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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이스라엘 vs 이란··· 건곤일척의 승부 

중동 핵위기 부른 미국의 핵 합의 파기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이란의 핵무장→ 이스라엘의 선제 공격→ 중동 전면전 시나리오 제기돼…북한 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체제 보장 수위 높일 가능성도

▎지난 5월 4일 미국과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향해 이스라엘 군이 체루탄을 발사했다.
지난 1월 이란 수도 테헤란 남서부 슈러버드 지역에 있는 한 비밀창고에 무장괴한들이 몰래 침입했다. 이 창고에는 1999년에서 2003년까지 가동했던 ‘프로젝트 아마드’라고 불리는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과 관련된 1급 기밀 문서 5만5000쪽과 CD(콤팩트디스크) 183장 등이 보관돼 있었다. 무장 괴한들은 경비원들을 제압하고 0.5톤이나 되는 자료들을 트럭에 싣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들은 이스라엘 대외 정보국 모사드의 특수작전 팀이었다.

이란은 ‘중동의 북한’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국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철통 같은 국가다. 테헤란은 물론 지방의 소도시에도 사복 경찰을 비롯해 보안당국의 민간인 협조자들이 깔려 있다. 그런데도 한밤중에 최고 보안의 기밀 창고가 털린 것은 이란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특히 이란 보안당국은 핵 관련 시설에 대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인의 접근을 전면 차단하고 철저한 경비를 해왔다. 모사드는 2016년 2월 이 창고를 찾아내 감시하면서 비밀 자료를 빼내기 위한 작전을 준비해 왔다.

지난 4월 30일 당시 비밀창고에 있던 CD와 문서들이 이스라엘 TV에 등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국방부 스튜디오에서 CD와 문서를 정리해 놓은 커다란 책장을 배경으로 한 채 “이란은 거짓말을 했다”면서 “이것은 이란이 과거 몰래 핵무기 개발을 했다는 증거”라고 발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아마드 프로젝트를 주도한 이란 핵과학자 모흐센 파크리자데이가 2018년에도 SPND라는 핵무기를 개발하는 비밀 조직의 책임자”라면서 “포르도의 우라늄 농축시설이 아마드 프로젝트의 일부로 설계됐고 이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수년 뒤까지 계속 가동됐고 아직도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이 히로시마 원자폭탄 5배 위력의 핵무기 5개를 개발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출귀몰한 작전을 이끈 요시 코헨 모사드 국장은 지난 1월 비밀자료를 입수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폼페이오 국장은 이 정보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란 “양치기 소년이 또 거짓말”


▎‘홀리 디펜스’ 박물관 정원에 전시된 이란제 미사일. 맨 왼쪽 위성발사체 시모르그(사피르)2A는 북한의 은하3호와 비슷하다.
네타냐후 총리의 주장에 대해 이란은 강하게 부인했다.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양치기 소년이 또 거짓말을 시작했다”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미 검토한 사안을 다시 들춰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미르 하타미 이란 국방장관도 “이스라엘은 음모와 위험한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면서 “네타냐후 총리의 근거 없는 주장과 도발적 수법에 이란은 꼼짝 못 하도록 참담하게 되돌려 주겠다”고 경고했다. IAEA도 2009년 이후 이란에서 핵무기 개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신뢰할 만한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IAEA의 입장에 동조했다.

반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의 발표에 대해 “이란 핵 합의는 아주 끔찍한 협정”이라면서 “내 말이 100% 옳았다는 점이 진실로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이 공개한 문서는 모두 진짜”라면서 “이란의 거짓말에 따라 체결된 핵 합의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이란은 강력하고 은밀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해 왔다”고 비판했다. CIA는 2017년 6월 ‘이란 임무센터(Iran Mission Center)’를 창설하고 지금까지 핵과 미사일 개발 등에 관련된 이란 정보들을 수집·분석해 왔다. CIA도 모사드가 빼내온 이란의 핵 개발 정보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모사드가 수집해 온 이란의 핵 개발 증거들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지금도 핵 개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핵탄두를 탑재하기 위해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도 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8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란이 핵프로그램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서 “이 협정으로는 이란 핵폭탄을 막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 합의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탈퇴하고 이란에 대한 기존의 모든 제재를 원상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2015년 7월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과 독일 등 주요 6개국(P5+1)이 이란과 체결한 핵 합의는 3년도 안 돼 존폐 위기를 맞게 됐다. 미국 재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이란에 대한 제재를 90일과 180일의 유예기간을 거쳐 재개한다. 이란의 석유 수출과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는 6개월 후에 시행될 예정이다.

