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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섭의 검은대륙 아프리카를 가다(3)] 탐험가 리빙스턴이 사랑한 나라 잠비아 

신성한 ‘빅폴’과 생명수 ‘바오바브’ 신과 인간을 생각하다 

김성섭 작가
아프리카에서도 치안이 가장 안정적이고 분쟁이 없어 평화로운 나라인 잠비아. 신이 만든 자연의 위대함을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와 수천 년의 수명을 가진 바오바브 나무를 보며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특히 빅폴을 세계에 알린 탐험가이자 선교사 리빙스턴의 삶을 통해 평생을 아프리카 오지에 바친 한 인간의 집념과 희생을 생각해 본다.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빅폴의 진면목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108m 높이의 협곡 아래로 분당 5500만 리터의 물 폭탄이 굉음을 내며 쏟아진다. 신의 영역에 들어온 듯한 신비한 느낌을 받는다. / 사진:김성섭
잠비아와 짐바브웨는 뿌리가 같고 빅토리아 폭포가 두 나라 국경 사이에 걸쳐 있기 때문인지 이웃사촌으로 잘 지내고 있다. 두 나라의 정치나 경제 사정은 열악하지만 그래도 치안은 안정적이다. 잠비아가 더 낫다. 잠비아의 정식 국명은 잠비아 공화국(Republic of Zambia)으로 잠베지(Zambezi R.) 강에서 따왔다.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감비아(Republic of Gambia)와 잘 구별해야 한다. 국토 면적은 75만㎢로 한반도의 3배가 넘지만 인구는 1500만 명으로 우리나라의 3분의 1 수준이다. 수도는 인구 200만 명이 살고 있는 루사카(Lusaka). 영 연방제 형태로 유지되다가 1964년 잠비아와 말라위가 독립했고, 1980년 짐바브웨가 독립했다. 잠비아는 영어가 공용어이고 1인당 GDP는 1700달러 정도다. 독립 당시에는 우리나라보다 형편이 조금 더 나았지만 현재는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국기는 천연자원을 상징하는 초록 바탕에 오른쪽에는 자유의 투쟁을 상징하는 빨강과 흑인인 국민을 상징하는 검정, 풍부한 광물자원을 상징하는 주황 등 세 가지 색의 수직 띠가 있다. 삼색 수직 띠 위에 날개를 펴고 있는 독수리는 자유와 고난을 이겨내는 국민의 힘을 상징한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투쟁을 이끌던 통일민족독립당의 기를 기본으로 해 만들어졌는데 1996년 진한 녹색을 밝은 초록으로 수정했다. 탄자니아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중국의 원조를 받았다. 탄자니아편에서도 언급했듯이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예사롭지 않다.


중국이 경제·전력적 요충지로 아프리카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오래됐다. 최근 수년 동안 중국은 아프리카에 대해 점점 더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 3월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아프리카 전력발전 사업에 지원한 돈이 무려 68억 달러나 된다고 한다. 중국의 자금 지원은 잠비아를 비롯한 앙골라, 나이지리아, 우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등 6개국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 확대 배경으로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육·해상 실크로드 인프라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무역을 지배하던 중국이 지금은 일대일로를 통해 세계를 제패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이 일대일로의 핵심 지역인 것이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인 틸러슨이 지난 3월 아프리카 5개국을 순방하면서 “아프리카 각국이 중국 투자를 받아들일 때 주권을 침해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까지 했을 정도다. 잠비아는 아프리카 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나라다. 중국은 잠비아의 동 광산업에 대한 주요 투자국이라고 한다.

