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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섭의 검은대륙 아프리카를 가다(2)] 만년설 ‘킬리’의 나라 탄자니아 

용맹스런 사바나 전사(戰士)들의 고향… 할례와 밀렵의 아픔을 돌아보다 

김성섭 작가
불가사의한 ‘큰 구멍’ 응고롱고로, 생존과 균형의 자연법칙이 살아있는 세렝게티, 아프리카 유일의 만년설과 빙하를 간직한 킬리만자로…. 태초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아프리카 나라 중 하나인 탄자니아는 사바나 초원의 전사들인 마사이족의 터전이기도 하다. 밀렵과 할례의 아픔이 아직도 남아 있지만 정치·사회·경제적으로 급변기를 맞고 있는 이곳에는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다.

▎세계 최대 분화구인 응고롱고로의 전경. 이곳은 여의도의 20배 크기 면적으로 600m 높이의 성벽 같은 언덕배기가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다. / 사진제공·이형준
자동차로 한참을 달려 마침내 케냐 국경을 넘어 탄자니아 땅을 밟았다. 황열병 주사 카드를 반드시 제시해야 입국할 수 있다. 내가 도착한 숙소는 자연석과 목재로 지은 로지(방갈로)식 호텔이다. 경찰공무원 출신이다 보니 가는 곳마다 치안 상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것도 직업병인 모양이다. 탄자니아는 이웃나라 케냐보다는 치안이 비교적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행객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곳이다. 정치와 치안이 안정돼 있다 보니 기업들도 탄자니아를 동아프리카 진출의 거점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 내가 묵은 호텔도 투숙객의 안전에 꽤나 신경을 쓰는 인상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호텔 주변에서도 야생동물이 출몰할 수 있다며 군복 차림의 안전요원이 여행객을 방까지 동행해 데려다 준다. 호의적으로 보이는 안전요원으로부터 경호를 받는 느낌이 들어 도착 첫날의 탄자니아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고마움의 표시로 팁을 건네자 안전요원은 “잠보”라고 말하며 돌아선다. 스와힐리어 ‘JAMBO’는 영어 ‘JUMBO’와 달리 ‘안녕’ 또는 ‘좋다’는 뜻이다.

탄자니아의 공식 국가 이름은 탄자니아 합중국(United Republic of Tanzania)이다. 5년 임기에 중임할 수 있는 대통령중심제 국가다. 2015년 11월 취임한 현 마고풀리(John Pombe Magufuli) 대통령은 강력한 공공개혁과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불도저’의 별명을 갖고 있는 그는 수십년 일당 체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누적돼 온 부정부패의 그늘을 벗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기업들이 공무원에게 뒷돈을 주고 일을 처리하던 관행도 점차 사라지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옷을 벗은 공무원들이 수 천명에 이른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개혁에는 진통이 뒤따르게 마련일 게다. 탄자니아도 예외가 아니다. 부패척결 과정에서 저항도 만만치 않고 예상치 못 한 부작용도 생겨났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아프리카 중심국가로 우뚝 서길 바라는 마음이다.

탄자니아 인구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5160만 명이지만 면적은 아프리카에서 넷째로 넓은 94만㎢로 한반도의 약 4.3 배에 달한다. 개신교와 가톨릭, 이슬람, 토속신앙까지 여러가지 종교가 섞여있지만 여타 아프리카·중동의 국가들과 같은 종교 갈등은 없는 편이다. 얼마 전 이 여행기를 준비하면서 서울에 있는 주한 탄자니아 대사관을 찾아가 대사관 관계자와 얘기를 나누다가 이 나라의 1인당 GDP를 물었더니 “2015년 기준으로 967달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탄자니아는 최근 몇 년 동안 7%대의 고도성장을 하고 있어 매년 국민소득이 늘고 있지만 인구의 40%는 여전히 하루 2달러 정도의 수입으로 어렵게 살아간다. 시골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보다는 매일 가족에게 필요한 물을 길어 오는데 2~3시간을 보내고 있을 정도다. 아직은 빈곤한 나라지만 인도양을 접한 동아프리카의 관문으로 탄자니아는 농업대국이자 금과 천연가스 등 자원이 풍부해 잠재력이 큰 나라로 평가받는다.