JCPOA의 골자는 이란은 전력생산 목적 이외의 핵 개발을 포기하고, 서방은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이란은 2025년까지 10년간 1세대 원심분리기 1만9138개를 6104개로, 저농축우라늄 10t을 300㎏으로 각각 줄이기로 했다. 이란은 또 이미 장착된 최신 원심분리기 1008개와 농축우라늄 196㎏을 전부 포기하기로 했다.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는 나탄즈에서 신형 원심분리기용 우라늄 농축과 관련한 연구·개발을 계속하되 농축우라늄을 저장하지 않기로 했고, 농축할 수 있는 우라늄 농도는 3.67% 이하로 제한하기로 했다.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중수로는 전력 생산만 가능토록 현대화하며 남는 중수로는 시장가격으로 해외 반출하기로 했다. IAEA는 의심스러운 핵시설에 대해 사찰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IAEA가 이란의 합의 이행을 검증한 이후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기로 약속했었다.

북한과 이란의 ‘미사일 커넥션’


▎트럼프 미 대통령은 5월 8일 이란 핵 협정 파기를 공식 선언하고 관련 문서에 서명했다. /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를 문제 삼은 이유는 무엇보다 ‘일몰 조항’(sunset clause: 일정 기간이 지난 후 폐지되는 조항) 때문이었다. JCPOA에는 15년 후인 2030년부터 이란의 핵 활동에 대한 주요 제한을 모두 없애기로 한 일몰조항이 포함돼 있다. 또 2025년부터 이란의 핵 활동 중 일부는 해제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란이 마음만 먹으면 다시 핵개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셈이다. 게다가 일부 군사 지역을 IAEA의 사찰 대상에서 제외했다. 핵 협상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유럽 국가 정상들이 이란과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일몰조항을 포함시키는 내용을 양보한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개발을 금지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8년간(2023년까지) 유지한다는 일몰규정만 있을 뿐이다. 2023년 이후에는 핵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 개발이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란 정부는 이런 허점을 이용해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 왔고 수시로 시험 발사까지 해왔다. 특히 이란 정부는 그동안 북한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왔다. 예를 들면 이란의 사햐브-3호 미사일은 사거리가 1300㎞인 북한의 노동 미사일(화성-7, KN-5)을 수입해 개발한 것이다. 이란은 샤하브-3 미사일을 다시 개량해 가드르 미사일(사거리 1600㎞)과 에마드 미사일(사거리 1700㎞)을 개발, 실전에 배치했다. 북한은 이란에 사거리 2500~4000㎞인 무수단 미사일(화성-10, KN-7)도 수출했다. 이란이 지난해 9월 시험 발사한 영상을 공개한 사거리 2000㎞인 호람샤르 탄도미사일은 무수단 미사일과 비슷한 유형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이란의 ‘미사일 커넥션’에 대해 CIA에 철저한 조사를 통해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해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재협상을 통해 일몰조항 삭제, 탄도미사일 개발 제재 강화, 이란의 모든 핵 시설 사찰, 이란의 핵 합의 위반 시 미국과 유럽연합의 공동 제재 즉시 재부과 등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요구사항들을 모두 거부했다. 이란 국가최고 지도자인 아야툴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이란은 미국의 압박에 결코 굴복하거나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특히 이란 정부는 탄도미사일 개발이 주권과 자주국방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협상 안건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지난 4월 8일 국방의 날을 맞아 테헤란에서 열린 열병식을 참관하고 연설을 통해 “자주국방을 위해 우리 군이 필요한 모든 무기를 만들겠다”고 밝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탄도미사일 개발 제한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이란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결정에도 불구하고 일단 핵 합의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5월 8일 국영 TV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이란은 미국 없이 핵 합의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하니 대통령은 “우리는 두세 달은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겠지만 잘 헤쳐 나갈 것”이라면서 “우리 정책의 기본 방침은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의 핵 합의 탈퇴를 이란에 대한 ‘심리전’으로 규정하고 “외무부에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유럽·러시아·중국과 논의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로하니 대통령이 국제사회와 협력을 언급한 것은 이란이 유럽과 연대해 핵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핵 합의가 다자간 합의인 만큼 미국을 제외한 유럽·중국·러시아와 핵 합의를 지키면서 과거와 같이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도록 결속력을 다지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란의 속셈은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과 그동안 각종 사업 계약을 체결한 만큼 유럽 국가들이 미국처럼 핵 합의를 파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강력한 제재를 버틸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미국의 핵 합의 파기와 이란의 핵무장론


