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스타 인터뷰] ‘충무로 신데렐라’ 영화배우 김태리 

“제2의 전지현요? 부담되지만 기분 좋아요!”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스크린 데뷔 1년여 만에 [리틀 포레스트]로 첫 주연 맡아…올 하반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이병헌과 호흡 맞출 예정

충무로에서 ‘괴물 신인’이 떴다. 2016년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아가씨](감독 박찬욱)로 데뷔한 이래 지난해 [1987](감독 장준환)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김태리다. 평단에선 “또래에선 찾아볼 수 없는 연기 아우라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호평에 대해 “정답은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그의 성숙한 대답에서 더 빛나는 그의 미래를 보았다.


▎김태리는 2월 28일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기자와 만난 김태리는 큰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뜬 채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라고 물으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가족들 생각은 안 해요?”

87학번 대학생 ‘연희’(김태리 분)가 선배 ‘이한열’(강동원 분)에게 묻는다. 2017년 12월 개봉해 누적관객 수 723만 명을 기록한 영화 [1987]의 한 장면이다. 극중에서 연희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으며 검문소 옆을 지나는 장면에서 보듯 시대 상황에 무심한 모습을 보인다. 연희를 광장으로 이끈 건 선배 이한열의 죽음이다. 시위 군중 한가운데서 버스 지붕 위에 오른 연희가 주먹 쥔 손을 들어 구호를 외치던 뒷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연희가 품은 감정은 무관심이 아닌 분노였다. 노동조합 운동을 하던 아버지는 동료의 배신으로 좌절한 채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며 세상을 향한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이한열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문을 열어젖힌 연희는 그대로 광장까지 무섭도록 치닫는다.

김태리(27)는 자신이 연기한 연희와 똑 닮았다. 함부로 휘둘리지 않지만 한번 마음을 정하면 돌진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김태리는 대학 1학년 때 우연찮게 연기 동아리에 가입한 뒤로 연기 한길만을 향해 분주하게 달려왔다. 아무런 인연 없이 찾아간 극단에서 3년 동안 무명 생활을 거친 끝에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지난해 장준환 감독의 [1987]로 본인의 흥행 기록을 경신하더니 3개월 만에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첫 원톱 주연을 꿰찼다. 지난 2월 28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잠시 한숨을 돌릴 법도 한데 오는 7월부터 방영되는 김은숙 작가의 신작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주연으로 발탁돼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태리의 연기 곳곳에선 진정성이 묻어난다. 장준환 감독은 “김태리는 촬영 내내 ‘진짜 감정’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어떤 기교나 테크닉을 써서 대충 넘어가려고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김태리 스스로도 “감정 신을 촬영하면서 쉽사리 ‘진짜’(감정)에 도달하지 못할 때가 가장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데뷔한 지 1년 반 만에 최고 자리에 오른 과정이 ‘신데렐라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 이유다.

2월 23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김태리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태리가 기자에게 먼저 질문했다. “영화 보셨어요? 어땠나요?” 잡티 없이 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자의 답을 기다렸다. 인터뷰 3일 전인 2월 20일 시사회가 열렸던 참이다. 첫 주연 작품 개봉을 앞둔 김태리의 목소리에 설렘과 호기심이 함께 묻어났다. “[아가씨]에 나왔던 그 김태리 맞아요?”라고 반문했다.

“대학로로 향하는 길마저 행복했어요”


▎영화 [1987]에서 ‘연희’(김태리 분)가 삼촌인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분)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희는 극중 인물 가운데 가장 극적인 감정 변화를 보여준다./ 사진제공·CJ E&M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박찬욱 감독에게 발탁된 신데렐라,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행운아. 2016년 영화 [아가씨]가 화제를 모았던 당시 김태리에게 따라붙던 수식어다. 그러나 김태리는 또래 가운데선 드물게 ‘바닥’부터 올라온 배우다. 대학 연극 동아리에서 4년, 극단 단원으로 3년을 보내며 스스로를 담금질했다.

김태리는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1학년 때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다. 막연히 아나운서를 꿈꾸다가 빡빡한 대학 커리큘럼에 지레 겁을 먹고 꿈을 접은 참이었다. “2학년 방학 내내 동아리방에서 알음알음 무대를 만들었는데 평생 직업으로 가져도 후회가 없겠단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어요.”

