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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리포트] ‘김정은 깜짝 외교’ 소외된 아베의 위기 타개책은? 

북한엔 돈, 미국엔 핵 검증 기술·인력 제공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北에 수백억 달러 지원 앞서 국교 수립, 투명성 확보 등 선결조건 줄줄이 달듯...사찰 요원 1만 명설, IAEA와 협업 통해 北 비핵화 과정에 깊숙이 참여할 수도

▎아베 일본 총리가 한반도 비핵화 국면에 돈과 기술로 참여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에 의해 핵 문제, 미사일 문제 나아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납치 문제가 전진해 나갈 것이다. 일본의 생각을 미국에 확실히 전해 가면서 양국 정상회담에 대응할 생각이다.”

5월 11일, 북·미 정상회담 일정과 장소가 밝혀진지 한 시간 뒤인 오전 11시. 삿포로(札幌)를 방문 중이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밝힌 ‘짧은’ 회견 내용이다. 6월 12일 열릴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은 북핵 폐기다. 외교 수사학적 여러 가지 표현이 있지만, 간단히 말해 북핵을 완전히 영원히 없애는 것이 1차 목표다.

6·12회담은 물론, 이후의 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북핵 폐기에 대한 북·미 간 합의는 이미 구체화되고 있다. 아베의 회견 내용을 보면, 일본은 북핵만이 아닌 미사일 문제, 납치 문제도 6·12회담의 의제가 된다고 믿는 듯하다. 아베가 말하는 미사일은 미국이 염려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에는 못 미치지만 일본을 사정거리로 하는 중·단거리미사일을 포함한다.

필자는 아베의 생각이 어느 선에서 구체화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 한다. 그러나 워싱턴의 분위기를 보면, 긍정보다 부정적이다. 아베의 생각이 6·12회담만으로는 구체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워싱턴의 아시아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 슬로건을 통해 당선된 인물이다. 2016년부터 나타난 새로운 이데올로기다. 선거운동 기간 중의 정치적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대통령 당선 후 아메리카 퍼스트 실천에 올인하고 있다. 리버럴 미디어가 전부 나서 인종차별주의자라 비난해도 멕시코 국경에 벽을 쌓고, 이슬람국가 난민의 미국행을 가로막는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의 걱정도 풀어 줄 것이란 생각은 너무도 순진하다. 트럼프가 납치된 사람들의 가족을 백악관으로 부르고, 납치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런 행적이 반드시 회담의 어젠다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ICBM 폐기야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일본 열도 주변을 넘나들 중·단거리미사일까지 논의하진 않을 듯하다.

‘총론에 그치는 수준의 세기적 퍼포먼스’라는 분석은 6·12회담에 대한 워싱턴의 시각 중 하나다. 트럼프 자신이 이미 밝힌 남북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에 근거한, 북핵 폐기 일정과 과정에 관한 총론적 합의가 6·12회담의 전부가 될 거란 것이다.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고려한 보여주기 쇼라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김정은에게 안겨 줄 선물이지만 북·미 수교와 경제지원, 휴전 상태에서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로드맵도 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일 “수교시 일본 100억 달러 내놓아야”, 지금은?


▎5월 9일 일본 게이단렌 (일본경제단체연합)이 주최한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서 연설 중인 아베 총리.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는 6·12회담 이후 이어질 북·미 실무진을 통한 각론에서 결정될 것이다. 일본이 생각하는 중·단거리미사일과, 납치 문제도 6·12회담 이후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북·미 간의 각론 실무회담이 종결된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북·미 실무회담 속에다 아베의 생각을 구현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아메리카 퍼스트 이데올로기 속에 일본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는 극히 좁다. 북한이 납치 문제를 당사국 일본과 직접 해결할 것이라 말할 경우 미국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핵 폐기와 ICBM 폐기가 가장 큰 현안일 것이다.