한국도 잠비아 진출을 지속적으로 꾀하고 있지만 중국에 비하면 그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사실 잠비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정부에 적극적인 투자 요청을 해왔다. 한국이 유용한 인재를 보내주고 자금을 투자하면 일자리를 얼마든지 줄 수 있다는 것이 잠비아 측의 오랜 요구다. 8년 전 우리나라를 찾은 당시 잠비아의 마이클 사타 대통령은 “20~30년 전에는 한국이 아프리카에 잘 안 알려져 있었고 오히려 북한이 잘 알려져 있었다”면서 “현대와 삼성이 진출해 있지만 잠비아에 대사관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원이 풍부하고 기회가 많은 잠비아에 한국인들이 많이 진출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극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당시 마이클 사타 대통령은 한국에 특별한 애정이 있다고 해 화제가 됐다. 세 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그가 취임 직후 짐바브웨 주재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김치를 보내달라는 일화는 잠비아 교민 사회에 유명하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그렇듯 잠비아 역시 북한과 먼저 인연을 맺었다. 1969년 북한과 수교하고 20여 년이 지난 1990년에야 비로소 우리의 수교국이 됐다. 2014년 서울 용산 하얏트 호텔 앞 독립 건물에 주한 잠비아 대사관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잠비아 현지에는 우리 대사관이 없다. 이웃나라인 주 짐바브웨 한국 대사가 잠비아 대사를 겸하고 있다.

박지성·손흥민 좋아하고 한국산 가전 인기


▎탐험가 리빙스턴이 카누를 타고 거슬러올랐던 잠베지 강에는 현재 관광객을 위한 유람선이 운행되고 있다. ‘위대한 강’을 뜻하는 잠베지의 길이는 한강의 7배나 된다.
한국과의 관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잠비아 관련 소식은 주로 봉사와 기부 선교, 교육 등 분야에서다. 지난해 젊은층에 인기 있는 그룹 하이라이트의 멤버인 가수 윤두준씨가 5년째 잠비아 아동들을 위해 선행 활동을 이어온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져 주위를 훈훈하게 했다. 윤씨는 국제구호단체인 기아대책을 통해 잠비아의 교육센터에 매달 후원금을 내왔다고 한다. 그가 후원하는 교육센터는 잠비아 은돌라 외곽 빈민촌에 위치한 ‘올드레지먼트 커뮤니티 스쿨’이다. 인근에 초등학교가 없어 교육을 받지 못 하는 아이들 300여 명이 이곳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잠비아 청소년들에게 한국의 건국기술을 가르치는 건축기술학교인 ‘찰랑가 건축기술센터’가 문을 열었다. 잠비아 수도 루사카 인근에 설립된 이 학교의 교육 과정은 1년 3학기로 구성돼 있다. 이론과 현장실습을 병행하여 1년 과정을 모두 수료하면 잠비아 정부로부터 건축기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잠비아는 전 세계인의 봉사와 기부를 받고 있는 가난한 나라지만 ‘세계평화지수(Global Peace Index)’는 높은 편이다. 세계평화지수는 정치(갈등, 내전, 쿠데타, 민주화, 인권 등), 군사·외교(전쟁, 분쟁, 군사화, 국제협약, 안보 등), 사회·경제(안전, 안정, 불평등, 빈곤, 삶의 질 등)에 관련된 각종 지표를 면밀히 측정해 산출한다. 한국 연구진이 개발한 것으로 상당히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데이터로 인정받는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잠비아는 41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사회 전반이 안정돼 있고 평화롭다. 한국은 70위다. 순위를 보면 한 나라의 국력과 평화지수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평가 대상이 되는 195개국 중 서유럽 선진국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미국(83위)이나 중국(141위)은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은 130명 정도다. 이 중 적지 않은 교민이 선교활동과 자선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교민 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잠비아인들도 축구를 좋아한다. 한국인이라고 얘기하면 현지인들 중에는 박지성이나 손흥민 선수 얘기를 먼저 꺼내면서 반갑게 맞아주는 이들도 있다. 우리나라와 잠비아 간 축국 국가대표 통산 전적은 2승 2패로 호각세를 이루고 있다.

