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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2018 연속기획] ‘셉테드 선봉장’ 김창룡 생활안전국장 

“범죄 피해는 회복 불능, 무조건 사전에 막아야”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미국 등 선진국의 정부기관도 한국 치안 수준 높게 평가 … 탄력순찰, 112 대응체계 고도화 등으로 범죄예방 효과 극대화

▎김창룡 경찰청 생활안전국장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범죄예방을 위한 생활환경 개선 및 민간의 협업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창룡 경찰청 생활안전국장(치안감)은 조직 내에서 해외통으로 통한다. 그는 2009년 주(駐)브라질 상파울루 총영사로 3년간 재직했다. 2015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는 워싱턴 주미대사관 경찰주재관으로 근무했다.

경찰대 4기 졸업생인 김 국장은 올해로 경찰관 생활 30년을 맞았다. 그는 경찰관으로서는 꽤 오랜 기간인 5년 반을 해외에서 근무했다. 특히 상파울루 총영사 시절에는 생활치안의 중요성을 체험했다. “치안 인프라는 국격의 문제”라는 게 김 국장의 지론(持論)이다.

월간중앙이 ‘셉테드 선봉장’을 맡은 김 국장을 만나 효과적인 범죄예방에 대해 들어봤다. 김 국장은 “범죄 피해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또 사회적으로도 불안·두려움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이제는 범죄를 사전에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의 여러 업무 가운데 ‘범죄예방’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종전에는 경찰 업무가 범죄를 진압·통제하는 사후대응적 방식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범죄 피해는 회복이 불가능하고, 사회적으로도 불안·두려움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이제는 범죄를 사전에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이에 경찰은 범죄뿐 아니라 그 두려움을 감소시키기 위해 범죄 취약요인을 사전에 예측하고 관리해 범죄의 기회를 미연에 방지하는 예방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의 치안 수준은 미국 등 선진국들과 비교해 어떤 수준인가?

“우리의 치안 수준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범죄 발생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외국인 관광객 조사에서도 치안 만족도가 4년 연속 1위에 선정될 정도로 치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미국의 [USA투데이]는 ‘5100만 명이 사는 한국의 2016년 살인 범죄는 356건인 반면, 인구 270만 명이 사는 시카고는 같은 해 762건의 살인 범죄가 일어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제가 경찰주재관으로 근무했던 워싱턴 인근 도시에서는 피살자가 연 300명이 넘었다. 급기야 한 시민단체에서 ‘살인 없는 주말 캠페인’을 전개할 정도로 치안 불안을 겪었다. 세계 최대 국가 비교 통계사이트인 ‘넘베오’의 2015년 국가 안전도 순위에서 한국은 1위를 차지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한국의 치안정책을 벤치마킹할 정도로 우리의 치안 수준은 대단하다.”

셉테드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셉테드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셉테드란 도시 생활공간 등 지역의 환경을 범죄가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로 설계함으로써 범죄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키는 기법이다. 셉테드는 주민의 불안감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새로운 범죄예방 패러다임으로 대두됐다. 셉테드는 ‘치안’이라는 공공재를 국가(경찰)가 독점적으로 공급한다는 전통적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지자체·주민 등 지역사회 모두가 역할을 분담하고 주체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셉테드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영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지역사회가 범죄예방을 위해 협업하는 제도를 통해 범죄를 대폭 감소시켰다. 미 오클랜드시 락우드 가든의 경우 저층 소규모 연립주택 단지가 밀집되다 보니 마약 거래상이 들끓었다. 그런데 주택가 앞마당에 허리 높이의 울타리를 설치하고 울타리 양끝에 출입구와 경비실, 안전요원을 배치해 ‘자연적 감시’ 및 ‘접근통제’ 체계를 상시화했다. 그 결과 강력범죄 61.5%가 감소하고, 마약 거래상들이 근절됐다. 그만큼 범죄예방 환경설계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지난해 경찰청·중앙일보 공동주최 제2회 범죄예방대상에서 행정안전부장관 표창을 수상한 서울 관악구청의 경우 2013년 셉테드 사업 시행 이후 ▷범죄에 대한 두려움 11.8% 감소 ▷5대 범죄(2014~16년) 16.2% 감소 효과를 봤다. 그밖에 부천시, 서울 마포구 등 다른 지역에서도 셉테드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셉테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민간과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늘어나는 치안수요를 한정된 경찰력만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범죄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사회와의 협업이 중요하다. 경찰은 자율방범대 등 지역의 여러 방범협력단체에 순찰 활동에 필요한 안전장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아울러 간담회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지역의 치안 문제에 대해 주민들과 공유·소통하고 있다. 특히 2016년 범죄예방진단팀(CPO)의 발족과 함께 각 경찰서에 설치된 ‘범죄예방협의체’에서는 경찰·지자체·주민이 한데 모여 지역의 치안문제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 밖에 범죄예방을 위한 경찰의 노력으로 어떤 것이 있나?

