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Home>월간중앙>히스토리

[우리가 몰랐던 일본·일본인(6)] 개운법(開運法) 알려준 관상학의 아버지 미즈노 남보쿠 

운명을 바꾸고 싶거든 음식을 바꿔라 

최치현 숭실대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
기존 관상학에 함몰되지 않고 임상체험 통해 자신만의 세계 일궈…“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결과”라며 ‘절식개운(節食開運)’ 주창

▎얼굴은 사람의 마음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마음의 캔버스다. 미즈노 남보쿠는 기존의 관상학에 함몰되는 것을 거부하고 임상체험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만물을 소중하게 절제하라.’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라 하늘과 자연의 가르침이다. 인간의 행복을 음식의 절제에서.” _일본 관상학의 아버지 미즈노 남보쿠(水野南北)

바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살갗에 스치는 촉감으로 바람을 느낀다. 꽃은 바람의 모습을 대신 보여주는 전령이 되기도 한다. 사시사철 형형색색의 꽃은 피어나서 시를 쓰게 하고 그림을 그리게 유혹한다. 그곳에 실려 산들바람·폭풍우·태풍 같은 바람은 자신의 감정을 전해 준다.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무섭게 흔들어댄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은 바람이고 눈은 꽃이다. 눈을 보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을 대강 읽을 수 있다. 사람도 문장에서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문체라고 한다. 사소한 몸짓에서도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랄까 어떤 외로움 같은 것도 이러한 몸짓의 하나이다.

얼굴은 사람의 마음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마음의 캔버스다. 안색으로 표정으로 자신의 온 마음을 표현한다. 그 사람의 내면세계가 오롯이 드러난다. 얼굴은 자신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 존재가 부끄럼 없어야 좋은 얼굴을 가진다.

좋은 얼굴은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드러내는 성적표다. 모든 욕망을 불태우며 인생을 탕진하고 살 것인가. ‘자존과 겸손’으로 절제된 삶을 살 것인가. 자기 자신을 끝도 없이 드러내며 과시할 것인가 아니면 낮은 곳에서 한없이 낮추고 감추며 살아갈까. 얼굴에는 그 비밀이 숨어 있다.

한국어에는 ‘겉볼안’이란 말이 있다. ‘겉을 보면 속은 안 봐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있듯이 사람을 보는 기준은 성장하면서 자신의 뇌 속에서 판단이 되는 기준을 이미 설정해 놓고 자기식대로 평가하고 해석한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관상학이 발전한 이유는 바로 타인의 심성을 읽어내려는 호기심과 탐구정신에서 비롯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인류 역사를 발전시켰다. 호기심이 세상을 향하면 험난한 파도와 바람을 타고 대양을 건넜고, 마음의 심연으로 여행을 하면 인간을 읽었다.

고아나 다름없던 어린 시절… 10세에 술 배워


▎[남북상법] (南北相法)의 표지. 원조(元祖) 쇼토쿠(聖德) 태자, 중조(中祖) 미즈노 남보쿠(水野南北) 거사 저(著)라고 씌어 있다.
뭔가를 알아차리고자 할 때 제일 먼저 취하는 동작은 ‘바라봄’이다. ‘자세히 들여다봄’으로 더 실체에 다가서려고 한다. 관상(觀相)은 외부에 드러난 형태를 파악해 자세히 안과 겉을 바라봄으로써 내면의 상태를 파악하는 해석이다. 그리하여 길흉과 미래를 점치기에 이르렀으나 그 해석에 있어 자의적이고 과학적이지 못 한 이유로 학문으로 정착하지 못한다. 저마다의 통계학적 기준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하고 만다.

