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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화해모드 경제특집 | 입체분석] 김정은의 ‘경제개선’ 본심 개혁·개방의 행로 

美 도움으로 국제금융기구 가입 막대한 외자 지원받아 경제특구 완성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김정은, 집권 초부터 ‘세계적 추세’ 내세우며 개혁·개방 전략 준비…2000년 미·일 반대로 무산된 아시아개발은행 가입 추진도 재개할 가능성 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면 북한을 한국 수준의 번영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언급해 화제가 됐다. 5월 9일 폼페이오와 김정은 위원장이 접견을 마친 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를 하는 과감한 조치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우리의 우방인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

5월 11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직후 열린 공동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북한에 평화와 번영으로 가득한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날 발언은 전 세계로 타전됐다. 1, 2차 평양 방문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눈 대화가 상당히 성공적이었음을 재확인하는 발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또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점치는 전문가 분석도 있었다. 폼페이오가 북한의 비핵화 대가로 과거와 같은 수준의 단순한 대북 지원이 아닌 북한의 ‘번영(prosperity)’을 꺼내든 것, 특히 구체적으로 ‘한국과 같은 수준’ 언급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2016년 기준으로 북한은 국내총생산(GDP) 310억 달러(추산)로 세계 113위다. 한국의 GDP는 1조5380억 달러로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를 갖고 있다. 남북한 간의 경제 규모 차이는 무려 50배가 넘는다. 북한의 비핵화 이후 남한 수준의 번영을 언급한 폼페이오의 발언이 과연 현실성 있느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해 내면 파격적 경제 지원과 적극적 대북 투자가 이뤄질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은 분명하다. 이틀 후인 13일(현지시간) 폼페이오는 [폭스뉴스]에 출연해 이를 더 구체화하는 발언을 했다.


▎대북제재가 풀리면 특구와 개발구를 중심으로 해외 자본 유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북한 원산 지역에 조성 중인 대규모 종합 관광단지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건설 현장 모습. / 사진:연합뉴스
“민간 부문 미국인들이 들어가서 에너지 설비 구축을 도울 것이다. 북한에는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하다. 인프라 개발과 북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위해 그들과 협력할 것이다. 미국 농업 역량이 북한을 지원할 것이다. 그들이 고기를 먹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폼페이오의 이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벌써 ‘북한판 마셜플랜’ 가능성을 거론한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행할 경우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경제 부흥을 위해 실시했던 ‘마셜 플랜’과 같은 대규모 경제 지원책을 북한에 펼칠 계획을 상정한 언급이라는 것이다. 최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두 차례의 방북을 통해 비핵화 대가로 국제사회의 경제 지원 문제 등을 김 위원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전달했을 가능성도 크다. 경제 지원은 과거와 같은 원조 형태를 뛰어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설사 경제 지원 문제가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체제 안정 보장과 북·미 국교 수립은 북한이 원하는 대규모 해외 자본 유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북한의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의미한다.

대북제재를 이끌고 있는 미국은 현재 10여 개의 제재 법안을 통해 북한에 대한 외국의 경제 지원을 봉쇄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 성공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는 당연한 수순이 될 전망이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미 정상회담 직후) 미국이 제재를 완화 혹은 해제시켜주는 것만으로도 북한 경제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지난해 11월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재지정한 테러지원국을 해제하면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같은 국제금융기관의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된다. 북한은 2000년 8월 ADB의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지만 국제테러지원국이라며 미국과 일본이 반대해 무산됐다. ADB는 회원국에 한해 자금을 지원한다.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 후 적절한 시점에 미국이 제재를 풀어주고 북한의 국제금융기관 가입도 주선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대외개방의 핵심 창구로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를 20곳 넘게 지정해 개발에 나선 상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폼페이오의 발언은) 단기적으로는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지원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국제금융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또 “북한에 대한 미국 기업의 직접 투자 여부를 떠나 미 정부가 전 세계를 향해 북한에 투자를 해도 좋다는 신호만 보내도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정부의 이러한 메시지는 일본과 유럽 국가의 많은 기업에 북한 투자에 적극 나서도 된다는 안정적 담보물이 될 수 있다. 비핵화 로드맵이 얼마나 압축적이고 빠르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북한의 본격적인 개혁·개방 시기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주체’와 ‘우리식’ 대신 ‘세계적 추세’ 내세워


