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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同行-고령사회로 가는 길’(6)] 공동체 생활에서 찾는 노인주거의 미래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미인가요?” 

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홀몸노인에겐 주택 공급 이상으로 돌봄 서비스 제공 절실…공용 공간 만들고 빈방 공유하는 ‘커뮤니티 주거’가 대안으로 떠올라

▎노인주거 정책은 단순한 주택 공급 이상으로 지속적인 주거 서비스가 필요하다. 서울 금천구 보린두레주택 입주 노인들이 함께 쓰는 공용 거실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 사진제공·금천구청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다세대주택에서 거주하던 김정애(78·여·가명)씨는 지난 2014년 겨울 집주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재건축 때문에 김씨가 거주하는 건물을 철거해야 하니 방을 비워 달라는 것이었다. 세 평짜리 쪽방에서 혼자 사는 김씨는 화장실과 욕실도 집밖에 있어 불편했지만 달리 갈 곳이 없던 터라 감지덕지 살아온 집이었다.

“전세 보증금 1500만원이 있지만 지인에게 갚아야 할 빚이었어요. 매달 나라에서 주는 돈에 폐지 팔아 번 돈으로 살아가는 형편에 모아둔 돈이 어디 있었겠어요. 1년 안에 방을 비워야 했는데 눈앞이 캄캄했지요.”

김씨는 시흥동에 있는 주민센터 네 곳을 찾아다니며 호소도 해보고 개인 사정을 말했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2014년까지는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서 입주자를 모두 선정했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입주 1순위였지만 동일 순위인 경우 세대원 수가 많은 가구에 우선권이 돌아갔다. 자치구 입장에서도 재량으로 주거위기에 놓인 홀몸노인들을 도울 방법이 없었다.

김씨가 이사할 방법을 찾지 못 하고 주저하는 새 한 해가 지나, 퇴거를 약속한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결국 집을 못 구하게 되면 지인 소개로 알게 된 교회 기도원에서 생활해야 할 참이었다. 퇴거 1주일여를 앞두고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어르신, 이번에 구청에서 임대주택을 새로 지었어요. 보러 오시겠어요?”

금천구는 2014년 8월 SH공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임대주택 입주자의 30%를 구청에서 선정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갖고 있었다. 2015년부터는 SH공사가 준공한 임대주택에 대해 금천구가 직접 입주자 선정을 하게 된 것이다. 김씨 같은 홀몸노인이 1순위에 해당됐다. 같은 순위 중에서는 지하·반지하·옥탑방에 사는 홀몸노인에게 우선권이 있었지만, 김씨의 경우엔 강제퇴거를 앞뒀다는 점이 참작됐다. 김씨는 “전화를 해준 직원이 마치 구세주처럼 느껴졌어요”라며 당시의 기쁨을 말했다.

공공임대주택, 마을공동체로 진화하다


▎보린두레주택은 1층을 유료 주차장으로 전용(轉用)해 그 수입을 건물 관리비에 보탠다. 보린두레주택 건물 전경. / 사진제공·금천구청
김씨가 살게 된 공공임대주택은 서울 금천구 관악산 기슭에 위치한 ‘보린(保隣)두레주택’. 2015년 12월에 입주민을 받고 금천구청에서 직접 입주 노인들에게 주거 및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다.