졸업을 한 학기 앞둔 2011년, 무작정 대학로로 찾아갔다. 극단 ‘이루’에서 조명·음향 등 스태프로 1년간 ‘잡일’을 하다 정식 단원이 됐다. 당시 김태리는 주연배우에게 문제가 생기면 대신 투입되는 배우, 일명 ‘언더스터디’였다. 사실상 무대에 오를 일이 없었다.

소극장 무대에 처음 오른 건 2012년 9월 상연(上演)된 모노드라마 [넙쭉이]에서다. 소아암에 걸린 자폐아가 죽어가면서 세상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어느 날 연습실에서 주연배우 강애심(54)씨의 권유로 대타로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었다. 손기호 연출은 “무심코 대타 연기를 시켰는데 때묻지 않은 연기에 깜짝 놀랐다. 내 작품인데도 그날 연극을 보고 울었다”고 회상했다. 손 연출은 “연륜 있는 배우가 홀로 무대를 끌어가는 모노드라마의 특성상 20대 신인 배우가 캐스팅된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연극 무대에서 다시 스크린에 진출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다고 말한다. “단역배우도 어렵거니와 스타가 될 가능성은 1만분의 1의 확률도 안 된다”는 게 연극계 관계자의 말이다. 20대에 갓 연기를 시작한 늦깎이 여배우 앞에 놓인 벽은 말할 것도 없다. 높은 벽에 맞설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걸까?

김태리는 “용기가 아니라 천진난만함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시대의 어느 청춘보다 백지 상태였던 것 같아요. 경제관념도 없었고요.(웃음) 돈 없으면 어때, 재밌는 일을 하면 되지! 돈이 없으면 걸어가면 되지. 연극할 때는 생각이 ‘화 하다’고 해야 하나? (극단이 있는) 대학로 가는 길마저도 행복했을 정도니까요.”

이후 김태리는 서너 편의 CF와 독립·단편 영화에 출연했다. 틈틈이 오디션을 봤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아가씨] 오디션에 참가했다. ‘될 거란 기대를 안 했던 탓에 긴장하지 않고 담담한’ 마음으로 임했던 오디션에서 박찬욱 감독은 그 담담함을 높이 샀다고 한다. “어려워하지 않고 할 말 다할 줄 알아야 큰 배우들 틈에서 제 몫을 해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올드보이]의 강혜정을 처음 봤을 때 느낌과 무척 비슷했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틀에 박힌 연기를 하지 않겠단 고집이 있고, 차분하고 침착했다”며 김태리를 평가했다.

영화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 분), 그리고 백작에게 고용돼 아가씨의 하녀로 들어온 소녀 ‘남숙희’(김태리 분)를 둘러싼 이야기다. 히데코가 사기꾼 백작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하녀가 된 숙희는 점차 히데코와 사랑에 빠진다.

박찬욱 감독은 주연배우 캐스팅 당시 ‘강도 높은 노출 연기를 해야 하며 수위는 타협 불가’라는 조건을 내걸어 화제가 됐다. 김민희와 김태리의 동성애 정사 장면이 그 결과물이다. “[아가씨] 하고 연기를 그만둘 것도 아니고 제 연기가 굳혀질 것도 아닐 거잖아요. 이런 역할 저런 역할도 만나면서 나아갈 텐데 크게 지나간 배역에 마음 쓰진 않아요.”

'리틀 포레스트', 넘어짐에 대한 영화


▎2016년 5월 당시 영화 [아가씨]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김태리가 팬의 ‘셀카’ 촬영에 응하고 있다.
김태리가 [아가씨] 이후 선택한 작품은 [리틀 포레스트]다. 일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서울에 살던 취업준비생 ‘혜원’(김태리 분)이 고향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사계절을 보내면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았다. 취업도, 연애도, 시험도 마음처럼 해낼 수 없었던 청춘들이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며 ‘힐링’ 받는 모습을 그려냈다.

