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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사랑학개론(6)] 보마르셰의 ‘피가로 3부작’ 

프랑스혁명 발발에 일조한 ‘막장 드라마’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상류층·귀족의 퇴폐적 행태와 타락 고발… 작가 보마르셰는 신분상승 욕구 강한 기회주의자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한 장면.
1826년 ‘풍자 전문’ 주간지로 시작된(1866년에 일간지로 바뀜) 프랑스의 중도우파 일간지 [르피가로(Le Figaro)]는 중도 좌파 일간지 [르몽드]와 함께 프랑스 언론의 자존심이다. 왜 이름이 ‘르피가로’일까. 보마르셰의 희곡 [피가로의 결혼]에 대한 오마주다. 피가로는 특권에 대한 비판의 자유, 신분 타파를 위한 혁명을 상징한다.

사랑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희비극인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게 사랑 체험이다. 그런데 개인의 사랑 체험은 정치적·사회적 구조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결혼이라는 ‘사랑의 제도화’가 그렇다. 어떤 사랑은 막장 드라마다.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고 배다른 남매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이나 결혼이 처한 사회구조 자체가 막장인 경우도 있다.

피에르오귀스탱 카롱 드 보마르셰(1732~1799)가 쓴 ‘피가로 3부작’은 막장 드라마 3부작이다. 말이 안 되는 사회의 막장 구조와 맞선 저항적인 희곡이기도 하다. ‘피가로 3부작’은 (1) [세비야의 이발사](1773년 집필 완료, 1775 초연), (2) [피가로의 결혼](1778년 집필 완료, 1784 초연), (3) [죄지은 어머니](1792년 집필 완료 및 초연)로 구성된다. 오늘의 기준으로는 아니더라도 당시 기준으로는 세 작품 모두 래디컬(radical)하다. 래디컬의 가장 적절한 우리말 번역은 ‘막장’이나 ‘끝장’일 수도 있다.

피가로는 계략 잘 꾸미는 꾀돌이


▎피가로의 입상. 장 바르나베 아미(1839~1907)의 작품이다. / 사진:김환영
세 작품 모두 피가로가 주인공이다. 모두 결혼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결혼에 부정적인 독자라면, 세 작품 모두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비극이겠지만.)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알마비바(Almaviva, 생생한 영혼) 백작은 로진에게 첫눈에 반한다. 알마비바에게는 로진의 후견인인 바르톨로라는 라이벌이 있다. 피가로의 맹활약으로 둘은 결혼에 골인한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바르톨로는 피가로의 생부, 피가로와 결혼을 꿈꾸는 나이든 하녀 마르셀린은 피가로의 생모로 밝혀진다.)

결혼 3년 후 상황이 펼쳐지는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은 백작부인 로진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 한눈을 판다. 백작은 피가로의 약혼녀인 하녀 쉬잔에게 눈독을 들인다. [세비야의 이발사]에 나온 알마비바 백작은 순수한 사랑을 원했기에 로진에게 자신이 백작이라는 것을 숨기고 접근했다. 그러던 그가 바람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부하이자 친구인 피가로를 배신하고 쉬잔을 넘본다. 쉬잔은 여자의 육감으로 백작이 자신을 어떻게 해보려고 한다는 것을 직감하고 피가로에게 백작의 꿍꿍이를 알린다. 피가로는 처음엔 백작의 배신을 믿지 못한다. 피가로는 쉬잔·백작부인과 연대해 계략으로 결혼 반대 세력에 대항한다. 우여곡절에 끝에 피가로와 쉬잔은 혼례를 치른다.

1784년 코메디프랑세즈 극장에서 [피가로의 결혼]의 첫 막이 올랐을 때 밀려든 인파 때문에 3명의 사람이 압사했다. 민중뿐만 아니라 귀족들도 이 삼각관계 이야기에 열광했다. 어쩌면 귀족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제 무덤을 파고 있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루소(1712~1778)와 볼테르(1694~1778)의 저작과 더불어 프랑스혁명(1789~1799) 발발의 배경을 장악한 3대 문헌이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를 다스리던 루이 16세(1754~1793)는 꽉 막힌 군주는 아니었다. 재정 개혁과 입헌 군주제를 모색했지만 미적거리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피가로의 결혼]의 상연을 허가하는 데도 수 년을 망설였다. 1778년 완성된 [피가로의 결혼]이 왕의 최종 허락을 얻은 것은 6년 후였다. 시민극이 된 [피가로의 결혼] 초연 후 5년 만에 프랑스혁명이 발발했다.

신분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였다. 적당히 민중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앙시앵레짐(ancien regime, 구체제)의 안정을 위해 필요했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도 상연 허가를 종용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피가로라는 가상 인물에게는 통제하기 어려운 폭발력이 있었다. 피가로는 상류층·귀족의 퇴폐적 행태와 타락을 고발했다. 피가로는 알마비바 백작에게 대놓고 화를 내기도 한다. 고분고분하지 않다. 또 피가로는 백작보다 더 똑똑하다. 계략을 잘 꾸미는 꾀돌이다. 하인은 하인답고 주인은 주인다운 게 서로에게 편한지도 모른다. 피가로는 능력으로 따지면 상전 같은 하인이다.