삼성과 같은 우리 대기업의 상표는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특히 TV와 같은 한국산 가전제품은 인기가 높다. 수도 루사카 뿐 아니라 뒤에서 살펴볼 잠비아의 대표적 휴양지 리빙스톤의 숙소 중 상당수가 한국산 가전제품을 이용하고 있을 정도다. 하루 7000개를 생산한다는 잠비아 최대 가발 공장을 운영하는 이도 한국인이다. 다양한 디자인과 우수한 품질로 유명해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잠비아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입국에 따른 비자비용을 내야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이 좋은 이웃나라인 잠비아와 짐바브웨는 통합비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두 나라 중 어느 곳에서든 60달러를 지불하면 된다. 잠비아의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빅토리아 폭포다. 이 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우선 리빙스톤으로 이동해야 한다. 리빙스톤은 지금은 인구 10만 명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지만 과거에는 잠비아의 수도였다. 리빙스톤은 아프리카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현대 도시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시내에는 리빙스톤 박물관(Livingstone Museum)이 있는데 잠비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선사시대를 엿볼 수 있는 유물은 물론 평생을 아프리카 탐험으로 보낸 리빙스턴(David Livingston, 1813~1873)의 유품까지 전시돼 있다. 잠비아의 대표적 관광지인 리빙스톤이 화제로 떠오른 사건이 지난해 발생했다. 현지에서 들은 얘기다. 지난해 11월 리빙스톤 근처에서 사파리 여행을 하던 유럽 관광객 두 명이 코끼리에게 밟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생생한 사진을 찍기 위해 코끼리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사진 촬영도, 체험도 중요하지만 역시 현지 사정에 밝지 않은 여행자들은 야생을 경외하고 두려워할 줄도 알아야 할 것 같다.

‘천둥 치는 연기’ 빅폴의 위용에 압도되다


▎빅폴이 걸쳐 있는 잠베지와 짐바브웨에는 위대한 탐험가이자 선교사였던 리빙스턴의 동상이 각각 서 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아프리카에 첫발을 내디딘 리빙스턴은 33년 동안 아프리카 곳곳을 탐험하면서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 / 사진:김성섭
이제 본격적으로 빅토리아 폭포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세계 3대 폭포 하면 북미의 나이아가라, 남미의 이과아수 그리고 아프리카의 빅토리아를 꼽는다.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바로 빅토리아 폭포다. 빅토리아를 보기 전까지 설레는 마음에 전날 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겨우 눈을 부치고 일어난 이른 아침 멀리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불이 나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인지, 아니면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분출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며 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많은 사람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누군가 “저게 바로 빅폴입니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현지인들은 빅토리아 폭포(Victoria Falls)를 줄여 ‘빅폴(VicFall)’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빅폴은 장엄하다는 정도의 말로는 부족할 정도의 규모를 자랑한다. 폭이 1.7㎞인데 우기에는 수량이 늘어 2㎞를 넘기도 한다. 잠베지의 강물이 도도하고 유유히 흐르다가 108m 높이의 현무암 협곡 아래로 급격하게 곤두박질치면서 요란스러운 굉음과 물보라를 일으킨다. 하얀 물보라가 500m까지 솟구치고 분당 5500만 의 물폭탄이 쏟아진다. “이건 신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빅폴의 낙차 108m가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스치는 건 나만의 느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빅폴의 장엄함을 보면서 신과 종교 그리고 인간을 돌아보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물보라는 아름답고 선명한 무지개를 연출하며 마치 장대비를 퍼붓고 있는 듯하다. 빅폴 앞에 서니 혼이 나간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냥 경이롭다는 느낌뿐이다. 심장이 멎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현지 원주민들은 빅폴을 ‘모시 오야 툰야(Mosi-oa-Tunya)’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천둥치는 연기’라는 뜻이다. 폭포 주위로 뿌연 물안개와 함께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이 들리기 때문이다.

빅폴 자체도 전 세계인이 보호해야 할 자연유산이지만 그 인근 지역도 인류의 역사를 담고 있는 유적지로 유명하다. 빅폴 인근에서는 약 300만 년 전의 채굴 도구와 무기, 장신구 등이 출토됐다. 이 유물들은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하빌리스’가 살았던 흔적이라고 한다. 또 2000년 전 철기를 사용하던 농민들이 가축을 길렀다는 증거도 발견됐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는 1989년 빅폴과 그 주변 공원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아마도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빅폴을 신의 영역이라고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으리라.

