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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신한국책략' 김우상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의 대화 진정성··· 문재인 정부 역할에 달렸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통치자금 마른 김정은의 대화 제안, 핵 위기 풀어낼 절호 기회…‘중견국’ 공조 강화로 강대국 중심의 한반도 외교 다변화해야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변곡점에 이르렀다. 북한의 태도 변화의 수준과 속도는 전례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파격은 곧 북한이 그만큼 다급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기회의 도착점은 두 갈래다. 결실로 이어지거나 과거로 회귀(回歸)다. 운전대는 한국의 손에 쥐어졌다. [신한국책략 4.0]의 저자 김우상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게 급변하는 북핵 시대의 한반도 전략에 대해 물었다.


▎김우상 연세대 교수는 “북핵위기 25년 만에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강조했다. 3월 8일 연세대 사회과학대학 내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
"강력한 대북제재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섣불리 제재를 풀어줘서는 안 된다.”

김우상 교수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회담 성사로 가시화된 김정은의 전격적인 대화카드에 대해서 이렇게 조언했다. 그는 미국 로체스터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30년간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연구해왔다. 2008년에는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안보통일분과 상임자문위원으로 이명박 정부의 외교전략 설계에도 참여했다. 그 후 2011년까지 3년 동안 주(駐)호주 대사를 지냈다.

김 교수가 지난해 말에 펴낸 [신한국책략 4.0](세창출판사)이 최근 남북대화 국면에서 새삼 주목을 끈다. 이 책에서 그는 선출인단이론과 게임이론을 통해 분석한 북한 김정은 정권의 성격을 토대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대북 정책을 제안한다.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는 김 교수의 분석과 전망한 대로 이뤄졌다. 비록 문재인 정부와 정치적인 코드는 다르지만 김 교수의 분석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김 교수와 인터뷰한 날, 우리 정부의 대북 특사단이 방북 결과를 백악관에 설명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했다. 이튿날(한국시간 3월 9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 의지를 밝혔다. 4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5월 미·북 정상회담이 모두 성사된다면 한반도는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대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김 교수는 “25년 만에 처음 온 절호의 기회”라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과거 1, 2차 남북 정상회담은 한국이 북한을 달래가며 응답을 얻어낸 것이지만 이번엔 북한이 스스로 나섰다는 점에서 다르다. 설사 김정은의 속내가 ‘시간 끌기’라 해도 지금은 기회를 살리는 데 국력을 집중해야 한다.”

25년 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


▎김 교수는 북핵으로 인한 한반도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전략을 [신한국책략 4.0]과 [중견국 책략]에서 소개했다.
김정은이 대화에 나선 의도가 무엇일까?

“치밀한 계산과 분석에 따라 나온 것이라고 본다. 내가 김정은 위원장이라고 가정해 보겠다. 통치자금은 말라가고 경제제재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곧 있을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해 무력 대응을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하지만 사소한 도발이라도 했다간 미국의 군사적 대응이 현실화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레짐 체인지(정권교체)’다. 남은 선택은 뭔가? 결국 대화뿐이다.”

[신한국책략 4.0]에서 김 교수는 국제관계에 통용되는 전략적 이론들, 즉 게임이론, 전쟁억지이론, 핵확산이론, 군비경쟁이론, 동맹이론 등을 소개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김 교수는 “이론에 근거해 상대를 분석해야 감정적 오판의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을 대화국면으로 이끌게 한 근거가 되는 선출인단 이론이란 무엇인가?

“핵심 선출인단은 정권 쟁취에 꼭 필요한 핵심 지지세력을 지칭한다. 핵심 선출인단 수가 적은 권위주의 국가의 지도자는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지지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고자 할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더 많은 보상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하면 그를 새로운 지도자로 지지할 수도 있지만 새 지도자가 등장했을 때 내가 가진 기득권을 잃을 가능성이 훨씬 높거나, 지금까지 받은 대우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면 어떻게든 현재 지도자를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 출범 초기에만 해도 곧 스스로 붕괴될 거라는 전망이 주류를 이뤘지만 여전히 건재하고 있지 않나? 애초에 실현 가능성이 없는 감상에 불과했다. 이미 [신한국책략]에서 김정은 정권 붕괴론의 허구를 지적한 바 있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가 효과를 보았다고 판단하나?

“지지자들에게 특권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려면 통치자금이 반드시 필요하다. 독재국가를 압박할 수 있는 최고 수단은 통치자금을 끊는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대북 경제제재 강도를 높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정은도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해보고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상수(上手)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근거가 뭔가?

“게임이론이다. 유엔 안보리의 경제제재로 통치자금이 말라간다. 미국은 군사옵션까지 거론하며 더 강경한 태도다. 4월에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예고돼 있다. 한미 연합훈련이 실행되면 북한 내 지지파 결속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무력 도발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사소한 도발도 실전으로 이어질 위험이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전쟁이 벌어지면 미국과 남한에 피해를 입힐 수는 있겠지만 정권이 유지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정은이 대화를 통해 시간을 벌려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럴 수도 있다. 정상회담과 후속조치 협상으로 시간을 끌면서 핵탄두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을 계속 진행하다 충분한 핵무기가 확보되면 그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이런 걸 노릴 수도 있다. 다만 북한이 딴마음을 먹고 대화에 나섰더라도 진심이 되게끔 협상을 이끌어야 하는 게 앞으로 우리의 역할이다.”

‘통치자금줄 끊기’가 김정은 정권 최고 위협됐을 것

남북, 북·미 회담을 성사하는 데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에 동의하나?