▎1990년을 전후해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자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은 탄력을 받았다. 1995년 정식으로 양국 간 수교가 이뤄지자 외국 자본이 물밀듯 들어오며 베트남 경제는 이후 매년 6~8%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베트남 수도 호찌민시의 한 바에서 베트남 젊은이들과 관광객이 어울려 야경을 즐기며 술을 마시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오래전부터 개혁·개방의 전략적 시기를 엿보고 있었다. 준비 작업은 집권 초인 2012년 시작됐다. 대북제재에 견디다 못 해 핵을 포기하고 대화와 개방으로 노선을 수정한 것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정일이 사망(2011년 12월)한 지 1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2012년 1월 중순,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노동당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지식기반 경제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의 경제개혁 사례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외신을 통해 공개적으로 최고지도자의 이름을 앞세워 ‘경제개혁’을 언급한 것은 김정은 시대의 변화를 예고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집권 초부터 공개 석상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세계적 추세’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한다. 북한 전문가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 장관)의 얘기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개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개혁하고 투자 유치가 용이한 체제로 체질을 바꿔 왔다. 김정일 시대에는 우리식 제일주의가 강조됐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교육·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 발전 추세를 내세웠다. 다시 말하면 국제 표준을 지향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현지지도 때 ‘주체’와 ‘우리식’ 대신에 ‘세계적 추세’를 내세운 것은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된다. 2012년 4월 말 노동당, 경제기관, 근로단체 간부들을 상대로 한 담화에서 김 위원장은 “국토관리와 환경보호 부문에도 세계적인 발전 추세와 다른 나라들의 선진적이고 발전된 기술들을 받아들일 것이 많다”며 외국 및 국제기구와 과학기술 교류를 강조했다. 3개월 후 현지지도차 평양 순안공항 개선사업 현장을 방문한 김 위원장은 “항공역(공항)의 이용률이 높아지고 항공역은 하나의 위성도시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세계 여러 나라의 공항 실태를 상세히 언급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이번에는 평양의 한 양말공장 현지지도에서도 ‘세계적 추세’ 언급은 이어졌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제품의 질을 높이며 소비자의 기호와 심리, 미감에 맞으면서도 세계적 추세에 맞게 양말의 색깔과 문양, 상표도안도 따라 세워야 한다”고 했다. 주로 경제 분야에서 언급된 ‘세계적 추세’라는 표현은 이후 스포츠·문화 영역으로까지 확대돼 나갔다. 이번 평창 겨울올림픽 직후 김 위원장은 북한을 방문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만나 “겨울철 체육 종목을 비롯한 여러 체육 종목을 세계적 추세에 맞게 더욱 발전시키고 치켜세우는 데서 IOC와 긴밀한 연계와 훌륭한 협조를 기대한다”고 했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외국과의 교류를 더 넓혀 나가겠다는 얘기다.

북한의 개혁·개방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것인지도 관심사다. 노동당 1당 독재체제인 북한은 경제 발전을 위해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 개방에 성공한 ‘선배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을 오랜 기간 참고해 왔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말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의 길을 빨리 걸었어야 했는데”라고 아쉬움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4월 중순 중국 예술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한 쑹타오 중국 대외연락부장에게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마침 올해는 덩샤오핑 주도로 중국 공산당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 40주년이다.

