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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삼의 한자 키워드로 읽는 동양문화(6)] 중(中): 사사로움에 치우치지 않는 마땅함 

올바름을 지속하긴 어렵지만, 권력을 정의로 정당화하긴 쉬워 

하영삼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천하의 근본으로 넘치거나 모자람 없이 꼭 알맞은 상태…좌우 양극단 미세한 차이까지 헤아려 쏠리지 않도록 해야

▎중(中)은 편중되지 않고, 과도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것은 그 무엇을 의미한다. 한국의 중심이 대전이 아니라 서울이듯 중은 단순한 공간의 측량이나 실제 위치와는 상관없다.
1. 중(中)은 과연 과녁의 중앙과 같이 ‘한가운데’라는 뜻인가?


경상북도 안동 옆에 예천이라는 곳이 있다. 한자로 ‘醴泉’이라 쓰는데 예(醴)는 제사에 쓰는 단술을 뜻하고, 천(泉)은 샘을 뜻하니 ‘단맛 나는 물이 솟는 샘’을 말한다. [예기]에 “하늘에서는 단 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단 샘물이 솟아나는구나(天降甘露 地出醴泉)”는 말이 나온다. “물이 달고 토지가 비옥한 곳”이 사람 살 곳이라는 [택리지]의 말처럼, 사람 살기에 좋은 땅의 상징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천은 예로부터 물이 좋았던 곳으로 보인다. 예천읍 동북쪽에 붙어 감천면(甘泉面)이 있는데 감천(甘泉)도 예천(醴泉)과 같은 뜻이다.

예천군에 세계 활 전시장이 만들어졌고, 세계 활 축제도 열린다. 예천이 ‘활’과 인연을 맺은 것은 다름 아닌 이곳에서 태어난 세계 양궁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 김진호 때문이다. 그는 1979년과 1982년 베를린과 로스앤젤레스의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2연속 5관왕이 됐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신궁(新弓)의 탄생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여자양궁의 신화는 과녁 중간의 한가운데를 적중(的中)시켰고, 그곳에 설치된 카메라까지 깨트려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양궁에서 지름 122㎝로 된 과녁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지름 12.2㎝의 한 중앙, 50m나 100m 밖에서 그곳을 맞추면 10점 만점이 주어진다. 그곳을 맞추는 것을 적중(的中)이라고 한다. 적(的)을 위진 때의 [옥편]에서는 ‘과녁(射質)’이라고 했으니 목표한 과녁(的)의 한가운데(中)를 정확히 맞췄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전적 의미에서 중(中)의 첫째 뜻은 ‘정확히 한가운데’란 뜻이다. 여기서는 ‘가운데’라는 뜻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함’이다.


▎지구본에서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중국이다.
그러나 중(中)이 구획된 공간상의 정중앙이나 과녁의 목표를 맞추는 것과 같은 정확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스스로를 세계 문명의 중심지로 간주하고, 그들을 ‘중(中)’국(國)이나 ‘중(中)’화(華)’로 칭한다. 여기에서 ‘중(中)’은 권력의 중심을 의미한다. 중국은 그들의 문명을 표준으로 삼고, 이웃 국가를 오랑캐로 칭했다. 이때 ‘중(中)’은 수직적 위계질서에 기반을 둬 문화적 경계를 만든다.

중심이 존재하려면 중심을 설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공간을 위계적으로 분할해야 한다. 중심/주변의 구분은 거리나 공간의 측량이나 실제 위치와는 상관이 없다. 한국의 중심이 서울이 아니라 대전 근처라 할지라도, 수도인 서울이 중심이 된다. 그러므로 중(中)의 둘째 뜻은 중심/주변이라는 위계질서를 함축하는 ‘중심’이다.

셋째, 철학적 의미의 중(中)이 있다. 중용(中庸)·중화(中和)·중도(中道)·중정(中正) 등에서 보듯 동양사상의 핵심을 구성하는 글자로서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철학적 함의를 지닌 글자이다. 유가 경전에서도 출현 빈도가 가장 높은 글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중용(中庸)은 그 자체가 책 이름이 돼 사서(四書)의 하나이기도 하다.

중(中)이 단순히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국 중심의 문화를 특권화만 했다면, 그것이 중요한 사상적 가치를 담은 철학적 개념어가 돼 주변 국가로 널리 퍼지지 못 했을 것이다. 중(中)이 중국 중심의, 중국만의 가치이기를 멈출 때 비로소 그것은 보편적 가치가 되며, 중국이 아닌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번역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지역만의 특수성이 삭제될 때만 그 문화는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며,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고, 그 지역문화와 결합된 실천적 가치로 거듭날 수 있다.