수교 25년 만에 대사관이 열리다


▎수교 25년 만인 올해 1월 31일 주한 탄자니아 대사관이 서울 서빙고동에 문을 열었다. 지난해 11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마틸다 마수카 주한 탄자니아 대사의 신임장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처럼 탄자니아 역시 서방 국가의 식민 통치를 거쳤다.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탄자니아는 스와힐리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한다. 국기는 노랑 테를 두른 검은 띠가 대각선으로 지나며 위는 초록, 아래는 파랑이다. 검정은 국민, 노랑은 광물자원, 초록은 국토와 농업, 파랑은 인도양을 나타낸다. 1964년 내륙의 탕가니카와 섬나라인 잔지바르를 합병했고 이들 지역에서 쓰이던 깃발의 색깔을 배합해 현재의 국기가 제정됐다.

탄자니아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2년이다. 당시 탄자니아와 수교는 했지만 서울에 주한 탄자니아 대사관이 생긴 것은 올해 1월이다. 이전까지는 주일 탄자니아 대사가 겸임했고 서울에는 대사관이 없었다. 대신 서울 강남에 위치한 명예영사관에서 관광비자발급 등의 업무를 대신했다. 초대 주한대사로 부임한 이는 미모의 여성인 마틸다 마수카(Matilda S. MASUKA)라는 분이다. 그는 취임 때 탄자니아 국기 문양의 스카프를 둘렀는데 꽤 인상적이었다. 양국이 수교한 지 25년 만에 대사관이 문을 열어 늦은 감이 있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과 탄자니아는 경제·문화적 교류가 더 활발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여행을 통해 탄자니아가 각별한 나라로 다가오다 보니 평소 같았으면 무관심하게 지나쳤을 법한 뉴스도 눈에 들어온다.

지난 2월 초 서울대 공대가 참여한 공적원조사업이 탄자니아에서 시작됐다는 내용이다. 에너지·물·농업·보건·교육 등 분야를 지원한단다. 탄자니아는 특히 만성적인 식량난과 전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현지 상황에 적합한 신재생에너지나 스마트 농업기술을 개발해 보급한다는 것이다. 서울공대는 우선 킬리만자로 주의 음칼라마 마을에 10㎾급 태양광 발전센터를 건설했다. 센터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마을 50여 가구에 전기를 공급한다. 적도 근처에 위치한 음칼라마는 해발 800m에 위치한 오지 마을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마사이족 마을주민들은 센터에서 생산된 전기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마사이족 얘기는 뒤에서 다시 하자. 사실 아프리카에는 음칼라마 마을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곳이 많다.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 인구의 90%가 음칼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 여건의 시골에서 거주한다.

현재 탄자니아에는 1050명의 우리 교민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교민 이야기가 나왔으니 소개하고 싶은 분이 있다. 일면식도 없지만 우리 교민 중 기업을 이끌며 탄자니아에서 감동을 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사업가 김태균씨다. 김씨는 탄자니아 사회적 기업의 대표인데 이력이 독특하다. 원래 나이지리아에서 사업을 하며 ‘베텔 스쿨’이라는 초등학교를 지어 지역사회에 기여를 했고 이런 활동으로 ‘추장’의 영예도 얻었다고 한다. 외국인으로서 ‘추장’으로 인정받은 것은 현지에서 큰 역할과 함께 친화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뜻한다. 김씨는 2014년 이곳 탄자니아로 이주해 수도 다르에스살람에서 한글학교 운영에 동참해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 그의 회사는 고아 출신 현지인을 채용해 월 150달러를 급여로 지급하고 있다고 한다. 보통 현지의 급여가 100달러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회사는 고급 흑단 재질을 다듬어 볼펜을 만들어 파는데 볼펜 한 자루당 5㎏의 식량을 기부한다. 이는 한 아이가 2주에서 3주를 버틸 수 있는 양이다. 기부한 식량은 탄자니아 내 가뭄 지역 어린이나 고아원 아이들,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제공된다. 어려운 여건에서 기업을 운영하면서 사회적 봉사까지 하고 있는 우리 교민의 이야기는 잠시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감동을 준다.