[피가로의 결혼] 5막 3장에서 피가로는 일장연설 같은 긴 독백을 한다. 핵심은 신분 세습에 대한 비판이다. 이런 식이다. 당신네들 귀족들은 자신이 위대한 천재인 줄 안다. 당신들이 향유하는 재산이나 지위를 감안하면 콧대가 높을 만도 하다. 하지만 당신들은 당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누릴 자격을 얻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응애’ 하고 태어난 것 밖에 더 있는가. 귀족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을 제외하곤 당신들은 매우 평범한 인간들이다. 루이 16세는 “이 연극이 위험이 되지 않으려면, 바스티유 감옥을 허물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폴레옹은 [피가로의 결혼]에 대해 “혁명 이전에 이미 실행에 옮겨진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피가로의 결혼]은 검열관들의 눈을 의식한 자기 검열과 타협의 산물이다. 작품의 무대는 프랑스가 아니라 스페인 세비야 근처에 있는 아과스프레스카스 성(城)이다.

모차르트(1756~1791)가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을 바탕으로 작곡해 1786년 빈 궁정극장에서 초연한 동명의 희가극(喜歌劇)도 원작의 운명과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검열에 통과하기 위해 계급 간의 갈등 요소를 최대한 배제했다. 그럼에도 허가가 쉽게 나지는 않았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1741~1790)이 신분제 개혁에 나섰기에 대폭 순화된 형태로는 공연이 가능했다.

보마르셰(1732~1799)는 박지원(朴趾源, 1737~1805)과 동시대 인물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박지원의 작품인 [양반전] [허생전]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양반전(兩班傳): 박지원이 지은 한문 소설. 가난한 양반이 관아에 진 빚을 갚기 위하여 고을 원의 배석하에 천한 신분의 부자에게 양반 신분을 팔려고 하였으나 양반의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부자가 양반 신분을 사양하였다는 내용이다. 양반 계급의 허위와 부패를 폭로하였으며 실학사상을 고취하였다.

-허생전(許生傳): 조선 정조 때 박지원이 지은 한문 단편 소설. 허생의 상행위를 통하여 당시 허약한 국가 경제를 비판하고, 양반의 무능과 허위의식을 풍자한 작품으로, [열하일기]의 [옥갑야화(玉匣夜話)]에 실려 있다.

“양반 계급의 허위와 부패를 폭로” “양반의 무능과 허위의식을 풍자”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18세기 조선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지배 계급에 대한 비판의식이 고조된 나라였다. 보마르셰는 영조(1694~1776), 정조(1752~1800)와 동시대의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은 영·정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춘향전]을 이렇게 소개한다.

-춘향전(春香傳): 조선 시대의 판소리계 소설. 주인공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당시 사회적 특권 계급의 횡포를 고발하고 춘향의 정절을 찬양하면서, 천민의 신분 상승 욕구도 나타내었다. 작가와 연대는 알 수 없다.

프랑스에 보마르셰가 있었다면 조선에는 박지원이 있었다. 프랑스에 피가로가 있다면 조선에는 [춘향전]의 방자가 있다. 알마비바 백작이 피가로의 놀림거리였던 것처럼 이도령은 방자의 ‘밥’이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같은 하인인 피가로와 쉬잔이 맺어진 것처럼 방자는 향단의 짝이 된다.

작품의 쟁점 중 하나는 초야권(初夜權)


▎1. 장마르크 나티에(1685~1766)가 그린 보마르셰 초상화. / 2. [피가로의 결혼] 5막의 한 장면. / 3. [피가로의 결혼] 2막의 한 장면.
[피가로의 결혼]의 쟁점 중 하나는 초야권(初夜權)이다. 초야권에 대해 표준국어대사전은 “서민이 결혼할 때에 추장, 영주, 승려 등이 신랑보다 먼저 신부와 잠자리를 같이할 수 있는 권리. 미개 사회나 봉건 시대의 일부 지역에서 볼 수 있다”라고 정의한다. 초야권의 실제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춘향전]의 청중을 분노하게 만드는 악습은 변사또가 춘향에게 요구하는 수청(守廳: 아녀자나 기생이 높은 벼슬아치에게 몸을 바쳐 시중을 들던 일)이다. 초야권이나 수청이나 말이 안 된다. 둘 다 권력 남용이다. 프랑스에는 대 혁명이 일어났고 조선에서는 혁명이 없었다. 혁명이라는 차이만 있었을 뿐 어쩌면 역사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피가로 3부작’의 저자인 피에르 오귀스탱 카롱 드 보마르셰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보마르셰는 ‘폴리매스(博識家·polymath: 지식이 넓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였다. 보마르셰는 발명가·사업가·스파이·연주가·작곡가·외교관·원예가였다.

