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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할리우드 수퍼히어로 영화는 국제질서를 읽는 텍스트 

‘혼자’ 아닌 ‘집단’이 지키는 正義 

워싱턴=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어벤저스’ ‘저스티스’ 시리즈는 21세기 미국적 신사고의 압축판…‘세계 경찰’ 미국의 글로벌 역할 포기와 다국적 연대의 출현

▎[저스티스 리그]는 협업을 강조하는 21세기 미국적 신사고의 압축판에 해당한다.
3월 13일을 기준으로, 535만 명이다. 영화 [블랙 팬서(Black Panther)]를 본 한국인 관람객 수다. 개봉 27일 만의 기록으로 ‘기록적 관객 동원’과 같은 수식어가 붙은 화제작이다. 영화 속에서 부산과 여러 도시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미국·중국 등 해외에서의 반향도 뜨겁다.

[블랙 팬서]는 영화 타이틀 그대로 블랙, 즉 흑인이 주인공인 수퍼히어로 영화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만능 희귀자원 비브라늄을 지키기 위해 흑인 수퍼맨 티찰라가 악과 싸워 이긴다. 전형적인 해피엔딩 스토리다. [블랙 팬서]는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화제가 됐다. [뉴욕타임스]가 주된 무대다. 세상 뉴스 모두가 페이크(Fake) 여부에 따라 이분되지는 않는다. 지난해부터 [뉴욕타임스] 주말판은 1주일간의 뉴스를 모아, 굿뉴스(Good News) 여부로 나눠 소개하고 있다. 2월초 [뉴욕타임스]는 [블랙 팬서]를 10대 굿뉴스 중 하나로 소개한다. 당시 기사를 대하면서 세상의 흐름이 어디로 가는지 통감했다. 마침내 흑인 수퍼맨이 등장했고, 출연자 90%가 흑인으로 구성된 영화가 만들어져 [뉴욕타임스] 굿뉴스로 알려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백인 수퍼맨 얘기는 굿뉴스에 걸칠 수 없다. 아니 보기에 따라서는 악의 뉴스로 선정될 수도 있다. 영화의 완성도·재미·연기가 아니라, 차별의 대명사이던 흑인이 마침내 수퍼맨으로 등장한 것 자체가 굿뉴스다.

이미 흑인 대통령도 탄생했는데 흑인 수퍼히어로가 나온 게 무슨 대단한 뉴스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당연하지만, 정치 문화는 그 나라 국민과 정치가 사이의 소통 결과다. 문화의 변화 스피드가 정치를 능가하는 곳이 한국이다. 한국만큼 미투(Me too)운동의 여파가 강한 나라도 없다는 것이 그 증거다. 국민 수준이 정치가보다 높다는 의미다.

미국은 어떨까? 정치가 수준이 국민보다 높다. 정치의 변화 스피드가 문화와 함께 가거나 훨씬 더 빠르다. 혁신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등장한 것이 1960년대다. 히피, 반전 운동, 동성애, 우드스탁과 같은 문화운동은 케네디 탄생 이후다. 정치가 오바마가 흑인 수퍼맨보다 앞선 것은 미국적 정치문화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대중의 욕구를 120% 반영한 수퍼히어로


▎2013년 부산에서 열린 ‘디즈니 캐릭터 페스티벌’에 구경 온 어린이들. 뒤로 마블 코믹스의 주인공들인 아이언맨·헐크· 스파이더맨·토르 등 대형 피큐어가 보인다.
정치·사회·경제의 거울로서의 영화 가운데, 수퍼히어로 스토리만큼 ‘아주 특별한’ 것도 없다. 다른 그 어떤 장르의 작품들에 비해 시대적 상황, 대세를 한층 더 분명히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수퍼히어로 스토리다. 간단히 말해, 수퍼히어로 영화 한 편만 봐도 현재의 미국을 이해할 수 있다. [블랙 팬서]를 통해 소수자가 전면에 나서는 시대를 통감할 수 있다. 왜, 수퍼히어로 스토리가 시대적 거울로 해석될 수 있을까? 크게 볼 때 두 가지 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수퍼히어로가 주인공이란 점에 있다. 복잡한 세상사를 한순간 풀어 줄 수 있는 ‘만능 해결사’로서의 수퍼히어로다. 이런저런 이유로 일관하는 변명이 아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정의의 편에 서서 단번에 악을 격퇴하고 세상을 밝히는 식의, 단순명료하고 통쾌한 스토리다. 복잡한 설명과 식사예법이 필요한 프랑스 요리는 배고픈 사람과 무관하다. 엄청난 양과 강한 향신료로 도배를 한 ‘지금 당장’ 요리가 먹힐 뿐이다.