북한은 어떨까? 한반도 비핵화와 미군 철수, 북·미 평화협정 체결과 국제사회로의 진출이란 점 등이 거론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희망사항 가운데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들자면 역시 ‘돈’이다. 대의명분으로 본다면 ‘미국의 북침 가능성을 막을’ 평화와 안전이 1차 목표지만, 보다 근본적인 목적은 역시 돈이다. 삼시세끼조차 해결하지 못 하는 최빈국으로부터의 탈출을 도울 돈이 6·12회담에 임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트럼프와의 회담 후 구체화될 한국·미국·유엔·세계은행을 통해 끌어들일 돈이야말로 ‘쌀밥’을 보장할 종잣돈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돈이란 관점에서 볼 때 김정은이 가장 믿고 있는 곳은 일본일지도 모른다. 가장 확실하고 규모도 크다. 바로 경제지원이다. 이미 종이조각처럼 느껴지지만, 2002년 9월 17일 당시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의 평양 방문 때 김정일과 함께 만든 공동문서가 경제지원에 관한 단서다. 당시 두 사람은 크게 4가지 사항에 합의한 바 있다. 이른바 ‘평양선언’이다. ▷국교정상화 문제 ▷경제 문제 ▷납치 문제 ▷북핵 문제다. 고이즈미가 평양을 방문한 가장 큰 목적은 납치된 일본인 송환이다. 회담기간 중 내내 굳은 표정으로 임했던 고이즈미는 귀국 직전 납치된 일본인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 일본인 17명 가운데 5명만 살아 있고, 나머지는 이미 사망했거나 납치한 적이 없다는 것이 북한 측 설명이었다. 납치 문제에 대한 일본 국민의 엄청난 반발이 전국화한다. 고이즈미는 이후 2004년 5월 22일에도 평양을 방문하지만 5명의 납치된 일본인을 데려오는 데 그친다.

고이즈미는 두 차례 평양 방문을 통해 식량과 의약품,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면서 김정일의 요구에 응했다. 그러나 북한이 염두에 둔 것은, 김정일 스스로도 언급했던 100억 달러 경제지원이다. 당시 김정일은 평양선언과 관련해 “과거 한·일 수교 협상 당시 (식민지 지배와 관련해) 한국에 5억 달러 경제지원을 했으니, 북한은 100억 달러 정도 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이 납치 문제에 대해 사죄하면서 머리를 숙인 것도 결국은 돈 때문이다. 참고로 평양선언의 핵심만 뽑자면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1.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

2. 국교정상화 후 무상 자금 협력, 저금리 장기차관, 국제기구·국제금융기관 통한 지원, 융자, 신용 공여

3.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양국, 양 국민 사이의 재산청구권 상호 포기를 기본안으로.

2018년 북핵 폐기의 궁극적인 목적이 돈이라고 할 때, 10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지원은 김정은이 얻어낼 가장 현실적이고도 효과적인 선물에 해당된다. 일본은 그 같은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 아베는 6·12회담 발표와 관련된 후지TV 인터뷰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바른 길을 걸어 나가는 데 일·북 국교정상화가 매우 중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그런 인식에서 미·북, 남북 정상회담만 하면 좋은 게 아니라고 판단하기 바란다”고 강조한다.

2002년 북·일 ‘평양선언’의 함의


▎4월 22일 납치자 가족 모임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는 아베 일본 총리.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문제 해결은 일본 정부의 최대 관심사의 하나다.
북한과 일본의 국교가 중요하다는 것이 아베의 생각이지만, 문장을 잘 살펴보면 주체가 빠진 상태에서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교가 중요하긴 하지만, 일본이 당장 시행하기를 원한다는 식의 얘기가 아니다. ‘국교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북한도 행동에 나서길 바란다’는 다소 어정쩡한 상태에서의 수교 필요성이다. 반전평화주의자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가 고백했듯 ‘애매한 일본인(曖昧な日本人)’의 대표적인 본보기가 아베의 발언이다. 중요성은 말하지만, 본인이 직접 나서서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애매하다. 그러나 아베의 본심은 납치 문제로 이어지면서 명확히 드러난다. “(김정은과) 그저 한 번 만나 말하면 좋다는 것이 아니라, 납치 문제의 해결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납치와 핵·미사일 문제의 진전은 김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아베의 발언은 2002년 평양선언의 연장선에서 해석해야 한다. 미국과의 북핵 폐기 논의가 끝나는 순간, 김정은은 일본의 돈에 주목할 것이다. 한국·미국·국제기구를 통한 지원도 있지만, 한꺼번에 재빨리 엄청나게 이식될 수 있는 돈은 일본에서 얻을 수 있다.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보상과 배상을 오가며 엄청난 경제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평양선언에 따르면 모든 경제 지원은 양국 간 수교 ‘이후’로 규정돼 있다. 그냥 돈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국교 수립을 전제로 한다.