보린두레주택은 낡은 경로당을 허문 자리에 세워진 4층 건물이다. 1층 주차장 6면을 주민에게 유료로 개방해 그 수입을 건물 관리비에 보태고 있다. 2층에는 경로당이 있다. 보린두레주택에 입주한 노인뿐 아니라 지역 노인들이 편하게 이용한다. 노래교실, 영화감상 등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는 20여 명이 넘는 노인이 이곳으로 모인다. 3층과 4층이 거주 공간이다. 기초생활수급자 홀몸노인 8세대가 입주해 있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어 입주 노인들이 이동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주거 공간은 중앙에 공용 거실과 주방을 중심으로 노인이 각자 방을 사용하게끔 설계돼 있다. 개인 방에도 미니 주방이 설치돼 개별적인 조리가 가능하다. 덕분에 입주 노인들은 ‘따로 또 같이’ 살아간다. 개별로 살아가면서도 손쉽게 커뮤니티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임순례(82·여·가명)씨는 보린두레주택에 와서 사람 만나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여기는 문만 열면 다 이웃이에요. 언니도 있고, 동생도 있고, 친구도 있고. 점심에는 부엌에서 고구마나 호박 같은 것도 같이 요리해서 먹고, 이것저것 내 와서 같이 해먹고 그래요.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같이 들여다보고 돌보기도 하지요. 예전 집에서 혼자 살 때 적적한 거랑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옥상에는 입주 노인들이 관리하는 텃밭도 조성돼 있다. 이 씨는 “봄이 오니까 텃밭을 가꾸는 일이 제일 재미있어요”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새벽 4시에 교회에 새벽기도 갔다가 곧장 집으로 안 와요.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서 텃밭부터 확인합니다. 상추·토마토·딸기·고추·쑥갓·두릅…. 키워서 먹으라고 내가 아저씨들 화분에도 심어놔요. 그런데 귀찮아서 시들 때까지 안 먹지.(웃음)”

상주 직원을 두고 입주 노인에게 생활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점도 보린두레주택만의 특별한 점이다. ‘소장’으로 불리는 직원이 공용공간 청소부터 안부 확인, 병원 동행, 공과금 납부 같은 업무를 도맡아 해준다. 보린두레주택을 관리하는 김경미 금천구 주무관은 “어르신 대부분이 고령인 만큼 서로 챙기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상주 직원이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써 주지 않았다면 어르신들의 주거 환경은 금세 예전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주한 노인 대부분은 이곳에 오기 전 월세 10만~20만원짜리 단칸방을 전전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생계급여 등으로 버는 돈 43만원 가운데 공과금을 포함한 주거비를 제하고 남는 돈은 평균 13만원에 불과했다. 월 소득 가운데 주택임차료 비율이 40%에 가까웠다. 남성일(68·가명)씨는 ‘예전에 살던 집은 어땠느냐’는 질문에 “월세보다 공과금이 훨씬 더 많이 나오는 집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래된 벽돌집이었는데 겨울이면 추춰서 덜덜 떨렸지요. 가스가 어디로 줄줄 새는지 혼자 사는 집에 가스비만 매달 10만원씩 나왔어요. 전기세도 4만원은 족히 나와서 세탁기도 함부로 못 썼어요. 손빨래한다고 손이 다 얼고…. 그뿐인가요. 1층에 살았는데도 벽지에 곰팡이가 새까맣게 슬어 있었어요. 여름에도 감기약을 달고 살았지요.”

2014년 구의회에서 조례를 개정한 덕분에 입주 노인들은 연 2% 이율로 입주 보증금 1000만원의 90%까지 융자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자를 가장 많이 내는 노인도 1만3600원 밖에 내지 않는다. 여기에 월세 6만~7만원과 3만원 내외의 공과금을 합치면 매달 10만 원가량을 주거비로 지출한다. 입주 전 노인들이 주거비로 평균 27만원을 지출한 점을 감안하면 부담이 3분의 1 가까이 줄었다. 남씨는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가 있어서 전기를 아무리 써도 1만 원 이상으로 안 나온다”면서 “요즘에는 전기를 펑펑 쓰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보린두레주택은 노인 맞춤형 공공임대주택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귀숙 숭실대 건축학과 교수는 “단순히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난 게 가장 주목할 만하다. 사전에 위기 노인을 적극 발굴하는 한편 사후 돌봄 서비스까지 수년째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경미 주무관은 “임대주택 관리 책임을 자치구로 모은 덕이 큰 것 같다”며 “덕분에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주택 아니었으면 전세난민처럼 떠돌았을 것”


▎한 입주민이 보린두레주택 옥상 텃밭을 관리하고 있는 모습. 입주 노인들은 함께 텃밭을 관리하며 공동체 의식을 다진다.
노후 주거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주택을 세우기도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택소비자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을 걸고 2013년 6월 만들어진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이하 ‘하우징쿱’) 이후로 다양한 협동조합 주택이 건설되고 있다. 주택이 완성된 이후에는 주택별로 협동조합을 새로 구성하도록 돕는다. 2016년 8월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에 세워진 ‘여백 공동체주택’(이하 ‘여백’)이 그중 하나다.

