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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인간의 위대한 여정(28)] ‘이야기하는 인간’ 호모 나란스(Homo Narrans) 

인류 최초 영토분쟁을 기록한 석비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
수메르 왕 에안나툼이 치른 전투 장면을 ‘이야기 예술’을 통해 기술…리더는 자신의 스토리를 사람들이 공감하고 영감을 얻을 만한 내러티브 만들어내야

▎수메르 도시인 라가쉬의 왕 에안나툼의 독수리 전승비는 인류 최초의 영토분쟁을 기록한 석비로 인류 문명의 초기인 기원전 2460년경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7개 조각으로 나뉘어 발굴된 석비의 전면과 후면. / 사진제공·배철현
문자가 없는 세상을 잠시 상상해 보자. 혹은 어디서나 언제나 확인 가능한 시계가 없는 하루를 상상해 보자.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문자나 시간은 지금부터 5000년 전에 한 집단의 소수가 만들었다. 우리는 그들을 수메르인(Sumerian)이라고 부른다. 구약성서의 첫 번째 책인[창세기] 1장에는 신이 밤과 낮을 구분하고 ‘하루’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그러나 하루를 다시 구분해 24시간으로, 1시간을 60분으로 정교하게 세분한 이들은 수메르인이다. 신이 시간이란 개념을 만들었다면, 수메르인들은 시간의 내용을 완성했다.

수메르는 오늘날 이라크 남부와 쿠웨이트에 기원전 5000년경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지역이다. 이곳에 우바이드인(‘알-우바이드’라는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기원전 4500년경에 정착하면서 도구를 만들고 토기 유물들을 만들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정착한 이들 수메르인들은 농업과 가내수공업을 발전시켰다.

이후 기원전 3100년경 몇몇 소수의 수메르 혁신가가 점점 복잡해지는 상업활동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그림문자를 만들었다. 수메르인들은 문자와 시간의 단위뿐만 아니라 문명이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발명했다. 수메르인의 문명을 연구한 학자 사무엘 노아 크레이머는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한다]라는 책에서 수메르인들이 발견한 39가지 발명을 열거했다. 그 책에 따르면 수메르인들은 문자 외에도 시간, 숫자, 360도, 기하학, 바퀴, 구리, 청동기, 배, 달력, 톱, 망치, 낫, 호미, 장난감, 문자, 문자도구, 동물사육, 수로, 치아치료, 건축, 도시개발, 전술, 전략, 포위, 하프, 전차, 그리고 무엇보다도 맥주를 발명했다. 그들은 또한 추상적인 개념들인 왕권, 도덕, 법률, 양심 등 문명에 필요한 가치들도 함께 생각해 내어 수메르 사회의 기반으로 삼았다.

고고학자와 문헌학자들이 수메르 도시와 수메르 쐐기문자를 판독하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 중엽이다. 그들은 산업혁명으로 부를 축적하고 막강한 군사력으로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다가 자신들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를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그 외 오지에서 경험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을 효과적으로 치리(治理)하기 위해 그 식민지들의 문화와 문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사람들은 문자는 페니키아인들이 만들었고, 시간은 중국인들이, 학교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첫 번째 연애편지는 솔로몬이 만들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연구 결과 수메르인들이 이 모든 것을 발명했고, 그 증거 또한 기원전 3100년부터 쐐기문자에 남겨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과 문자 속에 이야기를 담은 수메르인들


