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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김정은 압박한 새 무기 ‘北 인권카드’의 폭발력 

정상회담 앞두고 북한 비핵화의 최대 수단으로 평가… 북한 거부하면 유엔 ‘R2P’(국민 보호책임)에 따른 군사개입 가능성 제기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북한 주민들은 올 초부터 김정은 새해 신년사 과업 관철을 위한 농촌거름전투 등에 동원되고 있다. / 사진:조선중앙TV
미국 국가지리정보국(NGA, National Geospatial-Intelligence Agency)은 ‘하늘의 중앙정보국(CIA)’이라고 불리는 정보기관이다. 미 국방부 산하에 있는 NGA는 버지니아주 스프링필드에 있는 군사기지에 본부를 두고 있다. 3000여 명의 요원이 상주하는 NGA는 지상에서 활동하는 CIA와 달리 정찰 위성과 정찰기, 드론 등을 이용해 전 세계의 주요 지역을 촬영한 수십억 장의 항공사진과 비디오 영상을 통해 정보를 수집·분석한다. 1996년 창설된 이 기관은 ARGUS-IS로 불리는 현존하는 최고 해상도 18억 픽셀의 카메라를 드론에 장착해 지상 6.5㎞ 높이에 띄워 지속해서 목표물을 감시할 수 있다.

NGA는 북한을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 등을 인권단체들에 직접 제공할 계획이다. NGA는 과거 기밀에서 해제된 사진 등을 일반에게 공개한 적이 있지만 실시간 상황이 담긴 자료를 인권단체들과 공유하기로 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NGA의 이 같은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들어 북한의 인권 문제를 집중 제기하고 있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권단체들은 그동안 상업용 인공위성을 이용해 정치범 수용소나 처형장 같은 북한의 인권유린 증거들을 찾고자 노력해왔지만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상업용 인공위성이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촬영한 사진들도 해상도가 낮아 식별이 어려웠다. 인권단체들은 북한 곳곳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와 그 주변에 수감자들을 대량 살상한 뒤 파묻은 거대한 묘지의 위치 등을 찾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이 때문에 인권단체들은 NGA로부터 사진 등을 제공 받을 경우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폭로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지금까지 민간단체들에 사진이나 자료 등을 제공한 적이 없다는 점을 볼 때 NGA의 결정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 잡지인 [포린폴리시]는 “인권단체들은 앞으로 NGA가 촬영한 위성사진 등으로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 증거들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인권상황 개선 여부가 협상의 한 지표


▎미국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공개한 북한 내 수용소 건설 관련 위성사진.
북미 정상회담이 5월 중 개최될 예정인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까지 의제로 올릴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의 인권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직접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을 촉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북한 입장에서 봤을 때는 핵을 포기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강력한 압박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주탈북자선교회의 마영애 회장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압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와 군사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3월 8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북미 대화가 진행되더라도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형태로 폐기될 때까지 최대의 압박 캠페인은 지속돼야 한다”면서 “북한 인권 문제를 계속 제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의원들은 “북한은 잔인한 수용소에 주민들을 가둬두고 있고 반복적이고 끔찍한 인권 유린 행위를 저지르고 있으며,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납치하고 고문해 숨지게 만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인 코리 가드너 의원이 주도한 이 서한에는 제임스 인호프 의원과 제임스 리시 의원을 비롯해 공화당 중진인 마르코 루비오 의원 등 5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공동서명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도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진위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사설(9일자)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가 비핵화 협상의 그늘에 가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의 아킬레스건은 북한 인권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권 유린 행위를 중지해야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겠다고 압박할 경우 김정은을 당혹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역대 대통령과 비교할 때 북한의 인권 문제를 가장 강력하게 거론하면서 북한을 압박해왔다. 김정은이 대화에 나선 것도 이런 압박이 어느 정도 통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탈북자 8명을 백악관 집무실로 초청해 45분간 환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탈북자 8명을 초청해 면담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2일 백악관 집무실(Oval Office)에서 지성호씨 등 탈북자 8명을 만나 45분간 환담했다. 꽃제비 출신이자 장애인이기도 한 탈북자 지씨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30일 연두교서를 발표하면서 의사당에 초청해 직접 소개한 인물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지씨의 탈북 과정 등을 자세하게 소개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를 나눈 탈북자들을 보면 대북 인권단체 ‘노체인’의 대표로 활동하는 정광일씨, 싱가포르에서 북한 금융 관련 업무를 하다 탈북한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탈북자 출신 자유아시아방송 기자인 정영씨, 탈북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이현서씨, 북한 대학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쳤던 현인애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 김정일의 부인 성혜림과 친구라는 이유로 정치범 수용소에 투옥됐던 김영순씨 등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탈북자와 면담한 것은 2008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탈북자를 의미하는 ‘defector’보다 더 강력한 의미인 ‘escapee’(탈출자)란 단어를 사용했다. 탈북자에는 배신과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는 반면 탈출자는 자유를 찾았다는 의미가 강하다.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이들이 북한이라는 거대한 감옥에서 탈출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면담이 끝난 뒤 일정에 없던 백악관 투어를 탈북자들에게 해줄 것을 지시했고 탈북자들의 요청에 따라 일일이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백악관은 공개적으로 환담한 23분 분량의 녹화 영상을 인터넷 홈페이지와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렸다.