“우리나라가 ‘매치메이킹(중매)’을 잘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중요하다. 북·미 대화 진전 상황에 따라 미국과 보조를 잘 맞춰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한미 공조를 튼튼히 해야 한다.”

김 교수는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역외균형론’을 우려했다. [신한국책략]에서 그는 한·미 관계는 약소국과 강대국 간의 ‘비대칭 동맹’이자 공통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균형 동맹’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역외균형론은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빼내 인근 지역으로 옮기자는 주장이다. 지역의 문제는 해당 지역 당사국이 일차적으로 책임지고 미국은 후방에서 지원사격 역할을 한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국무장관을 지낸 원로 전략가 헨리 키신저를 비롯해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 등이 이 주장을 지지한다.

미국이 실제 주한미군을 빼낼 수 있다는 뜻인가?

“냉정한 말이지만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 평화는 그리 중요치 않을 수 있다. 미국이 그리는 동북아시아 패권 구도에서 한반도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해야 하니 한반도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미군이 직접 피 흘리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역외균형론자 입장에선 주한미군을 뒤로 물리더라도 중국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앞으로 대화 국면에서 한미 간 입장차가 갈등으로 번질 경우 역외균형론이 힘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김정은이 원하는 바가 될 수도 있고, 그런 이간질을 시도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미국은 대북 경제 제재 유지에 확고한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압박 조치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만든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한이 진정성을 갖도록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핵은 북한의 최후 카드다. 한순간에 포기할 수는 없을 테고 단계적으로 갈 거다. 그때 우리는 미국의 입장 이상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인을 분명히 줘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이번에도 장난치면 큰일 나겠다. 핵 포기 대신 안전을 보장받자’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거다.”

우리 정부로선 과거 1, 2차 남북 정상회담 이상의 성과를 얻기 위해 북한에 일정부분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점이다. 북한은 1993년부터 25년간 대화와 도발을 반복하면서 자기들 의지대로 정세를 끌어왔다. 비상한 전략적 마인드를 갖지 않고는 이렇게 못한다. 우리도 냉철한 전략적 사고로 맞서지 않으면 앞으로 협상에서 주도권을 쥘 수가 없다. 한미 간 균열이 생길 때마다 북한은 게임이론에 따라 그걸 이용해 전략적 우위에 섰다. 단기간의 성과를 내려는 욕심 때문에 한·미 공조에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 우리가 가져야 할 대원칙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권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대전략이 필요하다. 진보든 보수든 한국 국민이라면 선뜻 동의하고, 정치권도 초당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원칙이 바로 대전략이다. 2016년에 펴낸 [중견국 책략]에서 내가 제시한 적이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한미동맹에 입각한 국가 안보’, ‘자유무역에 입각한 경제적 국익 추구’ 등이다. 이 대전략을 근거로 안보와 경제통상 문제에서 항상 예측가능한 입장을 일관성 있게 취해 나가야 한다.”

“외교 자산 분산 위해 아·태 지역 중견국 외교 강화해야”

영구 집권 체제를 완성한 중국 입장에선 미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질서 재편 움직임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하다. 일본도 ‘저팬 패싱’을 우려하고 있지 않나?

“한반도 문제에는 강대국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물론 중요하지만 중국·러시아·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의 협조도 반드시 필요하다. 권력 기반을 확고히 다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국민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경제성장 등 내치에 더 집중할 가능성이 더 크다. 북한이 더 이상 돌발행동을 하지 않고 미국과 갈등이 더 심각해지지 않는 게 중국이 바라는 일일 수 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에 대해 대북제재에 동참함으로써 북한이 대화에 나서도록 기여한 것을 인정해줘야 한다.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이들이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촉진자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다자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한반도 문제를 당사자인 한국이 주도해서 풀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 중견국이 ‘균형외교론’을 표방하는 것은 무리다. 강대국 사이의 힘의 논리를 상대적 약소국이 조정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겠나? 자칫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힘의 논리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균형외교를 표방하면서 결국 미국과도 삐걱거리고, 중국과도 어색하게 됐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외교 방향은 무엇일까?

“바로 ‘중견국 책략’이다. 이 책략의 핵심은 ‘소(小) 다자체제’다. 지나치게 많은 국가가 테이블에 모이면 의견을 모으기도 힘들고, 형식적인 테이블에 그쳐 영향력도 크지 않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견국들을 5~6개국 미만으로 소그룹화해 동북아 평화나 통상 등 국제 질서에 한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에 집중된 외교 자산을 분산 투자하는 개념이다. 중견국 책략의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은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다만 경제통상문제에 머물 게 아니라 안보까지 의제를 확장해야 한다. 동맹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중국이나 아시아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미국은 하나로 모아진 중견국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 교수의 이 같은 분석과 제언은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을 정리한 ‘책략’ 시리즈에 담겨 있다. 그의 책략 시리즈는 1880년 일본에 파견된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이 김홍집에게 준 정세분석 보고서 [조선책략]의 21세기 버전이다. [조선책략]은 ‘친청(親淸), 결일(結日), 연미(聯美)’ 노선을 제안했다. 이는 ‘위정척사-개화’ 논쟁의 도화선이 됐다.

'조선책략'과 비교해 볼 때 21세기 한국에 필요한 외교적 책략은 무엇이라고 보나?

“[조선책략]이 나온 지 130년이 지났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열강들의 틈에서 끝없이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할 처지다. [조선책략]의 제안을 빌리자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미국과 결합하고(結美), 중국과 화합하며(和中), 다자 중견국들과 연계해야 한다(聯多)’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신한국 책략’이라고 부르고 싶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ins.com

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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