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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완의 쿠바탐험 | 부에나비스타, 아바나(5)] 교육-생계와 혁명을 연결하는 길 

고학력자 넘치는 무상교육 나라에 무슨 일이? 

김해완 작가
첨단산업 기반 열악한데 고급 인력은 공급 과잉…농사 지을 사람 부족하고, 고급 인재들의 해외 유출 심각

▎산타 클라라의 체 게바라 동상과 기념비. 산타 클라라는 아바나 못지 않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기념비 아래에는 “자발적인 노동은 창조적인 양심의 학교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나는 태생적인 반항아 기질은 없지만, 희한하게도 학교와는 악연이 깊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교실의 답답함을 참지 못해 자퇴서를 냈고, 그 결과 검정고시를 한국과 다른 나라에서 두 번 치러야 했으며, 한참 뒤에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도 아웃사이더로 지냈다.

이 청개구리 심보에는 교육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교육은 비즈니스이며, 학교는 시장을 위해 인적 자원을 생산하는 공장이라고 여겼다. 똑똑하다는 것은 더 쉬운 방법으로 남보다 더 나은 점수를 얻는 경쟁력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좋은 삶을 살려면 배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지혜로운 말씀은 이런 사회적 배치 속에서 위선이 됐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에서 ‘배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린 학생들은 삶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 청소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게 늘고, 학자금 대출이 청년의 등골을 휘게 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공부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쉽지 않다.

학교와 마찰을 빚을 때마다 나는 몽상 같은 상상을 했다. 왜 ‘교육’은 ‘고난’이 되어야만 할까? 학벌과 등록금, 월급이 비례하지 않는 그런 사회는 정말 지구상에 없는 걸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기 성장과 자기만족을 위한 배움은 정말 불가능한 걸까?

신개념 교육도시, 아바나


▎아바나 대학 캠퍼스 전경. 왼쪽은 웅장한 대학 본관
세상은 한국보다 넓었다. ‘그런 사회’가 지구상에 정말로 존재하긴 했다! 이곳에서는 학벌과 등록금과 월급이 비례하지 않고, 공부하려는 자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장치도 많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교육적 시도와 색다른 문제들이 넘쳐난다. 어디를 말하는 거냐고? 당연히 쿠바다.

교육은 의료와 더불어 쿠바의 사회주의 시스템의 꽃으로 알려져 있다. 쿠바에서는 고학(苦學)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이 학교에 한 푼도 빚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쿠바의 학교들은 모두 공립이고, 등록금은 전액 무료다.

반면, 공부의 강도는 세다. 초등학교 때는 기본 과목 외에 인성(人性)의 원리 원칙을 가르치는 시민사회 과목이 있고, 중·고등학교 때는 세계사, 세계지리, 외국어처럼 국제적인 분야가 강조된다. 또 대학 입학시험은 세 과목(수학·역사·국어)을 일괄적으로 보는데, 전공마다 신입생을 뽑는 숫자가 적어서 입학경쟁률이 높다. 게다가 졸업하기는 더 어렵다. 현재 아바나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의 말에 따르면, 생물화학과는 입학생이 몇 십 명인 반면 졸업생은 고작 열 명 안팎이라고 한다.

공부 시간도 짧지 않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오전 8시 반부터 12시 반까지 오전 수업을 듣고, 점심 후에 2시부터 5시까지 오후 수업을 듣는다. 이는 아이를 학교에 맡기고 오후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를 배려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학교가 전국적인 탁아소와 급식소 기능도 겸하는 것이다.

쿠바의 교육열을 느끼기에는 아바나가 제격이다. 혁명 이후에 도·농간 교육 수준의 차이가 많이 좁혀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교육의 중심지는 쿠바의 수도다. 이 도시에는 유서 깊은 교육 기관이 많다.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전에 세워진 학교이자 20세기 초에 쿠바 학생운동의 중추였던 아바나대학(La Universidad de la Habana), 명망 높은 쿠바의 예술가들을 배출하고 있는 예술 고등교육 기관(ISA: Instituto Superior del Arte),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세운 국제 영화학교(Escuela Internacional de Cine y TV) 등이 모두 아바나를 중심으로 포진해 있다. 제3세계 학생들에게 장학생을 주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 라틴 아메리카 의대(ELAM: Escuela Latinamericana de Medicina) 역시 아바나 근교에 있다. 미국의 유명 대학처럼 최신 건물은 없지만, 각 학교의 특색을 살린 건축물과 낡은 교실 벽에서는 선배에서 후배로 차례차례 이어져 온 지성의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지방에서 올라와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기숙사에서 숙식이 제공된다. 이 역시 전액 무료다. 음식의 질과 방 상태에 대한 불평불만은 끊이지 않지만, 아바나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학생 입장에서는 이마저도 소중한 자원이다. 조건은 열악할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자에게 공부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혁명 이후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교육에 대한 접근성은 여전히 평등하게 보장되고 있다. 따라서 교육은 쿠바의 핵심 정체성이라고 할 만하다. 쿠바의 유명한 영화 [딸기와 초콜릿(Fresa y Chocolate)]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혁명 정부의 좁은 시야와 경직성을 비판하는 친구 예술가에게 대학생인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네 말도 맞아. 하지만 모든 것을 부정할 수는 없어. 나는 소작농의 아들이고, 혁명이 없었다면 대학에서 공부조차 할 수 없었어.”