미국 인권단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탈북자들을 면담한 것은 인권 차원에서도 북한 정권을 압박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7일 한국 국회연설과 연두교서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북한의 인권상황은 아마도 이 시대에 가장 큰 문제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 카드의 표적은 북한 정권 교체?


▎미국 언론에 보도된 북한의 정치범, 범죄인 수용소로 추정되는 장소의 위성사진.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국회에서 연설을 통해 북한을 ‘감옥 국가(prison state)’로, 김정은을 ‘잔혹한 독재자’로 각각 규정하면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상을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규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부패한 지도자들이 압제와 파시즘, 탄압의 기치 아래 자국민을 감옥에 감금하고 있다”며 “10만 명으로 추정되는 북한 주민이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과 고문, 기아, 강간과 살인을 견디며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잔인한 독재 정권은 국가에 대한 충성이란 제멋대로의 기준으로 주민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고 계급을 나눈다”며 “북한은 당신(김정은)의 할아버지(김일성)가 그리던 낙원이 아니라 그 누구도 가서는 안 되는 지옥”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정부가 북한 인권 카드를 꺼내 든 의도는 북한 정권 교체를 겨냥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탈북자 면담은 앞으로 대북정책이 북한 정권 교체로 수정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정부는 그동안 공식적으로 북한 정권의 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밝혀왔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김정은 정권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무기는 바로 탈북자와 북한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탈북자들의 만남은 모두 백악관의 안보 사령탑인 NSC에서 총괄했다. 특히 초청된 탈북자들을 보면 트럼프 정부가 김정은 정권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가 이처럼 인권 문제를 고리로 북한 정권 교체를 시도할 의도까지 보이자 김정은으로서도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 북한에 17개월간 장기간 억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귀국한 뒤 지난해 6월 숨진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북한 정권의 잔혹성을 규탄한다”면서 “오토의 불행한 운명은 무고한 사람들을 상대로 법규범과 기본적 인간의 품위를 존중하지 않는 정권이 저지르는 비극을 막겠다는 우리 정부의 결심을 더욱 굳혔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한 대응 조치로 미국인의 북한 여행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결정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다고 밝히면서 웜비어와 북한 정권의 탄압에 의해 잔인한 일을 겪은 수많은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는 또 지난해 9월 유엔 안보리에서 김정은을 사실상 ‘전범(戰犯)’으로 규정해 자산 동결을 비롯한 제재 조치를 취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로 김정은을 제재하는 것은 무산됐다. 유엔 안보리는 대신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또 다른 이유는 북한 정권이 운영하고 있는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국제사회의 여론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의 강제노동 수용소인 굴락(Gulag)보다 수감자들을 더욱 잔인하고 악독하게 다루는 곳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다.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지난 2월 22일 전 세계 159개국의 인권 상황을 담은 연례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북한의 인권유린과 정치범 수용소 실태를 고발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북한 정권은 최대 12만 명의 주민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해놓고 강제 노동과 고문, 부당대우 등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유린을 계속해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또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 중인 이들 중 다수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형사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없으며, 이들은 국가에 위협이 된다고 간주하는 사람들과 연관이 있거나 연좌제의 적용을 받아 수감됐다고 밝혔다.

