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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문재인 정부 1년 성적표는?] 전문가 평가 (3)검경개혁 

검·경 조정안 신경 쓰다 막강 검찰권 견제엔 실패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수사·기소 분리라는 대통령 공약 후퇴 조짐…수사권조정 아닌 검찰 개혁 시각에서 추진해야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들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에 대부분 공감해 관련 공약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재는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공수처 설치도 불투명해졌다. 3월 27일 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수처 설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사진:연합뉴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곧 출범 1년을 맞는다. 문재인 정부에 주어진 중요한 개혁 과제 중 하나가 바로 검찰 개혁이다. 검찰은 지난 촛불혁명에서 권력과 유착해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방조하고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을 방치해 나라에 존망의 위기를 초래한 공범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또 과거 정부의 부패와 비리가 검찰 수사로 하나둘 드러나면서 검찰 개혁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10년 전 다스의 실소유주 문제, BBK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됐더라면 어땠을까. 당시에는 검찰이 총력을 기울였는데도 관련자들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던 것일까. 검찰의 칼날이 권력자 앞에서만 무뎌졌기 때문은 아닌가. 국민은 새 정부에서 검찰에 대한 강력한 개혁을 희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공약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설치 등 강력한 검찰 개혁을 약속했다. 현 정부의 국정 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검찰의 본질적 문제점은 권한의 독점에 있다. 검찰은 직접 수사권, 경찰수사지휘권, 기소권, 강제수사를 통제하는 영장 청구권을 독점하고 있다. 가히 ‘무엇이든 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의 무소불위라는 말이 어울리는 독보적 권력기관이다. 이런 검찰이 권력과 결탁할 경우 권력 남용과 부패는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검찰 개혁의 요체는 비대해진 검찰 권한의 분산에 있다. 해답은 여러 선진국처럼 수사권·기소권을 분리해 수사권을 가진 경찰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도록 하는 데 있다.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도 수사·기소 분리를 통한 견제와 균형의 관계 정립이었다. 권한은 분산되고 서로 견제할 때 남용과 부패의 위험성이 줄어든다.

막강한 권력기관인 검찰을 개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검찰은 과거 자신들의 기득권을 제한하려 할 때마다 조직적으로 강하게 저항하며 이를 무산시킨 전례가 있다. 그나마 정권이 힘이 있고 국민의 지지가 뒷받침돼 있는 집권 초에 검찰 개혁에 대한 강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고 성공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크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1년이 다 돼 가도록 검찰 개혁은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 원인은 두 가지다.

검찰수사에 의존한 적폐청산, 검찰개혁의 최대 걸림돌

첫째, 국회가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야당의 반대를 넘어서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보수층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도입될 경우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권 등을 상대로 정치적 보복의 타깃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 둘째, 현 정부의 적폐청산이 검찰 수사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적폐 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을 개혁의 단두대에 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검찰도 적폐 수사를 길게 끌고 가면서 검찰 개혁의 거센 칼날을 피하며 상황의 반전을 노릴 수 있다. 또한 수사 성과에 대한 청구서를 내밀면서 최대한 검찰 조직에 타격이 가지 않는 쪽으로 사안을 끌고 가려 할 것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검찰은 강력한 개혁 요구에 직면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정치권을 상대로 한 ‘대선자금 수사’로 국민적 지지를 받으면서 위기를 모면한 바 있었다.

