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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리포트] 100% 취업 시대 어두운 일본의 자화상 

기업과 교수가 청년들에게 ‘학생님, 학생님’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저출산, 고수익 시대 맞아 수요·공급의 시장 원리 붕괴 … 대학들, 한국·중국·동남아 등 해외 학생 유치에 두 팔 걷어붙여

▎글로벌 금융위기가 강타한 2008년 취업박람회장에서 구호를 외치는 일본 청년들. / 사진:연합뉴스
3월 1일은 한국인들에게는 ‘삼일절’이라는 중요한 기념일이지만, 일본에서도 취업을 앞둔 젊은이에게 중요한 날이었다. 이날은 일본 게이단렌(経団聯)에 가입한 기업의 신규 대졸자 채용 활동이 본격적으로 해금(解禁)되는 날이다. 즉, 이듬해인 2019년 3월 졸업 예정인 대학생의 취직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다.

일본 사회는 벚꽃이 피는 4월 1일이 한 해의 출발점이다. 모든 학교가 4월 입학식을 갖고, 회사도 4월에 입사식을 연다. 3월에 대학을 졸업한 청년은 4월부터 회사원이다.

그리고 졸업 1년 전의 3월부터 기업은 학생들과 접촉이 허용된다. 그 전에는 학생의 본분인 학업을 방해한다는 이유에서, 회사와 학생들과의 접촉은 금지돼 있다. 이런 이유로 3월 1일, 일제히 일본 기업의 학생용 회사설명회가 열렸다.

필자가 사는 도쿄에서도 3월로 들어서면서 지하철이나 카페 등에서 이른바 ‘리크루트 수트’ 차림의 대학생들을 자주 보게 됐다. 일본의 취업생들은 남학생·여학생이나 할 것 없이 대부분 청결하고 간소한 남색 계열의 정장 수트를 입고 취직활동에 임한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복장을 ‘리크루트 수트’라고 부른다. 이른바 ‘취업용 패션’이다. ‘리크루트 수트’ 차림의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면서 회사 설명회에 참가한다.

그런 젊은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곱씹어 생각하는 점이 있다. 그들의 표정이 과거와 비교해볼 때 놀랍도록 밝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에 본 ‘리크루트 수트’ 부대의 모습은,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등에서 머리를 감싸 안고 초초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는 이미지였다. 가끔은 그곳에서 기업으로 전화를 걸었다가, 냉정히 거절을 당하고 힘없이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앞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바라볼 뿐이다…. 그런 불쌍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당시는 ‘초(超)빙하기’라는 말이 유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파로 일본 기업은 채용 인원을 대폭 감축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빙하기에 멸종된 공룡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취직할 수 없는 젊은이들은 중국 대륙으로 건너가거나,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1000명 규모의 대학 100개 소멸 전망


▎일본의 소니는 스마트폰용 화상센서의 수요가 늘어난 덕분에 10년 만에 최대 활황을 누린다.
그것이 이제 어떻게 변했는가! 올해의 취직 활동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초(超)판매자 시장’이다. 노동력을 ‘파는’ 입장에 있는 대학생이 ‘사는’ 입장에 있는 기업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시장이라는 뜻이다.

후생노동성의 청년고용대책실이 2017년 6월에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3월 대졸자의 취업률은 무려 97.6%로, 전년도보다 0.3%나 오른 사상 최고치였다. 이는 취업 희망자가 거의 전원 취업을 한 것이다. 오히려 기업 측의 ‘인재 쟁탈전’이 연일 뉴스로 떠올랐다. 그리고 올해는 취업률이 더 올라, 100% 가까이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취업시장이 초판매자 시장이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대기업들의 실적이 좋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력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2017년 11월 10일자)은 “상장 기업 4곳 중 1개사가 최고 이익“이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상장 기업의 실적이 확대되고 있다. 2018년 3월은 4곳 중 한 곳이 순이익 최고를 달성할 전망이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쇼크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제조업은 전기나 기계 부문의 회복세가 완연하고, 비제조업에서는 종합상사가 원자재 가격의 하락 덕에 이익을 늘렸다. 국내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기업에서는 도심 재개발과 땅값 상승으로 건설과 부동산 관련업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11월 10일은 2017년 4~9월 결산 발표의 절정이었다. 이날까지 발표된 상장기업의 실적은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9%, 경상 이익은 24%, 순이익은 24%나 증가했다. 1448개 중 347곳이 2018년 3월 순이익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소니다. 소니는 초박형 텔레비전, 스마트폰 등의 부진으로 2015년 3월까지 거액의 적자가 발생하는 등 침체일로를 걸었다. 하지만 올 3월 순이익은 전기 대비 5.2배인 3800억 엔으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넘어설 전망이다. 부진한 사업에서 철수함과 동시에, 인원 감축 등의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을 회복한 데다 스마트폰용 화상센서의 수요가 늘어난 덕분이다.

