 연구원은 2010년 북한 전역의 장마당 수는 200개 정도였지만, 2017년에 468개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는 김정은 체제가 장마당을 통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장려했을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한다. 허가를 받지 않은 길거리에 조성한 장마당이나 임시 시장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증가한다. 외부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시장이 북한 전역에 흩어져 있어 그 수를 정확히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북한에서 들려오는 경제 관련 소식의 상당부분은 시장의 확산에 관한 것이다. 북한의 시장화는 소비재·서비스·부동산 등 최종 소비 부문이 주도하고 있으며, 노동·금융·자본재 등 생산요소 부문은 다소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일부 식량이나 선물이 배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소비재가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소비재는 장마당이라 불리는 종합시장뿐 아니라 직매점·매대 등 개별 상점과 백화점 및 수퍼마켓 등 대형 유통시설을 통해서도 거래되고 있다. 일반 주민뿐 아니라 당과 군의 고위층이나 ‘돈주’(다양한 시장경제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북한의 신흥 부유층) 등 권력층도 시장에서 소비재를 구매하고 있다. 일반 주민은 주로 종합시장이나 직매점 등에서 구매한다. 권력계층은 종합시장과 함께 백화점이나 수퍼마켓 등 대형 유통시설에서도 상당한 소비재를 구매한다는 점이 차이다.

‘돈주 투자’ 적극 활성화한 김정은의 교시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신흥부자인 ‘돈주’가 안정적인 상업 활동을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 돈주들은 일반 소비재부터 부동산·건설 분야 등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4월 14일 평양 여명거리 준공식에 참석한 김정은 위원장.
소비재와 함께 서비스 시장의 발달도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방·교육·의료 등 공공재적인 성격이 강한 일부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서비스가 시장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즉 시외버스를 중심으로 한 운수 서비스, 종합시장, 직영매점, 소규모 매대, 백화점 및 대형 유통시설 등으로 구성되는 상업 및 유통 서비스가 시장을 통해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거의 모든 서비스가 시장을 통해 공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서비스 시장 발달과 관련해 특히 주목할 점은 무선통신 서비스 시장이다. 북한은 오라스콤(ORASCOM)이라는 해외 자본과의 합작을 통해 무선통신 서비스를 공급해왔다. 약간의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누구든 단말기를 사고 통신료를 지불할 능력과 의사가 있으면 이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시장은 국가가 주도적으로 창출한 시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기존 주택의 거래뿐 아니라 신규 주택의 건축 및 매매도 시장을 통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시장경제의 확산에 따라 자금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공식적인 금융기관은 자금을 융통하고 중개하는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장경제 활동을 통해 자금을 축적한 ‘돈주’ 등에 의해 사금융이 발달하고 있는 것이다. 또 국영기업이 충분한 일자리와 소득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장화가 진전되고 있으므로 타인의 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사적인 고용 역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 및 노동 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여전히 강력하므로 이들 시장의 발달은 소비재와 서비스 시장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지체돼 있다.

북한 시장화의 원인은 우선 계획경제의 축소 또는 국영기업의 생산 및 공급 역량의 약화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에 의한 식량 공급, 그리고 국영기업에 의한 소비재의 공급이 1990년대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국가재정 약화로 많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각 경제 주체는 생존을 위해 수평적인 거래를 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북한 경제에 내재해 있던 시장화 경향이 현실화한 것이다. 대외무역의 확대를 기반으로 하는 유효 수요의 증가 및 민간 공급 역량의 확대는 시장이 북한에서 현실적이고 가장 역동적인 부문이 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었다. 국가의 공급 역량 약화에 따른 계획경제의 해체가 시장화를 촉진했지만, 대외무역의 확대가 수반되지 않았다면 시장화의 속도나 범위는 훨씬 느리고 축소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비재와 서비스 시장의 발달은 우선 ‘제도적 타협’으로 가능해졌다. 시외버스나 개별 상점 및 식당은 개인이 투자하고 경영한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국영기업이나 국가기관에 소속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개인이 사적인 영리활동을 할 수 없는 경제체제 아래서도 안정적인 투자와 지속적인 영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외버스 서비스다.