“지역주민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대를 중심으로 순찰 활동이 이뤄지도록 하는 주민 밀착형 탄력순찰을 시행하고 있다. 탄력순찰이란 주민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장소를 ‘순찰 신문고’를 통해 신청하면, 해당 장소에 순찰 인력을 투입하는 제도다. 또 112 신고 대응 시스템의 수준을 보다 고도화해 국민 안전에 기여할 것이다. ▷실시간 최적 순찰선 도출 ▷현장 대응시간 목표 관리 ▷허위·상습신고 집중 관리를 통해 신속하고 정교한 현장 조치를 유도할 것이다.”

3대 치안정책 적극 추진


▎천안동남경찰서 앞에 조성된 이색 버스 정류소. 여학생들이 신기하다는 듯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다.
사회적 약자 보호대책은 무엇인가?

“여성·아동·노인·장애인 등 신체·문화적 특징으로 인해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취약한 이른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야 말로 경찰의 존재 이유이자 사명이다. 경찰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정부 국정과제로 ‘사회적 약자 보호’가 선정된 이래 ▷젠더(성)폭력 근절(여성) ▷학대·실종 대응 강화(아동·노인·장애인) ▷청소년 보호(청소년)의 3대 치안정책을 수립해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젠더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관련 법 제·개정을 통해 현장의 법 집행력을 강화하고 ▷디지털 성범죄 등 신종 젠더폭력의 대응 인프라를 구축하는 한편 ▷경찰의 ‘성 인지 감수성·전문성 제고’를 위한 교육을 강화할 것이다. 학대·실종 대응 강화를 위해서는 ▷미취학·장기결석 아동은 물론 건강검진을 실시하지 않은 영유아도 파악·점검하고 ▷노인·장애인 학대 방지를 위한 인력·예산을 지속 확충하는 등 학대 예방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청소년 보호를 위해서는 ▷학교전담경찰관(SPO)-교사 간 역할 분담을 통해 업무 집중도를 제고하고 ▷전문강의 수강·자격증 취득 지원 등으로 전문성을 강화해 전담 인력의 정예화를 꾀하고 있다.”

셉테드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은 무엇인가?

“셉테드는 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생활 속에서 범죄예방을 하는 것이다. 셉테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법령·제도·시스템 등이 지속적·안정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다른 치안 시책이나 정책도 마찬가지다. 사람(단체장 등)이 바뀌어도 지속성이 보장되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다. 주요 선진국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민간의 적극적인 셉테드 동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외국은 기부·봉사 등의 형태로 민간의 참여가 활발하다. 가령 어떤 기업이 어느 마을의 가로등을 바꿔주거나, 비상벨을 설치해주는 식이다. 우리나라도 기업이나 단체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환경개선 사업에 동참한다면 셉테드 효과가 더 커질 것이다. 아울러 사회 전반에 걸쳐 파급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미투 운동의 바람이 거세다. 경찰의 대응책은 무엇인가?

“최근 사회 전반에 걸쳐 미투 운동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를 지지한다는 국민 여론이 74.8%에 이른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내사·수사에 착수했거나 신고가 접수된 사안에 대해 지방청은 2부장이, 경찰서는 서장이 직접 수사를 지휘하는 등 지휘체계를 격상시켜 엄정 대응하고 있다.

또 신고자의 2차 피해 방지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가명조서(假名調書) 적극 활용 ▷피해자 접촉 시 여경 전담 ▷해바라기센터·성폭력상담소와 연계, 피해자 심리상담 지원 ▷경찰관의 소극적 태도 방지교육 강화 등 다각적인 피해자 보호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경찰은 대민(對民) 신뢰 구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경찰 활동의 정당성은 경찰이 법을 얼마나 잘 집행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국민의 신뢰를 얻느냐에 있다. 아무리 경찰에서 국민 안전을 위해 노력한다 해도 국민이 경찰을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민의 ‘안전한 삶’에 대한 욕구와 기대 수준은 높아지고 있다. 이를 위해 단순히 민원이나 사건을 잘 해결하는 수준을 넘어 국민의 권리를 적극 보장하는 인권 경찰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따라서 국민과 최접점에 있는 현장 경찰관들은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국민 안전과 권리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고, 경찰 내부 역량을 높여 양질의 치안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범죄에 취약한 여성·아동·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타 부처와 협업해 인권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생활치안의 컨트롤타워로서 각오를 말해달라.

“치안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변하는 환경과 범죄 양상에 맞춰 역량과 시스템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치안 인프라를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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