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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분석] ‘보수간판’ 홍준표(자유한국당 대표) 리더십의 리스크 

촌철살인인가, 정치욕망의 배설인가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보수층, 막말 논란에다 일방적 당 운영하는 홍준표 대표에게 피로감… 인재 충원구조 망가진 한국당은 ‘홍’ 리더십 대체할 인물군(群) 못 길러내

▎3월 3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사회주의 개헌저지 투쟁본부 위원장 임명식 수여식’에 참석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중앙당사 4층에 자리한 여의도연구원 휴게실 벽면을 장식하는 글귀다. 영한사전에도 나오는 오래된 명언이다. 우리말로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쯤으로 이해된다. 미국의 과학자 겸 발명가인 앨런 케이(Alan kay)의 유명한 경구다.

원래 당사 인근의 빌딩에 더부살이를 하던 자유한국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은 지난해 5월 대선을 앞두고 당 슬림화 차원에서 중앙당사로 둥지를 옮겼다. 내부 인테리어와 바닥재 교체 등 리모델링을 통해 여느 정당 사무실과는 사뭇 다른 세련미와 운치를 자아낸다. 4층 한가운데 ‘Cafe’라는 이름을 단 휴게실의 투명 유리 출입문에는 영국의 전설적 밴드인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Imagine)’의 노랫말이 세로로 흘러내린다. 맞은편 유리문에도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 방문객의 시심(詩心)을 자극한다.

여의도연구원 휴게실 내부에 아로새긴 메시지의 압권은 ‘변화의 주체는 바로 자신’이라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명언이라 하겠다.

‘Change will not come if we wait for some other person or some other time. We are the ones we’ve been waiting for. We are the change that we seek(다른 사람이 가져오는 변화나 더 좋은 시기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끝내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들이다.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가 찾던 변화다).’ 여의도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이런 글귀들이 “정책 정당을 지향하는 자유한국당 싱크탱크의 자유로운 영혼과 도전의식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자유한국당의 내부는 이처럼 스마트하면서도 서정적이다. 그런데 외부에 비치는 자유한국당의 이미지는 정반대로 흐른다. 외골수인데다 완고하고 일방적이다. 그 선두에 홍준표 당 대표가 있고 당의 두뇌집단인 여의도연구원은 석연치 않은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

4월 5일 자유한국당사에서 있었던 기자간담회도 그런 경우다. 홍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6월 지방선거 관련 판세를 설명했다. 대구·경북, 울산, 경남, 대전에서 자유한국당이 우세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부산과 충남은 박빙이고, 최대 승부처인 서울 판세에 대해서는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양강구도로 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홍 대표는 “광역단체장 6석을 지키지 못하면 (당 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언했다.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자체 여론조사를 근거로 이 같은 판세 해석이 나왔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洪, 서울시장 선거는 ‘양강구도’?


▎자유한국당 4층에 자리한 여의도연구원 휴게실 전경. 미국의 과학자 앨런 케이의 경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의 판세 분석은 시중의 여론조사기관의 데이터와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다.

