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김해완의 쿠바탐험 | 부에나비스타, 아바나(4)] 쿠바인들의 마지막 자존심, 집 

구멍 난 지붕 아래 펼쳐지는 아바네로의 좌충우돌 드라마 

김해완 작가
심각한 주택난에 쪼개고 덧붙여 ‘다같이’ 사는 공동주거 일상화…체 게바라가 꿈꿨던 ‘차별 없는 주거 자족’ 실험은 60년째 ‘진행 중’

▎빠띠오는 식민지 시절 지어진 건물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다. 건물 내부에 있지만 천장이 뚫려있기 때문에 일종의 외부이기도 하다. 빠띠오로 올려다본 하늘.
첫 번째 장면. 한 외국인 여행객이 하룻밤 머물렀던 까사 빠르띠꿀라르(Casa Particular: 가정집의 빈 방을 여행객에게 제공하는 쿠바의 숙박업. ‘까사’라고도 불린다)를 나선다. 매트리스가 푹 꺼진 데다 새벽 6시부터 아이가 울어대는 바람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집주인은 궁핍한 얼굴로 좀 더 머무르면 안 되겠느냐고 간청하지만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여행객은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가 깜짝 놀란다. 집주인이 얼굴을 찡그리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 주여, 부디 우리 집에 손님을 더 보내주소서!

두 번째 장면. 알코올중독으로 사고만 치던 막내 동생이 오랜 가출 생활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다. 그러나 가족들이 걱정하는 것은 아직도 동생의 손에 들려 있는 술병이 아니라, 이 술병과 함께 동생을 집어넣을 방이 없다는 사실이다. 집은 이미 만원이다. 동생이 집을 비운 사이에 두 딸과 한 아들, 두 손자와 손녀, 며느리와 그녀의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딸까지 한지붕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은 작년 후반부터 올해 초까지 방영됐던 쿠바의 국민드라마 [사랑의 시간(El Tiempo del Amor)]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을 시청했던 수많은 쿠바인이 이렇게 중얼거렸으리라. 오 주여, 부디 어느 여자가 사랑에 빠져서 저 못난 동생을 자기 집으로 거둬가게 해주소서!

하나는 실화고, 또 하나는 드라마다. 그러나 이 둘의 배경은 동일하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다. 이곳에서 누구는 끌려들어가고, 누구는 쫓겨나며, 누구는 숨어 산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무너지는 건물들, 움직이는 사람들


▎오랫동안 방치되어 천장도 창문도 사라져버린 건물. 낙후된 건물이 집중되어 있는 센트로 아바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붕괴 위험을 안고 살고 있다.
겉으론 아바나의 ‘집구석 드라마’가 잘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아바나의 길거리는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여행객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바나 역시 신선하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매인 줄을 따라서 걸려 있는 빨래, 건물 벽을 고치고 있는 미장이, 성냥으로 가스불을 켜고 커피를 끓이는 할머니.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풍경이 아날로그적 감성을 일으킨다.

그러나 삶은 이미지도 감성도 아닌 현실이다. 장기체류자의 눈으로 아바나의 길거리를 바라보면 어떨까? 외국인 전용 까사 표시인 파란 로고만 보일 것이다. 아바네로의 눈으로 이 도시를 본다면? 내국인 전용 까사 표신인 빨간 로고만 보일 것이다. 그리고 시멘트나 경첩, 타일, 램프, 커튼 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가 보이면 발걸음을 멈출 것이다. 아바나의 생활인이라면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하면 집을 (통째로든 부분적으로든) 바꿀 수 있을까?’

쿠바의 주거환경은 몹시 독특하다. 쿠바 정부는 반세기 이상 사적인 부동산업을 전면 금지했고, 집주인의 권리는 허락하되 택지(宅地)의 권리는 모두 국가에 귀속했다. 따라서 쿠바에서는 월세나 전세, 매매(賣買) 같은 개념도 희박하다. 이곳의 주거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가정집이다. 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집일 수 있고, 국가로부터 할부로 구매해서 여전히 갚아나가고 있는 새 집일 수도 있다. 2011년 드디어 부동산 거래가 허용됐지만 일시불로 집값을 지불할 만큼 돈 많은 쿠바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집주인이 바뀌는 것은 여전히 서로 집을 교환하거나 가족끼리 선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째는 위에서 언급한 까사 빠르띠꿀라르다. 국가에 수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면서 빈 방이나 빈 아파트를 빌려주는 합법적인 비즈니스다. 그리고 셋째 주거 형태는 불법 까사다.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은 가정집이 몰래 세입자를 들이는 것이다. 이 사실이 적발된다면 집주인은 국가에 집을 몰수당하고 세입자 역시 곤란해지겠지만, 쿠바의 다른 비즈니스가 그렇듯이 이곳에서 암거래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부동산이 죽었기 때문에 아바나의 주거 시장도 조용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오산이다. 세 가지 주거 형태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역학관계는 뉴욕에 버금갈 정도로 역동적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바나의 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고, 남아 있는 집마저도 빠르게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새 건물을 증축하는 속도는 세대가 교체되는 속도보다 더 느리다. 결국 분가를 원하는 젊은 부부는 곤란한 현실과 직면한다. 아바나에 자신을 위한 빈집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은 부족한 상황. 이 가운데에서 ‘집’은 특별한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됐다. 만인이 매달려야 하는 희소 자원이자, 돈을 버는 데 가장 효과적인 특수 자원이 된 것이다. 좁은 방에 몸을 구겨 넣어라, 그러나 세입자는 계속해서 오라!

