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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화해모드 경제특집 | 정밀취재] 판문점 선언에 따른 한반도 철도 연결 전망 

TSR(시베리아횡단철도)·TCR(중국횡단철도)은 한국경제에 ‘대박’ 선물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경의·동해선이 대륙과 연결되면 한국~중국~유럽 잇는 ‘철의 실크로드’ 완성…동해선은 부산~북한~러시아를 거쳐 TSR로 이어지는 최적의 물류노선

한반도의 철도 연결은 남북한 신경협 시대를 예고하는 가장 상징적인 사업이 될 전망이다. 한반도가 중국횡단철도,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면 북방경제권 형성으로 한국경제에 큰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 5월 경의선 열차가 시험운행을 마치고 개성에서 돌아오는 모습.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동해북부선을 연결하고 경의선은 현대화할 예정이라고 밝힘에 따라 남북경협을 위한 SOC 협력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 사진:연합뉴스
장면 하나. 지금으로부터 91년 전인 1927년 6월 22일, 한국 최초 서양화가 나혜석(1896~1947)은 경성역(서울역)에서 밤 10시 5분에 출발하는 특급열차를 타고 유럽일주 여행을 시작한다. 유럽과 미국 시찰을 가는 총독부 관리였던 남편 김우영을 따라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경성(서울)을 출발한 열차는 개성과 평양, 신의주를 달려 중국의 국경도시 단둥까지 약 9시간 만에 주파했다. 이들 부부는 만주벌판을 통과해 유럽행 대륙철도인 TSR(Trans Siberian Railway, 시베리아횡단철도)로 갈아타고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이후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영국 등을 여행한 뒤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횡단하고 1년 반 만에 조선에 돌아와 유럽의 문명을 한국에 알린다. 당시엔 경의선이 TSR과 연결돼 경성에서 러시아와 유럽으로 갈 수 있는 최적의 교통편이었다.

또 다른 장면. 한국 마라톤의 선구자 고 손기정과 남승룡도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이 TSR을 이용했다. 손기정 일행은 1936년 경성~평양~신의주~단둥~선양~하얼빈~만저우리 노선을 달리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TSR로 갈아탔다. 베를린 현지 적응을 위해 대회 두 달 전에 출발했는데, 경성에서 베를린까지 가는 데만 꼬박 보름이 걸렸다고 한다. 나혜석과 손기정 일행처럼 한 세기 전 한국의 엘리트와 유명 인사들은 유라시아대륙까지 이어지는 TSR을 이용해 만주벌판과 중국, 러시아 땅을 넘나들었다. 한 세기 전의 사람들에게 러시아와 유럽은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그리 먼 지역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9288㎞ 전 구간이 전철화돼 있는 TSR은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지구 둘레의 3분의 1에 가까운 거리를 달려 극동의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를 육상으로 연결한다. TSR은 러시아 최대 공업지대인 우랄지구, 쿠즈네츠탄전, 북부의 석유·가스산지를 유럽 쪽으로 연결해 러시아 산업의 대동맥 구실을 하고 있다. 화물을 대량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최대 140량짜리 ‘장대 열차’를 운행하기도 한다. 끝도 없는 장대 열차가 대평원을 지나는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동해북부선 연결하고 경의선은 시설 현대화


▎동해선은 부산에서 북한,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할 수 있는 최적의 물류노선이다. 올해 1월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 현장점검을 위해 방북했던 선발대가 우리 측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로 돌아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북·미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돼 대북제재가 해제되고 남북한 철도 연결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우리 국민들도 한 세기 전의 나혜석과 손기정처럼 TSR을 통해 유럽을 갈 수 있다. 한국~중국~유럽을 잇는 철의 실크로드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유명 인터넷 카페에는 남북 간 철도 연결이 완료돼 KTX와 TSR을 이용하면 부산~서울~평양~개마고원~하얼빈~베이징~몽골~이르쿠츠크~모스크바를 최소 11일 만에 여행 가능하다는 내용까지 올라와 있다.