학자·변호사·정치가가 아니라, 힘으로 모든 것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만능 해결사가 수퍼히어로의 역할이자 운명이다. 그 같은 캐릭터를 기다리면서 환호하는 것이 대중의 운명이자 본능이다. 따라서 대중의 욕구를 120% 반영한 수퍼히어로를 통해, 시대적 고민과 이슈를 파악할 수 있다.

둘째, 원작이 만화라는 점에서 시대의 거울로 볼 수 있다. [블랙 팬서]가 그러하듯 수퍼히어로 영화의 대부분은 만화, 즉 미국판 코믹스(Comics)에서 시작된다. 현재 미국 코믹스는 두 개의 전문회사로 양분돼 있다. 1939년 창설된 월터 디즈니의 마블(Marvel)과 1934년 세워진 워너브라더스의 디시(DC)코믹스다. 마블은 뉴욕, 디시는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미국 동서를 가르는 코믹산업의 주인공이다.

이들 두 코믹사는 자체 탄생된, 다시 말해 저작권을 가진 수많은 수퍼히어로를 통한 스토리를 거의 매일 만들어낸다. 모두 300여 개에 이르는 수퍼 캐릭터, 만화책이 권당 3~4달러 정도로 팔린다. 종이 활자 출판계의 불황소식은 세계 공통이다. 유일하게 예외가 하나 있다. 코믹산업이다. 만화책만이 아닌, 소설·비디오게임·영화·캐릭터를 통해 2016년 총매출 10억 달러 초대형 비즈니스로 성장한다. 매년 성장세다.

각각 1938년과 1939년 탄생된 수퍼맨과 배트맨은 수퍼히어로의 원조다. 수퍼히어로는 고대 그리스이래 서방 역사의 꿈이자 낭만이다. 반신반인 헤라클레스를 통한 악의 일소는 서방 정의관의 출발점이다. 엄청난 파워로 적을 초토화하는 영웅이 3000년 전부터 모범적 모델로 자리 잡아왔다.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차별에 일방통행이지만 서방 역사는 정당화한다. 악은 입이나 머리가 필요 없다. 박멸 초토화의 대상에 불과하다. 수퍼맨 신화는 독일 나치, 일본 이탈리아의 파시스트의 무차별 박멸에서 시작됐다.

수퍼맨·스파이더맨·배트맨·엑스맨…. 헷갈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코믹 마니아라면 구체적 캐릭터는 물론, 어느 코믹사에 소속돼 언제 어떤 식의 스토리로 성장해 갔는지 통달한다. 영화 [블랙 팬서]의 경우 수십 권의 코믹시리즈를 하나로 묶어 영상으로 재처리한 작품이다. 코믹 마니아라면,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스토리를 다 알고 확인 차원에서 간다고 볼 수 있다. 영화가 아닌, 코믹 원작이 진짜 주인공이다. 코믹을 바탕으로 한, 광범위한 독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인 셈이다. 블랙 팬서의 미국 내 인기는 4달러를 지불하면서까지 코믹을 즐기는 흑인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수퍼 캐릭터 가운데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일부분에 그친다. 따라서 영화로 ‘특별히’ 만들어진 수퍼히어로 스토리란 점 하나만으로도,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볼 수 있다.