이즈음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4월 3~5일)에서 더불어민주당 정당 지지율은 49%에 이른 데 반해 자유한국당 정당 지지율은 13%에 그쳤다. 서울의 경우 51%대 14%로 전국 평균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대전·세종·충청도 더불어민주당 42% 대 자유한국당 7%로 여당이 훌쩍 앞서 나갔다.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에서만 30%대 27%로 오차범위 내 우위를 점했을 뿐 부산·경남·울산에서도 18%대 44%로 민주당에 크게 밀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리얼미터 4월 첫째 주(4월 2~6일) 전국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도 민주당이 51.1%로 50%대 초·중반의 강세를 이어갔고, 한국당은 20.8%의 지지를 얻는 데 머물렀다. 서울의 경우 민주당이 53%, 자유한국당이 16.9%를 기록했고, 대전·세종·충청에서도 49%대 21.4%로 민주당이 자유한국당에 더블스코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한국당의 서울 시장 선거 승리는 기적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홍 대표는 이런 격차를 인정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외부 기관의 조사 결과를 배격할 뿐만 아니라 때론 과민반응마저 보인다. 그는 지난 2월 26일 자유한국당의 정당 지지율이 10%대에 머무는 통계에 대해 ‘엉터리 여론조사’라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특정 여론조사기관을 겨냥, “한국당 지지율은 몇 달 동안 10% 초반인 반면 민주당은 48%라는 것”이라며 “이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는 그대로 참고하지 않고 그 수치를 최소한 두 배 반 이상을 곱해서 참고한다”고 쏘아붙였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거짓선전과 관제 여론조사로 국민을 기만하고 현혹한다”(3월 18일 개인 페이스북)고 외부 여론조사기관에 극도의 불신감을 나타냈다. 여의도연구원의 여론조사 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응답을 꺼려하는 보수층이 일부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홍 대표처럼 여론조사 결과 그 자체를 완전 무시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며 고개를 갸웃한다.

권순정 리얼미터 조사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높고 정국 주도권도 여권이 장악한 현실에 주목한다. 그래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본다. 여론조사 과정에 이른바 ‘침묵의 나선 효과’가 개입한다는 전제에서다. ‘침묵의 나선 효과’란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이 다수와 일치하면 그에 적극 동조하지만 아닐 경우 침묵하는 경향을 말한다. 정당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지지율이 극히 낮을 경우 응답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 주요 현안인 남북 관계나 개헌에 대한 국민 다수의 태도는 정부여당의 입장에 더 가까이 가 있다. 따라서 ‘샤이(shy: 지지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한국당 지지층’이 여론조사를 회피할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권 실장은 말했다.

그렇다고 시중의 여론조사 결과를 깡그리 무시하면서 완전히 잘못됐다고 치부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권 실장은 덧붙인다. “홍 대표의 발언은 정국의 중심추가 여당으로 완전히 기운 마당에 보수표라도 확보하려는 어쩔 수 없는 선거 전략의 일환일 수도 있다. 그래도 여론조사 자체를 엉터리라고 몰아붙이는 건 무리가 따른다.”

기죽지 않겠다는 결기가 지방선거 망칠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4월 9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김기식 금감원장 사퇴 촉구 등 정부의 인사 난맥상을 규탄했다.
국내 여론조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홍 대표의 여론조사 대응을 보면서 과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시절의 ‘숨어 있는 1인치’ 주장을 떠올린다고 했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진영은 노무현 민주당 후보 진영에 줄곧 밀리면서도 ‘숨어 있는 5%’가 있다며 역전을 장담했다. 당시 유행했던 TV광고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라’에 빗댄 것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투표 결과는 여론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2.3%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이 관계자는 “홍 대표는 현실을 좀 더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정당의 리더가 인정하기 싫다고 해서 존재하는 현실을 거짓이라고 부정하다가는 선거에서 큰 낭패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대표의 자족적 논리 전개가 지방선거 득표 전략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자유한국당은 ‘샤이 보수층’이 여론조사를 거부하다가 선거 당일 투표장으로 몰려가 일순간 결집하는 시나리오를 꿈꾼다. 여론조사 방법론의 전문가인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샤이 보수층’이나 ‘숨어 있는 1인치 보수층’이 현실에 존재한다고 해도 이들이 한 표를 행사한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투표에 대한 효능감을 잃어버린 탓에 여론조사뿐 아니라 실제 투표에도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박 교수의 진단이다. “이렇게 응답하나 저렇게 응답하나 자신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여론조사에서 투표로까지 이어지면 선거 당일 기권하기 십상이다. 자유한국당이 이런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반전의 희망을 걸어서는 곤란하다.”

