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영삼의 한자 키워드로 읽는 동양문화(4)] 살 만한 삶을 위한 실천, 예(禮) 

신을 모시는 마음으로 타인을 공경하라 

하영삼 경성대 중국학과교수
공자·맹자·순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원”… 서로 인정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길’

▎공자는 [논어]에서 “백성들을 예로써 다스린다면 수치심도 있고 격조도 있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선물한 공자상(像)이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1. 해시태그 운동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해시태그(hash tag activism) 운동이 한창이다. 해시태그란 특정 주제를 쉽게 검색하기 위해 키워드 앞에 #을 붙이던 ‘관행’이 정치·사회 이슈를 공유하기 위한 사회운동으로 확대된 것을 말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영화계뿐만 아니라 정계·경제계 등에서 자행돼온 성폭력을 고발한 사람들을 ‘침묵을 깨뜨리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2017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2011년 세계 금융시장의 상징인 월가(街)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시작된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거하라)가 해시태그 운동의 오래된 예다.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행돼온 성폭력의 관행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이 포털사이트 등을 뜨겁게 달군다. 이외에도 미국의 반복되는 총기 참사에 대한 미 넥스트(#Me Next, 다음은 내 차례) 운동 등이 트위터·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미투 운동은 할리우드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한국에서 더 뜨겁게 이슈가 되고 공감의 표시로 해시태그를 붙여 위드 유(#With You)로 확산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투 운동은 단순히 성폭력이나 성범죄에 대한 고발운동이나 성추행의 ‘관행’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차원이 아니다. 이 운동의 이면에는 갑질 문화와 성접대, 성상납 문화가 결합돼 강하고 힘센 자, 가진 자들의 쾌락을 위해서 사회적 약자, 성적 약자들이 봉사(?)해야 한다는 ‘무의식적 인식’에 대한 저항이 자리한다.

2. 혼란한 세상 바로 세우는 실천적 덕목

반복되는 폭력에 사회의 규범이나 법적 체계가 오랫동안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폭력은 더 이상 폭력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사태가 이러한 지경에 이르면 공자가 [논어]에서 “정령(政令)으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처벌만 모면하려 해 수치심이 없어진다.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수치심도 있고 격조도 있게 된다”고 말했듯이, 가해자들은 형벌만 피하려 들 뿐 수치심을 느끼지 않기에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가 되지 않는다.

이때 수치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몫이다. 혹은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공감하고 함께하겠다는 사람들의 수치다. 수치는 ‘미니마 모랄리아’, 즉 윤리가 무너진 사회에 남아 있는 한줌의 도덕이다.

수치라는 부정의 정동(情動)을 용기로 전환할 때 우리는 생명 보존에 급급한 생존이 아니라 살 만한 삶(livable life),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꿀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공자는 예를 통해 수치를 가르치고, 그것을 혼란한 세상을 바로 세우는 실천적 덕목 중의 하나로 삼고자 했다.

오늘날 예라고 하면 사람들은 구태의연한 예절이나 예의라는 의미로 단순히 생각하거나 장유유서(長幼有序), 삼종지도(三從之道) 등을 떠올리며 성별·나이·혈연에 따라 위계질서를 정하고 신분에 맞는 권리를 부여하는 수직적 질서 규범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공자가 살았던 시대가 춘추전국시대, 일상이 전쟁이고 전쟁이 일상이었던 시대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예가 왜 공자의 사상에서 그렇게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살아서 자신의 주장을 실현하지 못했다. 그가 죽고 난 뒤 한참 지나서 그의 사상은 유연성을 잃어버리고 주권자의 통치원리로 자리 잡게 됐다. 그렇다면 유교가 교리화되기 이전의 예(禮)는 어떤 의미였을까?

3. 조상신에게 제사 올리는 모습 형상화


▎예(禮)자의 변천. 위는 상나라 때의 갑골문, 아래는 한나라 때의 예서다.
예는 갑골문에서부터 등장하는 매우 오래된 글자다. 공자가 가장 먼저 생각해내고 발명한 규범이 아니다. 공자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갑골문이 사용되던 상나라 말기, 은나라 때도 매우 중요했다. 예는 다른 글자와 달리 오랜 역사에도 자형(字形)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다만 제사를 뜻하는 시(示)가 추가됐을 뿐이다.

예는 示(보일 시)와 豊(예도, 절, 인사 례)로 구성됐는데 례(豊)는 소리부(部)도 겸한다. 소리부도 겸할 뿐 아니라 원래의 글자가 예다. 예(豊)는 ‘풍성하다’는 뜻의 풍(豐)에서 분화된 글자인데 처음에는 같이 쓰였다. 지금도 풍년(豐年)은 ‘풍(豐)’을 써야 함에도 ‘예(豊)’를 쓰고 ‘풍’으로 읽고 있는데, 그게 궁색했던지 사전에서 ‘풍(豐)의 속자’라고 풀이하고 있다.