쏟아져 나오는 북한의 반(反)인권 실태들


▎지난해 9월 4일 서울 중구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북한 인권단체 관계자 등이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 사진:연합뉴스
국제변호사협회(IBA, International Bar Association)도 지난해 12월 12일 발표한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범죄 조사보고서’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세운 아우슈비츠 수용소보다 더 끔찍한 곳이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던 사람과 전직 교도관 등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정치범 수용소는 생지옥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수감자들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음식을 찾으려다 처형되기도 하고 하루 20시간 이상 탄광에서 노동하며 과로와 영양실조에 죽어간다고 한다. 강간과 낙태 이후 사망한 여성들 사례도 다수 있다. 중국으로 탈출하려다 붙잡힌 수감자는 맨몸으로 거꾸로 매달려 불과 물로 고문을 당하고 후추를 탄 물을 코와 입에 들이붓는 물고문도 자행된다고 한다.

IBA는 살인·고문·성폭력 등 국제적으로 전쟁 범죄로 인정되는 혐의 11건 중 10건을 적용해 김정은 정권을 기소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결론내렸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토마스 버겐셀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상황은 내가 경험했던 나치 수용소보다 끔찍하다”고 밝혔다. 버겐셀 전 재판관은 어린 시절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했었다. 보고서의 공동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나비 필레이 전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지금도 다양한 형태의 반(反)인도적 범죄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레이 전 최고 대표는 “김정은이 북한의 최고지도자로서 정치범 수용소에서 자행되고 있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며 “노동당과 국무위원회, 국가보위부 관리들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HRNK도 ‘숨겨진 굴락(Hidden Gulag)’이라는 보고서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들은 영양실조로 죽기 전까지 12∼15시간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옷은 한 벌만 주어지고 비누와 양말, 속옷, 휴지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한다. HRNK는 또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라는 보고서에서 수많은 죄 없는 북한 주민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평생 과도한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식량과 치료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은 뒤 묘비 없는 무덤에 묻히는 처지가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무부도 지난해 8월 북한의 6개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보고서에서 수감자들은 ‘걸어 다니는 해골’ ‘난쟁이’ ‘불구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수용소마다 영양실조로 1500~2000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은 “북한 정권은 그동안 정치범 수용소에서 비인간적, 반인륜 범죄를 서슴없이 저질러왔다”고 지적했다. 북한 정권은 지금까지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를 인정한 적이 없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의 여론에 호소해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과 제재가 통하지 않을 경우 인권이란 채찍으로 김정은을 옥죄고 북한 내부를 흔들어 놓겠다는 의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김정은을 북한 인권 탄압의 책임자로서 ICC에 회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미국 조지타운대 전략연구센터(CSS) 부소장은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김정은 정권에 타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그동안 반인도적 범죄에 책임을 물어 ICC가 김정은을 기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ICC는 집단 살해, 전쟁 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상설 국제법정이다. 김정은을 ICC에 회부하려면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결의를 통과시켜야 한다. 따라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할 경우 김정은을 제소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북한은 ICC 회원국도 아니다.