대륙철도 연결 프로젝트는 문재인 대통령이 물꼬를 텄다. 역사적인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과 북은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사업을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 합의서에는 “일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남북 정상은 동해선의 경우 동해북부선을 우선 연결하고, 경의선은 시설을 현대화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남북 경제협력을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협력이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남북 간 철도 연결을 중국까지 확장시키자는 목포~서울~평양~신의주~베이징 철도 연결을 제안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중국을 매개로 남과 북의 경제를 잇겠다는 야심 찬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 때 이런 계획을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에게 직접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고, 리커창 총리도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정상회담에서는 철도 연결을 위한 한·중 양국 간 조사연구사업의 선행 문제도 논의됐다.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중국 대륙을 관통하며 TSR과 접속할 수 있는 철도 노선은 3개다. TCR(중국횡단철도)은 중국의 연운항~서안~난주~우름치~알라산쿠를 잇는 총연장 4018㎞ 노선이다. 중국의 중부와 서부를 관통하며 극동~유럽을 잇는 철도망을 형성하고 있다. 베이징~울란바토르~이르쿠츠크로 이어지는 길이 7753㎞의 TMGR(몽골횡단철도), 투먼~만저우리~카림스카야로 이어지는 7721㎞의 TMR(만주횡단철도)도 있다. 문 대통령의 제안대로 경의선과 연결돼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노선은 TCR이나 TMGR을 통해 시베리아횡단철도인 TSR과 연결될 수 있다. 남북한과 중국의 주요 도시를 거쳐서 가기 때문에 화물보다는 여객 중심의 고속열차 운행도 가능해진다.

“서울역에서 열차로 6시간만 달리면 중국 국경”


▎전 구간이 전철화돼 있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인 TSR은 총 길이 9288㎞로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지구 둘레의 3분의 1에 가까운 거리를 달려 극동의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를 연결한다.
현실화될 경우 시간은 얼마나 소요될까? 철도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운행되는 평양발 베이징행 K28 국제열차의 평양~신의주~단둥 구간은 6시간13분이 소요된다. 이후 단둥~선양 구간은 3시간30분, 선양~베이징 구간은 4시간50분 정도 걸린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 객원연구위원에 따르면, 서울~신의주 구간인 경의선 철로를 현재 한국의 새마을호나 무궁화호 운행여건으로 개선하면 서울~평양 구간은 2시간30분, 평양~신의주 구간은 4시간이면 갈 수 있다. 서울역에서 열차로 6시간만 달리면 중국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서울~베이징 구간은 20여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북한 철도 개량사업이 이뤄지면 운행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현재 여건에서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가장 빠르게 TSR과 접속할 수 있는 노선은 만주횡단철도인 TMR이다. 중국과 러시아 국경인 ‘만주어리’역의 화물 취급량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한국 제품을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경의선을 통해 TMR과 연결돼 유럽으로 향하는 길이 먼저 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철도전문가들 다수는 물류와 관련해 경의선보다는 동해선을 꼽는다.

동해선은 부산에서 북한, 러시아를 거쳐 TSR로 연결할 수 있는 최적의 물류노선이다. TKR(한반도종단철도)을 TSR과 연결하는 대륙횡단 노선 가운데 화물의 환적 횟수와 통관 절차가 적어서 가장 경제적이라는 평가다. 북한이 추진하는 원산 관광특구와 원산·함흥·김책·청진 공업지구,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통과한다는 장점도 있다. 김일성 주석도 “동해 쪽으로 철도를 연결하면 연간 10억 달러의 운송료, 물류통과비를 걷을 수 있다”는 유훈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동해선이 완성되면 한국 제1의 항구인 부산에서 화물을 선적해 북한의 나진~하산을 거쳐 TSR과 연결된다. 동해선의 출발지인 부산이 유라시아대륙철도의 진정한 시발점이 되고, 철의 실크로드가 완결된다.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연결은 언제 가능할까? 경의선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약 500㎞의 철로다. 2007년에 1년간 시험 운행됐다가 10여 년간 방치된 상태여서 점검과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철도 구간은 끊어진 곳 없이 모두 연결돼 있기 때문에 철로 점검과 시설 보완만 거친다면 곧바로 운행이 가능할 수 있다. 경의선 북한 구간은 이미 평양~베이징 국제 노선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서울~평양 구간만 연결하면 서울~베이징 구간 국제열차 운행도 실현시킬 수 있다. 코레일은 경의선 선로 개량에 2000억원 안팎의 비용을 예상하고 있다.