중국 등지에서 스마트폰, 전기자동차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미쓰비시 전기는 공장 자동화기기가 실적 개선의 견인차 노릇을 했다. 기계 부문에서는 물류 시스템 업체인 다이후크가 최고 이익을 갱신했다. 전자 상거래의 증가로 배송 센터용 수요가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이번 분기, 사상 최고의 이익 달성’이라는 기사가 지면을 장식한다.

기업 실적이 호조를 보이면 기업은 당연히 채용 인원을 늘리게 된다.

‘초판매자 시장’이 가능한 두 번째 동인은 취업을 희망하는 측, 즉 일본의 대학생 수의 감소에 있다. 일본은 전대미문의 인구 감소와 저출산 시대에 접어들었다.

2016년 2월 26일 총무성 통계국은 2015년의 국세 조사 인구 속보 집계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의 인구는 1억2709만4745명으로 지금부터 약 100년 전의 1920년 국세 조사가 실시된 이래로 최초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또, 지난해 6월 2일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인구 동태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태어난 아이(출생 수)는 97만6979명으로, 이 역시 1899년 통계를 실시한 이후 처음으로 1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 4월 시점에서 일본의 아동(0세~14세) 수는 1571만 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17만 명 줄었고, 1982년부터 36년 내리 감소세를 보였다.

일본에서는 [미래 연표, 인구 감소 중인 일본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이란 책이 50만 부를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저자는 신문사에 근무하는 저널리스트로, 인구 감소가 진행되는 일본 사회에서 앞으로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책에 따르면 2018년부터 15년간, 일본의 ‘18세 연령(대학 신입생)’은 약 20만 명이나 줄어든다. 이에 따라 입학 정원 1000명 규모의 대학이 100개 정도 소멸할 위기에 빠진다. 대학의 도산 시대가 오는 것이다.

‘금붕어 뜨기’ 놀이보다 어려운 인재 확보


▎지난해 11월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1층 대강당과 로비에서 열린 ‘일본취업합동박람회’.
그런 가운데 1년 전인 2017년 3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청년은 56만7000명에 불과했다. 바로 옆 나라인 중국은 지난해 7월에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795만 명이었다. 일본의 대학 졸업생은 중국의 14분의 1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졸업생 수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올해부터는 감소의 폭이 더 늘어난다는 점에서 ‘2018년 문제’ 등으로 명명되고 있다.

이처럼, 기업은 사상 최고의 이익을 올리며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학생을 채용하고 싶어 하지만, 대학생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요와 공급의 시장 원리가 엄청난 불균형을 이루고, 과거 유례가 없는 ‘초 판매자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3월 1일, 도쿄 동쪽 외곽의 치바시 컨벤션센터인 마쿠하리 멧세에서는 약 670개의 기업이 합동 기업설명회를 개최했다. 그 모습을 TV 뉴스가 전하는데, 영상을 보면서 마음속에 연상된 모습은 ‘금붕어 뜨기’라는 놀이였다.

일본에서는 전국의 어느 지역에서나 축제가 있다. 신사 등에서 장마당이 서는데,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금붕어 뜨기’라는 놀이가 있다. 수조에 들어 있는 금붕어를 종이숟가락을 이용해 잡는 것이다. 필사적으로 금붕어를 숟가락으로 떠내려고 하지만, 종이로 만든 숟가락은 물에 젖자마자 약해져서, 금붕어를 뜨면 이내 찢어져서 잡기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마쿠하리 멧세에 몰린 670개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은 한 사람이라도 많은 학생의 발길을 자사 부스로 이끌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꼭 우리 회사의 설명회를 들으러 와주세요“라며 학생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반면 텔레비전의 인터뷰에 응한 학생은 “음, 어느 회사가 잔업이 적은지, 또 일하기 편한지를 살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일자리를 구하는 청년들의 여유작작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같은 날 유명 대학에서도 기업들의 열띤 구인 활동은 이어졌다. 예를 들면, 도쿄 와세다 대학 옆에는 리가로열 호텔이라는 고급 호텔이 들어서 있다. 이 호텔의 방이나 연회장은 기업들의 예약으로 가득 찼다. 와세다 대학의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에서 ‘도보 3분’ 만에 찾아올 수 있도록, 기업이 일부러 비싼 비용을 대고 빌린 공간에서 ‘회사설명회’를 연 것이다.