경전에서의 중(中)은 중국의 중(中)처럼 중국에 편중된 개념이 아니라 주자(朱子)가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 말했듯 “편중되지 않고, 기울지 않는 것, 그리고 과도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것(中者, 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으로 정의된다. 편중되지 않고, 과도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며, 중(中)은 어떻게 설정되는 것인지 한자의 어원을 통해서 살펴보자.

2. 중(中): 깃대를 꽂는 자리


▎중(中)의 각종 자형(字形).
중(中)은 무엇을 그렸을까? 중국 최초의 어원사전인 [설문해자]에서는 ‘사물의 안(內)을 말한다. 구(口)와 곤(丨)이 모두 의미부인데, 곤(丨)은 아래위로 관통함을 뜻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안’이라는 뜻은 원래 의미가 아닌 파생의미로 보인다.

실제 갑골문에 그려진 1-1(위 그림 참조)나 2-2(위 그림 참조)는 바람에 나부끼는 깃대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윗부분에 술이 달려 그것이 깃대임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때로는 1-2(위 그림 참조)처럼 깃대가 양쪽으로 놓이기도 했고, 2-1(위 그림 참조)처럼 깃대 아래로 사람들이 모인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두 깃대에 달린 술의 방향이 어긋나지 않고 언제나 한 방향으로 그려진 것은 바람에 나부낌을 형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들 자형에 등장하는 동그라미(때로는 네모)는 깃대를 꽃은 공간을 상징한다. 이들 깃발은 자신의 씨족임을 표시하기 위해 깃발에다 상징 부호(토템)를 그려 넣었다는 [주례] ‘사상(司常)’의 기록을 볼 때 아마도 씨족 표지가 그려진 깃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옛날 부족이나 공동체에서 중요한 큰 일이 있으면 넓은 터에 먼저 깃대(中)를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민중들을 집합시켰다고 한다. 갑골문에 ‘작중(作中)’이나 ‘입중(立中)’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모두 ‘깃대를 세우다’는 말이고, 이는 ‘군중을 불러 모으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 이를 입증한다.

중대사가 생겨 부족이나 씨족을 상징하는 ‘깃대’을 세우면 민중들은 사방 각지로부터 몰려들었을 테고 그들 사이로 깃대가 꽂힌 곳이 ‘중앙(中央)’이자 ‘중심(中心)’이었다. 이로부터 중(中)에는 ‘중앙’이라는 뜻이 생겨났고, 다시 위치상의 중앙, 나아가 공간적 의미의 ‘가운데’라는 뜻으로 확대됐다. 여기서 다시 ‘마침 맞은’이라는 뜻이 나오게 됐는데 마침맞다는 것은 사사로움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에게 가장 적절하다는 뜻이다. 이로부터 적중(的中)하다, 정확하다는 뜻도 나왔다.

中(중)은 넓은 터(囗)에 깃대(丨)를 꽂아서 공동체의 큰 일을 의논하기 위한 것이고, 결단을 내리기에 앞서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대의로 확정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서 확립된 대의는 나중에 중용(中庸)의 ‘용(庸)’의 의미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오늘날의 의미에서 민중의 뜻이라기보다는 하늘(天)이나 신(神)의 뜻으로 간주됐을 것이다. 한 개인이나 권력자의 뜻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뜻을 하나로 모았을 때 더욱 하늘의 뜻에 근접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함에 있어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사사로운 이익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것이며, 상당한 힘과 노력을 들여서 결단을 내리게 된 의견 수렴 과정 역시 평소의 습관이나 일상적 생활태도보다 훨씬 더 집중력을 요하는 과정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원시시대 때의 활이 단순히 전쟁의 무기가 아니라 귀족들의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의 일부가 됐고, 그 과정에서 과녁의 중심이 어떤 것의 ‘한가운데’를 상징하는 중요한 매개로 변화했다.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적중, 그것이 활쏘기를 단순히 신체를 단련하는 수단 에 그치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고 덕과 예를 함양하는 데 필수적인 활동으로 자리 잡게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적중(的中)에서처럼 중(中)은 ‘과녁’과 연계됐고, 그 자체로 ‘과녁의 한가운데를 맞추다’는 뜻까지 담게 되었다. 예컨대 [의례] ‘향사례(鄕射禮)’에 나오는 호중(虎中)·녹중(鹿中)·시중(兕中) 등이 ‘호랑이를 그린 과녁’, ‘사슴을 그린 과녁’, ‘무소를 그린 과녁’ 등으로 해석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현대 중국어에서도 ‘가운데’라는 뜻일 때는 ‘zhoong’과 같이 제1성으로 읽지만, ‘맞히다, 적중하다’는 동사의 뜻으로 쓰일 때는 ‘zhoong’과 같이 제4성으로 구분해 읽는다.