중국과 북한을 적대관계로 설정한 아쿠아맨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칼빈슨함 전단이 항해하는 모습. 미국은 북핵 해법의 하나로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는다.
태풍 속의 눈, 아니 태풍전야의 상황이라고 할까? 2018년 4월 한반도다. 태풍 속의 눈이라면 바깥쪽 세상과 담을 쌓은 채 큰 피해 없이 넘어갈 수도 있다. 태풍의 눈이 어디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는 가정 하의 결과다. 이에 반해, 태풍전야는 태풍 피해를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안전한 곳에 대피해서 가능하면 적게 피해를 보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디로 가든 현재 한반도는 유사 이래 최악의 태풍 속으로 떠밀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핵만이 전부가 아니다. 북핵이 해결된다 해도 북핵에 맞먹을 정도의 엄청난 변화나 갈등이 한반도 안으로 밀려들 것이다. 뜬 구름 잡은 식의 얘기로 받아들일 듯하지만, 수퍼히어로 스토리는 이 같은 상황 하에서 주목할 영화다.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의 미국을 조망한다면, 수퍼히어로 스토리를 통해 태풍 속의 한반도를 분석해낼 수 있다. 수퍼히어로 스토리 자체가 미국이 펼칠 군사행동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수퍼히어로 영화를 보면 미국이 당대에 펼칠 전쟁을 어떤 식으로 임할지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진다.

지난 2월 14일 디시코믹은 흥미로운 만화 시리즈를 발간했다. [뉴 수퍼맨과 중국의 저스티스 리그(New Super-Man and the Justice League of China)]로, 뉴 수퍼맨 시리즈 20권째 코믹이다. 미국 영화산업 모두가 그러하듯, 디시코믹도 차이나 마켓에 뛰어든다. 2016년 7월 기존의 백인 수퍼맨과 더불어 중국인 수퍼맨이 등장한다. 상하이(上海)를 배경으로 활약하는 정의의 사도다. 수퍼맨 특유의 문양은 중국식 음양(陰陽)으로 표현된다. 아직 미국 내 영어판에 그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중국 현지법인을 통해 중국어 수퍼맨 스토리가 출간될 전망이다.

뉴 수퍼맨 시리즈에 주목한 이유는, 마침내 북한 출신 캐릭터가 코믹잡지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미국 코믹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 캐릭터가 탄생한다. 미국과 세계를 위협하는 북핵이 북한 출신 캐릭터 탄생의 일등공신일 것이다. 머리에 뿔 달린 ‘아쿠아맨(Aquaman)’이란 이름으로, 상하이의 평화를 위협하고 중국인 수퍼맨을 괴롭히는 악당이다. 종신황제를 만들어내는 중국 독재체제를 고려할 때, 수퍼맨의 정의와 중국이란 나라의 정의는 엄청 다를 것이다. 어떤 접점에서 중국식 정의를 실천해갈지 의문이지만, 분명한 것은 중국과 북한을 적대관계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아쿠아맨은 이름 그대로 상하이 물밑을 헤집으며 중국의 정의를 유린한다. 앞으로 시리즈물이 더해지면서 아쿠아맨의 악행도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북핵 문제 추이에 따라 김정은에 해당되는 캐릭터도 탄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수퍼히어로 스토리를 북핵문제와 연결할 때의 접점은 아쿠아맨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속에서 악행을 일삼는 정도가 아닌, 전 세계를 위협하는 북핵문제 해법으로서의 수퍼히어로 영화도 있다. 지난해 말 개봉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저스티스 리그(Justice League)]다. 당초의 기대에는 크게 못 미쳤지만, 흥행 면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영화로,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북핵과 맞서는 '저스티스 리그'


▎지난해 11월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시 주한 미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필자는 유럽행 비행기 안에서 국경을 넘어가면서 봤다. [저스티스 리그]는 북한 출신 캐릭터나 김정은과는 무관한 영화다. 스테판울프(Steppenwolf)와 부하들인 파라디몬(Parademons)의 지구 정복 음모를 분쇄하는, 5명의 수퍼히어로 무용담이다. 마더 박스(Mother Boxes)라 불리는 세 개의 에너지 원천무기를 통해 지구를 통치하려는 악당과, 그에 맞선 히어로의 활약과 우정을 그린 영화다.