수교가 이뤄진다는 것은 국가 간 책임이 분명해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돈을 원하는 이상 국교 수립에 나서야 하는 것이 김정은의 입장이다. 일본도 나서겠지만, 진짜 급한 것은 북한이다. 국교 수립의 필요성은 강조하는 아베지만, 애매하게 말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더불어 아베는 국교 수립을 위해 만나는 것만이 아니라, 납치 문제와 핵과 미사일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교 수립을 위한 회담에는 응하겠지만 납치 문제,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국교가 이뤄지지 못 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 매체들은 일본의 대(對)북한 경제지원 규모가 100억~200억 달러, 나아가 4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그 근거는 김정일의 2002년 발언과 1965년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지원 규모다. 그동안의 물가와 북핵 프리미엄을 감안할 때 적어도 두 배, 많게는 네 배 정도 올랐을 것으로 추정한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이겠지만 ‘경제동물’이라 불리는 일본이 어떤 식으로 대할지는 의문이다.

경제지원 문제와 관련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규모만이 아니라 구체적 용도에 관한 부분이다. 일본은 경제지원은 하되, 구체적인 목적과 용도에 대한 조건을 ‘사사건건’ 달 것이다. 김정일이 100억 달러를 요구할 당시 아마도 그냥 100억 달러가 북한에 한꺼번에 들어올 것으로 생각했을 듯하다. 천만의 말씀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북한은 전과자다. 북핵·납치 문제와 관련해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을 한 나라다. 동물의 뼈를 보내면서 납치된 일본인 유골이라 우길 정도다. 일본의 돈은 그 같은 전과 사실에 기초해 갖가지 조건을 달면서 북한에 제공될 것이다. 돈의 사용에 따른 국제적 투명성도 요구될 것이다. 또다시 무력 확대에 돈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전부 브레이크 장치를 달 것이다. 대충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원 조건을 어길 경우 곧바로 돈줄이 끊어질 것이다. 북핵도 문제지만, 납치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여론이 대충 넘어가지 못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위로 올라갈수록 하나의 생각으로 수렴


▎사학 비리 스캔들과 관련해 아베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는 시위자들.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실패할 경우 아베의 입지는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다.
일본은 내각책임제의 나라다. 1강 체제 하의 아베라지만, 권력이란 측면에서 볼 때 대통령중심제에 비견될 수 없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총리 단독으로 추진하긴 어렵다. 이른바 ‘네마와시(根回し)’라는, 주변을 살피면서 분위기를 잡으며 천천히 목표로 나아가는 정치다. 일본 속담 중에 ‘튀어 나온 못이 가장 먼저 맞는다(でる杭は打たれる)’라는 말이 있다. 한국의 ‘모난 돌이 정 맞는다’와 비슷하다. 다르다는 이유로 인해 외부로부터의 압력·압박이 내려진다는 의미다.

속담의 구체적 부분을 들여다보면 두 나라의 세계관은 전혀 다르다. 못과 돌이기 때문이다. 쇠로 만들어진 못은 돈이나 가치를 가진 특별한 존재다. 돌은 그냥 사방천지에 깔린 것에 불과하다. 일본의 못은 돌과 다른, 특별한 위치에 서 있거나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한국의 돌은 백성 대중, 나아가 민중에 해당되는 개념이다. 굳이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자면 못은 상류층, 돌은 하류층을 의미한다.

일본은 위로 올라갈수록 단 하나의 통일된 의견을 필요로 한다. 상류층이 된다는 것은 그 같은 하나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의미다. 한국은 반대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똑같은 생각으로 통일된다. 위에서 이뤄지는 백인백색은 문제될 것이 없다. 한국이 민주적이고, 일본이 전체주의적이라 볼 수 있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한국 지도층은 사분오열, 사색당파이고, 일본 핵심은 일심동체, 초지일관이다.

아베는 상류층의 못이다. 아무리 강한 못이라 해도 일본 핵심의 전체주의 속에서의 못 하나에 불과하다. 북한과의 수교를 위해 ‘통 크게’ 경제지원에 나서기가 어렵다. 주변에서 반대할 경우, 한순간 튀어나온 못으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일본은 차기, 차차기, 차차차기 지도자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북한과의 협상에 실패할 경우 아베 스스로가 위험하다.