도쿄 대학에서는 교내에 있는 학생식당을 많은 기업이 시간마다 임대해 사용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면서 회사설명회를 여는 등 시선 끌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그런 광경을 뉴스를 통해서 본다면 ‘초판매자 시장’이 된 일본의 취업시장의 사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실제로 많은 학생과 접하면서 필자 역시 느꼈던 점이기도 하다. 필자도 일주일에 한 번, 도쿄의 6대 시립대학 중 하나인 메이지 대학에서 ‘동아시아 국제관계론’을 강의하고 있다. 그곳 학생들의 모습을 보아도 취업 활동에 대한 부담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기업이 ‘학생님’이라 부르던 그 시절로


▎지난 1월 성년의 날을 맞아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일본 여성들의 표정이 밝기만 하다.
지난해 여름의 일이다. 매주 가장 앞자리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는 남학생이 취업상담을 하고 싶다며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 학생이 어딘가 일자리를 소개하고 달라는 부탁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고민은 정반대였다.

“저는 종합상사에 취직하고 싶은데, 5대 상사 중 4개사에서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4개사의 채용 담당자들로부터 매일 끊임없이 ‘우리 회사에 와달라’는 전화가 옵니다. 어느 회사에 취직하면 좋을까요?”

이처럼 사치스러운 고민이 있다니! 내가 학생일 때는, 일본 최고 엘리트의 직장이라는 5대 상사는 거의 5개의 유력대학(도쿄대, 히토쓰바시대, 교토대, 와세다대, 게이오대)의 학생만을 채용했다. 지금은 메이지대 학생도 4개사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또 한 여학생으로부터도 상담 요청을 받았다.

“저는 A사(교토에 본사가 있는 유명 회사)에서 ‘꼭 우리 회사에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외국에서 근무하는 것입니다. 귀사의 해외 지점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했더니, 인사 담당자는 ‘4월 입사하면 3개월간 본사 연수를 마치고 바로 해외 지점으로 발령을 내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까요?”

사치스러운 고민이다. 우리 세대는 ‘해외여행 1세대’로 불렸다. 필자가 입사하던 당시에도 해외근무를 희망하는 학생이 많았다. 당시에는 20대는 일단 일본 내에서 훈련을 받고, 사내에서 인정을 받게 되면 30대가 돼서야 해외로 발령을 받는 게 대기업 인력 운용 패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해외 근무를 나갈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버블 세대’로 불리는 내 또래 세대가 가장 많은 혜택을 받은 시대였다. 한국에서 말한다면 ‘586세대’에 가깝다. 1960년대 초중반에 태어나서 1980년대 후반에 대학 생활을 보낸 세대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한 1989년 일본은 거품경제의 절정기로 우리 대학생들은 기업으로부터 ‘학생님’으로 불렸다.

대학 4학년 때는 수업이 끝나면 몇몇 동급생과 매일 여러 회사에 전화를 돌렸다. 어디서 알아냈는지 알 수 없지만, 매일 수십 통의 편지가 대기업에서부터 집으로 배달됐다. 편지봉투를 열어 보면 ‘이 번호로 전화를 부탁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서 그곳으로 전화를 걸면, 인사 담당자가 대학 정문까지 검은색 리무진을 보내 주고, 우리는 그 고급 승용차를 타고 기업으로 향한다. 1시간 정도 회사의 설명을 듣고 나면, 인사 담당자가 ‘저녁은 무엇을 드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우리는 ‘그럼, 어젯밤은 프랑스 요리를 먹었으니, 오늘 밤은 초밥이 좋을 것 같네요’라고 갑질(?)을 한다. 그러면 인사 담당자는 고급 승용차로 긴자의 최고급 초밥집까지 우리를 모시고 간다.