생계를 ‘해결하는(Resolver)’ 교육이 없다


▎벽화가 그려진 자유로운 분위기의 문예과(Arte y Letra) 건물.
여기까지는 내부에서 바라본 교육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는 전체의 단면일 뿐이다. 쿠바의 교육 시스템을 더 심도 있게 이해하려면, 교육이 ‘교육 이후’의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공부하는 데 특권이 없다는 것은 졸업장을 받은 후에도 특권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더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특권은커녕 생계조차 기대할 수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가령,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세 청년이 아바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고 하자. 그는 학사뿐만 아니라 석사까지 법학을 공부해서 훗날 인권변호사로 일할 생각이다. 한국 청년이라면 결심의 순간부터 시험 준비와 등록금을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쿠바 청년이 고민하는 것은 다름아닌 미래에 뛰게 될 ‘세컨드 잡(second job)’이다. 변호사의 월급은 800페소, 약 32달러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돈의 가치가 쿠바 현지에서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 보자. 2018년 4월 현재 에떽사(Etecsa)가 매기는 통화 요금은 1분에 0.25달러다. 두 시간만 통화하면 한 달 월급이 사라진다. 결론은? 변호사가 되어도 입에 풀칠도 못 한다. 청년은 변호사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생계의 방도를 따로 궁리해야 한다.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계산법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사회주의의 중요한 특징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필요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공공의 필요’가 의미하는 바가 자본주의 사회가 이해하는 범위보다 훨씬 드넓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직업군 역시 공공 영역에 흡수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대졸자는 반드시 공익 활동을 2년간 수행하게 돼 있다. 만약 공익 활동 끝에 청년이 변호사 자격증을 딴다면, 그는 자동으로 국가변호사가 된다. 800페소란 정부가 지정한 변호사의 월급이다.(쿠바라고 해서 민영 사업이 아예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그 비율이 지극히 적다.)

쿠바 정부가 사람들을 착취하려고 일부러 낮은 월급을 책정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기에도 쿠바만의 역사적인 사정이 있다. 사회주의가 공공성을 강조하는 데에는 자본주의의 비극을 막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즉, 개인의 사사로운 물질적 탐욕 때문에 인간성이 착취당하고 말살되는 경우를 애초에 방지하는 것이다. 쿠바혁명은 모두가 가난하게 살되 누구도 굶어 죽지 않는 ‘필요’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화폐경제 대신 다른 경제 구조를 창출했다. 생계에 필요한 필수품은 누구나 배급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도록 하되, 월급은 사치품 몇 개를 살 정도로만 적게 주는 것이다.

아무도 농부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쿠바에서는 모든 학생이 교복을 입는다. 교복은 기본적으로 흰 셔츠에 갈색 하의로 통일돼 있다. 자주색 하의, 흰색 셔츠, 파란색 넥타이는 쿠바 국기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아직도 1970~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때를 돈이 거의 필요치 않았던 시대로 묘사한다. 누구나 5성급 호텔인 아바나 리브레(Habana Libre)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고, 예약을 하면 1달러에 하룻밤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배치는 국가의 생산력이 만인의 생계를 책임질 만큼 충분치 않다면 지속될 수 없다. 1990년 초반에 소련이 붕괴하면서 쿠바는 설탕 생산에 치우쳐 있는 국가 경제를 보강해줄 버팀목을 잃었다. 먹을 게 바닥났으므로 배급표는 무용지물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교육 또한 의미를 잃었다. 그 후 경제 구조는 더 이상 옛날 같지 않았다. 쿠바는 스스로 충당할 수 없는 생필품을 외부 자본주의 시장에서 수입하기 시작했고, 이 흐름은 현재 점점 거세지고 있다. 시장 경제의 도입은 물가를 단기간에 수직으로 상승시켰고, 배급표로는 필요한 것들 중 25~30%밖에 구할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급의 액수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이렇게 사회주의 월급과 반(半)자본주의 생활비 사이에 터무니없는 격차가 생기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시대는 바뀌고, 역사는 흐르며, 정치는 변한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먹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쿠바인들은 자기 전공을 살려서 찾은 직업은 ‘일한다(trabajar)’고 표현하고, 그 외에 생계비를 버는 방법은 ‘해결한다(resolver)’고 표현한다. 일하는 법과 해결하는 법을 동시에 익혀야 하는 쿠바 청년은, 학자금 대출을 껴안고 막 경쟁 사회에 진입한 한국 청년만큼이나 막막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어떻게 생계를 꾸릴 것인가? 확실한 것은 교육은 그 자체로 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도, 교과서도, 시험 문제도, 시간이라는 거센 물결 속에서 복잡하게 꼬인 현실과 비교하면 너무나 쉬울 뿐이다.