중국은 1978년 국영기업이 경제적 이윤을 목표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개혁하고, 1979년 중외합자경영기업법을 제정해 대외 개방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선전·주하이·산터우·샤먼 등 동남부 해안 지역 일대에 수출가공구를 설치하고 이를 경제특구로 발전시켰다. 공산주의 계획경제 체제의 특징인 가격통제도 1979년부터 완화했다.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20여 곳의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를 지정하고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해 관련 법령과 제도를 손질해 온 것과 비슷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김정은 위원장은 스위스에서 유학하고, 유럽 및 일본에도 가족여행을 함으로써 북한과 외부 세계를 비교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개혁·개방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프랑스 유학 및 장기 체류를 통해 자본주의를 직접 체험하고 나중에 최고지도자가 되어 개혁·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중국의 덩샤오핑, 장쩌민과 같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 닮은 김 위원장의 지시


▎지난 3월 25~28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김정은 위원장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의 길을 빨리 걷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1979년 1월 미국과 국교 수립 직후 덩샤오핑은 중국 최고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 포드 자동차와 보잉사 등 주요 기업체를 돌아보며 서방의 투자를 독려했다. 카터 대통령과 덩샤오핑이 백악관에서 3개 협정에 서명한 뒤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은 김정은 집권 초기인 2012년 1월 28일 김 위원장의 발언록을 입수해 보도한 적이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당 간부들에게 경제개혁을 위해 중국의 방법이든 러시아나 일본의 방법이든 활용할 만한 방식이 있다면 도입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마치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흑묘백묘론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이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주장하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최근엔 향후 개방 시나리오로 베트남 모델도 자주 거론된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쇄신)를 통해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준비가 이뤄졌다. 이후 1992년 헌법과 외국인투자법 개정을 통해 외국 자본을 끌어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개방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였다. 중국은 1979년, 베트남은 1995년 미국과 수교를 맺었다. 양국은 미국과 수교 이후 본격적인 외자 유치와 외국 기업 투자가 활성화됐다.

특히 베트남의 경제 발전 과정을 북한이 눈여겨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베트남과 북한은 미국과의 전쟁 후 적대 관계가 오래 지속됐고 경제 제재를 받아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1975년 4월 베트남이 공산화한 이후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됐다.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했다. 양국 간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베트남전쟁 때 실종된 미군 문제를 양국이 협조해 풀기로 한 것이 단초가 됐다. 베트남이 성의를 보이자 미국은 경제 제재 조치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다 1994년에 모든 제재 조치를 해제했다. 국제금융기구가 베트남에 금융 지원을 시작한 것도 제재 조치가 단계적으로 풀리면서다. 그리고 1995년 7월 양국은 대사급 수교를 맺으며 관계를 정상화했다. 베트남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가입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국제 무대에 ‘정상국가’로 데뷔한 것이다.

수교 후 미국과 베트남의 경제 협력도 가시화됐다. 2000년 7월 양국 간 무역협정이 체결됐다. 그해 11월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이후 베트남의 경제는 성장을 거듭했다. 도이모이 도입 첫해 260억 달러에 불과하던 베트남 GDP는 30여 년이 지난 현재 2000억 달러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시장경제 도입으로 양극화 심화와 관료집단 부패 등의 후유증이 나타났지만, 결과적으로 공산당에 대한 지지기반이 탄탄해졌다는 점도 북한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부분이다.

북한은 개방 전 베트남의 경제 상황도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베트남이 도이모이를 시작할 당시 1인당 GDP는 1000달러가 채 안됐다. 현재 북한의 1인당 GDP는 1300달러 안팎으로 추정된다. 현재 북한의 국내총생산도 300억 달러가 조금 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하고 있다. 베트남이 도이모이를 추진할 때와 큰 차이가 없다. 베트남은 미국과 국교 수립 후 현재까지 연평균 6~8%대의 눈부신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개방이 추진되면 북한은 베트남 이상의 경제성장률도 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북한의 노동력은 문맹률이 낮다. 근면하고 숙련된 기술력도 갖고 있다. 외국 기업이 골치 아파할 노동조합도 없다. 경공업 분야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고 IT 등 분야에 투입될 고급 인력도 수만 명이나 된다. 희귀 광물자원은 말할 것도 없다. 지정학적으로 동북아 물류의 중심기지로도 손색이 없다. 이런 여러 요소에 한국을 비롯한 미국·유럽의 자본과 기술력이 더해지면 북한은 고도 경제성장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다.”(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연 10~15%의 경제성장률 달성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외국 투자자 보호 위해 관련 법령 대폭 손질