▎독수리의 무시무시한 발톱이 서로 등을 대고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는 사자의 등을 위엄 있게 누르고 있다. 이 괴물의 이름은 ‘안쭈(Anzu)’다. / 사진제공·배철현
‘수메르’라는 용어는 후에 등장한 바빌로니아인들이 붙인 명칭이다. 수메르인들은 스스로를 ‘우르삭긱가’라고 불렀다. ‘머리가 검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지녔고, 자신들이 살던 나라를 ‘키엔기’라고 불렀다. 해석하면 ‘진실한(기) 주인(엔)의 땅(키)’다. 수메르어는 ‘고립어(孤立語)’다. 고립어란 동서고금에 존재했던 어떤 언어와도 유전발생학적으로 연관이 없는 언어다. 예를 들어, 영어는 게르만어군에 속해 있으며, 게르만어군은 더 넓게는 인도-유럽어의 일원이다. 인도-유럽어에는 히타이트어, 산스크리트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이란어 등이 속해 있다. 히브리어는 셈족어의 일원으로 아랍어, 에티오피아어, 페니키아어, 아카드와 유전발생학적으로 연관돼 있다. 하지만 수메르어는 이들 언어와 유전발생학적으로 무관하다. 수메르인은 기원전 4000년대에 등장했다가 기원전 2000년경 등장한 셈족의 문명인 바빌로니아에 의해 흡수됐다. 오늘날 프랑스 남부에 있는 바스크어와 캄차카 반도의 언어도 수메르어와 같은 고립어다.

인류 최초의 문명을 개척한 수메르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문자로 남겼다. 문자는 이야기를 담는 가시적인 표현수단이다.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묻는 행위는 문화의 본질을 찾아가는 행위다. 미국 사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하이든 화이트(1928~2818)는 [메타역사: 19세기 유럽의 역사적 상상력]이란 책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문헌은 그것을 만든 역사가 혹은 그런 역사를 기록하게 만든 리더의 의도가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의도는 과거의 특정한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고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비밀스러운 화두를 던진다. 프랑스 평론가 롤랑 바르트(1915~1980)는 “이야기는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거기에 존재하며, 초국가적이며, 초역사적이고 또한 초문화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야기는 ‘메타코드(metacode)’로서 시공간을 초월해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 문명은 이야기와 이야기를 시각적인 형태로 남긴 예술작품이나 문자를 통해 후대와 소통한다.

수메르인들은 문명과 문화를 구축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적 유물을 통해 우리에게 남겼다. ‘독수리 전승비’는 이야기의 시작을 정교한 부조물과 쐐기문자로 남긴 대표적인 유물이다. 수메르 도시인 라가쉬(Lagash)의 왕 에안나툼(Eannatum)의 독수리 전승비는 인류 문명의 초기인 기원전 2460년경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승비의 높이는 1.8m, 너비 1.3m, 두께 11㎝다. 원래는 위쪽이 둥근 직사각형 흰색 사암이었으나 발굴 당시는 7개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6개 조각은 1880년대에 이라크 텔로(Tello, 고대 도시명은 기르수)에 위치한 닌기르수(Ningirsu)라는 천둥신을 위한 신전에서 발굴됐다. 이후 1898년에 대영박물관이 마지막 7번째 조각을 발견했고, 6개 조각이 소장돼 있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 부조물이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고대 근동의 예술에서 전투장면은 ‘이야기 예술(story art)’의 범주에 속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문명과 왕권의 시작을 알리는 ‘나르메르 화장판’이 이야기 예술의 효시다. 나르메르는 이집트 문명을 창건하면서 자신의 통치이념을 화장판 양면에 새겨놓았다. 닌기르수의 왕 ‘에안나툼’도 마찬가지다. 에안나툼은 수메르어로 ‘하늘의 집’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이름을 하늘의 집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은 이름으로 지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수메르인이 아니라 이곳에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한 셈족 인종인 ‘아모리인’이다. 그의 셈족 이름은 룸마(Lumma)다. 에안나툼은 이전에 개별 도시국가로 존재했던 모든 수메르 도시를 정복한 최초의 왕이다. 그는 우르, 니푸르, 악샥, 라르사, 그리고 우룩을 포함한 거의 모든 수메르 도시를 정복했다. 에안나툼은 기르수의 북서쪽에 붙어 있는 구에덴(Gueden)이란 기름진 땅을 놓고 또 다른 도시 움마(Umma)의 통치자와 분쟁하고 있었다. 당시 이라크 지역은 지금보다는 사막화가 덜 진행돼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 밀과 보리를 수확할 수 있었다. 라가쉬의 통치자 에안나툼과 움마의 통치자 에나칼레(Enakalle)는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해 주는 옥토 ‘구에덴’을 차지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그렇다면 이 부조물에 등장한 그림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내러티브로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에안나툼은 이 부조물에 묘사된 그림들과 문자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있는 그대로의 그림이나 기호’와 ‘그림이나 기호가 의도한 실제 의미’와는 다르다. 스위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소쉬르(1857~1913)는 저서 [일반 언어학 강의]에서 기호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었다. 그는 인간의 표현 수단인 ‘말(parole)’은 그 말이 의도한 ‘언어(langue)’와 구별돼야 하며 심지어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유물의 그림은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는 유물을 보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내러티브로 전환돼야 한다. 그러므로 이 유물은 수메르 시대 라가쉬를 둘러싼 영토분쟁과 연계해서 해석해야 한다. 동시대 다른 문헌이나 이미지와 비교해 보면 그 내적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독수리 전승비’ 7개 조각이 말하는 것