혜원은 눈으로 뒤덮인 배춧잎과 봄에 나는 쑥, 뙤약볕에 빨갛게 익은 토마토 등 부지런히 재료를 마련해 음식을 해 먹는다. [아가씨]가 두터운 질감을 가진 유화(油畵)라면 [리틀 포레스트]는 여백 가득한 수묵화의 느낌을 준다. 차기작으로 소박한 영화를 선택한 것에 걱정은 없었을까. “딱히 ‘이 장르를 선택해야 돼’ 하는 전략은 없었어요. 만화 원작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선택했죠. 인간의 삶보다 자연의 순리를 중심에 두고 그려져 있었어요.”

청년 열 명 중 한 명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시절이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만 26만 명이다. 시험에 낙방하고 취업에 실패하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동시에 대다수 청년이 겪는 ‘시대적 고통’이기도 하다. 그래서 혜원의 귀향을 그린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아가씨]나 [1987]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시대극’으로 읽힌다.

혜원이 돌파구로 고향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태리는 “이곳만큼은 ‘후퇴하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도시에서 혜원은 몰아붙여졌던 것 같아요. 안정적인 수입을 꿈꾸며 매일 불안하고 외로운 삶을 이어갔죠. 그런데 시골에선 토마토가 설익어도 실패가 아니거든요. 혜원은 성공도 실패도 없이 묵묵히 흐르는 일상을 바라는 게 아니었을까 해요.”

영화는 고향에서 사계절을 보내고 상경했던 혜원이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자칫 ‘도시와 시골을 이분법적으로 본다’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치열한 ‘생활(生活)’이 이뤄지는 시골을 도시의 상처를 치유받는 ‘한가 한’ 장소로만 바라보는 건 아닐까. 김태리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풀어놨다.

“저는 이렇게 해석했어요. ‘우리 영화에서 내린 답은 없다. 혜원에게도 평생의 답은 아니다.’ 제가 혜원을 통해 공감됐으면 하는 바는 우리 인생에서 잘 걸어가다가 고꾸라지는 시기가 오고, 그래도 다시 추스르고 걸어가야 한다는 거죠. 각자의 방법으로 다시 일어서기 마련이고 혜원은 여러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넘어짐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닌가 생각해요.”

영화에 사계절을 담다 보니 네 번의 크랭크인(촬영 개시)과 크랭크업(촬영 종료)을 거쳤다. 계절마다 3주씩 촬영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촬영을 시작한 [1987]보다도 개봉 시기가 늦어졌다. 김태리는 “이제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싶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긴 생머리를 1년 동안 유지해야 했거든요. 짧게 자르고 빨간색이나 초록색으로 염색해보고 싶어요.(웃음)”

“배우 김태리와 인간 김태리 사이에서 고민도”


▎2월 1일 열린 영화 [리틀 포레스트] 제작 보고회에 배우 김태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독특한 촬영 일정 탓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김태리는 [1987]과 [리틀 포레스트] 사이에서 감정선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1987]과 [리틀 포레스트] 촬영 기간이 겹쳤어요. [1987]에서는 감정을 쏟아내야 하는데, 역으로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최대한 덜어내야 했거든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사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처럼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어요. 끝까지 버텨낸 게 지금 생각해보면 ‘너 이건 되게 잘했다’ 싶어요.”

마냥 단단할 것 같은 김태리도 인터뷰 중간에 불안한 마음을 비쳤다. ‘극중 혜원처럼 떠나고 싶을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일할 때, 지금 이 순간~”이라며 진심이 묻어난 농담을 던졌다. “저는 혜원과는 다르게 독립심이 강하다고 자평해요. 제가 고민해서 내린 선택에 당당했어요. 그런데 요즘 들어 ‘정말 이 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어요.”

무작정 시작한 극단 생활도 행복했다던 김태리다. 무슨 고민일까. 김태리는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부담감이 커졌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제가 속한 곳의 굴러가는 구조를 알고 제 삶에 반복적으로 박힐 때 ‘아, 이제 쉬어볼까’란 마음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연극할 때도 그랬고요. 그런데 요즘은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으로 하나씩 알아가는 느낌이에요.”


▎김태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배우다. “매 순간 갇힌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는 말에서 연기를 대하는 진지함이 묻어났다.
1년 반 만에 또래 배우들이 따라가기 힘든 필모그래피를 적어 나갔다. 칸 영화제 진출부터 첫 원톱 주연에다 안방극장의 데뷔작인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주연을 따냈다. 당장 이번 [리틀 포레스트]에서 김태리는 처음으로 흥행 부담을 느끼고 있는 참이다. “정말 흥행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진 ‘좋은 영화라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지만 이 영화는 무너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부담스러워요.”