유엔 총회 지난해 12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없이 통과


▎유엔은 지난해 12월 총회를 열어 북한의 인권침해를 규탄하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하는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 사진:유엔웹TV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직 국가원수라 하더라도 면책은 없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신(新)유고연방 대통령은 2001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서 반인도적 범죄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발칸 반도의 도살자’라는 말을 들어온 밀로셰비치에 대한 재판은 현직 국가원수가 임기 중 국제사법기구에 기소된 첫 번째 사례다. 밀로셰비치가 재판 중이던 2006년 사망하는 바람에 단죄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국제법적으로 특정 국가의 국가원수도 처벌될 수 있다는 사례가 됐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ICC 제소 추진은 김정은을 최대로 압박하는 방안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인권이 인류의 보편적 문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를 계속 부각시킬 경우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안보리를 거치지 않고 유엔 총회에서 직접 특별재판소 설립 결의안을 통과시켜 김정은을 회부하는 방안도 있다고 주장했다.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은 “특별 재판소가 설립된다면 김정은이 기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국제 인권단체들이 그동안 제기해온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 실태에 적극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엔 총회는 지난해 12월 19일 본회의를 열고 인권 문제를 담당하는 제3 위원회가 채택한 북한 인권결의안을 표결 없이 통과시켰다. 제3 위원회는 지난해 11월 14일 북한 인권결의안을 전원 동의(컨센서스)로 채택했다. 북한 인권결의안에 반대하거나 기권하는 국가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국제 사회가 그만큼 북한 정권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공분하고 있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엔, 감옥 국가의 통치자 처벌 가능


▎2012년 나토군 폭격으로 파괴된 리비아 트리폴리의 카다피 관저.
로베르타 코헨 전 미국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제3 위원회가 결의안을 전원 동의로 처리한 점은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 쿠바 등 북한과 가까운 나라들조차 북한의 인권유린 사실은 부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 총회 결의안이 투표 없이 채택된 것은 2012년, 2013년, 2016년에 이어 네 번째다.

비록 유엔 총회의 결의안은 구속력은 없지만,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유린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책임자 처벌을 강조했다는 것은 김정은에 커다란 압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유엔 총회의 결의안에는 유엔 공식기구인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가 2014년 2월 채택한 보고서의 내용이 그대로 반영됐다. COI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가 북한의 인권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2013년 3월 21일 만장일치로 설립을 결의한 이래 1년간에 걸쳐 9개 분야를 조사했다. 이 보고서에는 유엔이 개념을 규정한 ‘국민 보호 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도 포함돼 있다. R2P는 특정 국가가 반인도적 범죄, 집단 살해, 인종 청소 등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유엔이 나서야 한다는 원칙이며 2005년 유엔 정상회의 결의, 2006년 유엔 안보리의 재확인을 거쳐 국제규범으로 확립됐다. 실제로 유엔 안보리는 2011년 리비아 사태 때 무아마르 알 카다피의 학살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R2P를 처음 적용했다. 유엔 안보리는 2011년 3월 17일 채택한 결의 1973호에서 ‘카다피의 학살 행위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수단을 동원한다’면서 군사 개입을 승인했다.

결국 카다피는 2011년 10월 20일 자신의 고향인 수르트에서 나토의 지원을 받은 리비아 반군에 붙잡혀 처형됐다. 42년간 철권을 휘둘러온 독재자가 국제사회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북한처럼 자국민을 정치범 수용소나 노동 교화소에 수감해 강제 노동과 고문 등으로 숨지게 하거나 지속적인 기아 사태로 몰아넣는 감옥 국가와 통치자를 처벌하는 것은 인도주의적 원칙에 입각한 국제사회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끝까지 비핵화를 거부할 경우 R2P에 따른 북한에 대한 군사 개입을 도모할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새 국가 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이례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를 포함시킨 것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보고서는 북한 정권이 자국민을 굶주리게 하는 상황에서 수억 달러를 핵과 생화학 무기에 투자한다고 지적하면서 북한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자비한 독재국가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 3월 5일 북한이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화학무기로 암살한 것에 대해 제재 조치를 내린 것도 김정은 정권의 무자비함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북한의 인권 문제는 비핵화와 함께 국제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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