▎에안나툼이 오른손으로 왕권과 권력의 상징인 머리가 둥근 망치를 들고, 그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빠져 나오려고 시도하는 한 포로의 머리를 내려치는 중이다. 이 포로가 움마의 왕인 에나칼레다. / 사진제공·배철현
독수리 전승비의 전면은 두 칸으로 구분된다. 위 칸이 아래 칸보다 두 배 정도 크다. 이 부조물에서 가장 두드러진 존재는 위 칸 가운데에 있다. 그는 왼손으로 포로들이 잡혀 있는 그물을 묶고 있는 한 하이브리드 동물을 움켜잡고 있다. 이 포로들은 라가쉬와 분쟁 중인 움마의 병사다. 하이브리드 동물은 사자 머리와 두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의 합성이다. 독수리의 무시무시한 발톱은 서로 등을 대고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는 사자의 등을 위엄 있게 누르고 있다. 이 괴물의 이름은 안쭈(Anzu)이다. 안쭈는 라가쉬의 주신(主神)인 닌기르수와 연관된 괴물이다. 후대 신화에 의하면 안쭈는 우주의 운명이 기록된 ‘운명의 서판’을 훔쳐 달아났다. 닌기르수는 이 서판을 안주로부터 다시 탈취해 우주의 평화를 가져왔다. 안쭈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고르곤과 유사하다. 페르세우스가 영웅으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고르곤의 머리를 잘라야 했다. 고르곤과 같은 안쭈를 왼손에 움켜쥔 에안나툼은 우주의 평화를 회복하는 정복자이자 승리자다.

이 부조물을 제작한 수메르 예술가는 위 칸 중앙에 표현된 남성이 닌기르수인지, 아니면 에안나툼인지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이 인물은 에안나툼이면서 동시에 닌기르수이기도 하다. 그는 오른손으로 왕권과 권력의 상징인 머리가 둥근 망치를 들고, 그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빠져나오려고 시도하는 한 포로의 머리를 내려치는 중이다. 이 포로가 움마의 왕인 에나칼레다. 에안나툼 뒤로 긴 머리를 한 여인이 서 있다. 그녀의 왼쪽 위로 안쭈가 있다. 이 여인의 특징은 그녀가 입은 망토 양쪽 위로 막대기 같은 모형이 세 개씩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모형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의 속성을 나타낸다. 수메르어로 메(ME)라고 부른다.

인류 최초의 문명을 구가한 수메르 문명을 푸는 열쇠가 있다. 바로 ‘메’(me)다. ‘메’는 그림문자에서 땅을 의미하는 가로 평행선과 하늘의 원칙을 의미하는 세로 직선이 결합하여 만들어졌다. 지상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 자신의 고유 임무가 있고, 수메르인들은 그것을 ‘메’라고 불렀다. 가로선과 그 위 세로선이 결합해 만들어진 그림문자 ‘메’가 기원전 2600년경 90도 오른쪽으로 돌려져 지금의 쐐기문자( )가 되었다. ‘메’는 문명을 구축하는 국가조직, 종교의례, 기술, 도덕, 인간 개인의 품성과 개성을 총괄하는 거대한 원칙이다.