부산~원산을 잇는 동해선은 연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동해선은 남한 최북단 제진역에서 강릉까지 104.6㎞ 구간에 선로가 없다. 이 구간은 3차 국가철도망 계획에도 포함돼 있어 우리 정부가 유엔 제재와 관계없이 건설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설계와 시공을 거쳐 운행 단계까지 가려면 최소 수년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는 제진~강릉 구간 선로 신축 사업비를 2조3490억원으로 추정했다. 동해선의 남쪽 구간에도 연결이 안 된 지역이 있긴 하다. 삼척~영덕 구간이다. 일제강점기에 개설된 동해선은 한국전쟁으로 1951년 6월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부산이 유라시아대륙철도와 연결되는 온전한 동해선의 기점이 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는 이 구간의 선로를 신설해야 한다. 동해선은 북한 측 구간인 감호~두만강(690㎞) 연결도 필요하다. 북한쪽 구간의 사업비로만 34조5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동해선 연결에는 시간과 자본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방 권역은 인구 1억2000만의 거대한 소비시장


▎현대상선이 서중물류와 계약을 체결한 TCR 전세 화물열차 블록트레인. 한반도를 유라시아 대륙으로 연결할 시베리아횡단철도인 TSR은 중국횡단철도인 TCR과 몽골횡단철도인 TMGR, 만주횡단철도인 TMR과 연 결돼 있다. / 사진:현대상선
남북한 철도가 유라시아대륙철도와 연결되면 산업이 활성화되고 EU(유럽연합) 국가들과 교역이 이뤄져 한반도가 동북아 물류거점이 되는 물류혁명이 일어난다. 현재도 중국의 동북3성과 블라디보스톡 등 극동 지역, 몽골을 포함한 북방 권역은 인구 1억2000만 명의 거대한 소비시장이 형성돼 있다. 철도를 바탕으로 하는 북방물류는 문재인 정부에서 신성장 동력으로 불릴 정도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경제대국인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인접해 있는 북방 지역은 오래전부터 성장 잠재력이 높은 지역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철도 연결은 북방 지역이 신흥 경제권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는 경의선은 신의주를 통해 유럽까지 이어지는 TCR과 연결하고, 동해선은 나진~하산을 거쳐 TSR과 연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도로망인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 6호선과도 각각 맞물린다. 남북한 철도와 도로의 연결은 분단 이후 북방으로 가는 길이 막혀서 사실상 섬나라와 같은 경제구조였던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대륙형 경제로 전환하는 시발점이 된다.

그 핵심은 한반도종단 철도가 TSR과 연결되는 것이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원장 나희승)에 따르면 TSR 노선은 여객과 물류라는 두 측면에서 한반도를 관통하는 열차가 유럽과 닿기에 가장 좋은 대륙철도 노선이다. 통과하는 국가가 가장 적다는 점에서 그렇다. 철도는 국경을 지날 때마다 통관 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심지어 중국 내에선 한 개 성(省)을 통과할 때에도 통관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 한 나라만 통과하는 TSR이 물류업체로서는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속도 역시 TSR이 빠르다. 현재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여객열차는 시속 80~100㎞로 꼬박 7일이 걸린다. 화물열차는 시속 40㎞로 운행한다. 몽골횡단열차인 TMGR이나 중국횡단열차인 TCR은 아직 이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TSR을 이용한 화물 유치에 적극적이다. 물류도 여객처럼 7일 만에 수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TSR이 선박을 이용한 화물운송보다 4배 빨라질 수 있다고 한다.

중국 역시 남북한·중국의 철도 연결에 대해 긍정적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남북한과 이어지는 철도가 개통돼 중국 북동부 지역을 지나가면 물류의 거점으로서 해외 투자가 몰려들고 경제가 활성화되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주창해온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과 연계할 수 있기에 일석이조가 된다. 이처럼 남북 간 철도 연결에 이어 중국·러시아 철도와 연결되는 것은 남과 북, 중국·러시아 모두에게 플러스적인 요인이 많은 국제적 SOC 사업이다. 저성장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경제에는 큰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남북한 철도를 대륙철도와 연결하는 사업은 한국의 코레일과 북한의 철도성이 공동 투자해 ‘대륙철도합자회사’를 설립하는 형식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에 앞서 전제 조건이 있다. 경의선과 동해선이 유라시아대륙철도와 연계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OSJD(국제철도협력회의)에 가입해야 한다. OSJD는 주로 소련 체제의 사회주의 국가와 동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구성된 철도협력기구다. OSJD 회원국들은 TSR과 TCR 등 28만㎞ 노선에 200만 대의 열차를 운행하며 철도 교통신호, 운행 방식 등에서 통일된 규약을 마련하고 있다. OSJD에 가입하면 회원국과 개별협정을 체결한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 1개의 화물 운송장으로도 서유럽 국가까지 화물 수송이 가능해진다. 한국이 OSJD 정회원으로 가입해야 남북 철도 연결 후 TCR과 TMGR 등의 개량을 통해 유럽까지 철로가 이어질 수 있다.

