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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리포트] 대기업들 국내 리그보다 빅리그 마케팅에 주력하는 이유 

세계인 앞에 브랜드 노출된 것만으로도 대성공! 

김원 중앙일보 기자 kim.won@joongang.co.kr
삼성, 첼시 후원 후 유럽 내 브랜드 인지도 급상승… 주력 제품군, 시장 상황 등에 따라 투자계획 결정돼

코카콜라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후원(약 2000억원)을 계기로 경쟁사인 펩시콜라와의 미국 내 점유율 차이를 벌릴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구단인 첼시를 공식 후원하면서 2004년 19.7%였던 유럽 내 브랜드 인지도를 2009년 49.6%까지 끌어올렸다. 세계 최고들이 모이는 빅리그에서 기업들이 ‘전쟁’도 불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포스코가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철(鐵)·인간·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공감하는 내용의 새 광고를 방영했다. 일반적인 스포츠 광고와 차별화하기 위해 스포츠 장비의 철 부분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는 열화상 이미지 표현기법을 적용했다. / 사진:포스코
전 세계 인구 3명 중 1명은 어떤 형태로든 평창 겨울올림픽을 보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티모 루미 마케팅서비스 운영국장은 “평창올림픽에서는 소치올림픽과 비교해 약 14% 늘어난 방송이 중계되고 있다. 역대 올림픽과 견줘 더 많은 시청률이 나오고 있다”며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많은 콘텐트가 제공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TV보다 두 배 더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6세부터 66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전 세계 50억 명의 시청자가 평창올림픽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평창올림픽이 17일(2월 9~25일) 간 열전을 마무리했다. 15개 종목, 306개 메달을 놓고 93개국의 2925명의 선수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국가 간 스포츠 경쟁만큼이나 기업들의 마케팅 경쟁도 불이 붙었다.

올림픽은 ‘스포츠 마케팅의 꽃’이라 불린다. 다양한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올림픽을 통해 마케팅 효과를 누리고 있다. IOC는 올림픽 공식 후원사 제도를 통해 기업들의 스폰서십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올림픽 공식 후원사는 후원액에 따라 최상위의 TOP(The Olympic Partner)부터 공식 파트너(티어1), 공식 스폰서(티어2), 공식 공급사(티어3), 공식 서포터스(티어4)까지 크게 다섯 등급으로 나뉜다. 월드와이드 파트너인 TOP는 전 세계에서 오륜기 등 올림픽 관련 지식재산을 활용해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는 독점적인 권리를 갖는다. 올림픽에 필요한 제품의 공급 권리도 포함된다.

기업에 특권 부여하고 거액 챙기는 IOC


구체적인 후원액은 IOC가 공개하지 않지만 기업당 1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평창올림픽에는 삼성전자(무선통신)·파나소닉(전자)·코카콜라(음료)·도요타(자동차)·다우(화학)·P&G(생활용품)·오메가(시계 및 전광판)·GE(제품 및 서비스)·VISA(결제)·아토스(정보통신)·브리지스톤(타이어)·알리바바(클라우드 서비스)·인텔(프로세서, 드론) 등 13개 글로벌 기업이 참여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는 지난해 1월 중국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TOP 계약을 맺고 2028년까지 올림픽을 후원한다. 업계에 따르면 알리바바의 12년간 후원 금액은 약 8억 달러(약 8556억원)다. IOC는 매년 올림픽 마케팅 팩트 파일을 발간하는데, 2013년부터 2016년까지 IOC가 TOP의 스폰서십을 통해 얻은 수입은 10억300만 달러(약 1조71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9~2012년 9억5000만 달러(약 1조146억원)보다 5.6%나 증가한 수치다.

기업의 올림픽 후원은 1928년 암스테르담올림픽이 시초로 알려졌다. 당시 코카콜라가 콜라 1000박스를 내놓으며 처음 올림픽 후원 역사가 시작됐다. 올림픽이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로 커지면서 기업들의 참여도 늘었다. IOC는 아예 마케팅 프로그램을 개발해 기업들의 요구에 반응했다. IOC는 1985년부터 4년 단위의 TOP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했는데, 당시 TOP 기업의 후원금은 현재의 10분의 1 수준인 9600만 달러(약 1026억원)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올림픽 스폰서십을 통한 마케팅 효과가 크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참여하길 원한다. 김도균(스포츠마케팅) 경희대 교수는 “마케팅은 100% 반복이다. 우리가 말하는 마케팅은 기업의 브랜드와 상품을 최대한 고객의 눈에 띄게 하고 친숙하게 보이는 활동이다. 한 사람이 하루에 접하는 광고가 500개가 넘는다는 조사가 있는데 이 중 극히 일부만 인지할 수밖에 없다”며 “일단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올림픽에 브랜드를 노출했다는 것 자체가 성공적인 마케팅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공식 후원사와 광고주 등이 얻는 광고 효과만도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올림픽 파트너가 되는 순간 세계 최고 기업 대접을 받으면서 브랜드 가치와 매출이 치솟는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의 올림픽 파트너들의 주가 상승률이 경쟁 업체보다 1.5%포인트가량 높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 올림픽 파트너 된 뒤 브랜드 가치 10배 상승


