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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칼럼] 앙드레 파주 佛 사진박물관장의 정열 

“대중의 마음속 다이아몬드에 빛을 비추고 싶습니다” 

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인터내셔널 회장
모든 이의 혼 빛내기 위해 사진 문화 보급에 앞장… 사람들이 인간성 크게 꽃피울 수 있도록 일생 바쳐

▎1989년 6월 이케다 다이사쿠 SGI 회장이 프랑스 사진박물관을 방문해 앙드레 파주 관장과 전시품을 감상하고 있다 / 사진:한국SGI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일까?

“그렇지요. 역시 고생한 사람이 찍은 사진이 가장 빛나고 좋습니다. 가치가 있습니다. 뭔가 깊은 감명을 줍니다. 살아 있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프랑스 사진박물관의 앙드레 파주 명예관장의 마음속 렌즈는 늘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시한 사람은 시시한 사진밖에 찍을 수 없습니다. 정열이 있는 사람은 정열이 넘치는 감동적인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므로 시시한 인생에서 정열이 넘치는 인생으로 바꾸기 위한 사진 문화이자 사진 교육입니다.”

확실히 사진은 찍는 대상보다 찍은 사람의 ‘마음’을 더 비춰낸다. 그래서 사진은 숭고한 시가 되기도 하고 비루함을 보여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 병을 치유하는 약이 되기도 하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진실을 외치는 증언이 되기도 하고 교묘하게 포장한 거짓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진을 통해 가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 앙드레씨의 철학이다.

“사진은 대중예술입니다. 그 점이 중요합니다. 대중은 누구나 마음속에 다이아몬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다이아몬드에 빛을 비추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의 혼을 빛내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사진 문화를 보급하는 목적입니다.”

앙드레씨는 사진박물관 창립자인 장 파주 이사장에게서 이와 같은 신조를 배웠다. 앙드레씨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어느 일에서나 정열이 넘치는 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큰 배라면 저는 그 배에 끌려가는 작은 배와 같았습니다.” 앙드레씨의 가슴속 제단에는 늘 아버지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나도 잊을 수 없는 분이다.

그날 나는 사진박물관 정원에서 장 이사장을 만났다. 여든네 살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계셨지만 굉장히 정정하고 눈이 빛났다. 휠체어에서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어 나를 환영해 주셨다(1989년 6월 12일). 돌아가시기 2년 전이었다. 아버지를 걱정하면서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앙드레씨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파리 교외에 있는 비에브르시에 내가 창립한 ‘빅토르 위고 문학기념관’이 있는데 그 옆에 사진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정원은 마로니에 나무들이 선명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프랑스의 초여름, 내리쬐는 태양에 공기까지 빛나고 빛과 그늘이 선명하게 대조를 이뤘다. 풍토가 이러니 ‘빛의 예술’인 사진이 탄생할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술을 발명한 니에프스는 처음에 그 기술을 ‘헬리오그래프’라고 불렀다. ‘태양으로 그리다’라는 의미다. ‘순간이여 멈춰라! 너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 시인의 꿈이 형태가 돼 이뤄졌다. 그러나 사진박물관이 생기기 전인 1960년까지는 발상지인 프랑스에서조차 ‘젊은 세대들이 사진문화를 알고 싶어도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때 홀로 일어선 사람이 장 이사장이었다. 사진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잡동사니를 모은다’고 조소 당하면서…. 박물관과 함께 ‘비에브르 사진클럽’ 활동으로 애호가의 연대를 넓혔다.

사람은 늘 돈 때문에 실패… 내 것이란 착각 때문

앙드레씨의 안내로 박물관을 둘러봤다. 카메라만 1만5000점인데 거기에 렌즈·네거필름·프린트·플래시·현상장비 등을 합하면 수만 점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컬렉션이라고 한다. 박물관을 가득 채운 귀중한 보물들로 넘쳐났다.

“감명받았습니다.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모으셨습니까?”

“아버지의 노력입니다. 사진이 탄생한 지 150년이 됩니다만, 처음 생길 때 쓰던 물건부터 다 있습니다.”

장 이사장의 고생이 느껴졌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다. 명성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직 문화를 지키고 싶다는 순수한 정열 때문이었다. 부자(父子)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공과 사를 혼동하지 않는 분별력과 금전 면에서의 결벽이었다.

“사람은 늘 돈 때문에 실패합니다. 모두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위해 돈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사업은 결코 여유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뜻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도와 여기까지 왔습니다. 자원봉사를 한다는 좋은 마음으로 지금까지 지속했습니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는 앙드레씨는 솔직한 말투와 친근한 인품으로 많은 사람에게서 신뢰를 얻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늘 크나큰 미래의 비전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생각을 실행하고 현실로 옮겼습니다. 그것은 ‘사진문화로 전 세계에 우정을 맺는 길’이었습니다.”

사진을 매개로 우리 우정도 계속되고 있다. 1990년 5월 사진박물관에서 내 사진전을 열고 이어서 그해 10월에 도쿄후지미술관에서 ‘프랑스 사진박물관전’도 열었다.

그때 나는 일본을 방문한 앙드레씨 일행을 교토(京都)에서 맞이했다. 정성을 다한 벗의 거문고 연주를 굉장히 기뻐해 주셨다. 앙드레씨는 소련을 방문한 추억을 말씀하셨다. 1960년대 중반의 일이다.

“당시 소련에서 사진이라고는 당을 선전하는 사진뿐이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예술적인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과 거리의 사진 앞에서 마음의 눈을 떴습니다.”

관료제 시대에 억압받던 ‘인간성’이 미(美)의 힘으로 꽃을 피웠다. 내가 문화 교류에 온 힘을 쏟는 이유도 이를 위해서다. 인간이 로봇이 아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인간성을 크게 꽃피울 수 있도록 나도 일생을 바치고 있다.

“아버지는 아직도 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내건 ‘창립의 마음’ 그 횃불로 사람들 가슴속을 밝히는 것, 그것이 제 사명입니다!”

아,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은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자일체의 초상화는 사진 문화의 은인으로서 역사의 앨범을 영원히 장식할 것이다.

※ 이케다 다이사쿠 - 1928년 1월 2일 도쿄 출생. 창가학회인터내셔널 회장. 창가대학·창가학원·민주음악협회·도쿄후지미술관·동양철학연구소 등 설립. 유엔평화상·한국화관문화훈장 외 24개국 29개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 수상 다수.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378개의 명예박사·명예교수 칭호 수여. 토인비 박사와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비롯한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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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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