아바네로들은 창의적으로 이 ‘집구석 드라마’를 써내려가고 있다. 물자의 한계, 자금의 부족, 그리고 집 공사에도 허가를 받아야 하는 관료주의를 견뎌가며 어떻게든 기존의 집을 증축해 왔다. 식민지 풍 건물의 특징인 높은 천장을 두 개층으로 나눈다거나, 건물 내부에 있는 정원인 빠띠오(Patio)를 방으로 만든다거나, 방에 간이 화장실과 간이 주방을 만든다거나. 이런 변화가 축적되면 같은 공간이라도 몰라보게 변신한다. 아바나의 많은 아파트가 한눈에 파악하지 못할 만큼 희한한 구조를 갖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아바나의 건물들은 움직이고 또 변신하고 있다.

집의 변신은 그만큼 다사다난한 가족사를 반영한다. 집은 사람의 몸을 ‘수납하는’ 창고가 아니다. 집의 구조는 인간관계의 형태와 곧바로 맞물린다. 오늘날 한국에서 남녀노모두가 자기만의 공간을 원하는 것은 개인 간의 사회적 거리가 돌이킬 수 없이 변했기 때문이다. 타인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옛날보다 훨씬 더 다양한 대안과 섬세한 배려를 요구하는 일이 됐다.

가령,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남산강학원이라는 인문학 공동체에서 공동주거 실험을 했었다. 좁은 방 하나를 둘이서 나눠 쓰고 화장실 하나를 네 명이 함께 사용하면서도 문제가 전혀 없었던 까닭은, 연구실의 널찍한 공부방과 거대한 주방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대안이 없었더라면 공동주거는 그저 돈을 아끼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마음까지 가난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쿠바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쿠바가 아무리 공산주의 국가이고 끈끈한 가족 문화를 자랑한다고 해도, 이곳의 시간은 ‘근대(modern)’의 시계를 따라서 쉼 없이 흐르고 있다. 대다수 사람이 학교와 병원과 극장을 드나들고, 성차별주의나 나이에 따른 위계와 같은 인습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할아버지 세대는 육체노동에 익숙하고, 아버지 세대는 대학 교육의 혜택을 받은 엘리트이며, 아들 세대는 혁명보다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와의 소통에 더 관심이 있다. 이렇게 역동적인 집단의 구성원이 제한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예측 불가능한 각종 사건,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다. 그리고 대안을 찾기 위한 무한한 인내심이다.

다음의 이야기는 실화다. 대학교 2학년인 딸이 엄마에게 선언한다.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겠다는 것이다. 엄마의 첫 질문은 ‘누구냐’가 아니라 ‘어디서’다. 딸은 대답한다. ‘내 방에서.’ 이제 엄마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딸의 동거남과 동거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엄마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바나 어디에서도 그들이 독립된 공간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3년간 이 젊은 커플을 위해 빨래를 하고 밥을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쿠바의 가정에서는 여전히 ‘엄마’가 과도한 책임을 떠맡는다) 어느 날 엄마는 마침내 생각한다. ‘빠띠오를 포기하고 거기에 아이들 살림집이나 차려줄까?’

집을 자족한다는 것의 의미


▎창틀을 보수하는 아바나 주민의 모습. 쿠바인들은 집을 고치는 공사를 대부분 스스로 해낸다.
이런 기막힌 ‘동거(공동주거)’는 아바나 어디를 가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족 간에 불협화음이 터져 나올 때마다 아바나의 아파트는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변신한다. 그리고 변신이 거듭될수록 아바네로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도대체 어디가 가족과 타인을 가르는 경계인가? 어디가 ‘내부인’과 ‘외부인’을 가르는 경계인가?

외국인은 아바나에서 살기 좋은 공간을 모조리 차지하고, 시골 출신의 쿠바인들은 공짜로 주거 공간을 얻기 위해서 아바네로와 결혼한다. 집을 둘러싼 아바나의 셈법은 복잡하고 또 복잡하다.