북한의 시외버스는 개인이 중국 등에서 버스를 구입해 도나 시 인민위원회가 운영하는 운수회사 등의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북한에서는 도청 소재지를 비롯한 주요 도시뿐 아니라 중소 도시와 군을 연결하는 시외버스망이 구축됐다. 사적인 영리활동을 금지하는 제도를 공식적으로 수정하지 않은 채 개인의 투자와 영업활동에 대한 제한적이지만 유효한 ‘제도적 우산’을 제공하고 있다. 일종의 ‘제도적 타협’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타협’을 통해 국가는 재정을 통한 투자를 전혀 하지 않고도 철도가 담당하지 못하는 여객이나 소규모 화물 수송을 위한 시외 버스망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영업활동에 따른 수익의 일부도 배분받을 수 있다. 개인은 수익의 일부를 소속 기관과 나누지만 안정적인 투자와 영업활동이 가능해졌다.

이 같은 새로운 시장의 발달과 확대는 김정은 위원장의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돈주들의 투자를 공식·비공식적으로 활성화시켜 왔다. 돈주들이 어느 정도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는 데는 김정은의 ‘교시’가 한몫하고 있다. 김정은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돈의 출처를 따지지 말고 투자하게 하되 이윤도 최대한 보장해주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실제 북한은 2014년 기업 소법을 개정해 신흥 부유층인 돈주 등 개인의 기업 투자를 합법화했다. 이에 따라 돈주들이 돈주머니를 열어 침체된 주택 경기를 살리고 있다. 신의주와 남포시 등 큰 도시에서는 이미 주택을 사실상의 사유재산으로 인정해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돈주들의 투자 영역은 시장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부동산, 건설 분야와 여객 운수 유통 등 거의 전 분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돈주는 상업 활동과 고리대금업, 나아가 아파트 건설 등 각종 이권 사업에 투자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당과 군대 산하 외화벌이 기관에서 오랫동안 무역한 사람들과 장사해서 부를 모은 사람들을 지칭한다. 돈주들은 일단 주택 건설과 운송업, 식당업 등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돈주들은 대형 국가 프로젝트가 시행될 때마다 ‘충성 기부’를 강요받는다. 기부 방법은 외화, 건축자재, 연료, 식품 등 다양하다. 이들은 기부를 거부할 수 없다. 기부를 하면 메달과 수령증을 받게 되고 불법적인 사업 활동을 하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의 독점적 시장 지배 현상도 눈여겨봐야 한다. 한국의 재벌과 같은 특정 기업이 여러 업종과 비즈니스 영역을 차지하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 시장에서는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다양한 신제품이 출시되면서 북한 소비자들이 더불어 많은 혜택을 보고 있기도 하다. 즉 가격·품질·서비스 경쟁에 따른 혜택들이다. 그리고 당국의 감시 시스템에서 많은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체계적인 마케팅이 이뤄지고 있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즉 북한도 초보적 형태의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화가 北 체제 안정성 강화시켜


▎밀무역을 통한 암시장 거래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해 온 ‘돈주’들의 상업 활동을 김정은은 양지로 끌어올렸다. 이는 북한 경제의 시장화를 가속화했다.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불법 복제 CD들.
정부와 공공부문의 적극적인 시장 진출도 눈여겨봐야 한다. 정부는 무선통신 서비스와 같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독점적 공급자의 역할을 한다. 자체 자금이나 외부 투자를 유치해 대형 유통시설을 신설하거나 현대화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수입 소비재 등을 시장가격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정부의 이런 시장 진출은 재정자금 확보나 외화의 흡수 그리고 화폐순환의 복구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화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서비스 노동자의 성격 변화도 서비스의 시장 공급을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다. 임금을 받고 편의봉사 사업소에서 국정가격으로 서비스를 공급하던 노동자들은 시장가격으로 서비스를 공급한다. 대신 이들은 수입 중 일정한 금액을 국가에 납부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가져간다. 거의 개인사업자의 성격을 갖게 된 것이다.