TCR 활용한 배송 서비스 내놓은 물류기업들

신규 가입은 회원국 만장일치로 결정되는데 그동안 북한의 반대로 가입하지 못 했다. 이제는 북한이 반대할 명분이 사라졌다. 한국의 OSJD 가입은 6월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리는 OSJD 장관회의에서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업들이 이런 분위기를 놓칠 리 없다. 가장 발 빠르게 나선 기업은 현대상선이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12월 서중물류와 TCR 전세 화물열차인 ‘블록트레인 서비스’ 운송계약을 체결하고 영업을 위한 시스템 정비를 모두 마쳤다.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유럽으로 국내 화물을 운송하는 열차 서비스를 국내 기업으로는 사상 최초로 시작했다.

CJ대한통운도 유럽~아시아를 잇는 TCR을 활용한 배송 서비스 ‘유라시아 브릿지’를 최근 내놓았다. 중국·러시아 내 화물을 TCR을 통해 운반하고, 이후 트럭을 활용해 고객에게 물건을 직접 전달하는 형태의 서비스라고 한다. 일차로 중국 청두역, 폴란드 로즈역, 독일 뉘른베르크역, 네덜란드 틸뷔르흐역을 연결하는 경로를 운영한다. 각 역에서 400㎞ 내에 위치한 고객사에는 트럭을 통해 직접 배송까지 해주는 서비스다. 아시아~유럽 간 직접배송 체계를 만든 것이다. CJ는 최근 남북 경제협력이 급물살을 타자 북쪽 육로 개방에 대비해 TKR~TCR~TMGR~TSR를 이용한 유라시아 철도 운송에도 대비하고 있다.

이들 물류업체가 사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해결돼야 한다. 한국의 궤도(철로와 철로 사이 거리)는 1435㎜의 표준궤도로 북한과 같지만, 러시아는 이보다 85㎜ 더 떨어져 있다. 한때 북한과 러시아를 오가는 여객열차가 주 1회 평양~모스크바 구간을 운행하다가 중단된 것도 서로 다른 궤도 때문이다. 북~러 구간에서 서로 다른 궤간을 운행할 때는 국경 역에서 대차를 교환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때문에 TKR이 TSR과 연결되려면 러시아의 열차 궤도와 한국 궤도를 맞춰야 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이를 개선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마침내 2015년 표준궤에서 광궤로 진입 시 차축이 궤간에 맞게 벌어지는 ‘가변대차’ 기술을 개발했다. 열차가 서서히 달리면서 바퀴의 간격을 넓혀주는 기술이라고 한다. 현재는 열차가 북한에서 러시아로 넘어갈 때는 러시아 궤도에 맞는 열차로 바꾸고 짐을 옮겨 실어야 하는 문제가 발행하지만 이 기술을 적용하면 열차를 바꿀 필요 없이 바로 러시아로 직행할 수 있다는 것이 철도기술연구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때문에 당분간은 그대로 지금처럼 대차 교환, 환적 등의 방법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철도 전문가들은 물류기업들이 TSR을 활용하기 위해 발 빠르게 준비하고 대응하는 것도 좋지만 철저한 점검과 준비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업에 따라 운송화물이 가전제품인지 자동차부품인지 화물의 종류와 물동량도 각각 다르고, 출발·도착지에 따라 운임 수준도 다를 것이기 때문에 물동량 분석을 통해 노선별 서비스의 차별화는 물론 복화수송으로 돌아올 때 운송할 물량도 확보해야만 경제성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낙후된 북한의 철도 개발에 22조~83조원 소요”


▎CJ대한통운도 유럽~아시아를 잇는 TCR(중국횡단철도)을 활용한 배송 서비스 ‘유라시아 브릿지’를 최근 내놓았다. 사진은 유라시아 브릿지 서비스를 수행할 열차와 개념도.
남북한 철도가 유라시아 대륙 횡단철도와 연결되면 일제강점기 때 침략과 수탈에 이용됐던 한국 철도가 통일과 동북아 평화를 여는 철도로 거듭나는 상징적 효과가 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오랜 시간과 많은 자본의 투입이 필요하다. 특히 낙후된 북한 쪽 철도를 개·보수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27 정상회담 때 환담 중에 “문 대통령이 (북한에) 오시면 걱정스러운 것이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 평창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고 말했는데 실제 북한의 철도는 상당히 낙후돼 있다.