쿠바의 교육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이는 앞서 소개한 문제보다 덜 직접적이지만 해결하기는 더 힘들다. 그 문제란 바로 교육은 과잉인데 인력은 부족하다는 역설이다. 이 상황은 세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아무도 농부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쿠바는 여전히 농업 국가다.

이 역설은 쿠바뿐만 아니라 근대 교육을 실천하는 모든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반 일리히는 [학교 없는 사회]에서 근대 교육을 가차 없이 비판했는데, 그의 논점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근대 교육은 만인에게 평등한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다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철저하게 산업주의의 위계에 기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위계를 더욱 강화 시킨다. 교육은 덜 산업화된 소박한 일상을 시대에 뒤떨어진 삶의 방식으로 보이게 만들고, 자율적인 삶보다 시장 제도와 국가 제도에 의존하는 게 더 교육 받은 삶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즉, 교육의 핵심은 산업사회가 생산하는 ‘필요’를 배우는 것이다. 텃밭보다는 대형 마트가, 동네 의원보다 전문병원이, 도서관보다는 인터넷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필요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3, 4차 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전문가 교육을 욕망한다.

진실은 다음과 같다. 만인이 선진국과 같은 수준으로 산업주의적인 삶의 양식을 따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첫째로는 지구의 자원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선진국의 산업 구조가 후진국의 값싼 노동력을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무시한 채, 제3세계 젊은이들에게 선진국을 ‘인간 역사의 발전상’이라고 가르친다면 어떻게 될까? 교육은 선진국형 고급 인력을 배출하는데 정작 나라에는 이들을 고용할 3, 4차 산업의 인프라가 없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 인력들은 차라리 선진국으로의 이민을 택한다. 국가와 시장 밖에서 자율적으로 삶을 꾸리는 법을 배우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일리히가 이러한 ‘반(反) 학교’ 사상의 힌트를 얻은 곳은 카리브해의 또 다른 섬나라인 푸에르토리코에서였다. 푸에르토리코는 현재 미국의 반(半) 식민지 처지에 있다. 최근에 그곳에서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모두 미국으로 건너가는 바람에, 정작 섬나라는 텅 비어 버렸다.

미국과 앙숙인 쿠바는 정치적으로 푸에르토리코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교육의 측면에서는 비슷한 난관에 봉착했다. 농업이나 공업, 청소업 같은 현장에서는 쿠바의 젊은이들을 찾기 힘들다. 육체 노동자 중에서도은퇴를 앞둔 노령의 사람들이 많다. 이는 고등학교 교육이나 대학 교육을 받은 쿠바의 젊은이들은 단순 노동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님이나 해외의 친척이 보내주는 돈에 기대어 살면서, 어떻게든 탈출구를 만들어 보려고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의사가 되면 공식적으로 쿠바를 떠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의대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교육이 양질화할수록, 다른 선진국처럼 다양한 삶의 길을 제공해 줄 수 없다는 현 상황에 대한 절망감도 커져간다.

해외로 떠나는 무상교육의 역설


▎아바나의 어린이 놀이터. 건물 벽면에 쿠바의 혁명영웅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쿠바와 푸에르토리코의 유사성은 교육에 대한 사회주의적 상상력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쿠바는 교육과 탐욕의 유착관계를 과감하게 끊는 데 성공했다. 교육의 동기를 사익이 아니라 공익으로 돌리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발전된 산업사회’라는 환상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쿠바의 혁명 정부는 소련이라는 대국을 발전 모델로 삼았고, 자본주의 국가 못지않은 복지 혜택을 그들보다 더 평등하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교육 인력을 육성했다. 위에서 본 것처럼 근대 산업주의가 만들어낸 ‘필요’는 제3세계 국가를 이룰 수 없는 욕구불만의 덫에 빠뜨린다. 이는 쿠바라고 해서 피해갈 수 없다.