▎김정은 위원장은 도시 개발과 환경 문제 역시 ‘세계적 추세’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4월 완공된 평양의 여명 거리가 에너지 절약형·녹색형 거리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선전했다. / 사진:연합뉴스
북한은 김정은 체제 이후 개혁·개방을 위해 내부적으로 법과 제도를 꾸준히 개선해 왔다. 또 대북제재 이전까지만 해도 노동당 내 경제 관료들을 싱가포르·유럽 등에 보내 국제 경제 전문가들로부터 ‘외자 유치’와 ‘국제금융’ 기법 등을 전수받도록 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김 위원장은 경제성장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장경제적 요소를 허용하고 확대하는 쪽으로 정책을 폈다. 대표적인 것이 2012년 6·28 조치다. 새로운 경제관리 체계였다. 운송·상점·편의봉사·식당 등 서비스 부문에서의 개인 투자 및 경영 참여, 노동력 고용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또 ‘포전담당제’라는 것을 도입했다. 집단농장을 사실상 한 농가 단위로 맡기는 것이었다.

그해 12월에는 외국인 투자 관련 법령이 대폭 개정됐다. 적극적 외자 유치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나선경제무역지대법 개정안 사례가 대표적 예다. 개정 법령은 세계 여러 나라의 법인이나 개인, 경제조직이 나선 경제 무역지대에 투자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이 같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제도적인 보장도 대폭 강화했다. 무엇보다 투자자의 재산 국유화 금지 및 국유화 시 보상한다는 규정과 신변안전보장 규정을 신설하고 국제적인 기준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가운데 외국기업 투자 유치 일환으로 “장려 부문의 외국인 기업은 일정한 기간 기업 소득세를 감면받을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한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경제무역지대의 관리원칙에서 ‘국제관례’를 참고한다고 규정했으며 상품의 원산지 관리에 있어서도 ‘국제관례’에 맞게 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국제화 흐름에 동참하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해외 투자가들의 안정적인 사업운영을 위해 토지 임대기간을 50년으로 명시했다. 개정 전에는 별도의 기간이 명시돼 있지 않았고, 외국 투자가의 경우 임차만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지만 개정법에는 건물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김 위원장은 또 2014년 5·30노작 발표를 통해 ‘우리식 사회주의 관리방법’을 내놓았다. 개인의 처분권과 기업의 자율권을 확대함으로써 주민들은 시장에서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을 구입하고 기업들은 생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골자다. 이 역시 시장경제 시스템을 일부 수용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시장경제 시스템 도입은 ‘돈주’들의 적극적 활동과 안정적 투자로 이어졌다.

‘돈주’는 주로 대외무역 등에 종사하며 성장한 북한 내 신흥부자들을 말한다. 과거에는 밀무역 등을 통해 불법적이고 음성적 방법으로 자본을 축적했지만 김정은 체제 후 이들의 활동을 양성화함으로써 북한 내 경제 활성화를 이끄는 핵심 집단이 됐다. 2014년 기업소법을 개정해 신흥 부유층인 돈주 등 개인의 기업 투자를 합법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김 위원장은 돈주들의 이권을 일정부분 보장해 주고, 돈주들은 김 위원장과 노동당에 충성의 징표로 사업 이익금의 일부를 떼내 ‘충성 기부’를 한다. 돈주들의 사업 영역은 날로 확대되는 추세라고 한다. 이들은 과거 장마당 수준에서 거래되던 품목을 뛰어넘어 부동산과 건설, 교통 등 각종 사회 인프라 프로젝트에까지 투자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강력한 경제 제재 속에서도 연 3%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보여주는 이면에는 바로 이 돈주들의 역할이 한몫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돈의 출처를 따지지 말고 투자하되 이윤도 최대한 보장해 주도록 하라는 교시를 내렸다”며 “이에 따라 돈주들이 돈주머니를 열어 침체한 주택 경기를 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봄 평양의 여명거리에 70층 주상복합 빌딩을 비롯한 고층 빌딩 40여 개가 들어섰다. 또 승마구락부와 골프장, 문수 물놀이장도 만들어졌다. 우리 식으로 치면 뉴타운 형태의 대규모 개발사업이 벌어진 것이다. 상당부분 돈주들의 투자를 통한 개발로 보인다. 특히 이들은 100개가 넘는 탄광을 직접 운영하며 광물업에서 상당한 이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향후 대외 개방으로 외국 기업의 투자금이 들어오고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 차관 형태의 자금을 지원받으면 현재 북한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돈주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협력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현재 북한에는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가진 돈주가 약 20만 명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자 유치 통해 원산을 국제 휴양도시로 완성 계획