‘시중 여론조사는 거짓말’이라는 홍 대표의 언명은 내면의 의사 내지 신념과 일치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기죽지 않겠다는 결기의 분출일까? 정치권 안팎에서는 홍 대표가 아닌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현실에서 답을 찾기도 한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진보 진영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거를 치러야 하는 보수정당 입장에서는 그런 정치적 제스처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이해했다. 비록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로비성 외유 논란 등 야당에 뜻밖의 호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구도는 자유한국당에 불리하다. 더불어민주당도 지금의 자유한국당 같은 처지로 내몰린다면 그런 억지 주장이라도 펴는 게 정치의 속성이라고 임 교수는 해석한다.

홍 대표는 3월 28일 KBS를 통해 방송된 지방선거 정강정책 방송 연설에서 정치·외교·경제 등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홍 대표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지방선거에 이용하겠다는 남북 합작 위장평화쇼’라고 비판했다. 여권의 개헌 추진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사회주의 헌법개정쇼’라고 쏘아붙였다. 소득주도 성장 등 여권의 경제정책을 두고는 “좌파경제 복지 퍼주기쇼”라고 공격했다.

홍준표 대표는 4월 13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가진 영수회담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다소 누그러뜨렸지만 강경 보수 기조에는 큰 변함이 없다.

이렇게 해서라도 당선 가능성을 끌어올려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극약처방’이 성공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자유한국당과 홍 대표의 과도한 우편향은 득표 전략과 상충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앞선다.

선거가 최대한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끌어모으는 경쟁이라고 치면 자유한국당은 이런 선거의 정석에서 벗어나 있다는 지적이다. 우파 정당은 중간을 향해 왼쪽으로, 좌파 정당은 중간을 향해 오른쪽으로 움직일 때 중도층을 흡수하며 득표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자유한국당은 “오른쪽에서 더 오른쪽으로 향하는 느낌”이라고 임혁백 교수는 말했다. 순수하게 정책 노선만 갖고 예측한다면 자유한국당은 선거에 불리한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비록 극우는 아니지만 과거 냉전시대의 이념 논리에 호소해서는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덧붙여 자유한국당이 지방선거 득표력을 제고하려면 같은 보수 성향이지만 중도에 더 가까운 바른미래당의 포지션으로 좌클릭하는 게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권고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도 “자유한국당은 맨 오른쪽에 있는 20~25%의 보수층으로 다음 총선까지 버티려고 한다”며 “중간을 흡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환경이 이렇게 자유한국당에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홍 대표의 언어생활은 유권자들이 기대하는 품격과도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받는다. 홍 대표는 지난해 7월 당 대표 취임 후 당내 비판 세력들을 향해 ‘바퀴벌레’ ‘연탄가스’ ‘암 덩어리’ 등 거친 언사를 쏟아내 막말 논란을 불렀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도 자서전에 언급된 ‘돼지발정제’ 논란, ‘영감탱이’ 발언 등으로 곤욕을 치른 그였다.

