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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유행가에서 길어 올린 한국인의 마음 

‘사랑 타령’에도 공식이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1923년 첫 대중가요 ‘희망가’부터 방탄소년단까지…계량언어학 적용, 대중가요의 ‘보편 형식’ 분석해 눈길

‘사회 변동기의 대중가요와 대중 정서의 상관성 연구’(하춘화, 성균관대 박사논문, 2006),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대중가요의 특성’(이자연, 건국대 석사논문, 2017). 이렇게 현직 가수가 대중가요를 풀어낸 논문을 써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중가요에 비춰 사회상을 조명한 첫 단행본은 음악평론가 이영미가 쓴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황금가지, 2002)다. 국어학자가 대중가요 노랫말을 연구해 펴낸 단행본은 한성우 인하대 국문과 교수의 [노래의 언어]가 사실상 처음이다.

1923년 ‘희망가’부터 2016년 나온 노래들까지 2만6000여 곡의 단어와 문장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어문학적으로 분석했다. 노래방 책이 큰 도움이 됐다. 먼저 궁금한 건 노랫말에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다. 아무래도 ‘사랑’이다. 제목에 ‘사랑’이 적힌 노래는 전체의 8.99%, 가사에라도 들어간 노래는 65.22%에 이른다. 명사(名詞) 가운데선 압도적이다. 범위를 넓혀 인칭대명사까지 살피면 ‘나’(22만 9000여 회)와 ‘너’(12만8000여 회) 순이다.

결국 대중가요의 일반적인 맥락은 ‘내가 너에게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다. 어떤 사랑일까? 나훈아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 했고 윤수일은 “사랑만은 않겠어요”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목에서 ‘사랑’을 꾸미는 말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말은 전체의 3분의 1을 넘지 않았다. 처음으로 사랑이 등장한 대중가요, 윤심덕의 ‘사(死)의 찬미’도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중가요의 가장 일반적인 맥락은 ‘내가 너에게 들려주는 슬프고 아픈 사랑 이야기’가 되겠다.

노랫말에 영어(英語)가 흔한 현실을 국어학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한 교수는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100개 안팎 한정된 숫자의 단어들로 ‘돌려막고’ 있기 때문에 우리말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것. 국어학자가 그렇다고 하니 좀 안심이 되기도 한다.

2만6000여 곡 가운데 한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은 뭘까? 이번 평양 공연으로도 화제가 된 강산에의 ‘라구요’를 꼽았다. 노랫말에 여러 세대의 현실을 두루 담아내면서 형식적으로는 “~라구요”를 통해 깊은 여운을 남겼다는 게 이유다. 노래 구절만 따지면 최백호가 부른 ‘낭만에 대하여’에서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를 꼽는다. 한 교수는 1969년생, 반백 살 나이를 맞았기 때문일까?

책에서 한 교수가 방탄소년단의 ‘팔도강산’ 노랫말을 칭찬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투리가 다양해도 서로 잘 통한다는 걸 보여 줬다는 게 요지다. “마마 머라카노! 마마 머라카노! 서울 강원부터 경상도 충청도부터 전라도, 우리가 와불따고 전하랑께. 결국 같은 한국말들 올려다봐 이렇게 마주한 같은 하늘 살짝 오글거리지만 전부 다 잘났어 말 다 통하잖아.”

국어학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노래의 언어]는 그런 선입견을 무너뜨린다. 국어학이 친근한 주제와 만나 대중성을 갖춘 인문교양서가 됐다. 한 교수는 2016년 [우리 음식의 언어]에 이은 이번 책으로 ‘믿고 읽는 교양서’ 저자 반열에 올랐다. 다음으로 내놓을 예정이라는 ‘광고의 언어’가 벌써 기대되는 이유다.

※ 표정훈 - 출판평론가, 칼럼니스트.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특임교수를 지냈고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에서 강의한다. [탐서주의자의 책] [철학을 켜다] 등 저서와 [중국의 자유 전통] [젠틀 매드니스] 등 번역서를 냈다.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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