이런 신성한 빅폴이 서구 사회에 알려진 것은 1855년 영국의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1873)에 의해서였다. 당시 리빙스턴은 일행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빅폴에 접근했다고 한다. 그리고 장엄한 폭포를 보고 여왕인 빅토리아(Queen Victoria, 1819~1901)의 이름 따 빅토리아 폭포라고 명명했다. 빅폴이 잠비아와 짐바브웨 접경에 위치하다 보니 두 나라의 폭포 입구에는 리빙스턴 박사의 동상이 각각 세워져 있다. 이번 아프리카 여행 중 하루는 잠비아 쪽에서 그리고 또 하루는 짐바브웨 쪽에서 빅폴을 봤다. 빅폴은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 잠비아 쪽에서 빅폴을 보려면 택시나 셔틀버스 등을 이용해 국립공원으로 이동한 뒤 폭포를 관람하게 된다. 짐바브웨 방향과 비교해 보면 잠비아 쪽에서 바라본 폭포는 일자로 길게 뻗어있는 장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조금 더 정돈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짐바브웨는 비자 발급과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온 뒤 바로 앞쪽 300m 지점에 국립공원 입구가 보이고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빅폴을 감상할 수 있다. 잠비아 쪽에 비해 폭포의 굴곡이 많아 더 자연스러운 광경을 볼 수 있다. 빅폴에는 쌍무지개가 자주 뜨니 운이 좋으면 무지개와 폭포가 만드는 장관도 감상할 수 있다.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본 빅폴은 지상에서 볼 때와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솔직히 빅폴의 장관을 서투른 글 솜씨로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직접 한번 가보라고 권할 밖에는. 가게 되면 눈으로만 보지 말고 가슴으로 봐야 한다. 아마 그 감동은 평생 머릿속에 남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한 가지 팁을 얘기하자면 우기와 건기에 따라 폭포의 수량도 줄었다 늘었다 한다는 사실이다. 빅폴의 위용을 제대로 감상하라면 시기를 잘 맞춰 방문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신이 거꾸로 던진 바오바브의 놀라운 생명력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제일 먼저 만든 나무라는 바오바브는 원주민들에게 신성한 존재다. 현지인들은 이 나무가 신과 인간의 세계를 연결해 준다고 믿었다. 씨앗의 크기는 1㎝ 정도로 작지만 높이 30m에 둘레 10m까지 자란다.
빅폴을 서구 사회에 알린 리빙스턴 박사의 탐험가로서의 집념은 놀라울 따름이다. 리빙스턴은 완고한 스코틀랜드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원래 중국행을 꿈꿨다고 한다. 20대 초반에 중국으로 보내는 선교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지만 1839년 아편전쟁이 터지면서 중국행은 물거품이 됐다. 때마침 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한 목사의 권유로 그는 중국 대신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가 빅폴을 발견한 것은 1853년 탐험대를 이끌고 잠베지 강을 따라 이동하면서다. 탐험 도중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을 듣고 현지 원주민들에게 소리의 정체를 물었다. 원주민들은 하나같이 “악마가 사는 곳”이라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지 못하게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리빙스턴은 고집을 꺾지 않고 카누를 타고 굉음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고 빅폴을 발견하게 됐다. 그는 빅폴 발견 후에도 잠베지 강을 따라 탐험을 계속했고 마침내 강물이 인도양으로 흘러드는 곳까지 나아갔다. 남아프리카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대여정이었다. 영국으로 돌아가 국민적인 영웅 대접을 받은 리빙스턴은 자신의 탐험기를 ‘남아프리카 전도 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했다. 그가 아프리카 땅을 처음 밟은 것은 28세 젊은 나이였다. 그는 이후 33년간 아프리카 탐험을 계속했다.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리빙스턴 박사의 동상은 생각보다는 왜소해 보이지만 연약한 한 인간이 이룬 아프리카에서의 그의 여정은 위대함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리빙스턴은 탐험가로 일반인에게 알려져 있지만 기독교계에서는 아프리카에서 행한 복음 전파자로서의 그의 행적을 더 강조한다.