▎북한이 시험발사에 성공한 북극성 2형 미사일은 이란의 세질 미사일 1 기술을 적용했다는 관측도 있다.
이란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 합의 파기와 강력한 제재 조치에 대비하기 위해 올해를 ‘국산품 애용의 해’로 선포했다. 이란 정부는 정부 기관과 공기업, 정부 관련 기관에 외국에서 수입한 물품을 쓰면 안 된다는 금지령을 내렸다. 이란 정부의 의도는 외국산 수입품을 최대한 줄이고 국산품 소비를 늘려 내수만으로도 버티겠다는 것이다. 이란은 1차 산업이 발달해 농산물은 풍부한 편이지만 제조업은 부진한 탓에 생활필수품의 원자재 또는 완제품을 외국 제품에 의존해 왔다. 때문에 이란 통화인 리알화 가치가 떨어지면 물가가 급등한다. 이미 달러화 대비 리알화 환율이 폭등하면서 수입품을 중심으로 물가상승률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에도 서방의 제재로 환율이 단 며칠 만에 1만2000리알에서 3만 리알 이상으로 뛰는 등 외환 위기가 발생해 이란 경제가 급격히 악화됐었다.

이란 정부가 4월 9일 전격적으로 환율을 단일화하면서 외환 거래를 중앙은행의 통제 아래 둔다는 포고령을 내린 것도 과거의 위기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란 정부의 의도는 사설 환전소를 통한 외환 거래를 제한하고, 모든 무역 거래로 발생하는 외환을 중앙은행과 국영 은행을 거치도록 해 기축통화 유출을 막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란 중앙은행은 지난 4월 20일 모든 외환환전소에 달러화와 유로화 등 외화의 환전 업무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중환율제를 인정해 온 이란에선 그동안 사설 환전소들이 활발하게 영업해 왔다.

문제는 로하니 대통령과 이란 정부의 이런 정책에 강경파가 핵 개발을 재개해야 한다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경파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하메네이는 5월 9일 미국의 핵 합의 탈퇴를 비난하면서 유럽 국가들이 핵 합의 유지를 보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메네이는 “핵 합의에 서명한 유럽 3개국(영국·프랑스·독일)을 믿어서는 안 된다”면서 “이들이 핵 합의 유지와 이행을 절대적으로 보증하지 않는다면 계속 우리가 현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지 진정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유럽 3개국은 그동안 핵 합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핵 합의를 수정하기 위해 재협상해야 한다고 이란에 요구해 왔다. 유럽 3개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란 핵 합의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앞으로 미국의 제재조치가 본격적으로 단행될 경우 끝까지 같은 입장을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미국이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외국 금융기관에 미국 금융기관과 달러 교환 등 외환거래를 금지하는 제재조치를 내릴 경우 유럽 3개국의 외국 금융기관들도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를 중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란으로선 석유대금을 받을 외국 금융기관이 사라져 결국 석유 수출길이 막히게 된다.

이란 강경파는 로하니 대통령이 유럽 3개국으로부터 핵 합의 유지 보증을 받아 내지 못할 경우 핵개발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강경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알리 샴커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NPT에서 탈퇴하겠다는 것은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강경파의 입장은 아예 핵무장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억제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란, 1년이면 핵무기 제조 가능