두 시간 가까이 보면서 절감한 것은, 북핵 문제에 대응하는 미국의 전쟁 방식이나 전략·전술에 관한 것이다. 미군이 북핵 문제를 군사적으로 적극 대응할 때 과연 어떤 식으로 처리할 것인가? 주의 깊게 영화를 본다면, 그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1. 집단을 통한 정의 실현

[저스티스 리그]는 영화 제목 그대로 리그(League), 즉 팀·집단·그룹·동맹에 의한 정의 실현이다. 과거처럼, 디시코믹의 간판에 해당되는 수퍼맨이나 배트맨이 혼자 해결하는 식의 1인 스토리가 아니다. 마블코믹이 이미 2012년 4월 집단 수퍼히어로 시리즈 [어벤저스(Avengers)]를 만들어 대히트를 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발상 면에서 한참 늦은 영화다. 구체적으로, 배트맨·원더우먼·아쿠아맨·플래시·사이보그로 이뤄진 5인조 히어로 리그다. 어벤저스는 6명 수퍼히어로가 초기 멤버다. [저스티스 리그] 멤버 가운데 배트맨과 원더우먼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캐릭터다. 신인 캐릭터는 물속의 타잔에 해당되는 아쿠아맨, 광속으로 행동하며 달리는 플래시, 온통 최신식 첨단기기와 두뇌로 무장한 사이보그 등 셋이다. 여자 하나에 남자 넷, 백인 네 명에 흑인 하나의 비율이다. 아쿠아맨의 경우 악당으로 나오는 중국판 수퍼맨과 달리 정의의 편에 서 있다. 삼지창을 들고 서 있는 모습에서 보듯, 고대 그리스 포세이돈을 연상케 한다. 팀으로서의 5명의 리그는 배트맨의 발상에 기초한 것이다. 광폭한 악을 무찌르기 위해 혼자가 아닌 모두의 지혜와 힘이 필요하다는 배트맨의 생각에 따라 결성된다.

1980년대 말부터 탄생한 2030세대, 즉 밀레니얼의 이데올로기에 해당되는 것이 ‘함께’로서의 [저스티스 리그]에 있다. 아무리 잘해도 혼자서는 의미가 없다. 모두 함께 나아가면서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가치이자 의미라는 것이 밀레니얼, [저스티스 리그] 나아가 [어벤저스]의 세계관이다. 이기기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이 아니다. 지더라도 모두 힘을 합칠 경우 한층 더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함께’는 사회주의 사상에 기초한 이데올로기다. 2011년 뉴욕에서 시작된 ‘아큐파이 월스트리트(OWS)운동’이나, 2016년 대통령선거에서 맹위를 떨친 버니 샌더스(Bernard Sanders) 열풍이 구체적 증거 중 하나다. 99%가 피해자로 1% 자본주의 악당에 맞서 싸우자는, 사회주의식 평등주의가 ‘함께’ 논리의 배경에 서 있다. 따라서 [저스티스 리그]는 밀레니얼의 생각을 대변하는 영화인 동시에, 21세기에 등장한 미국적 신사고의 압축판에 해당된다.

당면한 북핵 문제를 ‘함께’ 논리에 비춰볼 때 어떤 식으로 풀이해볼 수 있을까? 말 그대로 북핵을 미국의 우방과 함께 대응하는 식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미국의 군사동맹국과 함께 하는 식의 무력대응이다. 미국만이 아닌,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원하는 나라 모두가 참가하는 국제 캠페인으로서의 북핵 대응이다.

2월 6일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캐나다 해군 잠수함이 북한 해상감시에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50여 년에 걸쳐, 캐나다 해군작전 영역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지난해 10월에는 영국 항공모함의 한반도 급파 뉴스도 나왔다. 일부에서 페이크 뉴스라 부정하지만, 미국이 싸우는 곳에 같은 앵글로색슨계의 영국이 참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오해하기 쉬운데 북핵 문제는 한반도·일본·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륙간 탄도탄(ICBM)의 사정거리를 감안해 볼 때 유럽과 호주도 사정권 안에 들어간다. ‘함께’ 논리만이 아닌, 실질적 현실적 의미에서의 집단에 기초한 군사행동이 된다.