수상(手相)을 포함한 일본 관상학의 역사에서 원조는 쇼토쿠 태자(聖德太子)라고 한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관상가는 미즈노 남보쿠(1757~1834)다. 그는 쇼토쿠 태자를 교조(敎祖)로 삼아 신도(神道)·유교(儒敎)·불교(佛敎)를 깊이 연구했다. 관상을 해석으로만 하지 않고 운명을 적극 개척하는 철학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성격·기질·사고·운세 등 모든 것이 ‘그 사람이 무엇을 먹고 있는가’로 결정된다고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우리가 그에게 흥미를 품는 이유다. 그가 누구인가 살펴보자.

일본 관상학의 대가이자 철학자로 불리는 남보쿠는 인간의 얼굴과 몸을 읽은 사람이다. 에도시대 중기 때의 사람이다. 당시 일본 제일의 관상가로 꼽혔다. 그의 관상학이 특별하다 싶은 점은 ‘절식개운설(節食開運說)’이라는 주장 때문이다. 관상은 언제든지 바뀌며 그 관상이 바뀌는 출발점이 절식(節食)에 있다는 이론과 철학이다.

그의 관상에 관한 저서는 [남북상법(南北相法)] [남북상법수신록(南北相法修身錄)] 등이 있다. “음식은 운명을 좌우한다”가 그의 좌우명이다. 한국어 번역본은 몇 권 있다. [관상] [절제의 성공학] [마음 습관이 운명이다] 등이다. 그는 마음먹기에 따라 관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 핵심은 절식이며, 이를 충실히 행한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초상화로 전해지는 그의 관상부터 우선 살펴보자. 키가 작고 자세가 나쁘다. 용모는 옹졸하고 입은 작고 눈은 험상궂게 움푹 들어갔다. 코는 납작하며 광대뼈는 튀어나왔다, 이빨은 짧고 작다. 발도 작다. 누가 봐도 같은 결론이다. 추악한 모습, 악상(惡相)이다. 이러한 외모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 대가의 반열에 오른 ‘얼굴과 몸의 철학자’는 출생부터 험난한 길을 만난다. 그는 거의 고아나 다름이 없었다.

‘관상’을 이루는 한자 相(상)은 마음에 따라 외부로 드러난 업(業)이라고 한다. 이 업은 수시로 바뀐다. 얼굴을 변화 시킨다. 남보쿠는 어떻게 마음을 다듬어 새로운 관상을 가꾸며 운명을 바꿨을까? 운명 전환의 비밀은 의외로 간단하다.

남보쿠는 오사카 출신이다. 원래 이름은 카쓰사부로 타다요시(勝三郞忠良)이다. 아버지는 원래 오사카의 아와자(阿波座)에서 곡에 맞춰서 옛 이야기를 읊조리는 조루리(淨瑠璃) 연극의 각본을 쓰던 전속 작가였으나 남보쿠가 어린 시절 타계했다. 고아가 된 남보쿠는 대장장이였던 야스케(彌助) 부부 아래서 자란다. 아명을 ‘열쇠 집 구마다’라는 뜻의 가키야 구마다(鍵屋熊太)라고 불렸다.

어린 나이인 10세부터 술을 배웠고, 술값이 부족해지자 숙부가 애지중지하는 물건들을 들고 가출한다. 도박도 일삼았다. 마을의 건달로 지내며 하루가 멀다 하고 칼부림 사태를 반복하다가 결국 18세 되던 해에는 술값 때문에 사고를 쳐서 감옥에 갇힌다.

남보쿠는 반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밖에서 봐왔던 사람들과 감옥에 들어온 사람들이 꽤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관상과 사람의 운명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는 관상에 빠져든다. 그곳에서 죄인들의 모습을 관찰하던 남보쿠는 감옥을 나오자마자 자신의 운명을 알기 위해 관상가를 찾아간다.

그 관상가로부터 “1년 안에 칼에 맞아 죽을 관상이니, 이 길로 속히 절에 가서 출가하라”는 말을 듣는다. 칼부림으로 죽는 ‘검난(劍難)의 사상(死相)’이 보인다는 말이었다. 타고난 나쁜 운명을 바꾸고자 그는 시운잔 즈이류지(慈雲山瑞龍寺)라는 절에 가서 출가를 요청했다. 절에서 그는 “1년간 보리와 콩으로만 식사를 하면 제자로 받겠다”는 말을 듣는다. 도지마(堂島)강에서 화물을 싣고 다니는 배의 하역인부로 일하면서 그는 보리와 콩만으로 1년을 보낸다.