대중의 기대가 높아지는 것도 부담이다. 김태리는 “팬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할까 고민이 많이 된다”고 털어놨다. “팬 분들이 상상하는 ‘김태리’가 있어요. 그러나 그 ‘김태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간 김태리를 대변할 순 없는 거죠. 제 솔직한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소통이 필요한가 싶어요. 요즘 좀 고민되는 지점이에요. 배우 김태리와 인간 김태리를 얼마나 분리하고 융합시켜야 할까요?”

조서윤 YG엔터테인먼트 콘텐츠 2본부장은 [포브스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김태리에게서 포스트 전지현의 느낌이 강하게 난다”고 말했다. 조 본부장은 또 “매력적인 외모와 탁월한 연기력을 갖췄다”며 “주관과 가치관이 뚜렷해 지적인 매력까지 겸비하고 있다”고 호평했다. 평가를 전해 들은 김태리는 부끄러운 듯 ‘와하하’ 웃어 보였다. “정말요? 전지현 선배 너무 좋아하는데 감사드려요!”

그러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깊게 생각하면 부담이 되고 일에 지장이 생기더라고요.” 짓궂은 질문을 던져봤다. ‘주변에서 너무 칭찬만 하는 건 아닐까요?’ 김태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경계하기 이전에 성격 자체가 붕 뜨지는 않는 것 같아요. 칭찬을 받으면 좋죠. 그러나 정답이 아닌 거예요, 칭찬도. 그 사람의 취향이죠. 절대적인 것은 아닌 거예요. 거기에 방방 뜰 이유도 없죠.”

“칭찬 감사하지만 깊게 생각하진 않으려고 해요”


▎김태리는 “[아가씨]만 하고 연기를 그만둘 것도 아니고 제 연기가 굳혀질 것도 아닐 거잖아요”라고 답했다. 김태리다운 당찬 답변이다. / 사진제공·전소윤(STUDIO766)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태도는 김태리의 연기론과도 맞닿아 있다. “생각이 많으면 연기가 어려워지더라고요. 한 장면에 이것저것 담으려 하다 보니 연기가 과장되게 나오는 거죠. 순간에만 집중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어떻게 가능할까. “생각을 신선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려고 한다거나 고민을 전복해서 생각해보는 거죠. 그렇게 해서 매 순간 갇힌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나가는 와중에도 자기중심을 지켜내는 비결로 들렸다.

김태리의 안방 데뷔작인 tvN [미스터 션샤인]은 오는 7월 첫 방영을 한다. [시크릿 가든] [태양의 후예] [도깨비]를 잇따라 흥행시킨 김은숙 작가의 차기작이다. 신미양요(1871년) 때 군함에 승선했다가 미국에 간 한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선으로 돌아와 근무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다. 이병헌이 노비 출신이자 미 해병대 장교 ‘유진 초이(Eugene Choi)’ 역을, 김태리가 사대부 가문의 영애 ‘고애신’ 역을 맡는다.

2월 15일 [미스터 션샤인] 트레일러 영상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김태리는 ‘사대부가 영애’라는 배역이 무색하게 누더기 옷을 입고 소총을 다루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김은숙 작가는 앞서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세상이 변하고 있다”며 “차기작에서는 남자에게 기대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을 그려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극중 김태리의 역할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미스터 션샤인] 촬영은 1월 말경 시작됐다. 시대극인 관계로 모든 촬영이 지방에서 진행된다. “하루는 충청도에서 찍고 하루는 경상도에서 찍는 통에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라고 했다. 2월 28일 개봉하는 [리틀 포레스트] 홍보 일정과 겹치면서 지방 촬영 일정 틈틈이 서울에 올라와 영화 홍보에도 참여하는 게 최근 김태리의 일상이다.

‘지치지 않냐’는 질문에 김태리는 “아뇨~! 다시 시작하는 기분인 걸요”라고 당차게 말했다. “대선배님들 사이에서 촬영하다 보니 신인배우로 다시 돌아가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너무 설레요!”

- 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804호 (2018.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