우리의 행정전산망 코드에서도 예(豊)는 4888자에 포함돼 상용자로 처리했지만, ‘풍(豐)’은 거기에도 포함되지 않는 비상용자로 처리됐다. 우리말에서 풍만(豐滿)·풍성(豐盛)·풍부(豐富) 등 풍(豐)이 자주 쓰이는 상용한자임에도 그렇다. 빨리 바로 잡혀야 할 부분이다.

여하튼 예(禮)는 원래 예(豊=豐)로 썼다가 제단을 뜻하는 시(示)가 더해져 지금의 글자가 됐다. 예(豊)는 갑골문에서 두 개의 옥(玉)과 나머지로 구성됐는데 나머지를 ‘제기’를 뜻하는 두(豆)라고 봤으나 지금은 ‘북(壴, 주)’을 그린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과 여러 개의 옥으로 구성된 것이 예(豊)의 원래 모습이고,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하고자 시(示)를 더한 것이다. 상나라 때 유행했던 조상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모습을 그렸음이 분명하다. 신에게 바칠 제수로 옥과 신을 기쁘게 할 도구로 북이 선택됐던 것이다.

옥은 고대 중국에서 금 등 어떤 보물보다 귀한 것으로 인식됐다. [설문해자]에 의하면 옥은 단순한 돌이나 보석이 아니다. [설문해자]에서는 옥을 두고 “5가지의 아름다움을 갖췄다.


▎한나라 때의 화상석(畫像石)에 그려진 ‘북’ 치는 모습. 세워놓고 치는 북으로, 크기가 상당하고 위로 장식을 달 수 있는 술대가 만들어졌다.
옥이 갖춘 윤기가 흘러 온화한 덕은 인자함(仁)의 덕이요, 무늬가 밖으로 흘러나와 속을 알 수 있게 하는 덕은 의로움(義)의 덕이요, 소리가 낭랑해 멀리서도 들을 수 있는 것은 지혜로움(智)의 덕이요, 끊길지언정 굽혀지지 않는 것은 용맹함(勇)의 덕이요, 날카로우면서도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은 개결함(潔)의 덕”이라고 했다. 이보다 더한 보물이 있을까?

북은 악기의 상징이다. 壴(북 주)는 갑골문에서 ‘북’을 그렸는데 메고 다니는 북이 아니라 받침대 위에 놓인 커다란 북이고, 위로는 장식물을 다는 술대까지 그려졌다. 여기에 ‘치다’는 뜻의 복(攴=攵)이 더해진 것이 鼓(북 고)이다. 북은 신을 즐겁게 해주는 악기의 대표였다. 그래서 喜(기쁠 희)에도, 嘉(아름다울 가)에도 주(壴)가 들었다.

희(喜)는 주(壴)와 구(口)로 구성됐는데 북(壴)으로 대표되는 음악의 즐거움과 구(口)로 대표되는 맛있는 것의 즐거움을 더해 ‘즐겁다’는 뜻을 그렸다. 嘉는 주(壴)가 의미부이고 가(加)가 소리부로, 북소리(壴)를 더함(加)으로써 만들어지는 ‘즐거움’을 더욱 구체화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좋다’, ‘아름답다’, ‘훌륭하다’는 뜻을 가진다.

이런 것들이 한자에서 ‘북’이 갖는 상징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한족과 소수민족들에게서 북은 신을 불러내는 힘이자 정신의 상징으로 쓰인다. 중국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하다.

북은 우주의 신장을 상징하고, 이를 통해 신의 선한 영혼을 불러낼 수 있고, 하늘과 통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서는 북이 지도자인 추장을 상징하기도 하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서는 영혼을 불러내는 주술의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4.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존재

예의 구체적 의미를 글자 형체에 근거해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은 동한 때의 [설문해자]가 처음이다. “리(履)와 같아 ‘신발’을 뜻한다. 이로써 신을 섬기고 복을 부른다(所以事神致福也).” 독음이 같은 글자로 해당 글자의 뜻을 설명하는 것이 한나라 때의 유행이었는데 허신은 당시에는 독음이 같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리를 가져와 예를 설명했다. ‘예’와 ‘신발’, 허신은 왜 ‘신발’로 ‘예’를 설명했던 것일까?