절의 스님을 만나기 전에 관상을 봐줬던 점쟁이를 찾아간다. “검난의 상이 사라졌다. 뭔가 큰 공덕을 쌓았음이 분명하다”며 놀란다. 사상(死相)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운세도 나아졌던 것이다. 남보쿠가 식생활을 개선한 경위를 말하자 점쟁이는 “그것이 은덕(隱德)을 쌓고 상까지 바꾼 것”이라며 그를 제자로 삼으려고 했다. 그러자 남보쿠는 원래 예정했던 절의 불문(佛門)에 몸을 들이지 않고 전국 각처를 떠돌며 수양하는 관상가의 꿈을 품은 채 편력의 여행길에 오른다.

남보쿠가 관상학을 꿈꾼 시점은 21세 때라고 한다. 당시에 그는 인간의 온몸에 드러나는 기색을 정확히 읽고자 고된 학습의 시간에 들어선다. 9년에 걸친 ‘333 관상 수련법’이 여기서 나왔다. 이발소에서 남의 머리를 만지며 익힌 두상(頭相), 공중목욕탕에서 때를 밀며 터득한 체상(體相), 화장터에서 소체부(燒體夫)로 체득한 골상(骨相)의 배움이었다. 이러한 수련을 거쳐서 사람의 심상(心相)을 읽어내기 시작한다.

세상사는 변하는 것, 관상도 노력에 따라 변해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비법을 알려 준 일본의 관상가 미즈노 남보쿠.
남보쿠의 관상법은 얼굴과 손을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온몸을 발가벗겼다”고 표현한다. 그 무렵의 탐구가 이뤄낸 성과다. 이렇게 철저한 연구와 체험을 통해 관상학의 심오한 경지를 이룬 남보쿠는 결국 관상법의 한 체계를 완성한다. 그 주장의 핵심은 ‘절식이 운세를 고친다’다.

사람의 마음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 장의 사진으로 사람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 세상의 대부분 갈등은 사라지고 서로의 배려로 넘쳐나지 않을까? 기계는 발명되지 않았지만 사람의 마음이 드러나는 곳이 바로 얼굴이며 몸이며 몸짓이다. 문제는 해석이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실체는 얼굴을 포함한 외부의 ‘디스플레이’에 존재한다. 다만 해석만이 다를 뿐이다.

관상학이란 얼굴과 몸의 해석학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다 변한다. 사람의 얼굴도 세월의 관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늙어가고 변한다. 관상도 사람의 노력에 따라 변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타고난 유전적인 요인보다 후천적인 마음가짐이 더 큰 변화의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는 부처님과는 다르게 아주 쉬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적게 먹어라’다. 인생의 개운(開運)은 소식(少食)에 있으며 삼가는 마음에 있다.

남보쿠는 주식이 보리밥으로, 1일에 보리 1홉 반으로 정하고 부식으로는 국 하나, 반찬도 하나였다. 쌀과 떡을 일절 입에 대지 않고, 술은 1일 1홉까지만 마시며 생애를 통틀어 검소한 식사를 했다. 남보쿠는 음식을 절제하는 방법으로 관상과 운명을 바꿨다. 사람을 점칠 경우는 식사의 양·내용·횟수·시간 등을 상세하게 물었다. 소식을 하면 내장의 상이 좋아지고 내장의 상이 좋아지면 관상이 좋아진다. 관상이 좋아지면 운명이 바뀐다는 이론이다.