[누가 나를 쓸모 없게 하는가]에서 일리히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주의 교육의 “이러한 대안은 기껏해야 상품을 조금 덜 생산하고, 분배를 좀 더 공정하게 하고, 이기심을 조금 덜 생기게 할 뿐”이다. 개인을 국가에 의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자본주의 교육과 다르지 않다. 단지 시장이 국가로 대체됐을 뿐이다. 만약 국가가 무너진다면 교육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한다.

일리히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현재 쿠바에서는 공부에 대한 비전이 사라지고 있다. 선생과 학생이 모두 학교를 탈출하는 ‘탈-교육’ 현상이 그 증거다. 교육과 생계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이 간극을 메워 주던 국가는 능력을 상실했으며, 인터넷의 등장으로 바깥 세계에 대한 동경은 더욱 커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공부에 대한 욕망을 잃고 있다. 학교에 가봤자 인생의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른 나이부터 영어와 외국어를 독학해서 관광업에 뛰어들거나,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택시 운전사로 일한다.

기성세대는 이런 상황을 개탄한다. 유치원부터 박사과정까지 무료로 다닐 수 있는 전무후무한 나라에 살면서, 젊은이들이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외국인 꽁무니나 쫓아다니다니! 그러나 인력 유출 문제에 있어서 가장 책임이 큰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교사다. 교사들은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관광업으로 전업하고 있고, 그 때문에 교육계의 인력난은 통제 불능 상태에 다다랐다. 아바나에서 정말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은 집에서 개인 튜터를 따로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혁명이라는 학(學), 생계라는 습(習)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배우려는 자와 가르치려는 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래가 없는 상황 속에서도 재야의 스승을 찾는 학생과,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가치 있는 수업을 베풀려는 스승이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쿠바에서도 진정한 배움은 제도 바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 삶에 대한 불만족을 심는다면, 그것은 생존 경쟁의 수단으로 전락한 교육만큼이나 서글픈 일이다. 진정한 배움을 위한 교육은 정말 가능하긴 한 걸까?

어쩌면 답은 문제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적 교육에서나 사회주의적 교육에서나, 결국 최종 문제는 ‘생계’라는 현장이다. 그런데 배움의 능력은 생계와 결부될 때 가장 능동적으로 발휘된다. 쿠바처럼 외부와 고립되고 자족해야 하는 환경일수록 이는 더욱 명료해진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밥이고, 집이며, 자유시간을 함께 보낼 이웃과의 관계다. 스마트폰 없이는 살아도 밥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쿠바인들은 이런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선수들이다. 제한된 자원이 이들을 강하게, 또 창조적으로 키워냈다.

오늘날 쿠바에 필요한 인간형은 똑똑한 전문가가 아니라, 농부나 건축가와 같은 훌륭한 생활인이 아닐까? 교육이 길러내야 할 능력은 테크놀로지 개발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구체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와 실천력이 아닐까? 그렇게만 된다면 ‘혁명’은 60년 전과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 당시의 혁명 역시 생활에서 시작된 배움이었다. 쿠바인과 세계인들은 이 사건을 통해 국가적 공생(共生)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갖게 됐다. 그리고 지난 세월은 이 상상력을 생계라는 현장과 연결시키려는 시도였다. 성공은 드물고 실패는 많았으나, 이것은 그 자체로 독특한 교육의 여정이 됐다. 삶의 배움은 성패의 결과가 아니라 두 가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짐으로써 인생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혁명적 질문과, 그 질문에 호응하며 좌충우돌 실험을 하는 생계형 행동. 그 사이에서 학(學)-습(習)이 일어난다.

앞으로 쿠바의 교육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아직 비관하기는 이르다. 지난 60년간 쿠바가 교육의 영역에서 쌓아 온 내공이 한 번에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변화의 가능성은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지혜로 축배를 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민중과 더불어 배우러 가는 것”이라고 체 게바라가 의대생들에게 당부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배움이 무엇인지조차 끊임없이 새로 배워야 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 김해완 - 1993년 생. 십대에 중졸백수를 자처했으나 지금은 평범한 이십대 청년백수다.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둔 후 남산강학원에서 5년 동안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읽고, 쓰고, 같이 사는 법을 익혔다. 2014년 초부터 미국 뉴욕에 떨어져 좌충우돌 여러 나라의 청년과 함께 생활한 후 2017년 9월부터는 쿠바 아바나에 정착해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른 10대의 탄생] [리좀, 나의 삶 나의 글]이 있다.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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