▎‘SAMSUNG’이란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첼시 선수들. 삼성은 첼시 후원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 상승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그동안 올림픽 마케팅으로 가장 재미를 본 기업은 단연 코카콜라다. 코카콜라는 1928년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미국 선수들은 대회 내내 코카콜라를 마시며 좋은 성적을 냈고 관중과 선수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이를 계기로 코카콜라는 유럽 시장 진출에 성공해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후 최장수 올림픽 후원사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코카콜라는 평창올림픽의 주 무대인 강릉 올림픽파크에 높이 15m의 ‘자이언트 자판기’를 설치하고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올림픽 기간 동안 14만300여 명이 넘는 인파가 이곳에 몰렸다. 서울 홍대, 강원도 평창 등지에도 자판기를 설치해 큰 효과를 봤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올림픽 마케팅으로 재미를 봤다. 삼성전자는 88년 서울올림픽 때 지역 스폰서 자격으로 처음 올림픽 마케팅에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텔레비전 시장을 제패했는데 서울올림픽 덕분이란 분석도 있다. 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부터는 무선통신 분야 TOP로 참여했다.

삼성전자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대회 관련 정보를 선수들의 휴대전화로 실시간 전송할 수 있는 서비스 ‘와우(WOW)’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는 와우 서비스를 모바일 앱으로 선보이면서 참가 선수 모두에게 ‘갤럭시노트3’를 제공했다. 이때부터 ‘갤럭시 스튜디오’란 이름의 최신 스마트폰과 모바일 기술 체험장도 운영했다.

당시 갤럭시 스튜디오는 올림픽 파트너 기업들의 홍보관 가운데 최다 관람객 유치 기록을 세웠다. 평창올림픽에서도 삼성전자는 ‘삼성 올림픽 쇼케이스’라는 체험관을 운영했는데 누적 방문객 43만 명을 기록했다.

TOP 계약을 맺어 올림픽 마케팅을 본격화한 이후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과 브랜드 가치는 빠르게 올라갔다. 2000년 5.3%에 그쳤던 세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은 2013년 27.2%까지 높아졌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는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가 2000년 52억 달러에서 지난해 562억 달러(약 60조원)로 10배가량 커졌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2016년 리우올림픽 때 세계에서 올림픽을 통해 마케팅을 가장 잘하는 회사로도 뽑혔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GLM이 리우올림픽과 브랜드를 연관지어 브랜드 연관지수(BAI)를 산출한 결과, 삼성이 376.17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 회사는 글로벌 미디어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래픽을 조사해 올림픽과 연관돼 가장 많이 언급되는 브랜드를 뽑았다.

김도균 교수는 “삼성전자와 경쟁 관계에 있는 애플은 올림픽 마케팅에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IOC가 분야별 기업을 1개씩 선정해 독점적 마케팅 권리를 부여하기 때문”이라며 “IOC는 TOP를 선정할 때 올림픽이 추구하는 가치와 기업 가치의 연관성을 살핀다. 1976년부터 공식 후원사였던 맥도날드는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올림픽 무대를 떠나는데 패스트푸드가 ‘비만의 주범’이란 이미지가 있어 올림픽이 오히려 디마케팅이 된다. 사회적인 트렌드와도 맞물려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올림픽 기간이던 2월 7일 ‘주식회사 대한민국, 돈과 정치가 우스꽝스러운 올림픽으로 전락시키다(For Korea Inc., Money and Politics Make an Awkward Olympics)’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 NYT는 “대부분의 올림픽은 개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자긍심을 드러내고 수백만 관중 앞에 자신들의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한 기회로 활용됐지만 이번 평창올림픽은 예외”라고 전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위축