도착 다음날 아침 본격적인 응고롱고로(Ngorongoro) 답사에 나섰다.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이곳은 세렝게티와 함께 탄자니아를 대표하는 국립공원이다. 응고롱고로는 마사이어로 ‘큰 구멍’이란 뜻이다. 250만 년 전에 생성된 이 분화구(Caldera)는 160㎢이고 지름이 20㎞가 넘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도 꼽힌다. 입구에서 개코원숭이가 반겨준다. 사람을 함부로 공격하진 않지만 가까이 가면 손톱, 발톱으로 할퀴는 경우가 있어 감염 우려도 있어 주의해야 한단다. 사파리 전용차를 타고 분화구로 내려가는 길은 아찔하다. 포장도 안 된 도로는 좁고 가파르다. 가드 레일도 없다. 낭떠러지 쪽으로 약간의 흙을 쌓아놓은 흙더미가 군데군데 보이긴 하나 그마저 유실된 곳이 태반이다. 안전엔 좀 미흡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안전시설과 같은 인공 구조물들은 그저 불편한 것이라서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 자궁처럼 포근한 응고롱고로


▎케냐 중앙고지에서 탄자니아까지 분포하는 마사이족은 아프리카 200여 부족 중 가장 호전적인 부족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그들도 문명화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마사이족의 뒷모습이다. / 사진·김성섭
동물의 천국으로 불리는 나라인 만큼 동물이 우선이고 자연이 먼저인가 보다. 초원도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 나 같은 여행객들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두는 것보다 어느 정도 관리해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현지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자연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분화구는 장관이다. 병풍 같은 절벽으로 포근하게 둘러싸여 이동하지 않고 동계교배(同系交配)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생태계가 유지된다. 생명의 땅이고 신비의 땅이다. 인류의 시원답게 태초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아프리카 Big 5 동물로 불리는 사자·표범·코끼리·버팔로·코뿔소는 물론 얼룩말·가젤·누·하마·타조·하이에나·자칼 등 수많은 동물이 더불어 한다. 적당한 기온과 강우량, 이곳은 말 그대로 동물들의 낙원이다. 드넓은 대지는 절대 초원으로 나무 한 그루 없다. 때문에 나무 잎을 먹는 기린은 없다. 먹잇감이 풍부해서인지 순한 동물들은 물론 맹수들도 느긋하다. 웬만한 대도시만큼 넓은 땅에 작은 구조물 하나 보이지 않고 오직 초원만 펼쳐져 있다. 이곳에 옅은 안개가 살포시 깔려 있는 모습은 자못 신비롭기까지 하다. 태초의 지구 끝자락 같다. 화산 폭발로 생긴 분화구라 생각하기 힘든 이곳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이 안온한 느낌을 준다. 신이 인류에게 선물한 최고의 휴식처라고 하면 과장일까.

응고롱고로와 함께 탄자니아를 상징하는 곳이 바로 세렝게티다. 과거 유럽의 탐험가들이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미 마사이족들이 200년 넘게 가축을 기르며 살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마사이족들로부터 ‘끝없는 평원’을 의미하는 이름을 듣고 이와 비슷한 세렝게티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세렝게티는 탄자니아 서부에 75%, 케냐의 남서부에 25%를 차지하고 있다. 세렝게티의 전체 면적은 3만㎢가 넘는데 경북과 경기도를 합쳐 놓은 정도다. 2016년 미국의 생물학자 션 비. 캐럴(Sean B. Carroll) 교수는 [세렝게티의 법칙]을 펴내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처절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도 초식동물과 육식 동물은 조절과 균형의 순환을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심화되는 불평등과 끝장으로 치닫는 양극화, 힘만 있으면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이 대평원의 법칙을 배우고 새겨야 하지 않을까. 최대 300만 마리에 이르는 다양한 포유동물은 우리 아닌 우리 속에서 살고 있다.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김·이·박씨 중 한 사람이 맞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탄자니아에서는 돌을 던지면 무조건 얼룩말(Zebra) 아니면 누(Gnu)가 맞는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개체수가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모피를 얻으려는 인간들과 천적인 사자·표범·악어 등에 의해 그 수가 줄고 있다고 한다.