‘세련된’ 홍준표로의 변신도 모색했지만…


▎자유한국당 중진인 나경원·이주영· 정우택·유기준 의원(왼쪽부터)이 3월 29일 홍 대표의 당 운영 방식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신을 향한 비난에 홍 대표는 ‘막말이 아닌 팩트’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올 신년 기자회견에서 “팩트를 이야기할 때 가장 가슴에 상처를 많이 받는데 (상대방이) 그걸 막말이라고 한다”며 받아쳤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능한 친문(親文, 친문재인)·친노(親盧, 친노무현) 누리꾼들을 의식한 듯 자신을 둘러싼 막말 프레임을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악연에 연결짓기도 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나를 막말 프레임에 가둔 것의 출발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말에서 출발한다”면서 “서거했다는 말을 했다면 그런 프레임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막말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랜 언어 습관, 실언이 그 빌미를 준 측면도 간과하기 어렵다. 2011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특정 여자대학교를 가리키며 “그 대학 계집애들 싫어한다. 꼴 같지 않은 게”라고 했다가 시비를 불렀다. 또 2012년 12월 종편 방송국 경비원에게 “니들 면상 보러 온 것 아니다”고 했다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발언의 진의와 무관하게 막말 이미지는 홍 대표의 일부가 돼가고 있다. 정치인의 말은 그의 의식세계의 반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홍 대표 측도 고민이 없는 게 아니다. 언행 등 이미지 교정이 필요하다는 건 경남지사 시절 절감한 모양이다. 홍 대표를 안 지가 30년 가까이 된다는 한 측근 인사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했다. “한 3년 전인가, 홍 대표의 경남도지사 시절 참모들이 모였다. 막말 논란 등 언어생활을 개선하고 정치 스타일도 바꾸는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댄 것이다. 모두 ‘홍 지사가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하지만 홍 지사 본인이 ‘본질은 변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고, 대신 조금씩 점진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홍 지사 본인은 본인의 스타일대로 가고 부족한 부분은 참모들이 채워주자는 쪽으로 결론을 맺었다.” ‘독고다이(특공대) 홍준표’ ‘버럭 준표’가 아닌 보다 세련된 정치인 홍준표로의 변신 모색이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홍 대표의 막말을 ‘서민의 언어’ ‘귀에 쏙 들어오는 표현’의 범주에서 이해해 달라고 주문한다. 김대식 여의도연구원장은 “다른 정당 대표보다 홍 대표의 말 한마디에 세상이 주목한다”고 했다. 홍 대표 본인도 페이스북에 “향단이, 바퀴벌레, 암 덩어리, 연탄가스, 영남 지역에서는 친밀감의 표시로 흔히 하는 영감탱이 등 우리가 통상 쓰는 서민적 용어를 알기 쉬운 비유법으로 표현하면 할 말이 없는 상대방은 이것을 품위 없는 막말이라고 매도해 왔다”고 유감을 표했다.

홍 대표의 막말에서 측근들은 후련함을 느낀다지만 당내 구성원들은 피로감과 천박함을 먼저 떠올린다.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을 지낸 김용태 의원은 “당원들 중에도 홍 대표 때문에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는 이들이 있다”고 전했다. 자유한국당 소속 남경필 경기지사는 4월 초 “보수는 달라져야 하며 언어 습관부터 고쳐야 한다”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남 지사는 “사용하는 언어조차 품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국민이 ‘보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마땅히 비판해야 할 문제를 ‘거친 표현’으로 본질을 훼손시킨 일이 반복됐다”고 홍 대표를 겨냥했다.

'보수 몰락’의 현주소는 지방선거에 즈음한 자유한국당의 인물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드림팀’ 구성은 고사하고 후보를 세우지 못해 쩔쩔매는 등 체면이 말이 아니다. 김병준·오세훈·이석연·홍정욱 등 물망에 오른 인사들이 서울시장 후보직 제의에 줄줄이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추대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 대해서는 당 안팎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하자는 카드인지,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자는 카드인지 헷갈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선거에서 이겨 여권의 독주를 견제하기보다는 지방선거 후 야권 재편에 대비한다는 인상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김용태 의원은 김 전 지사의 공천을 “지방선거 야권 연대의 문을 닫는 결정”이라고 단언했다. 나아가 김문수 전 지사는 정통 보수 가치를 중시하는 성향상 절대 바른미래당과의 후보 단일화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김 의원은 내다봤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야당이 여당을 견제하거나 선거 승리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지방선거 이후에 있을 야권 정계의 주도권 확보에 의미를 둘 수도 있다”고 점쳤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입장에서는 지방선거에서의 일정한 성과를 바탕으로 당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야권의 대표성을 획득하는 것도 절박한 과제다.”

“지난 대선 당시 당신은 뭘 했나”


▎자유한국당 창원시장 후보 공천에서 탈락한 안상수 창원시장은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홍 대표 입장에서는 자유한국당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 당선되면 가장 좋은 것이다. 이게 여의치 않다면 김문수 후보가 같은 보수 진영의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를 누르고 2위라도 거머쥐는 게 절실하다. 그래야 지방선거 후에 있을 야권 재편 국면에서 바른미래당에 밀리지 않고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어서다.