▎2010년 9월 6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마쿨롱 스타디움에서 북한 대 나이지리아 축구 평가전이 열렸다. 북한 선수단은 월드컵 공식 차량 후원업체인 현대자동차 버스를 이용했다.
국내 기업들은 1조원이 넘는 올림픽 후원금을 내고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이번 올림픽 행사장에 기업 홍보관을 열 자격이 있는 공식 파트너는 대기업만 삼성과 LG·현대차·SK·롯데·KT·포스코 등 10곳이 넘는다. 그러나 이 중 홍보관을 차린 대기업은 삼성전자·현대자동차·KT·대한항공 4곳에 그친다. 2012년 여수엑스포의 대기업 홍보관 8곳이 평창올림픽에선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NYT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까지 빌려 대대적으로 광고했던 2002년 한·일 월드컵과 달리 이번엔 기업들이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한국이 대기업과 정치계를 심판하기 위한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처음 개최했다. 최근 한국의 분위기로 미뤘을 때 기업들이 올림픽을 후원하기에 특히 더 ‘곤란한’ 시기였다”고 분석했다. NYT는 이어 “(한국에서) 시대정신에 맞는 재벌 개혁이 요구되고 있다”며 “한국의 기업들은 매우 민감한 상황에 놓였다”고 봤다. 또 이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평창올림픽 후원에 대한 자신들의 기여가 ‘오해’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TOP를 제외한 후원사들은 올림픽 개최국에서만 마케팅할 수 있다. 공식 파트너의 경우 약 500억원 이상을 후원한 기업들인데 현대기아차·KT·대한항공·SK·LG·롯데·포스코·한국전력·삼성전자·노스페이스·맥도날드 등이다. 공식 스폰서는 150억원 이상 후원한다. 올림픽 케이터링 서비스를 맡은 신세계푸드를 비롯해 삼성생명·네이버·강원랜드 등 14개사가 참여했다.

공식 공급사는 25억원 이상 후원한 기업들로 파고다 교육 그룹(언어교육 서비스), 한샘(가구공급) 등 물품·서비스 지원을 포함한 25개사다. 후원금이 25억원 이하인 공식 서포터스는 국민체육진흥공단·안랩·오뚜기·대관령한우 등 3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김도균 교수는 “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30년 만에 열림에도 불구하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기업들의 스포츠 마케팅이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국내 기업의 스포츠에 대한 투자가 실익을 내는 것보다는 정치적·경제적 명분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었다”며 “돈이 안 됐더라도 국가적 행사에 투자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 이후 기업들의 스포츠에 대한 참여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커졌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올림픽 마케팅이 가능한 공식후원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후원 금액 이상을 투자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울 정도로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며 “이와 함께 앰부시 마케팅(매복 마케팅)도 크게 줄었다. IOC가 이번 올림픽에서 강력한 감시와 규제를 펼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유겸(스포츠마케팅) 서울대 교수는 “기업들은 스포츠 프로퍼티(자산)를 통해 마케팅 활동을 펼친다. 최근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프로퍼티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가장 힘들어진 건 비인기 종목이 주를 이루는 겨울올림픽이다. 기업들 입장에선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월드컵의 ‘승자’ 현대자동차


▎2013년 9월 서울 쉐라톤 워커힐에서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기아차 글로벌 홍보대사)의 한국 방문 행사가 열렸다. 나달이 한국 꿈나무들을 상대로 레슨을 하고 있다. / 사진:기아자동차
올림픽과 함께 스포츠 마케팅의 양대 축을 이루는 것이 월드컵이다. 올해는 겨울올림픽에 이어 월드컵이 열리는 해다. 삼성이 올림픽 파트너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크게 높였다면, 월드컵에선 현대자동차그룹이 스포츠 마케팅 효과를 크게 봤다. 현대차는 1999년 미국 여자 월드컵을 시작으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각종 대회에서 공식 파트너로 활동해왔다. 2000년부터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공식 후원사로도 참여하고 있다. 기아차는 2007년부터 FIFA 공식 파트너가 됐고, 2008년부터 현대차와 함께 유로 공식 후원사가 됐다. FIFA 공식 파트너 계약 기간은 2022년까지다.

정희윤 스포츠산업경제연구소 소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국내 글로벌 기업들이 스포츠 마케팅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효과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하지만 국내 시장보다는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삼성이 올림픽, 현대·기아차가 월드컵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FIFA의 공식 파트너는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코카콜라·아디다스·소니·VISA·에미레이트항공 등 6개였다. 올해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소니와 에미레이트항공이 빠지고 가스프롬(러시아)·카타르항공(카타르)·완다그룹(중국)이 새롭게 합류했다.