리빙스턴은 검은 대륙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사자에게 물리고 거머리에게 뜯기며 때로는 수렁에 빠져 죽을 뻔하고 밀림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열병과 이질에 걸려 사경을 헤맨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이런 고난을 당연히 자신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로 생각하고 견뎠다. 그는 발길이 닫는 곳마다 원주민들의 병을 고쳐주고 그들과 우정을 맺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빅폴의 웅장함과 리빙스턴의 생애를 가슴에 새기며 현장을 떠나려 하니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생각 같아서는 한 달 아니 최소 일주일만이라도 이곳에 남아 빅폴을 더 보고 싶었다. 꼭 다시 찾아오리라 다짐하며 긴 여운을 남기고 빅폴을 뒤로했다.

리빙스턴이 카누를 타고 이동한 잠베지는 ‘큰 수로’ 또는 ‘위대한 강’이라는 뜻이다. 앙골라에서 발원해 중간에 빅폴을 만들고 그 뒤로 또 다시 잠비아, 짐바브웨, 보츠와나, 모잠비크, 말라위를 거쳐 아프리카의 남부를 촉촉히 적셔주며 인도양으로 흘러간다. 강의 길이는 무려 2740㎞나 된다. 숫자만으로는 쉽게 가늠이 안 된다. 우리 한강이 405㎞라고 하니 대략 7배 가까이 된다. 현재 잠배지에는 ‘잠베지 럭셔리 선셋 크루즈’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강을 오간다. 호수처럼 맑고 평온해 보이는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무제한 제공되는 맥주나 와인을 마셔가며 강 유역과 석양을 본다. 역시 명품이다. 유람선을 타고 가다 보면 군데군데 모여 있는 하마들이 보인다. 잠자코 있는 모습에 순간 바위덩어리로 착각할 뻔 하다가도 한 번씩 하품 하는 모습에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바로 그 하마 무리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유람선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기고 다음 여정을 위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속도를 높이기 시작할 무렵 일행 중 누군가가 “와~ 바오바브다”라고 소리를 지른다. 눈을 돌려보니 거대한 나무가 저만치 서 있다. 바오바브 나무(Baobab Tree, Adansonia)는 바오바브 속에 속하는 8종의 나무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아프리카 전설에 의하면 바오바브 나무는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제일 먼저 만든 나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무의 특이한 형태가 더욱 신비감을 더한다. 원주민들은 이 나무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시켜 영혼을 다스린다고 신성시 해 함부로 베지 않는다고 한다.

바오바브는 나무의 줄기가 윗부분에 몰려 있어 마치 뿌리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독특한 모양 때문에 신이 실수해 나무를 거꾸로 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프랑스의 식물학자이자 탐험가인 M. 아단송(Michel Adanson, 1727~1806)이 이름 붙인 이 나무는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등장해 더욱 유명하다. 잎은 5~7개의 작은 잎으로 된 손바닥 모양의 겹잎이며 꽃은 흰색이고 열매의 모습이 쥐가 달린 것 같아 죽은쥐나무(Dead Rat Tree)라고도 한단다. 열매의 속이 부드러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원숭이빵나무라고도 한다. 씨는 그 크기가 1㎝도 안 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오래 사는 식물 중 하나다. 높이 30m에 둘레가 10m 정도로 수령은 5000년 이상으로 추정한다. 6000년쯤 전 아프리카 땅에서 생겨난 바오바브가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물이 부족하고 건조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광합성 때 물을 아주 조금씩 사용하고 기공도 아주 조금씩 열어 천천히 오래 자라기 때문이란다. 특히 바오바브는 12만 이상의 물을 저장할 수 있어 그야말로 ‘수분 저장고’라고 불린다. 물을 찾아 끝없이 뻗어 나가는 뿌리가 있어 오랜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다. 진짜 ‘뿌리 깊은 나무’가 바로 이곳 아프리카 땅에서 자라고 있는 셈이다.