▎김정은 위원장은 5월 7일부터 이틀간 중국 다롄을 방문했다. 다롄 동쪽 외곽 해변에 있는 방추이다오 영빈관에서 만난 김 위원장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대외 개방의 창구로 여기는 핵심은 바로 경제개발구와 경제특구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 직후부터 개발구와 특구에 외자 유치를 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 관련 법령 14개를 제·개정한 바 있다. 특히 외국 투자 기업 및 외국인 세금법, 외국 투자 은행법 등 7개 법령은 김정일 사망 직후 개정됐다. 2013년 5월에는 ‘경제개발구법’이 만들어지면서 본격 추진됐다. 역시 돈주의 역할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개발 규모가 워낙 커 해외 자본 유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돈주만으로는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경제개발구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22번째 지방 경제개발구가 지정됐지만 상당수 지역이 답보 상태에 놓였다.

주요 경제개발구는 ▷나선경제무역지대(나선 특구)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금강산 특구) ▷와우도수출가공구와 청진경제개발구 ▷강남경제개발구(평양 외곽) 등이다. 경제개발구는 지역별 특성에 맞게 핵심 산업을 정해 집중 발전시키는 시스템이다. 김 위원장은 경제개발구를 북한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는 핵심 사업이자 대외 개방의 창구로 여겼다. 사업 초기 추진 속도는 놀랄 만큼 빨랐다. 2013년에만 압록강경제개발구, 만포경제개발구, 위원공업개발구, 신평관광개발구 등 북한 전역에 경제개발구 13개가 설치됐다. 2014년에는 평양시, 황해남도, 남포시, 평안남·북도 등 6곳에 경제개발구가 추가 설치됐다. 2015년에는 양강도 삼지연군의 무봉국제관광특구와 함경북도 경원군의 경원경제개발구로 확대됐다.

경제 제재 이후 북한이 최근까지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온 곳은 원산갈마관광지구다. 원산은 김 위원장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은 올 신년사에서 원산갈마관광지구 건설을 직접 언급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대외 개방이 본격화되면 이 지역이 북한의 핵심적 관광기지로 떠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원산갈마관광지구의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노동신문]이 최근 공개한 이 지역 건설 현장 사진에는 9∼10층까지 골조 공사가 이뤄진 건물 여러 동이 눈에 띈다. 또 길게 뻗어나간 해변을 따라 수많은 건물이 빼곡히 세워지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북한은 원산갈마관광지구를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9월 9일)에 맞춰 완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갈마반도는 원산과 금강산을 잇는 관광벨트로 조성 중인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에 속해 있으며 마식령스키장과도 가깝다. 북한은 최근 군용 공항이었던 갈마비행장을 확대해 원산국제비행장을 건설하는 등 원산을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경제 제재 후 적극적인 외자 유치와 해외기업 투자를 바라고 있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대규모 국제 종합휴양지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어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다. 원산을 금융무역지구, 공원·체육·오락시설 용지, 관광숙박시설 용지, 체육촌지구 등으로 나눠 개발하고, 송도원해수욕장과 명사십리·갈마반도 등 해안은 여름 휴양지로, 원산 서쪽에 위치한 마식령 일대는 최근 준공된 마식령스키장 등을 중심으로 겨울 종합레저타운으로 개발하고 있다.