‘메’는 고대 문헌에서 발견되는 철학적 개념처럼 한마디로 번역하기 힘들다. ‘메’는 우주 삼라만상이 각자 지녀야 할 본 모습이다. ‘신을 신답게 만드는 어떤 것, 즉 신성성’이란 의미에서 출발하여 모든 존재가 마땅히 습득해서 완성해야 할 ‘자기다움, 도덕, 에토스’를 지칭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된다. 한자의 도(道)와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집트어 마아트(MAAT), 산스크리트어르타(Rta, ), 히브리어 샬롬 ( ), 아랍어의 살람( )과도 같은 뜻이다. ‘메’는 후대 부조물에서 신들이 머리에 쓰는 ‘뿔’로 정형화됐다. 신들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원초적인 힘을 뜻한다. 이 뿔이 인간에게 적용되면 왕관으로 둔갑한다. 인간이 지상에서 신으로 활동하기 위해 머리에 쓰는 장식이다. 자신의 망토 위에 메를 지닌 여인은 닌기르수 신의 어머니이자 여신인 닌후르삭(Ninhursag)이다. 닌후르삭은 자신의 아들 닌기르수가 안쭈 괴조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전략적으로 충고해 준다. 이 전승비에서 닌후르삭이 닌기르수 신 옆에 등장하는 것은 오래된 신화의 내용을 재현한 것이다.

독수리 전승비 전면의 아래 칸에는 전차가 등장한다. 에안나툼은 사자와 독수리를 합한 하이브리드 괴물이 이끄는 전차 위에 올라서서 달리고 있다. 괴물의 앞발은 사자, 뒷발은 독수리로 각각 하늘과 땅에서 가장 강력한 동물들이 전차를 몰고 있다. 이 광경을 닌후르삭이 두 손을 모아 지켜보고 있다. 왼쪽 칸 그물 위에 쐐기문자로 적힌 게 있다. 수메르어로 에안나툼의 전쟁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이 부조물 초안이 기획될 때 문자 부분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부조물을 표현하고 부조물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문자를 적어 넣은 것으로 보인다.

수메르 문명을 푸는 열쇠인 ‘메(me)’를 표현


▎독수리가 지상의 전쟁에서 패한 움마인들의 잘린 머리를 쪼는 장면은 ‘독수리 전승비’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러티브를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게 표현한다. 에안나툼이 이끄는 라가쉬가 승리하였고, 움마는 처참하게 패했다. / 사진제공·배철현
에안나툼은 수메르의 오래된 신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는 스스로를 자신이 치리하는 라가쉬 시민들에게 닌기르수 신으로 소개한다. 그는 메소포타미아에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던 안쭈 괴조와 닌기르수 신의 갈등 이야기를 자신이 당시 지휘하던 움마 시와 영토 분쟁과 접목했다. 그는 닌기르수 신의 어머니인 닌후르삭의 충고, 안쭈 괴조로부터 ‘운명의 서판’을 되찾는 이야기를 자신의 삶과 연결해서 라가쉬 도시민들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야기를 창조했다. 그는 이웃도시 움마와의 영토분쟁을 단순한 영토 확장이나 이기심의 발로가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회복하는 과정, 즉 ‘메’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그는 ‘메’의 회복자이며 ‘메’의 화신이다.

독수리 전승비의 후면은 네 칸으로 구분해 많은 것을 묘사하고 있다. 전면보다 훨씬 복잡하다. 후면은 수메르인들이 실제로 치른 전쟁이 어떻게 방식으로 전개됐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독수리 전승비는 전투장면을 이야기 예술을 통해 기술한 인류 최초의 작품이다. 여기에 이 부조물을 독수리 전승비라고 부르는 이유가 등장한다. 첫째 칸 오른쪽을 보면 독수리들이 정복당한 움마 군인들의 머리를 부리로 사정없이 쪼아 먹는다. 전체 부조물이 온전히 남아 있지는 않지만, 하늘의 지배자인 독수리가 지상의 전쟁에서 패한 움마인들의 잘린 머리를 쪼는 장면은 ‘독수리 전승비’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러티브를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게 표현한다. 에안나툼이 이끄는 라가쉬가 승리했고, 움마는 처참하게 패했다.