FIFA 공식 파트너는 올림픽 파트너와 마찬가지로 독점적인 마케팅 권리와 함께 월드컵 운영에 필요한 장비를 공급하는 권리를 갖는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현대·기아차는 월드컵 기간 중 열리는 모든 공식 행사에 차량을 독점 제공했다. 월드컵에선 A보드(경기장을 둘러싼 광고판)에 브랜드가 단독으로 노출되는 혜택도 받는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도 공식 파트너였던 현대차그룹은 당시 경기장 광고판으로만 8조6000억원가량의 마케팅 효과를 누린 것으로 분석됐다. 2014년 월드컵에서는 30조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대회에선 골이 들어간 순간 A보드에 브랜드가 가장 많이 노출된 기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골이 터지는 장면은 시청자 집중도가 높은 데다 TV 뉴스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재방송되거나 인터넷 동영상 조회수도 많아 골이 들어가는 순간 A보드에 특정 브랜드가 나타나게 되면 광고 효과가 크다.

그러나 골이 터질 때 어느 브랜드가 A보드에 나타날지 몰라 기업으로서는 운이 따라야 한다. 나머지 월드컵 스폰서와 로컬 스폰서는 한꺼번에 여러 브랜드가 섞여 노출된다. FIFA와의 계약에 따라 노출되는 위치도 달라진다.

FIFA가 월드컵을 활용해 막대한 규모의 이익을 창출하기 시작한 것은 1974년 주앙 아벨란제가 7대 FIFA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부터다. 1904년 창설된 이후 6대 회장인 스탠리 라우스 시기까지만 해도 FIFA는 축구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던 순수 스포츠 기구였다.

아벨란제는 취임 직후 코카콜라와 아디다스 등 거대 다국적 기업을 공식 후원사로 유치해 대규모 자금을 확충했고 위성을 타고 각국에 전파되는 TV 중계권료와 마케팅 사업권을 내세워 재원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공식 파트너의 스폰서 금액과 TV 중계권료, 마케팅 사용료는 현재까지도 FIFA의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공식 스폰서들이 FIFA에 제공하는 후원금은 기업당 1년에 900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뜻밖의 ‘정현 열풍’에 기아차 ‘함박웃음’


기아차는 올 초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으로 큰 효과를 봤다. 지난 1월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22·세계랭킹 26위)이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에서 4강에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국내에 ‘정현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호주오픈 공식 후원사인 기아차가 크게 웃었다.

정현의 경기는 전 세계로 생중계된 가운데 경기장 곳곳엔 기아차(KIA) 로고가 박힌 광고판이 설치돼 방송에 노출됐다. 평소 테니스에 관심 없던 국민도 TV나 인터넷 생중계로 정현의 경기를 지켜봤다. 국내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2002년부터 17년째 호주 오픈을 공식 후원하는 기아차도 홍보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 대회 후원은 기아차의 핵심 글로벌 홍보 전략 중 하나다. 지난해 호주오픈에선 약 5억1000만 달러(약 545억원) 상당의 홍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대회 현장을 찾은 방문객 수가 75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기아차는 예상하며 글로벌 홍보 효과 또한 지난해 대회 대비 약 10% 증가한 5억5000만 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회가 끝난 직후에는 2023년까지 후원 연장 계약도 체결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매년 호주 테니스 대회에 공식 스폰서로 참여해 이미 외국에서는 기아차 인지도가 높다. 그동안 국내에서 중계를 안 하거나, 중계해도 시청률이 높지 않아 홍보 효과가 낮았는데 이번엔 국내 시청률과 관심이 높아진 게 사실”이라며 “정현 선수의 활약으로 국내에서도 기아차가 테니스 대회에 후원하는 걸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아차는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2위 라파엘 나달(32·스페인)과 후원 계약도 맺고 있다. 나달은 2006년부터 기아차 글로벌 홍보대사로 활동해 오고 있다. 기아차와의 계약은 2020년까지다.

기아차는 또 현대차와 함께 지난 2월 열린 미국프로풋볼리그(NFL) 수퍼보울 광고에도 참여했다. 올해 수퍼보울 경기의 30초당 광고단가는 500만 달러(약 53억원)로 1995년 대비 5배나 올랐다. 수퍼보울 광고 시장에서는 자동차 업체들이 광고 전쟁이 특히 뜨겁다. 지난해 자동차 업체들은 수퍼보울에 8000만 달러(약 855억원)의 광고비를 썼다.

