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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同行-고령사회로 가는 길’(5)] 건강한 노년 만들기 ‘헬시 에이징’의 매력 

“장봐 와서 요리해 먹는데 지루할 틈 있겠어요?”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한국인 건강수명, 기대수명보다 10년가량 짧아 사회적 관심 필요… 노인복지센터·노인참여나눔터 등 찾으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 가능

▎또래 노인과의 유대감은 건강한 노년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2017년 10월 경북 문경시에서 열린 ‘제11회 한국헬프에이지 실버운동회’에서 참여 노인들이 공굴리기 놀이를 하고 있다. / 사진:한국헬프에이지
"새가 날아든다, 온갖 잡새가 날아든다….”

열린 문틈으로 ‘새타령’이 흘러나왔다. 서울 종로구 경운동 소재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진행되는 치매예방 프로그램인 ‘총명학교’ 교실이었다. 총명학교는 전국 278개 노인복지관 가운데 서울노인복지센터를 포함해 30곳에서 운영되는 치매예방교실이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2014년부터 매년 수행기관을 선정하고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의 총명학교를 관리하는 문희정(28·여) 간호사는 ‘기억력 가요제’가 진행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새 중에는 봉황새, 만수문전에… 무슨 새지?”

“땡!”

노래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어르신들이 일제히 외쳤다. 웃음소리에 교실이 왁자지껄하다. 기억력 가요제는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미션곡을 암기하게 한 뒤 노래를 부르고 가사를 가장 적게 틀린 이에게 우승이 주어지는 수업이다. 심사위원인 노인들은 변별력을 위해 ‘새타령’처럼 일부러 가사 외우기가 까다로운 노래를 택한다. 우승자에게 돌아가는 특전은 3주간의 무대 제공권이란다. ‘보통 노래 부르기는 벌칙 아닌가’ 하고 묻자 문 간호사는 “아니요, 어르신들께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우승을 다투시잖아요”라며 활짝 웃는다.

한국이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건강하게 나이 들기(Healthy Ageing)’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늘어난 수명을 건강하게 즐길 수 있어야 삶의 질도 높아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보통의 한국인들은 건강하지 못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15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기대수명보다 10년가량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하기 전까지 만성질환이나 신체장애를 겪는 기간이 10년에 이른다는 뜻이다. 특히 남성은 건강수명이 68.26세로, 노년(65세 이상)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치매는 65세 이상 노인의 10%가량이 앓고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질환이다.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까지 따지면 그 비율이 27.9%로 올라간다. 총명학교는 경도인지장애를 포함해 치매 고위험군 노인을 발굴해 증상이 심해지지 않도록 돕는다. 서울노인복지센터는 매년 한 번씩 회원 노인 전원을 대상으로 치매 검사를 받도록 권장함으로써 위험군에 있는 노인을 찾아내고 있다.

“총명학교, 3년째 다니는데도 매일 새로워요”


▎총명학교 노인들이 색칠공부를 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이것도 치매예방 교육의 일환”이라며 진지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 사진:서울노인복지센터
교실에서는 색종이를 손으로 찢어 모자이크 작품을 만드는 공예활동도 이뤄졌다. 문 간호사는 다소 단순한 활동에 민망해하는 노인도 없지 않았다고 전한다. ‘불러 놓고 뭘 한다더니 유치원생도 아니고 이런 걸 시키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해 보일지 몰라도 손끝 활동을 통해 두뇌를 자극하는 방법이거든요. 수업 시간에 만든 작품을 모아 센터 내 미술관인 ‘탑골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합니다. 처음엔 역정을 내던 어르신들도 ‘내가 언제 전시회를 참여해 보겠느냐’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셨죠.”

2016년 총명학교에서 반장을 맡았던 김희복(74)씨는 이미 졸업생 신분이지만 지금도 수업에 참여해 또래 노인들과 어울린다. 김씨는 “프로그램 내용이 매번 달라 노인들의 참여율이 높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치매예방에 좋은 음식’을 배운다고 쳐요. ‘견과류를 먹어라’ ‘오메가3가 든 음식을 먹어라’ 이런 말들은 TV에서도 흔하게 나오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교실에서 이론을 배운 다음 곧바로 시장으로 갑니다. 재료를 장봐 와서 직접 요리를 만들어 시식하는 거죠. 이렇게 똑같은 수업이라도 재미있게 기획해서 진행되니까 지루할 틈이 없죠.”