에안나툼 왕이 이끄는 라가쉬가 치른 거룩한 전쟁


▎에안나툼과 그의 군인들은 질서정연하게 행군하고 있지만, 움마 군인들은 죽은 채로 상하좌우 구별도 없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다. 우주의 질서인 ‘메’를 회복하는 에안나툼의 완벽한 승리를 표현했다. / 사진제공·배철현
독수리가 묘사된 부분을 살펴보면, 그 아래 쐐기문자로 기록한 부분과 확연히 구분된다. 후면의 전체 내용을 요약한 것처럼, 시체를 쪼아 먹는 독수리를 맨 위에 표시했다. 첫 칸은 다시 독수리 부분과 실제 전투 장면으로 구분된다. 맨 앞에 에안나툼이 군대를 이끌고 있다. 군대는 12명이 한 조가 되어 창을 들고 전진한다. 후대 고대 그리스의 밀집 대형인 팔랑스(phalanx) 대열의 원형이다. 이들이 손에 든 창은 모두 오른편 방향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들은 전사한 적군들을 밟고 행진한다. 그들 앞에는 이 전투를 진두지휘하는 라가쉬의 왕 에안나툼이 특별한 옷을 입고 서 있다. 그는 왼편 어깨는 가리고 오른편 어깨는 드러나는 양털 옷을 입고 있다. 에안나툼은 투구 뒤로 망치를 머리에 동여맸다. 병사들은 에안나툼의 인도에 따라 전진한다. 첫 칸 맨 오른쪽엔 13명의 시신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 에안나툼과 그의 군인들은 꼿꼿이 선채로 질서정연하게 행군하고 있지만, 움마 군인들은 죽은 채로 상하좌우 구별도 없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다. 우주의 질서인 ‘메’를 회복하는 에안나툼의 완벽한 승리를 표현했다.

둘째 칸에는 라가쉬 군인들이 왼편에 묘사돼 있다. 군인들은 오른손에 긴 창을, 왼손에는 전투 도끼를 들었다. 이들은 첫 칸의 공격 대형이 아니라 행진 대형으로 전진한다. 군인들은 첫 칸과는 달리 에안나툼이 탄 전차를 따라간다. 전차는 탱크와 같아서 지상전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다. 수메르인은 전쟁을 위해 전차가 필요했고, 전차엔 바퀴가 생명이다. 인간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기술적인 발명은 단연 바퀴다. 후대의 산업혁명도 바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축을 기준으로 원형으로 돌아가는 체계적이며 반복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바퀴는 작은 시계부터 자동차, 제트엔진, 컴퓨터 드라이브 등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이 바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한 사람들이 수메르인이다. 그들은 기원전 3500년부터 바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독수리 전승비는 바퀴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됐는가를 분명히 보여 준다. 바퀴 기술은 이후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이집트에서 기원전 2000년, 그리스에서 기원전 1400년에 바퀴가 등장한다.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500년부터 바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독수리 전승비는 바퀴가 전쟁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 사진제공·배철현
에안나툼은 왼손에 긴 창을 들고 있다. 전차를 이끄는 네 필 당나귀 앞으로 창이 뻗어나간 것으로 미루어, 창의 길이는 거의 3m 이상이다. 이 전차는 앞면에서 묘사된 전차와는 사뭇 다르다. 앞면 전차는 닌기르수 신, 혹은 신격화된 에안나툼이 타는 전차로 사자와 독수리의 하이브리드가 끄는 천상의 전차인 반면, 여기에서 묘사된 전차는 실제 전투용 전차다. 후대 전차에 사용된 말은 아직 사육화되지 않았다. 말은 아마도 기원전 15세기경 히타이트 제국이 야생말을 사육하여 훈련하면서 전차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에안나툼이 탄 전차를 이끄는 동물은 수메르어로 안쉐(anshe)라고 불리는 당나귀다. 당나귀 네 필이 이끄는 전차는 왕만이 탈 수 있다. 후대 유럽에서 황제만이 탈 수 있는 사륜전차인 콰드리가(quadriga)의 효시다.