다가올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광역단체장 6곳을 지키지 못하면 홍 대표는 평소의 공언대로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조기 전당대회가 치러진다. 당에서는 홍 대표가 단기간의 잠행을 거쳐 당 대표직에 다시 도전하리라고 보는 이가 적지 않다. 그를 대적할 인물이 없다는 얘기가 주류, 비주류 양쪽에서 나오는 현실이 그 가능성을 키워가는 형국이다. 기본적으로 당 구조 자체가 홍 대표의 독주를 막을 수 없는 현실도 한몫한다고 박원호 교수는 진단한다. “지금의 자유한국당은 나와서 대표 하라고 해도 할 사람이 없는 처지다. 대안을 내세울 능력도 의사도 있는지 의문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일단 홍 대표 체제로 가면서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홍 대표의 기세는 압도적이다. 전국 조직책 선정 과정에서 자기 사람을 곳곳에 심어 왔다. 지방선거 공천에서도 ‘사당(私黨)화’ ‘사천(私薦)’이라는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측근을 내보냈다. 웬만한 비판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홍 대표 언행을 비판하는 비주류에는 “지난 대선 당시엔 뭘 했느냐”며 역공을 가하기 일쑤다. 홍 대표가 대선후보 물망에 오를 당시 지지율이 2.5%였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시점의 지지율은 7%. 나중에 24%를 얻었다. 홍 대표의 대선 당시 수행단장을 지낸 김대식 여의도연구원장은 “홍 대표가 아니었다면 24% 득표는커녕 보수가 완전히 괴멸됐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당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공감대가 비주류 진영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쯤 되면 초·재선 의원들이라도 들고일어나는 게 정당의 오래된 상식이다. 지금의 자유한국당은 평온하고 고요한 편이다. 그래서 ‘공동묘지 같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적임자 나오면 자리 물려주겠다’는 말의 속뜻


▎자유한국당은 4월 10일 김문수 전 경기지사(왼쪽 둘째)를 서울시장 후보로 추대했다. / 사진:연합뉴스
이와 맞물려 홍 대표 측은 평소 홍 대표가 ‘나보다 더 뛰어난 적임자가 있으면 언제든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피력했다고 귀띔했다. 홍 대표가 자신에게 도전할 만한 인물 영입에 극심한 기피심리를 보인다는 비판에 대한 반론이기는 하지만 당내 권력 다툼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발언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홍 대표의 한 측근은 “지금 당 대표의 책무는 당 개혁을 통해 수권야당이 면모를 다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홍 대표는 이에 충실을 기해왔으며 이를 더 잘 해낼 인물이 있으면 그가 당권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를 뒤집으면 마땅한 도전자가 없다면 홍 대표가 자유한국당을 계속 이끌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이 측근도 “홍 대표에게 덧씌워진 독선과 막말 프레임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그에게 대적할 인물을 찾기 어려운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100명도 더 되는 국회의원을 거느린 정당에서 국회의원도 아닌 당 대표의 독주체제를 구경만 한다는 건 뭔가 아이러니하다. 홍 대표가 세련된 대응을 못 하는 건 사실이지만 기본적인 문제는 자유한국당 스스로에 있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오랜 세월 겉돈 자유한국당의 인적 자원 충원 시스템에 그 책임을 돌린다. 이를테면 19대 총선 당시의 ‘친이(親李, 친이명박)계 학살’, 20대 총선 당시 ‘진박(眞朴, 진짜 친박) 마케팅’ 등 파행적 공천이 젊고 유능한 인재의 수혈을 가로막았다. 더 멀리는 차떼기 불법 대선 자금 수사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2004년 총선 이후부터 기백 있는 인재들이 보수 정당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반성도 따른다. 덩달아 기개를 지닌 헌신적인 그룹을 양성할 당내 토양도 척박해졌다. 과거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같은 내부 혁신 동력을 제공하고 당권파의 전횡을 견제할 소장파의 목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홍 대표는 이런 틈새에서 특유의 개인기를 통해 ‘일단 지르고 보는’ 정치를 구사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여의도연구원 벽면에 새겨진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명언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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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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