보마르셰는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13세부터 아버지에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손재주가 좋았다. 1753년 21세에 탈진기(脫進機)를 발명했다. 탈진기는 시계 톱니바퀴의 회전 속도를 고르게 하는 장치다. 루이 15세의 공주 4명에게는 궁정에 출입하며 하프를 가르쳤다. 보마르셰는 신분상승과 성공에 대한 욕구가 강한 기회주의자였다. 보마르셰는 돈을 주고 귀족처럼 이름에 드(de)를 붙일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는 재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연줄도 필요하고 아부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또 이를 실천했다.

신(神)이라든가 우주의 신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돈벌이에 관심이 많았던 보마르셰는 ‘어리석게’ 혁명과 진보에 참여해 한 몫 보려고 했다. 그는 ‘쌍둥이 혁명’이라고 불리는 미국혁명, 프랑스혁명에 기여했다. 1776년 겨울 미국혁명은 영국 측의 승리로 기운 상태였다. 전세를 역전시킨 것은 보마르셰의 기여였다. 보마르셰는 1777년 2만 5000명이 사용할 수 있는 군수품을 미국 독립군에 전달했다. 2억100만 달러어치였다. 부족한 돈은 꿔서 마련했다. 미국혁명의 향방에 결정적인 새러토가 전투에서 독립군이 승리할 수 있었다. 1778년 프랑스가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하기 전부터 보마르셰는 개인 자격으로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미국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는 보마르셰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1835년 미국은 보마르셰가 받아야 할 돈의 35%를 그의 상속인들에게 지급했다. 보마르셰는 또 프랑스 계몽기 사상가 볼테르(1694~1778)의 사망 직후 [볼테르 전집] 출간에 착수했다. 프랑스혁명에 크게 기여했지만, 보마르셰의 세상이 온 것은 아니었다. 우선 그가 돈이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또 보마르셰는 혁명이 자유를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부를 비판하다 1792년 8월에는 옥에 갇히기까지 했다. 원치 않은 망명 생활을 하다가 1796년 집정관 시대 프랑스로 돌아와 사망했다.

사랑과 결혼 문제에 질문을 던지다


▎러시아 풍경화가 디미트리에비치 폴레노프(1844~1927)가 그린 ‘초야권’. / 사진:김환영
[세비야의 이발사] 1막 2장에서 피가로는 “나는 모든 일에 서둘러 웃는다. 어쩔 수 없이 울어야 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피가로의 결혼] 못지않게 혁명을 잉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세비야의 이발사]의 소극적·방어적 웃음은 [피가로의 결혼]에서 적극적·공세적으로 바뀐다. 피가로는 귀족들을 조롱한다. 정신 없는 일이 하루 동안 벌어지는 [피가로의 결혼]은 사회 체제뿐만 아니라 사랑과 결혼의 문제에 질문을 던진다.

[피가로의 결혼] 1막 9장에서 피가로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진지한 일 중에서 결혼이 가장 우스꽝스럽다.” [피가로의 결혼]에 나타난 결혼관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모든 극중 인물들이 결혼하려고 난리다. 어쩌면 그게 18세기와 21세기가 다른 점이다. 사랑과 결혼을 방해하는 것, 원하지 않는 사랑과 결혼을 강요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이 사랑도 결혼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일까. 어쩌면 ‘본능’과 ‘비용’이 충돌해 ‘비용’이 이기기 때문이다.

[피가로의 결혼] 2막 21장에는 “목 마르지 않아도 마시고 때를 가리지 않고 사랑하는 것 말고는 우리와 다른 짐승들을 구분할 게 없다”는 말이 나온다. 사랑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본능이다. 하지만 비용이 크다. 4막 1장에 “사랑에 관한 한 지나친 것도 충분하지 않다”라고 돼 있다.

‘피가로 3부작’은 속이려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가 다투는 사랑의 전쟁터이기도 하다. 불륜의 가능성은 불신을 낳는다.

[피가로의 결혼]의 시점에서 20여 년이 흐른 뒤를 무대로 삼은 [죄지은 어머니]에서 백작과 백작부인은 급기야 불륜에 빠져 각기 딸 플로레스틴과 아들 레옹을 본다. 백작부인의 상대는 [피가로의 결혼]에도 나오는 미소년 시동 셰뤼뱅이다. 둘은 하룻밤을 함께했다. 백작부인이 후회하며 “다시는 안 보겠다”고 하자 셰뤼뱅은 전쟁터로 떠나 치명상을 입는다. 문제는 플로레스틴과 레옹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 피가로는 이번에도 기기묘묘한 수를 써서 둘이 결혼할 수 있는 길을 튼다. [죄지은 어머니]에는 얄궂게도 ‘모럴 드라마(Drame Moral)’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 김환영 -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등이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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