북한 당국은 소비재나 서비스 부문에 비해 노동이나 사금융의 발달이 체제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 시장에서는 제도적 타협을 통해 최소한의 제도적 우산을 제공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노동이나 사금융 영역에서 시장의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현재 북한의 시장화는 국영기업의 사유화가 전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소유제 발달도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의 시장화가 반드시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 시장화가 북한 정치체제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북한 당국이 시장을 통해 재정을 보충하고 스스로 투자하기 어려운 부문에 민간자금을 유치하는 등 적극적으로 시장화를 활용하고 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시장화의 진전이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작용을 할 수도 있다. 북한의 시장화가 가까운 장래에 북한에 체제 전환이 도래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시장화는 북한 주민의 생활을 지탱하고 개선하며, 북한 경제 전반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해외 자본과의 합작을 통해 무선통신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제약도 있지만 단말기를 사고 통신료를 지불할 능력이 있으면 이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평양 여명거리에 있는 스마트폰 등 전자통신 기기를 판매하는 매장.
그렇다면 역대 최강이라고 불리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장마당과 시장경제 확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미국의 유력 언론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월 4일자 보도에서 유엔의 대북제재가 북한 김정은 정권보다는 북한의 시장경제를 위축시키는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을 정기적으로 방문해온 한 인사는 이번 제재가 기본적으로 ‘시장 발달’이라는 긍정적인 과정을 지연시킨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시장경제의 발달은 현대 북한 경제의 변화를 가져온 가장 큰 동력이었으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안팎의 관측이다. 이 관측은 부분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우선 북한 시장의 공급 측면을 살펴보면 공급은 크게 세 가지 부문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북한 기업소와 협동농장에서 생산된 것이 공식·비공식적 방식으로 거래되는 것이다. 가장 흔한 경우는 일부 간부가 생산물을 판매하는 것이다. 판매 품목은 식량·연료·석탄·의류·생활필수품·가전제품 등 다양하다. 둘째, 북한의 가정에서 개인이 생산하는 가내수공업 제품들이 있다. 여기에는 개인 텃밭에서 생산된 옥수수나 야채 혹은 닭이나 돼지와 같은 가축도 포함된다. 재미있는 것은 북한의 가내수공업에서 생산되는 품목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가내수공업 품목에는 옥수수로 만든 술이나 길거리에서 팔리는 음식만 있는 게 아니다. 자동차 유리·디젤유·마약흡입기도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시장 위축이 체제 불안 불러올까


▎대북제재로 북한의 기름값은 지난해에 비해 큰 폭으로 올랐다. 이는 물가 전반의 상승을 자극하면서 인민경제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평양의 한 주유소. / 사진:연합뉴스
셋째, 중국에서 들어오는 위안화·달러·식량·공산품·가전제품 등이다. 중국에서 공급되는 물품은 북한 정부와 중국 정부가 모두 승인한 공식무역을 통해 들어와 유통되는 것, 북한 정부의 승인은 받았지만 중국 정부가 승인하지 않은 밀수, 북한 정부조차 공식 승인하지 않은 밀수 등으로 다시 나뉜다. 중국 해관(海關, customs)의 통계에 잡히는 것은 대부분 첫 번째 공식무역 통계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가지 경로로 공급되는 양과 품목도 상당할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런데 이 세 번째 공급 통로가 유엔 제재와 여기에 적극 동참하는 중국의 제재로 인해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 수출의 핵심인 대중(對中) 수출액은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연속 감소했다. 특히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 지난해 9월 이후 수산물·섬유·석탄 등의 수출이 차단되면서 10~12월의 대중 수출 감소 폭은 전년 동기 대비 61~83%에 달했다. 북한의 대중 수입액 역시 지난해 8월부터 5개월 연속 줄었고, 감소 폭도 10월 15%, 11월 18%, 12월 23%로 빠르게 확대됐다. 지난해 12월 북한의 대중 수출이 83% 감소했는데 올해는 이런 하락 폭이 연중 내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럴 경우 북한이 무엇보다 대외무역에서 받을 충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다수의 전문가는 올해 북한 경제에 ‘수출 감소→외화 감소→수입 감소→생산·투자 축소’라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런 악순환은 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정권은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응해 내수에 방점을 둔 경제정책을 펴고 있다. 그래서 현시점에서 냉정히 북한 경제를 관찰해보면 생산과 소비 면에서 큰 폭의 생산 감소 현상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북한을 방문한 인사들은 북한산 제품의 판매 규모와 범위가 확대되는 등 회복세를 보였고 주민들의 소비 수준도 개선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장마당에서의 환율과 쌀 가격도 낮은 수준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다만 휘발유 가격은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 전문보도 매체인 [Daily NK]에 따르면 지난해 6월 21일 평양·신의주·혜산에서 휘발유는 ㎏당 1.46달러에 팔렸다. 이는 2개월 전인 4월 21일 대비 50% 가까이 오른 수치였다. 6월 21일 경유의 ㎏당 평균 가격은 1.2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사실 석탄 수입 조치는 북한의 구매력을 감소시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석유가격 상승도 물가 전반의 상승을 자극하면서 인민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대북제재에도 현재 북한은 ‘그럭저럭 버티기’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고강도 제재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된다면 자라난 북한의 중산층과 장마당(시장) 세력이 위축될 것이다. 시장의 활성화가 체제 안정성을 강화시켜온 측면을 놓고 볼 때 시장의 위축은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고강도로 지속되고 있는 대북제재를 풀어 시장을 안정시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아가 북한 사회가 시장경제로 나아갈 수 있는 자본주의화의 싹을 자르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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