아바나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버금가는 카오스의 공간이 될 거라고, 60년 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두 손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쿠바는 자기만의 맥락에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현 상황을 성공이냐 실패냐 단정하기 전에, 쿠바가 주거에 관해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게 좋겠다.

[월간중앙] 2월호에서 나는 쿠바혁명의 여정이 ‘자족’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구(舊) 식민지 출신인 제3세계의 약소국이, 강대국의 정치적 간섭과 경제적 구속에서 벗어나서, 과연 스스로의 사상과 실천력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 식량 같은 경우는 자족의 문제와 곧바로 연결된다. 글로벌 시장으로부터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쿠바인이 먹을 식량은 쿠바인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주거는 식생활보다 더 고차원적인 문제다. 사람이 먹지 않는 브로콜리는 동물의 식량이 돼서 여전히 자연의 일부로 기능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자연의 쓰레기에 불과하다.

집을 ‘자족한다’는 것은 건물을 건축할 수 있는 자금력과 기술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건물 내부에서 사람들이 세대에 세대를 거듭할 수 있도록 삶의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세대 유지’야말로 정부의 각종 일이 최종적으로 향하는 목표다. 한 사람을 한 집에 계속 살게 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필요하다. 일자리가 있어야 하고, 시장이 있어야 하고, 예술이 있어야 한다. 교육이 있어야 하고, 교류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좋은 이웃과 마을이 있어야 한다. 결국 집 하나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집을 둘러싼 공간 전체가 다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주거를 ‘자족할’ 수 있다.

쿠바혁명의 목표는 ‘신인류(El Hombre Nuevo)’라고 불릴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체 게바라가 내세운 개념이다. 그는 공산주의를 반자본주의식 경제 발전으로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거꾸로 자본주의가 망가뜨린 인간의 도덕적 의식을 다시 키우기 위해서 공산주의가 필요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혁명의 집’은 아직도 공사 중


▎유리 없이 사용되고 있는 아파트의 창문. 쿠바에서는 특히 유리가 귀한 모양인지, 대학 건물 중에서도 유리가 없는 창문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숲이란 곧 나무들이라는 것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 지금까지 닦여온 경제적 기반은 의식의 발전을 침식시키는 일을 해왔다.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물질적 기반을 닦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남성과 여성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쿠바의 사회주의와 인간’, 1965년, 체 게바라)

쿠바라는 숲을 번창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남성과 여성”이라는 나무들을 잘 키워야 한다. 그렇다면 이 새 나무들은 어디에서 자라날까? 체 게바라는 아마도 이렇게 고민했을 것이다.

“집 없이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세상에서 자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돈이 주거 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에 살았다. 그러나 모든 인간에게는 집이 필요하다. 출신, 재산, 인종과 상관없이 모두가 그러하다. 또한 모든 장소는 정당한 노동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누구도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고향 땅을 떠날 필요가 없을 때에야 그곳은 ‘집’이 될 것이다. 돈이 넘쳐나는 그 어떤 선진국도 이런 집을 짓지 못했다. 그렇다면? 쿠바부터 시작한다.”

철학은 좋았다. 관건은 실천력이다. 쿠바 정부는 혁명 초기부터 주거에 대해 강력한 개혁 의지를 보였다.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집에 대한 독점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집을 여러 채 소유해서 월세로 먹고 살았던 집주인들은 부동산을 포기해야 했다. 정부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집을 두 채로 제한했다(하나는 도시, 또 하나는 농촌). 그렇다고 소유권 자체를 아예 말소시킨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에게 집을 물려받은 사람은 계속 같은 집에 살았고, 집이 없는 사람은 국가에 월세를 지불하다가 원금을 다 갚으면 그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현재 아바나의 집주인들은 이때 혜택을 본 경우가 많다.

그 다음으로 정부가 착수한 일은 건물의 복원이었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후반에 낙후된 건물을 복구하는 프로젝트도 실행됐다. 건축가를 무료로 파견해 거주자와 함께 집을 개조하거나, 빈곤자가 스스로 자기 집을 지을 기회를 주는 ‘미크로 브리가다(Micro Brigada)’였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자금 문제 때문에 중지됐지만,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서 유엔에서 ‘2000년 세계주택전략’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는 미크로 브리가다 대신에 낙후된 집을 선정해서 재건축 비용으로 10만 쿠바 페소(약 450만원)의 신용을 제공하는 ‘쁠란 데 알베르가도(Plan de Albergado)’가 실시되고 있다.