여백에는 1인 가구부터 자녀를 모두 독립시킨 은퇴 부부가구, 아이들이 이제 유치원에 들어가는 3040세대, 성인 자녀를 둔 5060세대가 모여 산다. 5세 미취학 어린이부터 90세 노인까지 세대를 망라하고 총 10가구, 27명이 거주하고 있다. 하우징쿱의 다른 주택들이 ‘노인 공동주거’ 형태를 띠는 데 비해 여백은 ‘세대혼합형 거주’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김수동씨는 “어르신들끼리 살다 보면 고령화로 인해 공동체의 에너지가 약화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세대혼합형 주택을 모색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가 분리와 배제의 공간이 돼버렸어요.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으로 나누고, 평수로 나누고, 강남과 강북으로 나누잖아요. 공공임대주택 또한 어르신주택과 청년주택 등으로 나눕니다. 이렇게 다양한 기준으로 구분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여 살게 됩니다. 참 잘못된 거지요. 모든 사람이 다양하게 어울려 살아야 삶이 더 확장되고 풍요로워질 수 있잖아요.”

김씨는 올해 90세를 맞은 어머니를 모시며 3대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김씨가 ‘여백’ 입주를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로 어머니를 꼽았다. “홀로 살던 어머니의 삶이 70대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서서히 어려움에 봉착하기 시작합니다. 협소한 주택에서 비싼 주거비용을 부담하며, 홀로 서서히 고립돼 가는 거죠. 중산층 노인이 선택할 만한 주거 대안이 없습니다. 경제력을 잃기 전에 가족과 공동체, 돌봄을 고려한 주거 계획을 세우고 실현해내고 싶었어요.”

여백은 수요자 맞춤형 주택이다.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짓고 분양하는 집이 아니라 각 세대가 자기가 원하는 형태와 크기에 맞춰 집을 짓는 방식이다. 그래서 여백의 10세대는 크기와 구조가 제각각이다. 전용면적 기준으로 가장 작은 집이 20평, 큰 집은 38평이다. 세대별로 차이는 있지만 평당 평균 1000만~1100만원이 소요됐다. 김씨의 경우 전용면적 25평에 총 2억6000만원이 들었다.

“이전에 살던 서울 도봉구 아파트의 전셋값을 찾아보니 3억8000만원까지 올라갔더라고요. 여백에 자리 잡기까지 이사를 열네 번이나 했습니다. 한마디로 전세난민이었죠. 여백이 아니었더라 지금도 전세를 찾아서 떠돌고 있었겠죠.”

홈셰어링 경우 어르신들 자존심 지켜드리는 게 중요


▎2017년 5월 여백 입주민들이 봄을 맞아 충북 괴산군에 있는 ‘산막이옛길’을 방문한 모습. 여백에서는 5세 아동부터 90세 노인까지 다양한 세대가 어울려 살고 있다. / 사진제공·김수동
‘여백 주택협동주합’을 결성해서 자치규약을 만들고 10가구를 기획운영·생태환경·교육문화 등 3개 분과로 나눠 운영한다. 기획운영분과는 관리와 회계를 담당하고 생태환경분과는 청소, 쓰레기, 주변 조경 등을 맡는다. 교육문화분과는 노인이 많이 사는 인근 동네의 특성에 맞춰 노인과의 관계 유지에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참여를 강제하거나 불참 시 불이익을 주는 일은 일절 없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계획된 커뮤니티 활동보다는 일상에서의 소통과 교류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정례 모임은 매달 1회씩 밥상모임을 합니다. 참석자들이 음식을 하나씩 준비해서 모이면 풍성한 밥상이 차려집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한잔하는 이 시간이 무척 즐겁고 유쾌합니다. 일상적인 소통은 ‘단톡방’을 통해서 하죠.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등 항상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사는 이순열(73·여)씨는 10년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4년 전에는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 해외에 있는 큰딸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난해 말 입주를 앞두고 귀국한 이씨를 맞이한 건 외로움이었다. 깨끗한 인테리어에 널찍한 방이 세 개나 있지만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지역 신문을 통해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홈셰어링 프로그램인 ‘한지붕 세대공감’을 알게 됐다.