관상이 인간의 운명을 바꿀 뿐 아니라 관상보다도 식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점은 매우 흥미롭다. 도박을 해도 좋고 다른 어떤 것을 해도 좋은데 다만 먹는 것만큼은 주의를 기울이라는 가르침이다. 그는 수명과 음식의 양이 각자 하늘로부터 받아서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천량론(天糧論)은 바로 사람이 태어나면서 품고 나온 하늘이 정해준 음식의 양을 다 먹을 경우 죽음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계속 먹고, 먹을 수 없을 때 목숨이 다한다. 실제로 소식을 하면 손금의 생명선이 길어진다고 한다. 남보쿠는 일본의 소식 요법 전통의 원조라고 말해도 좋은 존재다. 실제로 에도시대에도 부유층에서는 영양의 과잉으로 성인병이 나타났다.

예전부터 일본에서는 “몸집이 큰 남녀는 장수하지 못한다”는 말이 전해졌다. 과식은 조숙(早熟)을 야기하고 조숙은 조로(早老)를 부른다는 의미다. 몸집이 큰 사람의 단명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장수하는 사람을 살펴보면 몸집이 작은 사람이 많다. 착한 인상, 좋은 운, 건강한 몸을 갖췄더라도 음식 사치를 하고 호색에 육식을 탐하면 차츰 빈궁해지다 단명한다고 남보쿠는 주장한다.

3년간 8할 분량만 먹으면 개운(開運)한다


나쁜 관상에 흉한 운, 건강까지 나빠도 밥 한 그릇에 반찬 한 가지의 절제하는 식생활을 이어가면 부귀장수에 이른다고 본다. 세상에는 이른바 성공철학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것이 넘쳐나고 있다. 그가 보기에는 인간의 운명 근저에 있는 것이 음식의 절제다. 음식의 절제에 의해서 건강·입신·축재·행복·장수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식사량에서 8할 분량만을 먹으며 3년을 지내면 개운(開運)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인 숫자보다도 절제하고 삼가는 마음가짐을 강조하는 말이다. 소식을 하는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복을 받고, 과식하는 사람은 비록 상이 좋아도 한평생 근심·걱정이 끊이지 않고 노년이 흉하다.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 경제력에 비해 조식(粗食)하는 사람은 가난뱅이 상이라도 복을 받아 노년이 길하다고 주장한다. 미식에 대해서도 남보쿠는 일침을 가한다. 햇것이나 풋것 같은 음식물을 즐겨 먹는 사람은 아무리 인상이 좋아도 한평생 발전하지 못하고 재산이 흩어지고 가정을 망친다.

불교에는 불살생(不殺生)이라고 하는 가르침이 있다. 구약성서에도 살생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동양철학에는 인간이 많이 먹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사상이 있다. 먹는다고 하는 일은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목숨을 빼앗는 일일 수 있다. 결국 많이 먹는 사람은 많은 생명을 빼앗는다고 볼 수 있다. 자연계에는 넘쳐서 지나치는 경우가 재앙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존재하고 있다. 이것이 과식하는 사람에게는 발병이나 단명을 초래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생물을 죽이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남보쿠의 소식 철학은 어찌 보면 생명 애호의 사상이다. 살생을 최소한으로 하자는 배려의 철학이다. 고승들 중에는 1일 1식을 지키는 분도 있다. 생명에 대한 배려이자 욕망의 절제인 것이다. ‘하라하치분메(腹八分目)’라고 하는 것은 조금 양에 덜 차게 먹는다는 말이다. 비교적 후세 사람인 가이바라 에키겐(目原益軒)과 에도시대의 스님들이 말했다고 한다.

전통적인 일본철학에는 양을 덜 차게 먹는다고 하는 사고방식이 없었다고 한다. 동양의학의 원전이라고 일컬어지는 [황제내경(黃帝內經)]에는 6대 4라고 하는 비율이 적혀 있다고 한다. 자신이 먹고 싶은 욕망을 60%로 억제하는 일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이라는 얘기다.