세렝게티는 ‘입으로 말하는 곳이 아니고 눈으로 보는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세렝게티는 탄자니아의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뉴욕타임스]는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명소 중 하나로 이곳을 선정한 적이 있는데 나는 ‘가보지 않고는 죽지 마라’라고 말하고 싶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보며 감탄하고 있자니 좀 늙어 보이는 코끼리 한 마리가 길가에 어슬렁거린다. 동물원이 아닌 야생에서 이렇듯 코끼리를 가까이 보기도 처음이다. 상아(象牙) 때문에 개체수가 줄던 코끼리는 전 세계적으로 상아제품의 판매가 금지되면서 다시 개체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0여 년 전만 해도 탄자니아는 ‘밀렵의 진원지’라고 불렸다. 1961년 독립 이후 1995년까지 지속한 일당 지배체제 아래서 부패가 만연했고 이는 밀렵의 최적 조건으로 작용했다. 탄자니아에서 밀렵이 기승을 부린 건 크게 두 차례였다. 1977~87년 사이 탄자니아 코끼리는 11만 마리에서 5만 5000마리로 딱 절반이 줄었다. 느슨한 밀렵 감시와 경미한 처벌, 권력자들의 비호와 뒷돈 거래가 비일비재했다. 미국·영국·홍콩·일본 등 일부 선진국 부유층의 상아 수요는 막대했다. 대표 관광상품인 코끼리 수의 격감과 국제사회의 비난에 위기감을 느낀 탄자니아 정부가 발의해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이 내린 결정이 1989년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국제거래 협약(CITES)’에 근거한 상아 국제무역 금지조치다. 그 후로 탄자니아의 코끼리 수는 조금씩 회복됐다. 엄청난 대식가인 코끼리는 최근 그 수가 크게 늘면서 초원에 새로 돋아나는 새싹까지 싹쓸이하는 바람에 일부 지역에서는 골칫덩어리가 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자연유산에도 한국의 손길이


▎눈 녹은 킬리만자로의 전경. 기후변화 때문인지 아프리카 유일의 만년설과 빙하를 간직하고 있는 킬리의 눈이 점점 녹고 있다. 조용필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불러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웅덩이에 빠져 머드팩(?)을 하는 하이에나와 이동 중 순식간에 사냥감을 덮치는 자칼의 생생한 모습을 운 좋게 스마트폰을 이용해 동영상으로 담을 수 있었다. 얼룩말을 잡아먹던 표범은 근처 나무 위에서 반 토막의 얼룩말 사체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를 하이에나가 맴돌고 있다. 힘들게 잡은 먹잇감을 지키려는 표범과 좀 챙겨보려는 하이에나의 신경전이 팽팽해 보인다. 아무리 동물의 천국이라고 하지만 TV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한편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엄숙한 생존의 현장을 나는 이곳에서 똑똑히 목격했다.