3. 중(中)의 파생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 발명가·철학자·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
‘깃대’와 ‘중심’이라는 어원을 가지는 중(中)은 이후 어떻게 발전·분화돼 나갔을까? 최초의 한자어원사전이라 불리는 [설문해자]에서는 “안쪽을 말한다. 구(口)와 곤(丨)이 모두 의미부인데, 곤(丨)은 아래위로 관통함을 말한다(上下通 内也 从口丨 上下通)”라고 해 중(中)의 의미를 경계의 ‘안쪽’으로 풀었다. 안쪽은 바깥에 대칭되는 말이다. 이후 공간적 의미의 ‘안쪽’이 추상적 개념의 ‘안’이라는 뜻으로 파생됐을 것이다.

그러나 [설문해자]의 또 다른 판본에서는 ‘안쪽(內)’이 ‘조화로움(和)’으로 된 경우도 있다. ‘조화로움’을 나타내는 화(和)는 지난번 연재에서도 언급했듯 다관 피리를 그린 화(龢)에서 변한 것인데 이는 각각의 피리가 각자가 내야 하는 정확한 음을 확보할 때 ‘조화로움’이 되며, 미세한 차이까지 찾아내고 배려해 가장 적정할 것을 취하는 것이 바로 ‘조화로움’이다.

이렇듯 중(中)은 적중(的中)이나 중심(中心)뿐 아니라 중화(中和)로까지 확장돼 나갔다. 그렇게 되자 중(中)은 각각의 미세한 의미를 표현할 다른 글자들로 세분됐는데 충(衷: 속마음), 충(忠: 충성), 충(沖: 비다), 사(史) 등이 그들이다.

먼저 충(衷)은 중(中)과 의(衣)가 결합한 글자로 원래는 속(中)에 입는 옷(衣), 즉 내의(內衣)를 말했다. 예컨대 [좌전]에 등장하는 ‘충갑(衷甲)’은 ‘갑옷을 옷 속에 입다’라는 뜻이다. 이후 속에 입는 옷(內衣)이라는 뜻으로부터 속마음으로 확장됐다. 충심(衷心: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참마음), 충정(衷情: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정), 의충(意衷: 마음속에 깊이 품고 있는 참뜻) 등이 그렇다. 사실 이들은 분화하기 전 중심(中心)·중정(中情)·의중(意中) 등으로 썼던 것들이다.

다음으로 충(忠)이다. 충(忠)은 중(中)과 심(心)으로 구성됐는데 [설문해자]에서 ‘경(敬: 엄숙하다)’과 같다. 마음을 다하는 것(盡心)을 충(忠)이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충(忠)은 한곳으로 치우치지 않는 정확한 마음, 정직한 마음을 말한 것일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일일삼성(一日三省: 하루에 반성하는 세 가지)의 하나에 “다른 사람과 교제함에 진심을 다하였는가(爲人謀而不忠乎)”라는 말이 등장한다. 또 서(恕)와 함께 공자의 정신을 대표하는 것도 충(忠)이다. 서(恕)가 다른 사람에게 대한 관대함이라면 충(忠)은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다.

그래서 충(忠)은 원래 올바름을 향해 모든 힘을 다하는 것, 사심 없이 유혹을 견뎌내는 것,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 그것이 충(忠)의 본질이었다. 이처럼 충(忠)은 원래 지도자가 자신에 대해 가져야 하는 도덕적 요구에 한정된 말이었다. 그래서 [좌전](환공 6년)에서 “임금이 백성을 이롭게 하고자 생각하는 것, 그것이 충(忠)”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충(忠)은 이후 아랫사람에게나 신하에게도 요구되는 덕목이 됐고, 급기야 [관자] ‘오보(五輔)’에 이르면 “임금이 되는 자는 중정(中正: 치우침이 없고 올바름)하여 사사로움이 없어야 하고(無私), 신하되는 자는 충신(忠信: 충성과 신의)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不黨)”고 해 임금의 중정(中正)에 대비되는 신하의 덕목으로 자리하게 됐다.