강력한 개혁에 대한 검찰 조직의 반발과 정치권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향후 검찰 개혁은 어떻게 될까? 우선 공수처 도입도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오래전부터다. 검찰과 경찰 모두 권력에 종속적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물론이고 검찰도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에 대해 법의 칼날을 제대로 휘두른 적이 별로 없다. 우리 사회의 부패를 없애는 데 일조한 면이 있다지만 중요한 고비마다 오히려 검찰이 걸림돌이 된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권력형 비리를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는 별도의 사정기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그것이 바로 공수처 도입이었다. 공수처 도입은 여야를 떠난 모든 정치권의 오래된 약속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공수처 도입마저 불투명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민의 80%가 공수처 도입을 원하고 있지만 이견을 보이는 야당을 설득해야 법 통과가 가능하다. 현재의 여야 관계로 볼 때 쉬운 일은 아니다. 반면 공수처에 대한 검찰의 입장은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공수처 도입 정도로 검찰 개혁을 끝낼 수 있다면 검찰 입장에서 큰 손해는 아니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공수처가 도입돼도 기존 검찰의 권한에는 변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어차피 수사를 위해 검사 출신들이 공수처의 주요 인적 구성원이 될 것이기 때문인 점도 있다.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이 공수처 도입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내놓은 것도 이러한 계산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 도입이 야당의 반대로 교착 상태에 처해 있는 반면 수사권조정 문제는 돌파구가 열릴 조짐이 보인다. 최근 조국 민정수석이 법무부·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사법개혁특위에 이번 정부 조정안이 제출될 경우 약간의 수정은 거치겠지만 큰 반대 없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여야 모두에 수사권조정은 매우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이고 빨리 손을 털고 싶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도 검찰 개혁을 바라는 다수 국민의 요구를 언제까지 반대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공수처 도입에는 반대하더라도 수사권조정에는 전향적인 자세로 임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정부의 수사권조정안은 검찰에 특수수사 분야의 수사권과 영장청구권 독점을 계속 인정하되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을 없애고 경찰에도 일정 부분 수사종결권을 인정해 양 기관 간에 어느 정도 수평적 견제관계를 정립한 내용이다. 검찰은 대통령에게서 인사권만 독립시키면 정치검찰의 문제는 해결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권한의 분산이 없는 인사권 독립만으로는 부족하다. 막강한 권한을 그대로 존치되는 상황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 그리고 수사권조정은 결국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상식과 진리를 바탕에 두고 진행돼야 한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 입장에서는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겠지만 검찰 권한의 축소를 지향하는 수사권조정이 올바른 개혁 방향이다. 물론 경찰도 그에 걸맞은 내부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경찰 역시 이번 합의안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라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 대폭 후퇴했기 때문이다. 검사가 영장청구권을 독점하는 한 압수·수색, 체포·구속 등 강제수사에서 검사의 수사 지휘는 사실상 살아 있기 때문이다.

당초 현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검찰 개혁에 비춰 지금까지 진행된 내용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정부의 이번 수사권조정안은 100점 만점에 50점 이상을 주기 어렵다. 청와대가 조정안을 도출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검찰 개혁이라는 본래의 목표가 상당부분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검찰에 공직자 비리, 금융·경제 비리, 공안사건, 선거범죄 등 광범위한 수사권을 그대로 인정한 것은 독점적 검찰권을 분산시켜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당초의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검찰이 정치권과 경제계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른 원천이 바로 이 분야에 대한 수사권이었다. 그중에서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틀어쥔 검찰이 독점적 권한을 남용해 왔다고 비판받는 분야가 바로 이러한 특수수사 분야였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이 분야에 대한 검찰의 광범위한 수사 권한을 인정함으로써 사실상 검찰 개혁의 목표와 방향이 올바르게 설정된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검찰이 내세우는 논리 중 하나는 인권 보호 기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동안 검찰권 행사가 얼마나 인권침해 비판에서 자유로웠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대한변협은 2005~2015년의 10년 사이에 검찰 조사를 받은 피의자 중 100명 이상이 자살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적 요소를 최대한 줄이며 수사해 왔는지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경찰 개혁이 검찰 개혁의 전제조건 돼서야


▎최근 정부의 검찰개혁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문무일 검찰총장이 ‘검찰 패싱’을 거론하며 불만을 표출해 파문이 일었다. 3월 25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만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왼쪽)과 문무일 검찰총장. / 사진:연합뉴스
검찰 개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이 검찰개혁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검찰 패싱’을 내세우며 불만을 토로하면서 사안은 더 꼬인 형국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문 총장의 이런 입장에 힘을 실으며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저항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검찰을 오랫동안 취재해 온 한 법조 전문기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경 간 권한 조정은 ‘수사권 조정’이 아니고 ‘검찰 개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시점에서 검찰은 무언가를 주고받는 협상 파트너라기보다는 개혁의 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지적한 대목이다. 청와대와 법무부는 새 정부 출범 후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검찰 개혁 프로세스에서 이런 부분을 얼마나 염두에 두고 진행해 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경찰 개혁을 이유나 조건으로 내세우며 검찰 개혁을 조절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자치경찰제를 포함해 경찰 내부 개혁을 이유로 검찰 개혁을 늦춰서는 안 된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 부분을 명확히 하고 국민과 정치권의 이해를 구해야 제대로 된 방향의 검찰 개혁을 이뤄낼 수 있다. 수사 단계에서 검·경 간 역할 변화를 모색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국민에게 한 새 정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검찰이 기소 기관으로서의 본래 역할을 찾도록 개혁의 방향이 맞춰져야 한다. 공판중심주의 재판을 위해 공소유지 역량을 높이는 쪽에 개혁의 방향이 더 집중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청와대와 정부의 노력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검찰개혁소위와 법원·법조·경찰개혁소위 구성에 합의함에 따라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것이다. 각 당이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대의와 큰 틀에만 합의한다면 세부적인 사항은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검찰 개혁, 검경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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