김씨는 최근 센터에서 제작한 치매예방 노래 ‘맑음이송’의 동영상 제작에도 참여했다. 성격이 적극적이고 활발해 보였지만 한때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7년 전에 갑작스레 찾아온 ‘뇌졸중’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 뒤로 그는 외출을 꺼릴 만큼 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주변 사람들과 의사 표현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뇌졸중을 앓으면서 근육량도 급격히 줄어 보행에도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10남매의 장남이자 장손으로 태어나 집안 대소사를 도맡아 하던 김씨로서는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으니까 자꾸 위축이 돼 갔어요. 나는 아닌 척 해도 상대방은 금세 느끼더군요. 사람들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졌죠. 학교에 나와서도 ‘상대방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늘 긴장이 됩니다. 하지만 학교 수업이 하나하나 재미있고 기억에 남아 너무 좋아요. 덕분에 우울감에서 헤어날 수도 있었고요. 요즘엔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면 ‘야, 너 이번엔 (총명학교) 놓치지 마. 게시판 매일 확인하고라며 잔소리를 해댑니다.”

총명학교 모임이 끝나자 김영옥(여·80)씨가 지팡이를 짚고 교실을 나선다. 10년 전 장애등급(4급)을 받았을 정도로 양쪽 무릎 연골이 닳아 걸음걸이가 불편한 상황이다. “이래봬도 옛날에는 육상선수였어요. 학교 대표부터 동 대표, 구 대표로도 대회에 나갔죠. 혼자서 4남매를 키우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는데, 몸이 이 지경이 되고 보니 너무 서글펐어요.”

서울노인복지센터에 정을 붙인 뒤로는 수화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인터뷰 도중에 김씨는 습관처럼 수화를 해 보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노래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했다는 김씨는 “총명학교는 단연 최고”라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저는 가방끈이 짧거든요. 학교 다니다가 6·25전쟁을 만나 중학교 과정도 졸업을 못 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이것저것 배우니 너무 행복합니다. (두뇌) 학습지를 집에 들고 가서 복습도 해요. 우울증도 없어지고 치매 걱정도 덜어지니 항상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총명학교 수강생들의 만족도는 공식적인 수치로도 증명된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는 강남대 실버산업학부 연구진(박영란·홍승연 교수)에게 치매예방 프로그램 효과에 대한 조사와 분석을 의뢰했다. 연구진은 2017년 전국의 총명학교 수료자 697명을 대상으로 MMSE(Mini Mental State Examination, 간이정신상태검사) 등을 프로그램 참가 전과 후로 나눠 실시했다.

조사 결과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노인들의 인지능력이 눈에 띄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전조사에서 평균 23.45점을 기록한 MMSE 점수가 사후조사에서는 25.07점을 기록해 1.6점가량 상승한 것이다. 해당 검사에서 20~23점은 ‘치매 의심’을, 24점 이상은 ‘정상’을 의미한다. 치매 고위험군 노인들이 정상 수준으로 인지능력을 회복했다는 뜻이다. 우울감 수준도 평균 5.21점에서 3.65점으로 1.6점가량 낮아져 노인들의 감정 상태도 의미 있는 변화를 보였다.

문희정 간호사는 ‘노인복지관’만이 갖고 있는 수업의 장점을 비결로 꼽는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노인복지관은 경로당과 함께 ‘노인여가시설’로 분류된다. 경로당이 지역밀착형 시설이라면, 노인복지관은 노인의 교양·취미 생활 등 각종 정보와 서비스가 제공되는 시설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리하자면 노인복지관은 노인들이 ‘모여 노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노는 와중에 참여하게 되는 치매예방교실인 만큼 경계심도 낮을 수밖에 없다. 문 간호사는 “의료시설인 보건소는 어르신들이 찾아오지 않는 이상 치매 위험군을 발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진단한다.

“노인복지관을 찾는 어르신들은 걱정하시다가 겨우 오시는 게 아니에요. 점심에 오셔서 식사 한 끼 하시고 관심 가는 강의를 한번 들어보기도 하시고요. 어르신들께 자유롭게 사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드리는 거죠. 그러면 저희 직원들이 수시로 어르신들을 모니터링 할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질환이 깊어지기 전에 저희가 빨리 발굴해서 프로그램을 권유할 수 있어요.”

“뇌졸중으로 고생하던 내가 상담가가 되다니…”


▎매일 오전 9시30분 탑골공원 안에선 노인 10~15명이 모여 건강 체조를 즐긴다. 웃음기 가득한 ‘조(朝)나단(아침에 나타나는 탑골체조단)’ 노인들의 모습. / 사진:서울노인복지센터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낙원상가 방향으로 700여m를 걸어가면 ‘어르신들의 아지트’ 탑골공원이 나온다. 매주 수요일 낮 12시30분, 공원 북문 앞에 빨간색 버스 한 대가 들어선다. 서울어르신상담센터에서 운영하는 현장 상담실인 ‘빨강상담소’다. 서울어르신상담센터는 서울시가 설립하고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위탁 운영하는 상담기관이다. 버스는 세 시간 남짓 머물지만 30여 명이 상담소를 찾아 우울척도·감정조절 척도 등 정신건강 검사를 받는 등 노인들의 관심이 높았다.