세렝게티는 최근 우리와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이 3년 전부터 지난해까지 150만 달러를 투입해 세렝게티 현대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지난해 9월 ‘세렝게티 미디어센터(SMC)’ 착공에 들어갔다. 다목적 멀티미디어 영상관을 만들고 음향과 컨트롤 시스템을 지원한다고 한다. 20년 전 독일이 예산을 지원해 세렝게티의 탐방객 센터가 문을 열었지만 시설이 낡은데다 관광객의 수요를 맞추기 어려웠다고 한다. 2013년 탄자니아 정부는 시설 개선 사업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고 코이카가 타당성 조사를 벌인 뒤 ‘문화 공적원조’(ODA) 사업에 포함시켜 현대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코이카는 이곳에 상주 전문가를 파견해 센터 운영도 돕는다고 한다. 세계자연유산인 이곳에 우리나라가 기여한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탄자니아는 세렝게티가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명성을 더하자 마사이족인 세렝게티 주민들을 응고롱고로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새롭게 거주지를 확보한 2만 명의 마사이족들은 그들의 전통가옥에서 가축을 방목하며 살아간다. 이 정도가 감당해 낼 수 있는 수용 능력이란다. 마사이족은 전체 35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케냐와 탄자니아 경계의 가시가 많은 초원에서 거주한다. 마사이족은 평균 신장 173㎝에 고수머리, 암갈색 피부가 특징이다. 붉은색의 망토식 케이프(Cape)를 걸치고 남자들을 중심으로 몇 가족이 마을을 이루어 100~200마리의 소나 염소 양 등을 사육하며 산다. 농경은 하지 않고 소의 피와 우유 고기를 먹는다. 부인을 여럿 거느릴 수 있어 자녀가 보통 30~40명이고 부인 수대로 집을 짓는다. 집은 나무와 짚으로 구조를, 흙과 소똥으로 마감을 하는데 소똥이 단열효과가 크다고 한다. 인사법은 독특하다. 상대방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물은 그들에게 매우 귀중한 것이라서 귀한 수분을 상대에게 발라주는 게 우정이고 축복의 표현이라고 한다. 물론 외부사람과의 인사할 때는 침을 뱉지 않는다. 또 마사이 여자들은 서서 소변을 본다. 남자는 15세가 되면 전사가 돼 종족을 보호하고 소의 약탈을 방어한다. 타조의 깃털로 머리를 장식하며 긴 창과 방패로 열심히 싸운다. 전사는 미혼 여성에게 성적 자유를 요구할 수 있고 심지어 애인까지도 공유한다. 친구가 아내와 동침하면 남편이 귀가해 집 앞에 꽂혀진 전사의 창을 보고 다른 집으로 피해준다.

이런 풍습을 고수해 온 마사이족 사회도 이젠 문명의 거센 물결에 차츰 개방되고 있다. 전통의상을 벗고 현대교육을 받기 위해 도시로 나가는 젊은이가 늘고 귓불에 큰 구멍으로 치장했던 어린이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마사이족도 적지 않다고 한다. 등을 꼿꼿이 세우고 빠른 속보로 하루 3만 보를 걷는 마사이족들에겐 비만도 없고 똥배가 없으며 허리디스크도 없다. 한 가지 더 짚고 가자.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일부 대륙의 부족들에겐 할례(Circumcision)가 남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아예 ‘여성성기훼손’이라며 ‘FGM’(Female Genital Mutilation)으로 표현한다. 할례는 하루 8000명 매년 300만 명 이상이 시술을 받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중에서도 할례가 많은 곳이 동북부 아프리카다. 이집트·에티오피아·케냐·나이지리아 수단에서는 여성의 75%가, 소말리아에서는 여성의 98%가 할례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WHO를 비롯한 많은 국제기구와 여성인권단체가 나서서 할례 중단을 외치고 있지만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원시적이고 비위생적 시술로 불임 등 평생 불구가 되는 여성이 많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이런 고통도 그들 삶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여성의 민감한 신체 일부를 절제해 성적흥분이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고 공동체의 질서문란을 예방하는 그들만의 전통이라며 그네들 방식으로 내버려 두라고 한다. 최근 할례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한다. 법률 개정을 통해 케냐와 탄자니아에서는 20년 전보다 할례의 수가 3분의 1가량 감소했다. 할례가 없어져야 하는 관습이라는 믿음도 퍼져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사회적 압력 때문에 자신의 딸들에게 할례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탄자니아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Kilimanjaro)다. 킬리만자로는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혹은 ‘위대한 산’이라는 뜻이다. 아프리카의 상징이며 평범한 사람들의 도전과 용기를 받아주는 킬리만자로는 검은 대륙의 흰 산으로 ‘킬리’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가슴이 설렌다. 버스로 2시간쯤 가는 길이 지루하다. 멀리서 킬리의 위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차가 멈춰 섰다. 평생 한번 와볼 듯 말 듯한 곳이니 인증샷 한 컷쯤은 남겨야 할 듯했다. 아프리카의 영산(靈山) 킬리를 멀리서 바라보며 다시 출발하는데 현지인 5~6명이 올라탄다. 현지인 가이드란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을 의무적으로 태워야 한단다. 관광객의 안내와 안전을 위하고 현지인의 고용창출 차원에서 비롯된 제도다.