깨끗한 물에 목말라하는 잠비아인들

[어린왕자]에서도 바로 이 뿌리 얘기가 나온다. 무서운 씨앗 하나가 작은 별을 파고 들어간다. 씨앗은 나무로 자라나고 그 뿌리가 뻗어 별에 구멍을 뚫는다. 생텍쥐베리는 바오바브 뿌리의 무서운 생명력을 차용해 독자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 바오바브는 그 거대함과 기이한 모양 외에도 인간에게 확실히 진기한 생명체로 다가온다. 오래된 바오바브 나무는 줄기 가운데가 썩어서 속에 공간이 생기는데 워낙 크다 보니 이 공간을 곡식창고나 감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매점, 와인바 심지어 여관으로 이용하는 예도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맛보게 한다. 예전에는 나무 공간에 사람이 살기도 하고 죽은 사람의 시신을 매장하기도 했단다.

잠비아뿐 아니라 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의 큰 섬 마다 가스카르와 호주 등이 바오바브의 고향이지만 국내에서도 이 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 경기도 포천의 국립수목원, 제주도 여미지 식물원에 가면 이국적인 바오바브 나무를 감상할 수 있다. 여행기를 쓰면서 기록을 찾아보니 지난해 7월 국립생태원에서 자라는 바오바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꽃을 피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원산지에서도 수십 년을 자라야 겨우 꽃이 핀다고 하니 국내에서 바오바브의 꽃을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아프리카에서는 가는 곳마다 신비한 생명체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지구별에 대한 경외감을 가장 많이 느끼게 하는 대륙이 바로 아프리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바오바브의 거짓말 같은 수분 저장 능력을 생각하면 정작 잠비아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나이 어린 아이들의 힘겨운 생활상이 역설적으로 떠오른다. 잠비아인들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확산한 콜레라로 많은 희생을 치르고 있다. 수도 루사카에서만 6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콜레라는 깨끗한 물과 음식만 잘 섭취해도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다. 특히 매일 먹는 물이 문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잠비아 인구 중 3분의 1은 깨끗한 물에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란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은 콜레라 감염에 더 취약하다. 많은 잠비아 내 학교에는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마실 수 있는 식수시설이 없어 더 문제가 크다고 한다. 깨끗한 물을 저장해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오는 바오바브에 비해 인간은 여전히 이 척박한 땅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숙소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생명의 신비함을 눈앞에서 보고나니 문뜩 내가 살아온 인생 여정을 돌아보게 된다. 30년을 훌쩍 넘는 세월을 경찰 공무원으로서 치안 일선에서 보냈다. 땀과 눈물이 밴 제복을 벗어야 한다니 허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또 남은 생애를 의미 있게 살기 위한 고민 속에서 결정한 것이 이번 아프리카 여행이었다. 경찰에서의 내 마지막 보직은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이었다. 직업의식의 발로였을까.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기아 아동들을 도울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고민해 왔다. 그냥 국제 구호단체에 몇 푼의 기부금을 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하는 생각이 여행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공항에서 여행객의 큼지막한 가방을 끌고 가는 이름 모를 작은 흑인 아이, 킬리만자로 산행에 동행하던 로컬가이드의 아들 요셉 등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가슴 한 편에 남아있다. 아프리카에서 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내 남은 인생을 채워줄 아프리카 봉사활동에 대한 고민을 안고 이웃나라인 짐바브웨로 향한다.

※ 김성섭 - 1979년 순경으로 입직해 2017년 6월, 37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퇴직했다. 경남 하동서장, 파주서장, 서울청 홍보담당관, 서울 중부서장을 거쳐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을 지냈다. 역사에 해박한 필자는 파주서장 시절 파주 경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박물관 개관에 힘써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7년 12월 과천서장을 끝으로 퇴직한 구본숙 전 총경과 부부 사이로 경찰 역사상 첫 순경 출신 부부 총경이라는 타이틀이 있다. 현재 아프리카 여행기 책 출판을 준비하면서 아프리카 현지에서 자원봉사 활동 계획도 세웠다.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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