빨강상담소에서는 전문상담원과 함께 ‘동년배 상담가’가 방문자들을 맞는다. 동년배 상담가는 상담 자원봉사 경력이 있거나 관련 교육을 받은 65세 이상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돼 있다. 16명의 동년배 상담가가 3~4명씩 팀을 짜 매주 돌아가면서 상담을 해준다. 상담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하거나 자가진단 검사를 안내하는 것이 주업무지만 내방자가 털어놓는 고민에 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대일 상담으로 이어진다.

‘총명학교 1기 반장’ 김희복씨는 이곳에서 동년배 상담가로 자원봉사를 한다. 지난해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진행된 ‘동년배 상담가 교육과정’과 ‘건강한 노년의 성 상담사 기초·보수교육’을 잇따라 이수하고 같은 해 9월 시작된 빨강 상담소에서 성(性)상담 전문가로 활동하며 입지를 다졌다. 김씨는 “노인들은 특히 성 관련 문제가 생기면 혼자 끙끙 앓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억력 가요제에 참가한 도전자는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게 규칙이다. 가요제에 참여한 총명학교 노인들은 직접 아이템을 기획·운영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한다. / 사진:서울노인복지센터
“한번은 82세 어르신이 찾아왔어요. 성병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관계를 가진 상대는 센터에서 친구로 만난 사람인데 우세스러워 말을 못 꺼냈다고 하더군요. 젊어서 이런 문제를 경험하고 해결해 본 적이 없으니 이제 와서 당황하는 것이지요.”

김씨도 교육을 받을 땐 민망한 마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강사가 와서 강의를 하는데 노인이 어떻게 성관계를 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더라는 것이다. “갱년기가 지나면 남녀 모두 성기능이 떨어져요. 강사는 ‘그렇더라도 노인도 충분히 성을 즐길 수 있다’면서 방법을 알려주더라고요.”

그런 김씨는 현장에서 노인들의 고민을 청취하며 마음을 달리 먹었다. 우물쭈물하며 다가온 상담자들이 ‘지인과 스킨십을 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등의 연애 고민을 털어놓더라는 것이다.

“성이 젊은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흉측스럽다고 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먼저 물어 와요. 사회가 바뀌니까 노인들 생각도 변하는 거예요.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할 뿐이죠.”

2년차 상담가인 한상섭(70)씨도 “어르신들은 속마음을 꺼내는 걸 유독 부담스러워하신다”며 상담 사례를 떠올렸다. “상담을 하다가 속 깊은 이야기를 여쭈려고 하면 자리를 박치고 일어서는 어르신들도 있어요. 어려움을 겪을 때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눈초리를 받거나 익숙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 온 분들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노인들은 친구나 동생 같은 상담가들에게 상대적으로 쉽게 마음을 연다. 나이 차가 많은 젊은 상담가에게서는 느끼지 못 했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빨강상담소에서 전문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는 신현국(37) 사회복지사는 얼마 전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를 예로 들었다. “한 어르신이 전화로 상담을 신청했어요. 부끄러운 일인지 제게 말씀하시기 부담스러워하셨어요. 조심스럽게 ‘말을 편히 할 수 있는 또래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셔서 동년배 상담가 한 분께 상담을 부탁드렸죠.”

노인들을 돕는 상담가들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은퇴한 뒤에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졌다. 동년배 상담가 한씨는 “상담자가 마음을 열어 어려움을 털어놓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옆 테이블에서 막 상담을 끝낸 신희복씨 역시 “풍을 맞아 영영 사회활동을 못 할 줄 알았다”면서 “이렇게 동년배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니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회비 모으고, 바자회 열고… ‘노인이 노인을 돕는다’


▎고령가구 셋 중 하나는 홀몸 가구다.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노인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인참여나눔터의 한 회원이 떡국을 그릇에 나눠 담고 있다. / 사진:한국헬프에이지
노인들이 직접 자활(自活)공동체를 꾸려 관계 맺기에 나선 경우도 있다. 사회복지법인 한국헬프에이지(이하 ‘헬프에이지’)가 2004년부터 지원해 온 ‘노인참여나눔터’(이하 ‘나눔터’) 사업이 그렇다.

헬프에이지는 저소득 노인들이 스스로 경제적·사회적 소외를 이겨내도록 돕는다는 취지에서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지역공동체를 결성하도록 지원해 왔다. 노인들이 자체 사업을 벌여 운영기금을 마련하고 헬프에이지에서 각 활동에 맞는 활동가를 지원하는 구조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12개소에 노인 회원 281명이 참여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소재한 ‘난곡노인참여나눔터’는 12개 나눔터 중에서도 가장 최근(2014년)에 설립됐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저소득 홀몸 노인이지만 마땅한 마을 공동체가 없었다. 경로당에서는 자식 자랑이 오가는 가운데 소외감이 들어 발길을 끊는 홀몸 노인이 많았다. 거동도 불편해 10만원짜리 사글셋방에 우두커니 앉아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이를 지켜본 비영리법인 ‘난곡사랑의집’에서 헬프에이지와 협약을 맺고 형편이 어려운 노인이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아 더 어려운 노인을 돕자는 취지로 난곡노인 참여나눔터를 꾸렸다. 월 회비는 3000원으로 회원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정도로만 정했다.