휴일에는 도쿄의 고급 헬스클럽에 데려간다. 스쿼시라는 경기를 거기서 처음 해봤다.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고, 스크린에 비친 영상을 보면서 스크린 골프를 체험하기도 했다.

우리는 기업의 접대를 받으며 놀기만 했지만, 기업 측에서는 학생을 접대함으로써 타사에 가지 않도록 보호한 것이다. 내 동급생 중에는 기업이 하와이 여행까지 데려간 경우도 있었다.

그런 꿈같은 시대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일본의 거품 경제는 붕괴했고 곧 바로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침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회사에서도 우리는 ‘가장 쓸모없는 버블 세대’라는 멸시를 받게 됐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차가운 대접을 받게 되는 것도 당연할 만했다. 우리 버블 세대는 절약이라는 개념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날 번 돈은 그날로 쓴다’는 일본 속담이 있지만, 우리 버블세대는 가진 돈을 아낌없이 펑펑 썼다. 만일 지갑에 1만 엔이 들어 있다면,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1만 엔짜리 와인을 따버린 세대다.

그런 일본 사회에서 아이들은 ‘절약, 절약’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지금 가진 것을 얼마나 크게 늘리느냐”고 하는 것은 우리 버블세대까지의 발상이며, 그 이후 세대는 “지금 가진 것을 얼마나 유지하느냐”에 급급한 것이다.

‘단카이 주니어 세대’ ‘유토리 세대’ ‘사토리 세대’


▎1월 14일 새해의 건강을 기원하며 얼음물에 뛰어드는 일본인들. 경제가 살아나면서 사회도 활기를 되찾는다.
1945년 패전 후 태어난 일본인은 대체로 10년마다, ‘~세대’라는 별칭이 따른다. 전후 1946년부터 1949년까지 태어난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 그 다음은 1970년 미·일안보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벌인 ‘70년 안보세대’. 이어 1980년대의 거품경제 시기에 청춘을 보낸 필자가 속한 ‘버블 세대’가 있다.

여기까지 3개의 세대를 통틀어 ‘육식(肉食)계 세대’라고도 부른다. 혹은 1960년 미·일안보조약 반대운동을 벌인 당시 학생들인 ‘60년 안보 세대’를 포함해 4개 세대를 그렇게 부를 수 있다. 이들 세대의 일본인은 전반적으로 사자나 호랑이가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 듯이 적극적이고 경쟁심 넘치는 성격이다.

그리고 그 이후 세대부터 현재까지는 마치 초식 동물같이 순하다고 해서 ‘초식(草食)계 세대’라고 한다.

‘버블 세대’ 다음은 1970년대에 태어난 ‘단카이 주니어 세대’가 있다. 그들에게 공통된 것은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부정이다. 즉, 거품 경제가 붕괴한 이후에 청소년기를 보낸 ‘단카이 주니어 세대’는 매사에 탐욕적이며 확장주의적인 부모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1980년대 출생은 ‘유토리 세대’로 불린다. 전후의 주입식이고 암기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유토리(여유) 있는 교육’이 시행되면서 그들은 전반적으로 유연해졌다. 또 아버지 세대가 저금을 많이 한 덕에 실직을 해도 생활에 별 어려움이 없다.

끝으로 1990년대생은 ‘사토리(달관) 세대’이다. 그들은 일본이 이제 세계 넘버원의 경제대국이 아니며, 오히려 저출산-고령화로 쇠퇴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 등을 깨닫고 있다(‘사토리’는 깨달음이라는 뜻). 그래서 젊은이면서도 “바둥바둥, 악착같이 살아도 어쩔 수 없다”라고, 마치 노인처럼 달관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필자는 ‘사토리 세대’에 이어 2000년대생의 세대를 ‘스마트폰 세대’라고 명명하고 싶다. 스마트폰을 마치 자기 신체의 일부분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세대, 그리고 잠자는 시간 이외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않는 세대라는 뜻이다.

어쨌든, 그런 지금의 일본 젊은이들에게, 호경기와 저출산화로 거품경제 이후 실로 오랜만에 취업의 호기가 도래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일본 대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인생에서 고생을 해본 경험이 없다. 그의 세대는 고교입시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대학입시에서도 악전고투했지만, 이제는 저출산의 영향으로 고교 입시나 대학 입시도 대단히 순조롭게 되어 버렸다.