이후의 학자들은 리가 사람이 걸어가는 도구라고 생각해 ‘실천’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다. 예라는 것이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길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조도 비슷하고 독음도 같은 ‘체(體)’를 가져와 설명하기도 했다. 체가 몸의 근간을 이야기하듯이, 예는 우주만물의 근간, 즉 근본적 질서를 말한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체(體)에도 례(豊)가 들어 있는 것을 보면 그들 간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체의 속체인 체( )도 있지 않던가? 사람(人)에게서 근본(本)되는 것이 바로 ‘몸체’이듯, 인간살이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이 예(禮)라는 것이다.

그러나 [설문해자] 연구에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받는 청나라 때의 단옥재(段玉裁)는 허신이 말한 리의 의미를 더욱 확장했다. 그것이 단순한 신발이나 실천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발은 발이 의지하는 곳이라는 [주역]의 해설을 인용하면서 리는 사람이 기대고 의지해야 하는 모든 것, 즉 입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사람과 동물이 구분됐듯 의복과 같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그런 존재가 ‘예’라는 주장으로 보인다.

5. 철학자들이 본 예(禮)의 의미


▎중국은 세계 제국을 꿈꾸고 있다. ‘세계의 제국’이 되는 것, 그것이 중국의 꿈 ‘중국몽(中國夢)’이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단순히 여기에 머물지 않고, 예를 우주만물이 존재하는 질서이자 인간세상을 다스리는 정신으로도 표현했다. 대표적인 학자가 순자(荀子)이다. [순자(荀子)]에 포함된 ‘예론(禮論)’에서 예의 필요성과 효용성 등을 깊이 있게 설파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욕망을 갖고 난다. 그래서 언제나 욕망하지만 다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얻지 못하면 갈구하게 되고, 갈구하게 되면 끝없는 분란이 일어난다. 분란이 일어나면 다투게 마련이고, 다투면 끝나고 만다.”

이 혼란한 세상,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로잡아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예라는 것이다. “예를 얻으면 천지가 화합하게 되고, 해와 달이 밝음을 발하며, 별들이 운행하고, 강물이 흐르며, 만물이 창성(昌盛)하게 된다. 좋아하고 미워함에 절제하게 되고, 기뻐하고 분노함에 균형을 갖게 된다.” 예의 필요성과 효용을 잘 설파한 글이다. 그가 말한 예의 정신은 바로 공자와 맹자 등 유가 경학자(經學者)들이 말했던 경(敬), 공경이었다.

어원으로 봤을 때도 예의 기본 정신은 ‘경’ 즉 공경에 가장 근접한다고 생각된다. 앞에서 봤듯 예는 원래 신에게 제사드릴 때 쓰는 옥(玉)과 북(壴)으로 구성돼 인간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귀중한 것으로 신에 대한 존경심을 예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강조하게 위해 시(示)를 더해 예가 됐다.

신과의 만남, 국가는 물론 모든 인간행위를 신의 의지에 기탁하고 신의 결정에 따랐던 당시를 생각해보자. 그만큼 경건한 순간이 있을까? 지금도 성 베드로 성당이나 밀라노 대성당 같은 곳에 들어가보라.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신 앞에 한 인간이 한없이 작아지고 그저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 그래서 신을 경배하고 우러러보는 것이다.

자식과 부모, 제자와 스승, 신하와 임금, 그 어떤 인간과의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건함과 경외심, 우러름을 느끼는 관계를 표현한 것이 예다. 그래서 유가의 대표 경전이자 예의 바이블이라 할 [예기]에서는 그 시작부터 “근간이 되는 예가 300가지고 부수적 예가 3000가지인데 이들을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공경함’이다(經禮三百, 曲禮三千, 可以一言以蔽之曰: 毋不敬)”고 선언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다. [좌전](희공 11년)에서도 “예(禮)가 나라의 근간이라면, 경(敬)은 예를 싣고 다니는 수레이다. 공경하지 않으면 예를 행할 수 없다”고 했다.

공자도 경(敬)으로써 자신을 닦는다(修己)고 했고, 제자 자유(子遊)와의 ‘효(孝)’에 관한 대화에서도 “단순히 좋은 음식으로 섬기기만 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라고 해 ‘공경하는 마음’이 인간다움의 근본임을 설파했다.

맹자는 더욱 적극적이었다. “군자가 보통사람과 다른 것은 마음을 지키기 때문이다. 군자는 인자함(仁)으로 마음을 지키고, 예로써 마음을 지킨다. 인자한 사람은 남을 사랑하고, 예가 있는 사람은 남을 존경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언제나 남의 사랑을 받고, 남을 존경하는 자는 항상 남의 존경을 받는 법이다.”(‘이루’ 하편)라고 했다.

이 때문에 예를 인간이 가져야 할 근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원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예(禮)를 줄여서 예(礼)로 쓰기도 한다. 현대 중국의 간화자에서는 이를 표준체로 설정했는데, 사실은 최근에 쓰인 것이 아니라 한나라 때부터 쓰였으니 이미 2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글자이다.