약체 배트맨과 죽음에 이른 수퍼맨


▎마블 최초의 흑인 수퍼히어로가 주인공인 영화 [블랙 팬서]의 한 장면. /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저스티스 리그]가 4명이나 6명이 아닌, ‘5명’의 히어로로 구성된 것에도 이유가 있다. 지구 5대륙의 대표로서의 5명이다. 굳이 지역을 상정하자면, 배트맨은 아메리카, 사이보그는 아프리카, 플래시는 유럽, 아쿠아맨은 호주, 원더우먼은 아시아 정도로 풀이될 듯하다. 추측컨대, 만약 북한에 대한 무력공격이 이뤄질 경우 2차대전 당시의 연합국에 버금가는 ‘한반도 리그’가 구성될 것이다. 북한은 이념 형제국이라는 중국조차 얼굴을 붉히는 나라다. 어딜 돌아봐도 편들어줄 나라가 없다. 5대륙 모두가 반북(反北)의 리그로 나설 것이다.

2. 미국이 주도하지 않는 지구 정의실현

[저스티스 리그]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배트맨의 역할이다. 전체 스토리의 중심에 선 캐릭터인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동맹을 찾아 아쿠아맨, 플래시, 사이보그 스카우트에 나서는 수퍼히어로가 배트맨이다. 그러나 실제 전투에서의 역할을 보면 배트맨은 5명의 히어로 중 한 명에 국한된다. 전투를 지휘하거나 작전을 짜서 모두에게 명령하는 식의 모습도 전혀 없다. 팀의 리더로서, 엄청난 파워로 스테판울프와 파라디몬을 혼내주는 존재도 아니다.

파워로 본다면 오히려 여성인 원더우먼보다도 약하게 느껴지는, 맥 빠진 히어로다. 지금까지의 수퍼히어로 스토리는 모두를 압도하는 파워에 기초한 무용담이다. 수퍼히어로는 말 그대로 난공불락 절대지존이다. 지명도로 따지자면, 고담(Gotham)시의 밤을 지키는 배트맨의 수퍼 파워가 다른 히어로를 압도해야 한다. [저스티스 리그]는 다르다. 파워라는 면에서 볼 때 팀장 격인 배트맨은 다른 부원 4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배트맨은 특별하지 않다. 따라서 기존의 위계질서로 볼 경우, 왜 배트맨이 팀을 리드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저스티스 리그]에서 특출한 주인공이 없다는 점은 2018년 미국의 역할에 비쳐 설명할 수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미국의 모습이다. 1945년 이후 명실상부 세계의 경찰로 활동해온 미국이 그동안의 글로벌 역할을 포기하면서 내부로 움츠리는 모습이다. 5명 수퍼히어로 중 한 명에 그치는 배트맨의 의미는 바로 트럼프가 벌이는 북핵 대응방식에서 알 수 있다. 북핵에 정면 대응하는 트럼프의 자세는 글로벌 평화 수호를 위한 것이 아니다. 북핵을 통해 한반도 평화가 사라지고, 심지어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 일본이 공격대상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핵심은, 북핵이 미국을 겨냥하는 비수라는 점에 있다. 글로벌 차원보다 아메리카 퍼스트에 따라 북핵에 적극 대응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북핵이 한국·일본만 겨냥할 경우 트럼프가 지금처럼 적극 나설지는 의문이다.

수퍼맨, 배트맨의 싸움과 수퍼맨의 죽음은 21세기 미국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한국의 좌우 대립에 버금가는 ‘컬처 워(Cultural War)’ 상태에 빠진 현재의 미국이다. 한국의 경우 북한을 매개로 한, 이데올로기 대립에 기초한 좌우 갈등이 주류다. 복지·인권·교육에 관한 대립도 있지만, 민족·통일·핵·반일·반미·친중과 같은 문제에 관한 대립이다.