대학 입시를 예로 들면 앞서 언급한 [미래연표]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2016년도에 입학 정원이 미달한 사립대학은 전년도보다 7개교나 급증, 257개교에 달했다. 이미 전체의 절반 가까운 44.5%가 학생을 유치하지 못하는 사태에 빠졌다.”

필자에게는 인상적인 추억이 있다. 메이지대 겸임 강사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대학 캠퍼스를 방문했을 때, 대학 직원이 교정을 안내해주었다.

대학 정문 앞에서 만난 그 직원이 처음으로 안내한 장소가 정문 옆 건물 1층 화장실이었다. 반짝이는 화장실에는 최신식 변기와 시설이 구비돼 있었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왜 교무실이나 교실이 아니라 제일 먼저 화장실로 안내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직원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견학 온 고등학생들을 안내할 때의 버릇이 나와 버렸습니다. 요즘 고교생들이 대학을 고를 때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화장실이 깨끗한지 여부입니다. 그래서 고교생들이 왔을 때, 우선은 최신식 화장실로 안내해 좋은 인상을 갖게 하는데 무심코 그 버릇이 나온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헉” 하는 신음소리가 나와 버렸다. 대학이 학생에게 거기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교수는 학생들을 ‘접대하는’ 서비스업


▎20년째 인구가 줄고 있는 일본 사이타마현 하토야마 뉴타운의 2015년 모습. 이곳은 주택 25%가 비었다.
요즘의 일본 대학의 교수와 학생 관계는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 권위에 찬 교수와 그 권위에 복종하는 학생이라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교수가 학생들을 ‘접대하는’ 서비스업에 가까운 모습이다. 예를 들어 교수가 학생을 채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도 교수를 채점한다. 1년 계약의 우리 시간 강사들은 학생이 주는 성적이 나쁘면 바로 해고된다.

이런 저출산 문제로 인해, 최근 일본 대학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유학생 유치 활동이다. 예를 들어, 2017년도에 내가 맡은 수업에서는 학생은 300명이다. 이중 50명이 한국인, 역시 50명이 중국인, 그리고 그 외의 다른 나라, 지역의 유학생이 약 30명이다. 즉 수업을 받는 학생의 절반 가까이가 유학생이었던 것이다.

한국인과 중국인 유학생도 대학 4학년이 되면 취업 활동을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 대조적이다. 한국인 유학생은 일본 기업에 취직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일본의 IT기업과 호텔업, 유니클로 등의 패션업계 등이다. 왜 한국에 돌아가서 한국 기업에 취업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취업난에 대해서 말한다. ‘N포 세대’라는 말도 그들에게 배웠다.

이에 비해 중국인 유학생은 귀국해서 중국의 대도시에 취업하거나 일본에 진출한 중국 기업에 취업한다. 혹은 앞으로 일본에 진출할 중국 기업에 취업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인과 중국인 유학생의 취업 상담을 해준 적도 많다. 그런 때는 일본 기업에 취직하길 권하고 있다. ‘다음 단계를 위한 학습 기간’으로 보면 일본 기업의 환경은 매우 우수하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에는 오랫동안 쌓아온 인재 육성의 노하우가 있다. 게다가 ‘업무 방법의 개혁’이 요구되는 현재, 무모한 잔업이나 휴일 출근 등을 강요하는 곳도 없다. 게다가 전대미문의 일손 부족으로 유학생이 취직하기도 쉽다. 그렇게 몇 년간 일본 기업에서 사회인으로서 기본을 배우고 한국과 중국에 귀국하더라도 장래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한국인 유학생도 그렇게 조언한다. 혹은 한국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도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일본에 와서 취직하기를 권하고 싶다. 특히 일본어 자격시험의 1급이나 2급을 가지고 있으면 언어 장벽도 그다지 없다. 서울과 도쿄는 비행기로 불과 2시간 거리고, 오사카, 후쿠오카라면 더 가깝다.

올 3월 메이지 대학의 한국인 졸업생 가운데 단 한 사람에게 예외적인 조언을 했다. 너무 개성적인데다 재능이 특출했기 때문이다. 한국 여자 유학생으로, 나는 그녀에게만은 이렇게 충고했다. “학생이 일본 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한국에 돌아가서 정치가가 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장래의 대통령을 목표로 해 봐라!”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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