아베가 납치 문제를 반복해서 거론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경우에 대비한 일본의 카드다. 100억, 200억, 400억 달러로 부풀려질 경제지원 요구에 맞서는 대응책으로서의 납치 문제다. 납치 문제로 끌수록 경제지원 규모나 조건도 유리하게 조정해 나갈 수 있다. 추측컨대 납치된 일본인의 상당수는 이미 죽었거나 폐인이 된 상태일 것이다. 북한도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일본은 끈질기게 몰아붙이면서 북한 측의 사과를 요구할 것이다. 돈만이 아니라,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북한 측 공세의 예봉을 납치 문제로 꺾어 보겠다는 생각이다. 한국인이 본다면, 식민지 문제에 비교할 경우 납치자 문제는 ‘새 발의 피’라 말할 듯하다. 그러나 식민지에 관련된 세대는 이미 세상을 뜬 상태다. 납치자 문제는 다르다. 가족들이 아직 살아 있고, 관련 증거나 사진도 신문·방송을 통해 거의 매일 보도되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싸움이다.

둘째, 튀어나온 못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납치 문제는 일본 국민 모두가 주시하는 국가적 이슈다. 한국의 납북자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전 국민의 관심사다. 북한과 수교를 안하는 한이 있더라도 납치자 문제 해결을 우선하자는 사람들이 많다. 납치자 문제를 어정쩡하게 대했다가는 정치적으로 매장된다. 아베는 이미 고이즈미와 함께 평양을 두 번이나 찾은 정치가다. 납치 문제 해결은 원래부터 그의 중요한 공약 중 하나다. 국교와 납치 문제 어느 것이 우선순위냐 물을 듯하지만, 필자가 보면 동전의 양면에 해당된다. 북한과 접촉에 들어가는 순간, 납치 문제 역시 양국 간의 핫 이슈로 부상할 것이다.

일본인 사찰단이 북한 전역 헤집고 다닌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파괴된 후쿠시마 원전. 일본은 이 사고 이후 핵시설 노하우를 축적했다.
언제부턴가 한국 매체들은 북핵과 관련된 일본의 상황을 ‘재팬 패싱’이란 말로 분석한다. 김정은이 중국 시진핑(習近平)과 만나고,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는 과정에서 소외됐기 때문이다. 한국·북한·중국이 북핵 관련 정보를 일본에 얼마나 전해 줄지 의문이지만, 아베가 상황을 잘 모른다고 말하면 곧바로 재팬 패싱이란 말이 등장한다. 최근 한국 매체에는 ‘차이나 패싱’이란 말도 등장한다. 북핵 관련 ‘코리아 패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 생각되지만, 우물 안 개구리의 눈으로 본 세계관일 뿐이다. 부분적으로 모르거나, 늦게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전체 판세를 못 읽거나 오해하는 일본이란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일본은 그 어떤 분야에 가도 전문가, 나아가 오타쿠(オタク)가 존재한다. 보통 수십 년 외길 인생이다. 이런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사소한 상황 변화 하나에도 민감하다. 한순간의 폭풍 대처가 아니라, 365일 밀물·썰물의 변화를 측정하면서 바다를 읽는 식이다. 쓰나미(津波) 같은 대 재앙은 피하기 어렵지만, 지속적이고도 정확한 정보력에 근거해 상황을 파악해 나간다. 만약 재팬 패싱이 있다면 코리아 패싱, 차이나 패싱의 규모나 정도는 한층 더 클 것이다.

돈은 일본이 ‘팽’ 당하지 않는, 다시 말해 재팬 패싱으로 추락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북한과의 수교에 따른 경제지원 기금만이 아니라, 북핵 문제에 직접 관련된 돈이다. 북핵 폐기는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미·북 간에 대체적인 합의가 이뤄지는 순간, 폐기에 따른 기간과 검증을 필요로 한다.

기간이란 측면에서 보면, 앞으로 2년 뒤인 2020년 말까지라는 소식이 들린다. 단기간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투입해 전부 찾아내고 그 결과를 검증하자는 것이 트럼프의 생각이다. 2020년은 트럼프 재선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해다. 트럼프의 정치적 전리품이 북핵 문제다. 일본은 2년 동안 이뤄질 조사와 검증에 적극 참여할 뜻을 미국 측에 전달한 상태다. 인력·기술·정보다. 짧은 기간 동안 이뤄질 핵 사찰과 검증에 일본의 돈을 투입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한다.