북한의 철도 연장은 총 5298㎞로 3917㎞인 남한보다 길다. 하지만 철로가 하나뿐인 단선이 97%에 이른다. 선로 보수·유지도 잘 안 돼 있다. 이런 이유로 경의선의 북한 구간은 현재 열차의 평균 속도가 시속 40~50㎞에 그친다. 평양~신의주 구간은 국제 노선으로 집중관리를 하는데도 그렇다. 북한의 동해선 구간은 더 심각하다. 속도는 시속 20㎞에 불과하고 기관차도 노후화됐다. 대부분 전기로 움직이는 전철화 노선인데,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서 운행하지 않은 구간이 더 많다. 북한의 동해안 방어 부대가 동해선 철도를 따라 배치돼 있는 것도 부담이다. 동해선 현대화 사업을 하려면 북한이 해안방어선을 다시 구축해야 하는 문제가 따른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대규모 인력과 자본을 투입해 빠른 시간 안에 북한 철도를 개량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경의선·동해선 철도를 중국·러시아와 물류 운송이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4조원대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북한과 러시아가 체결한 협정에 따라 러시아가 북한 철도 실태조사를 벌여 산정한 건설단가를 기준으로 추산한 것으로 한국의 건설단가를 기준으로 추정하면 22조원이 넘는다. 더 많이 예상하기도 한다. 금융위원회는 2014년 북한의 철도 개발 비용을 약 83조원으로 예상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노후한 북한 철도를 개량하는 데 투자하기보다는 새로 다시 부설하는 것이 낫다는 전망도 나온다. 아무리 개량해봐야 시속 100㎞ 안팎이 한계라는 점에서 시속 350㎞까지 달릴 수 있는 고속열차 전용 노선을 새로 건설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 북측과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이 모두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과 베이징을 고속철도로 연결하려면 북한 개성과 신의주 사이에 420㎞가량의 신규 고속철 노선을 건설해야 한다. 국내 고속철도 건설에 ㎞당 약 500억원이 든다고 봤을 때 고속철도를 놓는데 최소 21조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기존 남북교류협력기금을 확대하고 민간투자가 활성화되면 조달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지만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하기에 속단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에서 자금을 차입해 건설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다행히 중국 정부가 남북 간 철도 연결사업에 참여 의사를 내비치면서 최소 15조원 규모의 북한 구간 대륙철도 연결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2014년 대북경협업체인 G-한신과 중국의 상지관군투자유한공사가 개성~신의주 간 고속철도사업을 위해 설립한 합작회사를 통해 당시 김기석 북한 경제개발위원장과 본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고 한다. 당시 한반도와 유럽을 연결하는 TSR의 북한 구간에 총연장 376㎞의 고속도로와 함께 양 옆으로 복선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중국 상지그룹이 공사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주도하고 현대건설은 고속철도 및 도로 건설의 설계와 공사를 맡는 방식으로 계획됐다. 이후 남북관계 경색과 대북제재 등의 영향으로 사업 자체가 무산됐다. 중국이 남북한 철도 연결에 관심을 가지면 무엇보다 이 사업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남북 철도 전문가들 참여 TF팀 신속히 구축돼야

이를 위해서는 유엔의 대북제재가 풀려야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에 따르면 ‘비상업적이고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공공 인프라 사업’은 안보리 사전 승인을 얻은 경우에만 ‘제재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이 철도 연결에 합의한 만큼 현실적이고 치밀한 접근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박은경 동양대 철도전기융합학과 교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해 남북 철도가 연결된다 해도 과연 선박을 통한 운송보다 철도 운송의 운임 경쟁력, 시간 경쟁력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어떤 화물의 물동량이 얼마나 발생할 것이며, 최종 출발·도착지가 어디인지 철도수송의 적절성을 면밀히 따져보는 것이 선결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철도 운영자 입장에서도 남북 철도 연결에 따른 화차, 기관차 등은 현재 수준으로 충분한지, 새로 제작을 한다면 얼마나 되는지, 중간 지점의 화차 검수고는 어디가 타당한지, 신호나 운행 시스템은 어떻게 통합해 운영할 것인지 등 사전에 조사·분석해야 할 과제가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같은 준비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남북 철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TF팀이 신속히 구축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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