의도도, 의지도, 아이디어도 훌륭했다. 그러나 현실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는 무능력이라기보다는 쿠바가 처한 조건이 워낙 불리하기 때문이다. 현재 쿠바의 발목을 잡고 있는 장애물은 세 가지다. 첫째, 섬나라라는 지리적 조건과 식민지 시절의 오래된 건물이다. 건물을 복원해서 재사용하려니 2세기 전에 사용됐던 건축 재료를 구하기 어렵고,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과 여름 태풍은 건물을 파괴한다.

둘째, 돈이 없다. 여기서 돈이 없다는 것은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을 외부에서 구매해야 한다는 뜻이다. 쿠바는 천연자원이 많지 않은 나라다. 특히 1990년 대 초 소련이 붕괴되면서 쿠바는 시멘트 같은 건축 자재를 생산하는 데 꼭 필요한 원재료와 석유를 수입할 수 없게 됐다. 현재 점토와 대나무 같은 친환경 소재로 건축하는 법을 개발하고 있지만, 생산량이 충분치 않다.

셋째, 지역 간의 균형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혁명이 일어나자 수많은 지방 사람이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서 아바나로 이주했고, 1990년대에 경제 위기가 찾아왔을 때에는 아무것도 먹을 게 없어서 모두들 아바나로 향했다. 오늘날에도 쿠바의 삶의 자원은 모두 아바나에 집중돼 있다.(이것은 앞으로 연재를 진행하면서 두루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혁명의 집’은 아직도 공사 중이다. 쿠바가 관광업을 확장하면서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는 21세기, 사람들의 의견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다. 자본이 유입돼야 집을 보수할 수 있다는 의견과, 관광객이 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쿠바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쿠바의 ‘집’을 망가뜨릴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 기나긴 여정이 어떻게 결론지어지든 간에, 쿠바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에게 매혹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약 석유가 모두 떨어진다면 한국인은 과연 무슨 재료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왜 한국은 자본이 넘치면서도 주거 환경은 행복하지 않은가? 지역 간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 우선순위가 돼야 할까? 이런 질문은 중요하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정치적 노선과 상관없이 근본적으로 같다. 땅에 삶이 이어지도록 돕는 것, 가족이 세대를 이으며 두고두고 살 수 있는 장기적인 ‘집’을 건설하는 것이다.

‘체’는 이웃집에 산다


▎아바나에서 가장 처음 지어진 고층아파트 중 하나. ‘책’이 펼쳐지는 모양을 따서 혁명 전에 지어졌다고 한다. 베다도에 있다.
아바네로들은 불평의 천재다. 특히 집 얘기만 나오면 불평은 몇 배로 가속된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 자랑스럽게 이 말을 덧붙인다. 그래도 이 도시에서 길거리에 버려진 불쌍한 노숙자는 없다고. 우리 모두에게는 최소한 집이 있다고.

맞는 말이다. 아바네로들이 불편한 동거 생활을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발버둥치긴 하지만, 이곳에서는 필리핀의 빈민촌이나 미국의 디트로이드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절망의 그림자는 없다. 나는 이것이 정부의 주거 정책뿐만 아니라 커뮤니티가 튼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파에 누워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늙은 부모님을 길거리에 내쫓거나, 내 방 침대에 더러운 양말을 벗어둔 5촌 아저씨를 추방하지는 않는다.

쿠바 사람들은 정말 그 정도로 가족을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니, “그보다는 이웃의 눈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귀띔해 준다. 같은 곳에서 몇 십 년 정도 살다 보면 이웃처럼 도움이 되고 또 두려운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아바나의 ‘집’을 유지하는 최고의 자원은 ‘이웃사촌’인 셈이다! 세포막이 내부와 외부의 물질을 교환하면서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건강한 커뮤니티는 내부인과 외부인의 경계를 인위적으로 가르지 않고도 유지되는 모양이다.

지난 30년간 수많은 쿠바인이 외국으로 떠나갔고, 남은 사람들은 그렇게 수많은 가족과 이웃을 잃었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글로벌 시대의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다. 가슴 찢어지는 이별도, 뒤에서 버텨야 하는 자의 심정도, 지켜야 하는 마을의 가치도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살게 될 다음 세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체가 바라던, 혹은 쿠바인들이 체를 모델로 삼은 ‘신인류’는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바로 이웃집에 살고 있다.

※ 김해완 - 1993년 생. 십대에 중졸백수를 자처했으나 지금은 평범한 이십대 청년백수다.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둔 후 남산 강학원에서 5년 동안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읽고, 쓰고, 같이 사는 법을 익혔다. 2014년 초부터 미국 뉴욕에 떨어져 좌충우돌 여러 나라의 청년과 함께 생활한 후 2017년 9월부터는 쿠바 아바나에 정착해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른 10대의 탄생] [리좀, 나의 삶 나의 글]이 있다.

201804호 (2018.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