한지붕 세대공감은 노인과 청년이 주거 공간을 함께하는 사업으로 ‘공유도시’를 표방하는 서울시 주거정책 중 하나다. 노인이 집 안의 빈방을 내주면 학생은 보증금 없이 주변 시세의 절반 수준의 임차료를 내고 사는 식이다. 노인은 도배·장판 시공이나 방범창·방충망 교체 등 환경 개선을 위해 1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돼 현재까지 11개 자치구에서 228개 노인가구가 청년들과 연을 맺었다.

홈셰어링은 홀몸노인의 사회적 고립을 해소할 해법으로 고안됐다. 노인들은 다름 아닌 자신의 집에 고립돼 있다. 2003년 프랑스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1만5000여 명이 사망했다. 이때 희생자의 대부분은 가족과 떨어져 살던 70~80대 노인들이었다. 청년과 같이 사는 노인은 안부 확인부터 형광등 갈기 같은 가벼운 수리·수선 같은 주거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올해 2월부터 집 근처 성신여대 학생과 동거를 시작한 이씨는 “이제는 집 현관문을 열었을 때 ‘할머니!’라고 불러줄 사람이 있다”며 행복해 했다.

“밤에는 함께 과일을 깎아 나눠먹는 게 소소한 행복이에요. 친자식은 주일(일요일)에도 못 볼 때가 많은데, 누군가 곁을 지켜준다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하죠. 휴대전화를 만지다가 모르는 게 있을 때도 묻곤 하는데, 학생이 답답해하는 내색을 보이면 그것도 손녀딸 같아서 재미나요.(웃음)”

“밤새 앓던 학생 내가 응급실에 데려 갔죠”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 소재 협동조합주택 ‘여백’ 전경. 여백의 입주민들은 기공식과 완공식 때 지역 주민을 불러 잔치를 여는 등 지역 커뮤니티 활동도 열심이다.
서울 성북구 상월곡동에 사는 허탄(73)씨는 2016년 3월부터 3년째 입주 대학생들에게 방을 내주고 있다. 처음에는 근처 동덕여대 학생 1명으로 시작한 것이 어느덧 3명으로 늘었다. 허씨는 “한 학생이 밤새 설사를 해서 새벽에 병원응급실로 데려간 적도 있었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제가 울타리 역할을 해주지요. 그런데 지금 사는 학생들이 3~4학년이에요. 공부한다고 밥도 안 먹고 나가니까 그게 제일 신경이 쓰이네요. 젊어서 하숙 생활을 하다가 속 버리는 사람을 많아 봐와서 걱정이 됩니다. 매일 아침 밥 먹고 가라고 잔소리를 하는데도 말을 안 듣네요. 손자·손녀는 아니라도 같이 사는데 이만큼 챙겨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요?”

주변 시세 절반 수준인 임차료지만 노인들에게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집을 가진 노인들의 비율은 73.5%에 달하지만 정부나 자녀로부터의 이전소득 이외에는 소득원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자산이 소득으로 연결되지 못 하는 것이다. 그런 탓에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9.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허씨도 학생들을 받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집이 팔리지를 않아서”라고 답했다. 학생들을 받기 전까지 3년 동안이나 집이 팔리지 않았다.