만년설과 빙하가 사라지고 있는 ‘킬리’

사탕수수 밭이 즐비한 산간마을들을 여럿 지나고 나니 드디어 킬리의 입구다.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현지인들과 함께 등반에 나섰다. 안내를 맡은 현지인 중 한 명이 킬리에 핀 야생화 한 송이를 가리키며 코끼리풀이란다. 꽃수술이 코끼리 코처럼 생기긴 했다. 한참을 걷던 현지인들이 민속춤을 보여 준다며 춤판을 벌인다. 우리도 신이 나서 같이 춤을 췄다. 흥미롭다. 주저하던 나도 다시없는 기회라는 생각에 함께 돌았다. 일정상 킬리의 일부만 느낀 후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킬리는 별도로 최소한 5일 일정은 잡고 가야 그나마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킬리를 등반하자면 무릎 관절이 튼튼해야 한다. 2001년 우리나라의 저명한 금속공학자 박희선(朴禧善) 옹이 82세의 나이에 5895m의 킬리만자로 정상에 올랐다. 박 옹의 도전에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낸 기억이 난다. 예순 나이에 무릎 운운하며 ‘가니 못 가니’고 하는 건 열정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킬리만자로 얘기를 몇 토막 더 해보자. 킬리는 눈이 내리지 않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만년설과 빙하를 간직하고 있다. 정상에 20m가 넘는 아이스 돔이 있었으나 최근 100년 사이에 85%가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지금과 같이 지구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멀지 않아 눈 없는 킬리가 될 것이다.

킬리만자로가 대중문화에 언급된 것은 1938년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였다. 이 단편소설의 주인공은 표범이다. 킬리 정상에서 굶어 얼어 죽지만 사실 킬리엔 표범이 없다. 1985년 조용필이 불러 히트한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의 작품이다. 가사에도 얼어 죽은 표범이 등장하는데 당시엔 킬리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몰랐을 터이다. 히말라야 근처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다. 6분 가까운 이 노래는 제작 당시 음반사 실무진은 물론 방송국 PD들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땐 ‘3분 땡’이라는 속어가 있었는데 대중가요가 3분을 넘기면 방송 부적격이라는 얘기다. 조용필도 긴 가사를 다 외우는 데 무려 4년이 걸렸단다. 외우지 못했던 3~4년은 모니터가 있어야 노래를 불렀다. 조용필의 앨범 8집에 수록된 이 노래는 크게 히트했고 이후 6년간 가수왕을 차지하며 1인 독주 시대를 열었다. 제작 당시 앞부분을 랩으로 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조용필이 랩이 어렵다고 고사해 내레이션으로 했다. 1998년 조용필은 탄자니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킬리만자로를 널리 알린 공으로 감사패를 받고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2001년 탄자니아는 조용필에게 문화훈장도 수여했다. 그러고 보니 조용필도 올해로 벌써 데뷔 50주년을 맞는다. 이래저래 우리와는 먼듯하지만 가까운 친구의 나라다.

킬리를 벗어나 경비행기를 타고 1시간 남짓 이동한다. 지상에 펼쳐지는 탄자니아 농촌을 가까이 볼 수 있다. 제주도처럼 야트막한 무덤과 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한 돌담을 보고 우리 문화와 큰 차이가 없음을 느낀다. 다음 일정은 빅토리아 폭포로 유명한 잠비아다. 아프리카엔 ‘폴레폴레’라는 말이 있는데 ‘빨리빨리’인 줄 알았다. 아니다. ‘천천히’ 라는 뜻이다. ‘폴레폴레’를 마음에 새기는 동안 비행기는 어느새 ‘위대한 강’의 나라 잠비아 영공에 들어섰다.

※ 김성섭 - 1979년 순경으로 입직해 2017년 6월, 37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퇴직했다. 경남 하동서장, 파주서장, 서울청 홍보담당관, 서울 중부서장을 거쳐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을 지냈다. 역사에 해박한 필자는 파주서장 시절 파주 경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박물관 개관에 힘써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7년 12월 과천서장을 끝으로 퇴직한 구본숙 전 총경과 부부 사이로 경찰 역사상 첫 순경 출신 부부 총경이라는 타이틀이 있다. 현재 아프리카 여행기 책 출판을 준비하면서 아프리카 현지에서 자원봉사 활동 계획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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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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