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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4)] 핵포기 대가로 北 경제지원 얻어낼까 

유명무실한 20개 경제특구 대미 관계 정상화 없인 활성화 불가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김정은 2년 연속 신년사에서 ‘경제발전’ 강조… 특구 활성화로 편향된 중국 의존도 탈피도 중요

▎북한 당국은 2016년 김정은 위원장의 고향으로 알려진 원산시 일대를 대대적으로 개발해 국제관광도시로 만드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규모 해외 자본을 끌어들일 계획이었으나 강도 높은 대북제재 국면이 이어지면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원산시 전경.
남북,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지금 또 하나의 관심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상정하고 있는 노림수는 무엇일까 하는 부분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북미 간 평화협정과 수교를 통해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받는 일이다. 이를 통해 북한도 70년 동안의 고립을 벗어나 이제는 어엿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정상국가로서의 대우를 받는 것을 상정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핵 포기 의지가 시간 벌기용 기만 전술이 아닌 진정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히 확인되면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국제사회는 다음 단계로 북한의 요구 사항을 듣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요구사항은 다름 아닌 북한 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보장받는 것이다.

핵 무력의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가장 큰 과제는 바로 북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의 세 번째 해인 올해 경제전선 전반에서 활성화의 돌파구를 열어제껴야 하겠습니다.” 지난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의 한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도 “올해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에서 관건적 의의를 가지는 중요한 해”라며 경제 부분을 언급한 바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경제적 자립’과 ‘인민 생활 개선’을 특별히 강조했다.

2018년은 북한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9월 9일)이다. 또 김정은이 집권 이후 강조해 온 핵·경제 병진노선 5주년(3월 31일)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북한은 지난 2015년 열린 당 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했다. 2016∼2020년까지 5년간의 북한 경제발전 로드맵이다. 하지만 핵무기와 ICBM의 고도화가 진행될수록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역시 그 강도가 높아져 당초 목표로 한 경제적 성취는 거의 이루지 못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말 경제적 성과를 과시하려던 ‘만리마선구자대회’를 군사적 선전과 정치적 선전인 ‘8차 군수공업대회’와 ‘세포위원장대회’로 대체한 것도 이런 속사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북 제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핵·경제 병진 노선 추진이 불가능해졌다고 판단한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전략적 결단 차원에서 비핵화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보기로 마음먹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북제재로 야심 찬 원산 개발계획도 좌절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 위원장이 북미 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한을 개혁·개방의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를 좋게 만들면, 이른바 3대 세습이 정당화되고 앞으로 자신의 국내 정치적 위상이 올라간다”며 “북·미간 수교만 되면 개방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형편이 좋아지면 북한은 그게 누구 덕이냐고 선전할 것이다. 김정은의 은공(恩功)이 되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하는 쪽으로 나가기 시작하면 지금 돌아가는 대북 제재가 유보될 가능성이 있다. 이왕 제재가 완화되면 (북한) 밖에서 물건을 들여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 월드뱅크나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대규모 장기차관도 들여올 수도 있을 것이다. 물자와 돈이 돌게 되면 이를 통해 북한 내 경제특구들이 제대로 돌아가게 되고 김정은은 주민들로부터 김일성 이상의 ‘훌륭한 지도자’로 칭송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

그동안 북한의 경제특구는 간판만 걸려 있지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고 한다. 특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기술과 자본을 들여와야 하는데 이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20여 곳의 경제특구가 있다. 북한은 1991년 무역·금융·관광 기지를 목표로 나선지구를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설정했지만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다시 나선경제특구 활성화를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북한은 2015년 나선경제특구에서 합작·합영 형태의 국외투자를 받고, 외국 자본의 자유로운 경영활동과 이윤을 보장하기로 재차 관련 계획을 세우고 추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성과를 전혀 내지 못했다.

신의주 특구 좌절로 지나친 중국 의존 탈피 목적도

가장 최근인 2016년에는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투자제안서를 보면 원산시 일대를 상업·관광·문화 교류의 중심지이자 무역 및 금융거래 중심지로 개발한다는 계획이었다. 총 부지 면적은 30만㎢, 총 투자 비용은 미화 1억9656만 달러(약 2196억 원)다. 대규모 투자 유치를 통해 원산시 중심부에는 임대주택 10동과 3성급 호텔, 국제금융청사, 백화점, 실내체육관, 세계요리식당 등 10여 개의 건물이 건설된다고 밝혔다. 또 주변에는 초호화급 5성 호텔인 원산호텔과 금융종합청사, 사무종합청사, 과학연구종합청사, 국제전람장, 도서관 등이 건설될 예정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역시 계획만 발표됐을 뿐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대미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특구를 활성화하려는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친 중국 의존도를 벗어나려는 목적도 있다고 한다. 북한이 2004년 신의주에 자본주의 특구를 만든다고 하면서 중국 사업가 양빈을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으로 임명하자 중국은 양빈을 전격 체포해 실패한 경험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당시의 뼈아픈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을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에 집착하면서 교역과 투자를 중국에 의존한 것은 일종의 전략이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남북관계 개선 속도에 따라 한국도 계산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 외에도 에너지 문제를 비롯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에서 북한의 계산서가 날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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