6명으로 시작된 회원 수가 5년 만에 30여 명으로 늘었다. 설립 당시 약속처럼 회원들이 1년 동안 꼬박 모은 회비에 마을 바자회에서 떡볶이와 메밀전 등을 판 기금을 모아 사정이 어려운 홀몸 노인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난곡노인참여나눔터 신분예(여·83) 부회장은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마을에 웃음꽃이 피었다”며 “단순히 지원 받는 데 그치지 않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매년 10월에는 전국 12개 나눔터 회원들이 한곳에 모여 ‘실버운동회’를 즐긴다. 지난해 11회를 맞은 운동회에는 회원 200여 명과 활동가와 봉사자 21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회원들은 ‘청춘’과 ‘낭만’으로 팀을 나눠 팀원 간 협동심을 보여줄 수 있는 탁구공 옮기기, 큰 공 굴리기, 2인3각, 팥주머니 넣기 등 다양한 게임을 즐겼다.

나눔터를 관리하는 강화영 헬프에이지 간사는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어르신들이 찾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강조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들은 영양부족과 기력 저하의 악순환에 시달리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 헬프에이지는 노인들이 나눔터를 ‘또 하나의 집’처럼 여기게끔 북돋아 참여를 이끌어냈다. 강화영 간사는 “어르신들께서 나눔터에 나와 소통하며 정신적 건강을 되찾아 가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의료계는 ‘노화’와 ‘노쇠’를 구별한다. 노화는 신체 장기의 기능이 점차 떨어지는 현상이다. 나이 탓일 수도, 질병 때문일 수도 있다. 노쇠(frailty)는 이런 노화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빠르고 과도하게 진행될 때를 말한다. 평소 잘하던 밥 먹기, 옷 입기, 걷기 등을 못할 정도까지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 감염이나 수술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이겨낼 신체적 능력이 부족해 치매, 낙상, 보행장애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노쇠의 결과로 심각한 만성질환이나 신체장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원장원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노쇠는 반드시 질병으로 발생하는 건 아니다. 질병이 없더라도 노쇠 현상을 보이는 경우가 32%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질병 중심 관점 벗어나 ‘노쇠 예방’ 주목해야


▎한국헬프에이지는 2013년부터 한국화이자제약과 함께 ‘헬시 에이징’ 캠페인을 전개하며 여러가지 인식 개선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사진:한국헬프에이지
노쇠는 근육량 감소와 관련이 깊다. 근육은 우리 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면역력을 높이고 염증은 줄인다. 온몸에 피가 돌고 호흡하는 것도 사실은 심장근육과 폐 근육(횡격막)이 열심히 운동한 결과다. 근육이 줄어들면 인슐린 기능도 떨어져 당뇨병에 걸리기 쉬워진다.

근육이 더 줄고 심장·폐 기능이 더 떨어지면 깨끗한 피와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 온몸의 세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급격하게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서 노쇠 현상이 찾아오게 된다. 집 밖을 나서지 못하고 누워 생활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입맛도 없어져서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근육량은 더욱 줄어든다.

각종 만성질환이 몸의 기력을 빼앗고, 노쇠는 더 급격하게 진행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낙상(落傷) 때문에 사망하는 노인이 한 해 83만 명에 달하는 이유다.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신체 기능이 저하돼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윤종률 한림대의료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노인병을 진단할 때 질병 중심적인 이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지장애나 심뇌혈관 질환, 근골격 약화, 우울, 인지기능 저하 등의 증상에 대해 세부 전문의가 개별적으로 진단하다 보니 여러 명의 의사에 의한 분절화된 치료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개별 질병에 따라 치료하다 보면 여러 약제를 복용하게 돼 부작용이 심각해질 뿐만 아니라 의료비 부담도 증가한다. 무엇보다 개별 증상을 억제해도 노쇠 현상을 멈출 수 없어 상태가 악화되는 결과를 낳는다”며 “▷노인병 전문의가 상주하는 노인병센터 ▷다학제 간 통합치료 ▷보건복지 연계서비스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양윤준 일산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현재 70~80대 노인들은 우리나라 고령화 1세대”라며 “나이 드는 것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지 못했고 노쇠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쇠를 당연한 현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노화가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면 노쇠는 본인의 의지와 주변의 관심으로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다”고 말했다.

-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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