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특별기획 | 즈드라스부이쩨(안녕) 월드컵! 한국전 5대 관전포인트] (4)攻守 공존하는 중원을 장악하라 

공 없이도 상대 괴롭힐 수 있어야 

김태륭 KBS 축구해설위원
볼 점유율 높을수록 미드필드 지역에서 공격 시간 증가…수비 라인 자체가 너무 내려오면 견고함 유지하기 어려워

한국은 스웨덴·멕시코·독일을 상대로 조별리그 세 경기를 치른다. 대표팀은 전력상 우리보다 강한 세 팀을 상대한다. 역대 모든 월드컵이 그랬지만 이번 대회 역시 매우 힘든 경쟁이 될 것이다. 네 팀의 데이터를 최신 축구 게임에 입력해 시뮬레이션을 실시해 본 결과 한국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실제로 월드컵 결과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축구는 위기의 순간마다 ‘투혼’을 내세웠다. 투혼 덕분에 무너진 자존심을 세웠고, 때로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투혼’이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키워드일까? 브라질은 ‘삼바축구’, 프랑스는 ‘아트사커’, 스페인은 ‘패스축구’ 등 축구 강국은 저마다 자신들의 뚜렷한 키워드를 갖고 있다. 실제로 이들의 플레이 스타일에는 자신들의 키워드가 담겨 있다.

언제부턴가 외국 관계자와 축구 얘기를 나눌 때 멈칫했던 부분이 있다. “한국 축구의 스타일은 무엇입니까?” 나는 이 질문에 단 한 번도 만족스럽게 대답하지 못 했다. 과거 국제 무대에서 투혼이 팬들과 선수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 적은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 불이 우리의 축구 스타일로 이어지진 않았다. 어찌 보면 투혼은 무형의 키워드다. 축구에 존재하는 그 어떤 전술과 전략보다 중요할 수 있지만, 반대로 투혼만 앞세워서 축구를 할 순 없다.

이번 월드컵이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플레이 스타일을 정립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지난해 11월 콜롬비아와 세르비아를 상대로 치른 평가전에서 대표팀은 4-4-2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두 경기에서 힌트를 얻은 대표팀은 최근 3월에 열린 북아일랜드·폴란드와의 평가전에서도 몇 가지 변화를 진행했다. 4-4-2 포메이션이 플랜 A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상대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스리백·스리미들 등 전략적 변화를 줄 수 있다.

모든 변화의 핵심은 중원, 즉 미드필드 지역이다. 공격과 수비가 공존하는 곳이며, 현대 축구의 키워드인 공수 전환이 가장 활발하게 발생하는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드필드를 장악하면 승리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볼 점유율이 높을수록 경합이 치열한 미드필드 지역에서 수비하는 시간보다 공격하는 시간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월드컵 무대에서 상대보다 공을 오래 소유하며, 경기를 주도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공격보다 수비하는 시간이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대표팀이 월드컵 무대에서 90분 동안 상대보다 공을 더 오래 만진다면 매우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에 한국의 미드필더들은 중원에서 공 없이도 상대를 괴롭혀야 하며 동시에 영향력까지 뿜어내야 한다. 물론 이렇게 말로 하면 쉽다. 그런데 현대 축구에서 높은 볼 점유율이 결코 승리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제법 자주 목격했다.

그동안 치른 평가전에서는 수비가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됐다. 수비수의 개인적 실수도 있었고, 수비와 미드필더의 간격과 위치에 문제가 있어 발생한 실점도 있었다. 수비는 단순히 수비수만이 아닌 열한 명 다 같이 하는 것임을 선수들은 잘 알고 있다. 여러 인터뷰에서 선수들은 ‘협력 수비’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협력 수비라 할지라도 전체적인 수비 라인 자체가 너무 골대 쪽으로 내려오면 꾸준한 견고함을 발휘하기 어렵다. 결국 수비 시작점을 적절한 높이로 형성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요소가 될 수 있다.

방패 뒤에 창 숨기고 역습 노려야

공이 없는 수비 상황에서 오히려 상대를 괴롭히는 팀들은 대부분 하프라인부터 수비 블록을 형성한다. 핵심은 수비-미드필드-공격 3선 사이의 간격이다. 최대한 공간을 압축시켜 상대가 전진 패스할 수 있는 각도를 차단한다. 이 간격 조율의 핵심이 바로 미드필더다.

대표팀이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4-4-2 포메이션의 경우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와 두 명의 측면 미드필더가 배치된다. 중앙 두 명은 공을 다루는 능력과 경기에 대한 이해도, 측면 두 명에게는 활동량과 개인 돌파 능력이 필수다. 그동안 진행된 평가전에서 기성용·정우영·박주호·이재성·권창훈 등이 미드필드 포지션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수비적 측면만 본다면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7위를 기록 중인 번리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번리는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낮은 점유율에도 잘 압축된 라인 간격과 완벽한 수비 시작점으로 리그 최소 실점 5위(37실점)의 수비력을 자랑한다.

전력이 열세라고 해서 수비만 한다면 90분을 버티기 힘들다. 그렇기에 방패 뒤에는 늘 창을 숨겨둬야 한다. 지난 3월 원정으로 치른 폴란드전을 생각해 보자. 대표팀은 손흥민·황희찬 같은 날카로운 창을 보유하고 있고 이 창들은 분명 월드컵 무대에서도 귀하게 쓰일 수 있다.

월드컵에서 한국의 미드필더들은 오히려 공이 없는 상황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이 우선적으로 수비를 견고하게 할 것이며, 동시에 방패 뒤에 숨겨진 창의 위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 물론 ‘투혼’은 기본이다.

- 김태륭 KBS 축구해설위원 ktrhoya@hanmail.net

201806호 (2018.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