인도의 전통 치유 의학인 아유르베다(Ayurveda)에서도 위(胃)주머니의 3분의 1은 고형물이고 다른 3분의 1은 액체라고 본다. 남은 3분의 1은 소화를 위한 스페이스이므로 과식을 하지 말고 비워두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배는 6할 정도로 채우면 좋다는 결론이다.

요가의 유명한 교의가 있다. “8할 정도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 6할 정도로는 늙음을 잊는다. 4할이면 신의 경지에 이른다.” 요가 5000년의 가르침은 “6할의 충만감으로 늙음을 잊는다”다. 절제가 생명의 진리임을 갈파하는 내용이다.

남보쿠의 사상은 이시즈카 사겐(石塚左玄)으로 이어지고 사쿠라자 유키가즈(櫻澤如一)에 의해서 마크로바이오틱(장수식사법)으로 체계화한다.

성공하지 못 하는 이유는 의지 분산 탓


▎일본식 저염분 고등어조림 정식. 국을 포함해서 4찬(饌)의 소박한 밥상이다.
남보쿠는 작은 성취에 취해 술과 고기를 즐기며 몸을 망치고 상을 어지럽히는 행동을 싫어했다. 진정으로 혼신을 다해 일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갈파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신만이 가는 한 길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혼신을 다해 제 길을 가지 않는 사람을 광주리에 갇혀 탈출을 시도하는 개구리로 비유하면서 여러 구멍 중에서 한 구멍만을 노려야 탈출에 성공한다고 말한다.

현명한 개구리는 그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한 곳에 집중해 빠져 나갈 수 있듯이 사람도 이곳 저곳 기웃거리지 말고 자신만의 뜻과 길을 세웠으면 오로지 그 길 하나만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한 길로 간다면 태산도 뚫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성공하지 못 하는 이유는 의지의 분산이며 사람의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이유는 가야 할 길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보쿠는 절식의 문제 이외에도 강한 운을 부르는 비결 몇 가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먹는 문제, 그리고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삼가고 절제하면 운이 모인다고 말하고 있다. 남보쿠의 관상을 바꾸는 개운의 철학은 근검절약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 아침 뜨는 태양에 공손히 절하라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일찍 자라
▷저녁에 일을 하는 것은 길하지 않다
▷의복과 주거의 사치는 길하지 않다
▷검약(儉約)은 길하지만, 구두쇠는 불길하다


남보쿠는 먹는 것보다 다른 차원의 큰 기쁨을 누리라고 말한다. 벼슬아치라면 높은 벼슬로, 농부라면 풍작으로, 기술자라면 최고의 기술로, 상인이라면 사업의 번창으로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어찌 먹는 것같이 하찮은 것을 이런 기쁨에 비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면서 음식을 즐기기 전에 먼저 성공을 즐기라고 한다.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큰 기쁨을 누리는 삶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다. ‘혼신을 다해 한 길을 가라’는 가르침이 남보쿠의 성공 철학이다.

남보쿠에게 관상학이란 결국 건강한 육체를 만드는 일이다. 현대 철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육체의 중요성이다. 정신을 담는 그릇인 육신이 건강하면 운명이 좋아진다는 이론이다. 무절제한 삶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육체를 없앤다. 병에 걸린다는 것은 무절제함으로부터 온다고 남보쿠는 파악한다. 현대에 유행하는 각종 다이어트를 통한 체중감량으로 건강한 삶을 살면 인생이 풍요로워진다는 말이다. 다이어트는 필수적이고 균형감 있는 최소한의 영양분만 몸에 공급하자는 생각이다. 성인병을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펼칠 수 있다. 성인병이 현대인의 삶을 괴롭히고 있다. 성인병의 주범은 과식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남보쿠가 이야기한 문제를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위에서 살폈듯이 인도의 아유르베다식 식사 처방도 남보쿠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검증을 거친 이론과 대동소이하다. 미즈노 남보쿠는 9년에 걸쳐 철저하게 검증한 내용을 아주 쉬운 언어로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다. 그의 탁월함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이야기 하는 매력이다. 그의 제자들이 아직까지 그의 사상과 이론을 계승하여 절식과 절제하는 삶을 설파하는 이유다. 남보쿠가 본인 스스로 체득한 절식개운(節食開運)의 주장과 논리는 지금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남보쿠의 실증 관상학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행복론이자 철학이다. 인류는 개인이건 집단이건 언제나 생존을 제일의 목표로 추구하는 가운데 항상 행복을 욕망한다.