▎이란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오른쪽)와 하산 로하니 대통령, 가운데는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을 이끈 이맘 호메이니 초상화.
군부의 입장도 강경 일변도다. 무함마드 바게리 이란군 총사령관은 “핵 합의는 애초부터 탐탁지 않았다”면서 “미국의 위반으로 우리는 핵 합의 따위를 믿지 말고 우리 힘으로 스스로 서야 한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지적했다. 이란군의 최정예인 혁명수비대의 무함마드 알리 자파리 총사령관도 “미국은 이란의 미사일과 국방력, 지역의 영향력이 위축되기를 원했지 우라늄 농축을 제한하는 핵 합의는 핑계에 불과했다는 점이 드러났다”면서 “유럽은 미국과 밀착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핵 합의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틀렸다”라고 강조했다. 로하니 대통령도 강경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핵 합의를 파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만약 필요하다면 우리는 어떠한 제약 없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의 핵 합의를 주장해왔던 로하니 대통령으로선 트럼프 대통령의 핵 합의 파기와 제재 조치로 경제가 어려워질 경우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만약 강경파의 주장대로 이란이 핵개발에 나선다면 자칫하면 중동지역은 최악의 혼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란은 핵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 정부는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핵 합의를 파기하면 이틀 안으로 농도 20%의 농축우라늄을 생산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농도 20%의 농축우라늄은 핵무기를 바로 만들 수 있는 농도(90%)보다는 농축도가 낮지만, 발전용 우라늄 연료(4∼5%)보다는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핵 합의 이전에 이란은 농도 20%의 농축 우라늄을 보유했었다. 때문에 이란 정부의 이런 경고는 결코 허풍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국제 핵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란이 핵무기를 제조하려면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일부 전문가는 1년 정도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15년 체결된 핵 합의는 이란이 핵무기 제조까지 최소 12개월이 걸리도록 제한 조치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란이 핵무기 제조에 쓸 충분한 원료를 보유하고 있다면 핵무기 제조에 걸리는 시간은 단축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주장대로 이란의 핵폭탄 제조 기술이나 핵탄두 운반 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은 “과거 이란이 발표했던 것보다 더욱 발전된 원심분리기 부품을 보유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핵폭탄 제조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란이 핵개발을 다시 추진할 경우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을 공습할 가능성이 높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결코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이스라엘은 1981년과 2007년 이라크와 시리아의 핵시설을 폭격했었다. 이란도 이에 맞서 레바논의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와 시리아의 시아파 민병대 및 정부군을 내세워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벌일 수 있다. 이란이 직접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벌일 수도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의 핵 합의 탈퇴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고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국영방송 알 아라비아는 이란과 이스라엘 간 전면전은 시간문제라면서 이는 ‘만약’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만 남았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실제로 무함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은 “이란군은 현재 적들의 위협과 침략에 대비해 최고 수준의 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전면전도 불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이미 시리아 내전 사태로 직접 수차례 무력 충돌을 벌여 왔다.

이스라엘 군은 지난 2월 10일 시리아 중부 팔미라 인근에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 부대인 알 쿠드스군이 건설한 군사 기지에서 이륙한 무인정찰기(드론)가 국경을 넘어 자국 영토로 들어오자 아파치 헬기를 동원해 격추시켰다. 이스라엘 공군의 F-16기 등 전투기들이 지난 2월 11일 드론이 발진한 이란의 군사기지를 비롯해 시리아의 군사시설 10여 곳에 대한 공습에 나섰다가 이 과정에서 F-16기 한 대가 시리아 정부군의 대공 미사일에 피격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4월 29일 시리아 하마 지역의 시리아 정부군 제47여단을 미사일로 공격해 시리아 정부군 4명과 이란군 22명이 숨졌다.

전운 감도는 골란고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이 과거 국제사회를 속이고 몰래 핵무기 개발을 했다고 주장했다.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은 내전 초기부터 지금까지 시리아 정부에 수십억 달러 상당의 무기와 자금을 제공하는 등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적극 지원해 왔다. 그 이유는 시리아에서 아사드가 축출될 경우 가장 중요한 동맹세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아파는 이란을 비롯해 이라크 집권 세력(전체 인구 60%가 시아파)과 시리아,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일종의 ‘초승달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골란고원에선 벌써부터 전운이 감돌고 있다. 골란고원은 1967년 6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간의 이른바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리아 영토다. 알 쿠드스군은 5월 10일 골란고원에 있는 이스라엘군의 초소들에 로켓 20여 발을 발사했다. 이스라엘군은 방공망을 통해 일부 로켓을 요격했다. 이란은 헤즈볼라와 시리아의 시아파 민병대를 동원해 골란 고원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스라엘과 이란이 시리아에서 본격적으로 충돌할 경우 자칫하면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5월 14일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이 때문에 중동 지역의 긴장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파기는 6월 12일 열릴 북·미 정상회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트럼프 대통령과의 합의에 근본적인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북한은 미국에 제재 해제나 체제 보장 등을 더욱 확실하게 담보해 줄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트럼프 정부의 입장에선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해놓고 북한과의 비핵화 합의가 허술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 더 강경한 비핵화 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탈퇴 선언은 북한에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튼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파기가 중동 지역에서 새로운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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