약체 배트맨과 죽음에 이른 수퍼맨은 북핵에 대응하는 미국의 능력과 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생쥐처럼, 북핵이 극단적 상황으로 갈 때 과연 미국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까? 과연 1960년대 쿠바 사태 당시 케네디 같은 리더십을 통해 핵전쟁을 불사한 강경대응에 나설 수 있을까? 저스티스 시리즈 영화만을 근거로 한다면 부정적이다. 아메리카 퍼스트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북핵이 미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강하다. 자체 내분으로 수퍼맨도 죽고 배트맨도 죄의식에 휩싸인 것과 같은 모습만이 노출될 것이다.

사실 저스티스 시리즈를 보면 수퍼맨과 배트맨이 동전의 양면과 같은 동일한 존재로 와 닿는다. 수퍼맨은 죽기 전 배트맨에게 자신의 어머니 마싸(Martha)를 부탁한다. 강도의 총에 피살된 배트맨의 어머니 이름과 똑같다. 쌍둥이처럼 느껴지는 두 수퍼히어로에게 닥친 비극은 마싸라는 동일한 이름의 여성을 통한 운명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배트맨이든 수퍼맨이 관계없이 [저스티스 리그]를 만들어 5명 중 한 명으로 참가해 모두 힘을 합쳐 싸우는 수준에서의 북핵 대응만이 가능할 뿐이다.

한국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국제경찰로서가 아니라, ‘함께’의 일원으로 나설 경우 나머지 4명이 과연 적극적으로 참가할 것인가라는 점에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각자의 나라는 물론 작은 도시까지 확대되고 있다.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도쿄 퍼스트란 슬로건이 등장한 이래, 최근에는 서울 퍼스트란 말도 공공연하다. 강남 퍼스트, 압구정동 퍼스트로 확산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아메리카 퍼스트에 맞서, 유럽 퍼스트와 프랑스 퍼스트도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결국 북핵문제는 각자의 퍼스트 슬로건에 파묻혀, 북핵 세컨드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이 꿈꾸는 ‘자주적 핵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수퍼맨이 죽은 상태에서, 마더박스 3개 가운데 2개가 스테판울프에 넘어간 것은 그 같은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3. 더 크고 강한 집단으로서의 '저스티스 리그'

[저스티스 리그]의 마지막 장면은 배트맨과 원더우먼 사이의 새로운 약속과 다짐으로 끝난다. 보다 큰 저스티스 리그 결성과 다양한 임무달성이다. 저스티스 차기 시리즈가 수퍼맨을 포함한, 다른 DC 수퍼히어로의 총집합 무대가 될 것이란 추측이 가능해진다. 5명이 아닌, 10명 단위의 초호화판 수퍼 히로어 집단이다. 수가 많아질수록 배트맨과 수퍼맨의 역할과 위성은 줄어들 것이다. 미국의 파워와 리더십이 약화된다는 의미다.

상징적 존재로서의 리더 자리는 지키겠지만, 저스티스 리그보다 한층 더 약화된 배트맨·수퍼맨이 나타날 것이다. 북핵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한층 더 풀기 어렵고, 미국 주도의 역할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한국은 5대륙의 대표 속에는 못 들지만, 10개 수퍼히어로로 확대될 경우 어딘가 역할 분담을 맡게 될 듯하다.

주목할 부분은 10개 수퍼히어로 집단의 공통 적에 관한 것이다. 북핵만이 아닌, 북핵을 크게 키우는데 공헌한 나라인 중국도 확장된 저스티스 리그의 처분대상으로 떠오를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국으로 표현하지는 않겠지만, 우주에서 온 악당 캐릭터를 공산 독재국 중국에 연결시키는 식의 이미지는 가능할 것이다. 이미 북핵 문제에서도 어중간한 자세를 취하는 곳이 한국이다. 중국을 공통적으로 하면서 10개 수퍼히어로가 하나로 뭉칠 경우, 과연 한국은 한 목소리로 동참할 수 있을까?

4월 말 마블코믹은 어벤저스 시리즈 [인피니티 워(Infinite War)]를 개봉한다. 무려 76명의 마블 소속 수퍼히어로가 등장한다고 한다. 초대형 집단에 기초한, 수퍼히어로 제자백가 스토리다. 마블코믹은 과연 북핵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4월말 어벤저스 시리즈물을 통해 분석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워싱턴=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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