남보쿠의 관상학은 이 모든 욕망의 실현 또는 절제도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불교적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과연 어떤 것이 행복이고 인생의 성공인가 하는 결론은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미즈노 남보쿠 관상학의 철학적 성찰을 살펴보는 일은 현대인의 성인병을 다시 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건강하게 살면서 행복의 충만감을 맛보는 시간일 수 있다.

욕망은 무한하고 인생은 짧다


▎조선의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 분)이 역사의 광풍에 휘말리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린 영화 [관상]의 한 장면. 기생 연홍(김혜수 분)이 내경(오른쪽 둘째)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보쿠의 사상 중에서 또 하나 훌륭한 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기존의 관상학 전통에 함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본인 스스로의 임상체험을 통해서 자신만의 관상학을 정비하며 발전시켰다. 물론 그의 세계관이나 이론이 전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이룩한 새로운 방법론 제시와 참신한 영역 개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중국에서 움텄던 관상학이 일본에서 가장 실증적이며 실험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으로 꽃피운 점도 일본의 전통이 보여주는 하나의 특징이다. 일본인은 하나의 개념이 들어오면 언제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를 철저히 소화하는 왕성함을 지녔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일생현명(一生懸命)의 천착(穿搾)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

현대는 미식의 시대다.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는 일본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노가시라 고로(井之頭五郞)는 오로지 먹는다. 그것도 흔해 빠진 거리의 식당과 라면집에서 시청자의 식욕을 유혹하며 먹는다. 드라마의 시작 전에 나오는 선언 같은 미식가의 코멘트다. “시간이나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고픈 배를 채웠을 때 그는 잠시 제멋대로 돼 ‘자유’로워진다. 고독한 미식가! 그것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신경 쓰지 않은 것을 먹는 고고한 행위다. 그리고 이 행위가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라고 할 수 있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남보쿠와는 완전히 다르다. 마음껏 미식의 향연을 즐기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 고독한 미식가, 절제하면서 위장의 평화를 이룩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방법이 남보쿠의 ‘절식개운’이다.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 미식과 스스로 규율하며 욕망을 절제하는 절식의 대결에서 우리의 선택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멈추는 지혜가 여기에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아무리 탕진해도 끝도 없이 기어 나온다.

욕망은 무한하고 인생은 짧다. 미식의 욕망을 어느 정도 추구했다면 남보쿠의 제안을 받아들여 멈춰선 뒤 숨을 가다듬으며 절식의 담백한 아름다움을 발휘해 봐도 좋을 때가 아닌가 한다. 절제로 변모한 자신의 얼굴을 거울 속에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사람들은 거울 속에서 영혼의 문(門)인 자신의 눈을 본다. 이 목적을 위해 언제나 몸에 거울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자신의 영혼을 반성하기 위해 집 안 한 곳에 특별한 거울을 놓아두는 사람도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받들어 모시고 ‘자기 자신’에게 참배한다.” _[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 최치현 -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같은 대학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에서 중국지역학 석사를 받았다. 보양해운㈜ 대표 역임. 숭실대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로 ‘국제운송론’을 강의한다. 저서는 공저 [여행의 이유]가 있다. ‘여행자학교’ 교장으로 ‘일본학교’ ‘쿠바학교’ 인문기행 과정을 운영한다. 독서회 ‘고전만독(古典慢讀)’을 이끌고 있으며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토론한다.

201806호 (2018.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