그러나 지도자가 치우침이 없는 올바름을 지속하는 것은 어렵지만, 권력을 정의로운 것으로 정당화하기는 쉽다. 파스칼이 “권력이 정의(justice)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정의에 힘을 부여하고, 권력을 정의롭게 만들어야 한다. (…) 정의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 쉽지만, 권력에 저항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한 것을 정의로운 것으로 정당화해 왔다”고 [팡세]에서 말했듯이, 지도층의 덕목으로서의 ‘충’은 약화되고, 백성이 국가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개인이 조직에 ‘충성’하는 개념으로 변질됐다.

또 중(仲)은 사람의 순서에서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다. 갑골문에서 중(中)이 이미 중정(中丁)·중기(中己)·중자(中子) 등과 같이 형제의 순서에서 둘째를 나타내는 말로 쓰였는데,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하고자 인(人)을 더해 중(仲)이 돼다. 그런가 하면 중(中)과 우(又)로 구성된 사(㕜)는 사(史)의 다른 표기로, 사관이나 역사를 뜻한다. 우(又)가 ‘손’이나 손으로 하는 행위를 뜻함을 고려하면, 사(史)는 치우치지 않는 정확함,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이고 사관의 임무임을 천명한 글자라 하겠다.

4. 중(中)의 철학적 의미


▎중국 역사학계의 거두로 수많은 저서를 남긴 전목(錢穆)은 국학대사(國學大師)라는 칭호를 얻은 근대의 보기 드문 학자다.
중국 역사학계의 거두로 수많은 저서를 남긴 저명한 학자 전목(錢穆)은 국학대사(國學大師)라는 칭호를 얻은 근대의 보기 드문 학자의 한 사람이다.

이후 중(中)은 단지 지역이나 과녁의 공간적 중심이 아니라, 앞서 주자가 [중용(中庸)]에서 말한 중(中)처럼, 지나침(過)이나 부족함(不足)이 없는 행위의 도덕 준칙으로 자리 잡게 된다.

유가의 중요한 경전인 [중용]은 공자가 지은 것이 아니라,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즉 孔伋, 기원전 483~기원전 402년)가 지었다고 알려졌다. 물론, 전목(錢穆, 1895~1990)의 연구에 의하면 [중용]에 노자사상이 혼재돼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이후의 저작이며 후인에 의한 가탁(假託)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유가사상에서 예(禮)에 관한 핵심 경전인 [예기] 49편 중 제31편인 ‘중용’은 북송 때의 정이(程頤) 정호(程顥) 형제에 의해 존숭(尊崇)됐고, 이후 주희(朱熹)에 의해 [논어] [맹자] [대학]과 함께 사서로 확정되면서 최고의 위치로 올라가 모든 사람의 필독서가 됐다. 그리하여 중(中)은 가장 중요한 도덕 준칙이 됐던 것이다.

[중용]에 이런 말이 있다.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정(情)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정(情)이 일어나되 모두 절도(節度)에 맞는 상태를 화(和)라 한다. 중(中)이란 천하의 큰 근본이고, 화(和)란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道)이다.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天地)가 편안히 제자리를 잡고, 만물(萬物)이 제대로 성장한다.

중용(中庸)은 중용(中用)과도 같다. 용(庸)은 원래 용(用)에서 파생한 글자로, 용(用)에 경(庚: 원래는 매다는 악기를 그린 것으로 추정됨)이 더해진 글자로, 용(用)과 의미가 같다. 일의 시행에 ‘쓰는’ 것을 말했기에 이후 필요하다, 고용하다, 노고 등의 뜻이 나왔다. 다만 그 대상이 사람일 때는 인(人)을 더한 傭(품팔이 용)으로 구분해 썼다.

용(用)의 자원은 분명하지 않다. 희생에 쓸 소를 가둬두던 우리를 그렸고 그로부터 ‘쓰다’의 뜻이 나왔다거나, 중요한 일의 시행을 알리는 데 쓰는 ‘종’으로부터 ‘시행’의 뜻이 나왔다고 하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가운데가 복(卜)이고 나머지가 뼈(冎 뼈 발라낼 과, 骨의 원래 글자)로 구성돼 점복에 쓰던 뼈를 그렸다는 설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또 어떤 사람은 복(卜)과 중(中)으로 구성됐다고도 하는데 복(卜)은 점복(거북점에서 기원했다)을 뜻하고, 중(中)은 맞아떨어지다는 뜻이다. 점을 쳐서(卜) 맞아떨어질 때 ‘시용(施用)하다’는 뜻에서 ‘사용하다’의 뜻이 나왔다고도 한다.