통상 핵사찰과 검증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행한다. 미국 과학자도 참가하겠지만 IAEA가 주축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IAEA 사무총장은 일본 외교관 출신의 아마노 유키야다. 시기·검증에 관한 모든 정보와 생각이 아베에게 전해진다. 아베는 4월 19일 트럼프와 만났을 때 일본의 생각을 보탠 검증방안 보고서를 넘겼다. 미국의 핵사찰에 관한 생각의 상당부분이 일본 보고서에 기초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일본은 2년이란 짧은 기간 내에 펼쳐질 사찰에 엄청난 인원·시설·정보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1만 명 단위의 사찰 요원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오지만, 일본은 인력과 관련된 부대비용을 기꺼이 지출하겠다고 공언한다. 전부 IAEA와의 협력을 통해 이뤄질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한다. 전체 분위기를 보면 대규모 핵사찰에 대한 비용만이 아니라, 핵사찰 관련 인력도 일본이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간단히 말해 일본인 사찰단을 통해 북한 전역을 헤집고 다니겠다는 말이다. 트럼프는 일본 측의 생각에 반대하지 않는다. 돈도 돈이지만, 일본인 특유의 빠르고 정확한 일처리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후쿠시마(福島) 원전 파괴 이후 축척된 핵시설 관련 노하우도 일본을 믿는 이유 중 하나다. 일본을 보면서, 한국 정부도 핵사찰에 관한 돈과 인력 제공에 적극 나설지 모르겠다. 그럴 경우, 트럼프와 IAEA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재팬 패싱이란 말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는 바로 일본이 가진 돈과 핵 관련 노하우, 나아가 IAEA와의 특별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돈만큼 확실하고 평화로운 외교수단도 없다


▎1992년 5월 북한 영변 5MWe원자로의 핵연료봉을 둘러보는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6·12회담과 관련해 한국 지방선거 하루 전이란 뉴스가 눈에 들어온다. 국내 정치도 중요하지만, 고개를 들어 밖을 보자. 6월 8일부터 이틀간 캐나다에서 열리는 서방 7개국(G7) 정상회의다. 6·12회담 사흘 전에 끝나는 서방 정상회담으로 어떤 공동성명서가 나올지는 불을 보듯 명확하다. 북핵 전면 폐기에 관한 서방 측 요구가 7개국 정상회담에서의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이다.

아베는 7개국 정상회의 기간 중 가장 바쁜 사람이 될 듯하다. 7번째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벌이는 것은 물론,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방 지도자 모두에게 일본의 입장을 재천명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이란 문제로 틈이 벌어진 상태에서, 북핵 문제는 서방 7개국 모두가 동의할 잔칫상의 핵심이다. 아베는 북핵 완전 폐기는 기본이고, 납치 문제, 북핵 검증, 중·단거리미사일 나아가 생화학무기에 대한 일본 측 생각을 열심히 알릴 것이다. 물론, 사찰에 따른 비용부담 의사도 꺼내 들 것이다. 아메리카 퍼스트의 교주 트럼프라고 하지만, 사흘 뒤 6·12회담을 하는 동안 아베의 말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일본이 G7 정상회담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은 이미 북핵 나아가, 북한의 미래에 깊숙이 개입된 상태다. 돈을 내세운 일본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돈만큼 확실하고 평화로운 외교수단도 없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한국 정부가 위안부 소녀상이나 강제징용자상에 대해 유화적 자세를 취하는 것도 결국 돈과 관련된 문제라 볼 수 있다. 위안부 협정 파기와 같은 목소리가 한순간 사라진 것도 똑같다. 북한에 빨리 돈이 들어가길 바라는 것은 김정은만이 아니다. 염려가 되는 것은 돈이 북한에 넘어가지 못 하고 좌초할 경우다. 역사 문제, 납치 문제로 인해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이 늦어지거나 어려워질 순간이다. 위안부 소녀상, 강제징용자상만이 아니라 독도와 같은 영토 문제와 관련해 반일(反日) 정서가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그 같은 상황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 방법은 역시 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골프 라운드를 가졌다. / 사진:일본 내각홍보실
트럼프가 6·12회담 직후 일본을 공식 방문할 것이란 소식이 들려온다. 한국도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한다. 6·12회담을 전후해 트럼프가 앞뒤로 점검하겠다는 의미다. 대의명분으로서의 북핵과 경제지원으로서의 돈. 모두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펼쳐질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다. 한·일 근현대사의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북한의 21세기 역사도 일본과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항상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항상 미워하고 적대시할 수도 없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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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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