기아차는 2010년 이후 9년 연속 수퍼보울 광고에 참여했다. 기아차는 올해 스포츠 세단 스팅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기아차의 슈퍼볼 광고 영상은 공개하자마자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차는 2008~2014년까지 7년간 수퍼보울 광고를 진행했으나 ㄴ2015년에 잠시 중단했다. 그리고 2016년부터 재개해 올해 10번째 참가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2013년을 마지막으로 수퍼보울 광고 집행을 하지 않고 않다. LG전자는 2016년 처음 수퍼보울 광고해 참여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를 알렸지만 이후 2년째 참여하지 않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주력 제품군, 시장 상황 등에 따라 마케팅 계획이 결정된다”며 “최근에는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을 줄이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정희윤 소장은 “과거 국내 글로벌 기업들이 신규 시장에 진출할 때 스포츠 마케팅을 무기로 활용해 큰 효과를 봤다. 인도 시장에 진출한 LG전자가 그 지역에서 인기가 높은 크리켓 월드컵의 타이틀 스폰서를 10년 넘게 맡기도 했다”며 “무작정 스포츠에 투자한다고 효과를 보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스포츠를 좋아하는 20~50대 남성은 맥주를 즐길 가능성이 높다. 이 타깃층을 확보하기 위해 맥주회사인 버드와이저는 스포츠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세분된 시장이 있을 때 스포츠 마케팅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설명했다.

LG, 인기→비인기 종목으로 마케팅 ‘변화’


▎1. 피겨스케이팅 최다빈(오른쪽)과 김하늘이 국제 대회 출전을 위해 출국하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두 선수의 뒤로 KB국민은행 등 광고판이 보인다. / 2.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포토존에 응원 메시지를 쓰고 있는 청소년들. / 3.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 소속의 손흥민. 그의 유니폼 가슴에 ‘AIA’가 선명하다.
김유겸 교수는 “이전에는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경제적 가치 창출에 신경을 썼다. 스포츠 이벤트에 투자하면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 자체의 인기가 떨어지다 보니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아예 스포츠 마케팅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이는 기업이 있지만 그대로 유지하는 기업도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마케팅 트렌드보다는 오너의 관심에 따라 마케팅 전략이 좌우되는 경향이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삼성이 스포츠 마케팅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아차의 경우 오너십이 유지되고 있고 스포츠에 대한 오너의 관심이 높다”며 “기아차의 주 수출 무대인 미국과 유럽 시장에 대한 마케팅을 줄이지 않고 있다. 기아차가 선택한 호주오픈·NFL·NBA 등은 여전히 팬 베이스가 탄탄한 것도 투자를 지속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때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의 선두주자였던 LG전자는 최근 비인기 종목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12년 한국여자 야구대회를 창설한 LG는 2016년 세계 여자 야구 월드컵 후원에도 나섰다.

겨울 스포츠 후원에도 적극적이다. LG전자는 한국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썰매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스켈레톤 윤성빈(24)과 대표팀을 후원하고 있다. 금메달을 딴 윤성빈에게는 3억원의 격려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남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남자 피겨스케이팅 차준환 등도 LG전자의 도움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평창올림픽에서 ‘갈릭 걸스’ 열풍을 일으킨 여자 컬링대표팀을 자사 청소기 광고 모델로 발탁하기도 했다.

컬링 대표팀을 후원한 휠라코리아와 신세계그룹 등은 평창올림픽을 통해 큰 효과를 누렸다. 특히 휠라는 스톤을 던질 때 무릎을 굽히는 컬링의 특성을 고려해 선수들의 경기복무릎 부분에 휠라의 ‘F’ 로고를 넣어 브랜드 노출을 극대화했다. KB금융그룹도 컬링 대표팀을 비롯해 빙상(심석희·최민정·차준환), 봅슬레이·스켈레톤(원윤종·서영우·윤성빈) 대표팀을 후원했다. 2006년 ‘피겨 여왕’ 김연아를 후원하면서 톡톡한 마케팅 효과를 누렸다. KB금융은 올림픽 공식 후원사가 아니지만 선수 마케팅에 집중해 성과를 냈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는 대기업이 구단의 운영 주체로 참여하는 구조다. 이는 미국 프로스포츠와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프로야구단의 경우 운영 수익 창출 대신 대기업의 홍보 수단 역할을 해왔다. 야구단은 한 해에 350억~450억원을 쓰는데 절반 이상이 모기업의 지원금으로 채워지고 있다. 지난 1월 취임한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은 ‘KBO리그의 산업화’를 공약했다. 모 기업의 의존도를 줄이고 자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김도균 교수는 “최근 국내 기업들의 스포츠 마케팅 전략이 많이 변했다. 식상한 전통 종목 대신 가능성이 풍부한 비인기 종목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며 “빅데이터를 활용해 타깃을 세분화해 접근하는 토털 더 라인(TTL) 방식이 대세를 이룬다. 이에 더해 스포츠를 통한 기업 마케팅 활동도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CSV(공유가치창출)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 김원 중앙일보 기자 kim.won@joongang.co.kr

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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