▎한지붕 세대공감에 참여하고 있는 이순열씨는 “늦게 귀가한 학생과 과일이라도 같이 깎아 먹는 게 소소한 행복”이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서울시
조재순 한국교원대 가정교육과 교수는 “홈셰어링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어르신들의 자존심을 지켜 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인들 사이에 하숙생을 받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자녀가 자신을 돌보지 않아서 하숙을 놓는다’ 식의 인식 탓이었다. 하지만 홈셰어링을 하면서 대부분 의식이 바뀌게 된다. “어르신들은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는 점에서 뿌듯해 합니다. 임차료를 받아도 이건 하숙비와는 다른 거예요. ‘품위 있는 소득’이라고 할까요? 담당자들이 이런 감정을 섬세하게 다뤄야 앞으로 더 많은 어르신을 설득할 수 있을 겁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고령가구를 대상으로 복지서비스가 결합된 ‘어르신 공공임대주택’ 5만 실을 2022년까지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주택 공용공간에 복지시설을 설치하거나 복지시설·보건소와 인접한 곳에 주택을 지어 노인들에게 필요한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과거 영구임대주택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구임대주택은 1989년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에 따라 1996년까지 전국에 총 19만77호가 공급됐다. 애당초 영구임대주택은 도시 빈곤층이 생활 근거지를 옮기지 않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빈곤층 거주지 주변에 소규모로 건설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정책 시행 과정에서 계획연도 안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택지 확보가 용이한 지역에 대규모 단지로 조성했다. 서울에 있는 영구임대주택단지 가운데 4분의 3이 1000가구 이상을 수용하고 있고, 1개 단지당 평균 1431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로 건립된 영구임대주택은 주변의 분양아파트단지와 공간적으로 확연히 분리됐다. 빈곤층·노인·장애인·만성질환자 등이 주로 거주하다 보니 사회적으로도 확연히 고립됐다. 이로 인해 영구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낙인으로 연결됐다. 2004년 당시 김위정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위촉연구원이 영구임대주택 주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주민들이 주택에 살면서 과거보다 더 심한 소외감을 겪고 있다는 점이 실증됐다.

최근에 청년·대학생 임대주택이나 기숙사 건립을 두고 지역 주민들이 ‘혐오시설’이라고 반발하고 나선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박철수 교수는 “아무리 선의에 기댄다고 해도 특정 집단만을 겨냥해 대규모 임대주택단지를 만드는 것은 사회적 격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조재순 교수는 “노인들끼리 살게 하려면 정말 그들끼리 잘살 수 있는 공동체를 우선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어떻게 노인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짤 것인지, 그 프로그램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대단지를 소규모 단위 주택으로 잘게 쪼개야 한다는 게 조 교수의 진단이다.

공급 일변도 벗어나 ‘한국형 주거 모델’ 찾아야


▎2017년 12월 13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김 장관은 2022년까지 어르신 공공임대주택 5만 실(室)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스웨덴에서는 노인 공동주거의 적정 규모로 20~50가구를 말합니다. 조금씩 사니까 한 명 한 명에게 줄 수 있는 관심이 늘지요. 그래야 이웃과 안면을 트고 친밀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주거지를 잘게 쪼개는 일이 능사는 아니다. 10가구 이하로 규모가 작아지면 공동 공간을 확보하기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탓이다. 5년마다 노인인구가 100만여 명씩 느는 상황에서 소규모 주택으로 수요를 충당하기엔 부지도 재원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금천구는 보린두레주택을 포함해 현재까지 4개 동의 공공임대주택을 운영하고 있지만 수용 가능한 세대는 56세대에 불과하다. 2013년 금천구가 자체 조사한 입주 대상자 514명에는 한참 못 미치는 규모다.

서귀숙 교수는 경제성과 공동체성 사이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 ‘한국형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홈셰어링은 자기 소유 집이 있는 노인들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주택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돈도 만만치 않죠. 정말 상황이 여의치 않은 분들에게는 대단지 임대주택에 갈 수 있는 기회도 있어야 하겠죠. 다양한 모델을 실험해 보면서 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늘리고 그 가운데서 ‘한국형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 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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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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