예(禮)를 구성하던 례(豊)가 을(乙)로 바뀌었는데, 단순히 간단하게 하고자 한 것만은 아니다. 을의 어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보통 식물의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어원에 관계없이 중국의 고대사에 대한 신화가 만들어지고 체계화되던 한나라 당시, 많은 사람이 을이 ‘새’를 본떴다고 믿고 있었다.

그 새는 다음 아닌 주나라의 시조 후직(后稷)을 잉태하게 했던 신조(神鳥)였다. 달리 현조(玄鳥)라고 불렸는데, 보통 까마귀로 알려져 있다. 태양에 살면서 태양을 가슴에 품고 해를 옮겨 다닌다고 하는 ‘삼족오(三足烏)’도 바로 이 새의 변형이다. 중국 유일의 여자 황제, 당나라 때의 측천무후가 새로 만든 글자 일(日)은 태양을 뜻하는 네모 속에 신조를 상징하는 을(乙)을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을은 인문중국 주나라의 시작을 상징하기도 하고, 모든 만물의 처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처럼 예(禮)의 례(豊)가 을(乙)로 바뀐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의 영혼을 불러내는 근본적인 행위라는 뜻이다.

6. 중국몽? 보편적 가치부터 제시해야

그렇다. 예의 정신은 ‘신을 모시는 인간의 마음, 신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처럼 다른 사람, 다른 존재에 대한 공경이고, 존중이다. 공자가 그토록 주창했던 극기복례(克己復禮), 이는 ‘욕심을 누르고 예를 따른다’로 해석하지만, “인간이 가진 원초적 근본적 욕망을 누르고 모든 존재를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것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극기복례’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 21세기 특히 한국은 더 그렇다. 자본주의의 말단에서 욕망만으로 가득 찬 세상이다. 순자의 말처럼,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 하고 심지어 지배해야만 한다. 그것이 세상의 모순이고 갈등이고 비극이다. 예가 가진 상대에 대한 존중, 만물에 대한 인정, 자신의 겸허 등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해줄 것이다.

21세기 중국은 세계 제국을 꿈꾼다. 이미 G2라고 하니, G1으로 가고자 하는 욕심이 없을 리 없다. ‘세계 제국’이 되는 것, 그것이 중국의 꿈 ‘중국몽(中國夢)’이다. ‘중국의 꿈’을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 세계 제국으로 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세계 제국들을 생각해보라. 군사력과 경제력만으로 세계 제국으로 갈 수는 없다. 세계 제국이 될 수 없다. 일본이 그러하지 않는가? 왜일까?

세계 제국·리더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세계를 위해 의미 있는 보편적 가치를 제공하는 일이다. 프랑스가 자유와 평등을, 미국이 민주라는 개념을 세계에 제공해 세상을 한걸음 더 나가게 했던 것처럼. 그러나 일본은 그런 것을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훌륭했지만 세계와 더불어 살고, 세계와 함께 가는 것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국이 되지 못했다.

중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마르크스 이념에 근거해 과거와 전통을 ‘혁명’해 나라를 잡은 지금의 중국이지만, 마르크스주의로 세계를 살찌게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이 세계인들에 제공할 보편적 가치는 무엇일까?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당연히 중국의 전통적 자산이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세계의 진정한 리더였던 중국, 중국은 찬란한 전통 유산을 너무나 많이 갖고 있다. 21세기를 사는 이 시점에서 경쟁·지배·압제·착취 등 서구 제국들이 만들어 놓은 분열·갈등·대립의 질서를 완화시키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100년 전 중국인들이 그렇게도 혐오하고 부정했던 중국의 전통적 자산이다.

[노자]의 물이 상징하듯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며, 모든 것을 싸 안고 키워내면서도 공(功)을 자랑하지 않는, 자신을 낮추고 남을 아끼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 유가의 예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을 지배하고 본성을 압제하는 이상한 도구로 변질되기도 했지만, 그 근본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고 존경이다.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이끌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 그것이 오늘날 예가 알려주는 의미다. 그렇게 된다면 순자의 말처럼 온 우주와 만물과 모든 생명이 서로 조화롭게, 순조롭게, 화합하며 사는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 시점, 우리 곁에서 이뤄지고 있는 ‘미 텍스트’, ‘미투’, ‘위드 유’ 운동이 가해자/피해자, 남/녀, 주류/비주류, 중심/주변, 강자/약자, 빈/부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의 밑거름이 되길 희망한다. 그것은 예가 가진 존중과 존경의 정신이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 하영삼 경성대 중국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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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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