여하튼 점(卜)은 고대 사회에서 중대사를 결정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였고, 특히 상나라 때는 공동체에서 시행되던 거의 모든 일이 점을 통해 이뤄졌다. 이 때문에 점을 칠 때 쓰던 뼈로써 시행의 의미를 그렸고, 여기서 사용(使用)·응용(應用)·작용(作用) 등의 뜻이 생겼다.

이후 중요한 일이 결정돼 모든 구성원에게 이의 시행을 알리는 행위로서 ‘종’이 주로 사용됐기에 다시 ‘종’의 의미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용(用)에서 파생된 甬(길 용)은 윗부분이 종을 거는 부분으로 매달아 놓은 ‘종’의 모습인데, 고대 문헌에서 용(用)과 용(甬)이 자주 통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용(用)과 용(甬)이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종’, 매달린 종처럼 ‘서다’, 속이 빈 ‘종’처럼 ‘통하다’, 큰 종소리처럼 ‘강력하다’ 등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그래서 중용(中庸)의 중(中)은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 함이 없이 꼭 알맞은 것을 말하며, 용(庸)은 용(用)과 같아 점복과 일치하는 하늘의 의지를 상징하여 언제나 변함이 없이 바른 것을 말한다. 그래서 중용이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행위의 가장 참되고 불변하는 원리인 것이다. 그래서 [논어] ‘옹야’에서도 “중용의 올곧음은 정말 지극하기 그지없구나(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라고 했던 것이다. 중용의 이론적 기초가 천인합일(天人合一)에 근거를 뒀다는 말도 이처럼 중용(中庸)의 어원에서 찾을 수 있다.

[중용(中庸)]에서 주창했던 이상적 목표는 중화(中和)였다. 희로애락의 어떤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고 평정과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은 인간의 본성뿐 아니라 만물의 진정한 본래 모습일 것이다. 또한 그러한 감정이 발산됐다 하더라도 중(中)의 상태로 절제해 조화를 이루는 것 그것이 화(和)라고 했다. 그래서 중(中)은 천하의 큰 근본이고, 화(和)는 천하에 두루 통하는 도(道)이며, 중(中)과 화(和)가 지극하면, 천지(天地)가 편안하고 만물(萬物)이 제대로 자라난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중화(中和)는 모든 존재의 이상적 목표였다. 이러한 목표는 중정(中正: 치우치지 않고 올바름)이라는 규범을 통해서 이뤄지고, 중정(中正)은 시중(時中: 언제나 치우치지 않음)이라는 내재적 본질에 의해 형성되며, 시중(時中)은 상중(尙中: 치우치지 않음을 숭상함)에서 그 출발점을 가진다 하겠다.

5. 다시 중(中)으로: 중도(中道)와 극중(極中)


▎[중용언해]. 1590년(선조 23)에 [중용]의 원문에 한글토를 붙이고 언해한 책이다. 교정청(校正廳)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했다. 열화당 책박물관 소장본.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중(中)은 깃대가 꽂힌 그곳, 즉 중심지에서 출발해 과녁의 중앙처럼 한가운데를 지칭하게 됐다. 과녁의 한 중앙은 더 이상 좌와 우의 중간지대가 아니다. 그것은 그곳 아니면 아니 되는 곳을 지칭한다. 철학적 개념화한 중용(中庸)은 바로 이러한 정신을 반영한다. 중용(中庸)이 그러할진대 중도(中道)는 좌와 우의 절충된 중간이 아니라 반드시 걸어가야 할 진리의 길이다.

진리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점복을 통해 신의 의지를 확인하고 맞아떨어질 때 그 일을 시행했듯, 하늘의 뜻이 바로 진리의 길이다. 오늘날의 하늘은 바로 민심이다. 민심이 천심이다. 그래서 중도(中道)란 좌가 돼서도 아니 되고 우가 돼서도 아니 되는 것이 아니라 민심이 지향하는 곳이면 되는 것이고, 그곳이 좌든 우든 상관이 없다. 다만 이 양극단의 미세한 차이까지 잘 헤아려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중도(中道)는 여전히 자리 잡기 힘든 길로 보인다. 중도(中道)도 힘든데, 극중(極中)은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중도(中道)에 대한 오해에 비롯한 바 크다. 지금의 민심이 지향하는 것, 그것을 잘 헤아려 실현하는 것, 그것이 중도(中道)라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고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정신이다.

※ 하영삼 -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세계한자학회 상임이사. 부산대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 어원과 이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시대] [허신과 설문해자] [갑골학 일백 년] [한어문자학사] 등이 있고, [한국역대한자자전총서](16책) 등을 주편(主編)했다.

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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