북한이 최초로 대외적 경제특구로 지정한 나선지구도 비핵화 후 개혁·개방 과정에서 다시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2010년 12월 북한과 중국은 ‘나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 공동개발 및 공동관리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면서 개발이 본격화됐다. 나진지구에는 아파트를 비롯한 상점과 식당, 호텔 등이 포함된 16개 동 규모의 대형 국제무역센터 등이 중국 자본과의 합작 사업으로 건설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북제재로 인해 지난 2년 가까이 개발이 주춤한 상황이라고 한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최근 들어 최신형 아파트가 완공 단계에 와 있고 각종 건물 공사가 재개됐다고 한다. 황금평·위화도 지구 역시 김정일 집권 후반부인 2011년 6월 개발 착공식을 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성과가 없다고 한다. 북한과 중국은 비핵화 합의 후 이 지역 개발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동강변과 평양에 트럼프타워·맥도널드 들어설까

개성공업지구는 경제 제재가 풀리면 가장 우선적으로 재가동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개성공단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관련 내용을 최근 펴낸 자신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 증언]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개성공단이 조선 체제에 장기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겠느냐고 많은 사람이 걱정했다. 하지만 얻은 게 더 많다. 우선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돈을 벌었다. 개성 시민에 대한 자연스러운 통제와 관리가 용이해졌다. 다른 지역은 장마당 때문에 주민 통제가 얼마나 힘들어졌나. 개성 시민 5만 명이 매일 한곳에 모여 일하고 퇴근하는데 따로 무슨 관리가 필요한가. 총체적으로 우리가 훨씬 이익이다. 이런 경제특구를 내륙으로 확대해야 한다. 개성공단 같은 곳을 14개 더 만들라.”

원래 개성공단은 총 66.1㎢(2000만 평) 규모로 공장구역 800만 평과 배후도시 1200만 평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개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재 1단계 사업(100만 평)만 완료된 상태에서 가동이 중단돼 있다. 향후 남북 경협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개성공단도 당초 계획대로 확장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는 지난 판문점에 열린 남북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언급했다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프로젝트가 북한의 대외 개방 과정에서 중요한 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동해권(부산-금강산-원산-나선)과 서해안 벨트(목포-서울-개성-평양-신의주), 그리고 두 벨트를 비무장지대(DMZ)가 잇는 ‘H라인’을 만들어 경제 발전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비핵화 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김 위원장의 의지도 확고하다. 문제는 대외 개방에 따른 비용이다. 지금까지는 한국·중국 원조와 제한적 투자로 진행돼 왔다. 특히 북한은 남북, 북·중 등 양자 교류를 벗어나 다자 구도로 경제 협력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각종 국제기구 가입을 통한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북·미 수교를 전후로 미국 자본과 기업의 진출을 다각도로 타진할 가능성이 크다. 대북 담당 전직 국정원 관계자의 얘기다.

“박근혜 정부 초기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모색될 때였다. 당시 여러 경로로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훗날 미국과 관계 개선이 되면 서방 자본 중에서도 특히 미국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것과 관련된 검토를 여러모로 했다고 한다. 대사급 정식 수교 이전에라도 적대 관계 청산을 통해 평양에 미국 기업이 진출하면 그것이 곧 체제 안전 보장의 출발점이라는 논리였다.”

이와 관련해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도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행동을 하지않는 것에 더해 미국과 평양에서 합작 사업을 하는 것”이라며 “(대외 개방을 통해) 대동강변에 트럼프타워가 들어서거나 평양에 맥도날드 가게를 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북측이)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비핵화 합의,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한반도 평화 로드맵의 완성은 북·미 수교가 1차 종착지다. 수교는 양국 간의 경제 교류와 협력으로 이어진다. 수교는 정치적·외교적 행위지만 경제 협력은 평화를 실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전략이다. 김 위원장이 6년 동안 준비해 온 북한의 개혁·개방 구상이 향후 ‘북한판 마셜 플랜’으로 이어져 성공을 거둘지 주목된다.

-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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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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