셋째 칸은 후면 첫 두 칸과는 달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부조물을 해석해야 한다. 에안나툼이 왼편을 응시하면서 앉아 있다. 실제 부조물에서는 그의 다리와 치마 일부만 보인다. 발은 특별한 단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 단을 수메르어로 테멘(TEMEN)이라고 부른다. 테멘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거룩한 공간이다. 리더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공간이다. 에안나툼의 좌정한 제단 앞에 황소가 끌려왔다. 황소를 닌기르수 신에게 드리기 위한 희생 제물이다. 그 위로는 한 사제가 나체로 정화의례에 사용되는 대추야자나무에 물을 준다.

영토분쟁을 우주 질서를 회복한 전쟁으로 해석

사제 밑에는 작은 동물들, 양과 염소들이 도축돼 있다. 도축된 동물들 옆에는 움마인들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다. 수메르인들의 전형적인 치마인 줄무늬 치마를 입은 노동자들이 머리에 진흙을 가득 담고 바구니를 지고 시신 위로 올라간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진흙을 담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올라가는 이미지는 전형적인 신전 건축 장면이다. 라가쉬 노동자들은 전쟁에서 패한 움마 군인들의 시신들 위에 커다란 무덤을 만들고 있다. 에안나툼은 시신위에 만드는 신전 건축과 사제의 제사의식을 두 손을 모아 자신의 가슴 앞에 모은 채 경건하게 관찰하고 있다. 수메르의 왕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넷째 칸에 남아 있는 내용은 거의 없다. 한 사람이 긴 창을 왼손에 들고 있다. 창의 끝은 움마인의 대머리 머리에 닿았다. 그 적은 자신에게 오는 창을 보고 있다. 움마인의 머리는 그에게 다가오는 세 명과 머리를 마주한다. 에안나툼은 적의 머리에 긴 창을 겨누고, 그의 세 명의 신하는 적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에안나툼은 자신이 왕으로 있는 라가쉬와 이웃도시 움마와의 영토분쟁을 우주의 질서를 회복하는 거룩한 전쟁으로 해석해 이 부조물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전쟁 모습을 돌에 부조물과 문자로 기록해 남겼다. 이런 부조물을 수메르인들은 나루아(NA.RU.A)라고 불렀다. 해석하면 돌로 만든 비석, 즉 ‘석비’다. 고고학자들은 라가쉬와 움마가 영토분쟁을 일으켰던 루에덴에서 에안나툼이 지은 시를 하나 발견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닌기르수 신은 주님이시다. 그는 피릭-에덴 수로의 생명이시다. 루에덴 석비는 닌기르수 신이 사랑하는 초원이다. 에안나툼은 닌기르수 신을 위해 이 석비를 세웠다.”

에안나툼의 독수리 전승비는 인류 최초의 영토분쟁을 기록한 석비다. 기원전 25세기에 일어난 사건이라 역사적으로 이 사건을 확증한 다른 증거는 없다.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영토분쟁 이야기를 단순하게 한 번 일어났다 없어지는 이야기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생존했던 당시 모든 수메르인이 알고 있는 전설을 이용해 강력한 내러티브로 만들었다. 그 시대의 신화는 동시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보이지 않는 감동적인 끈이다. 그는 라가쉬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닌기르수 신과 그의 어머니 닌후르삭 이야기를 포착했다. 특히 괴조 안쭈와 연관된 이야기에서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일체화하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라가쉬 시민 모두가 공감하는 내러티브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감행한 영토분쟁 이야기를 군사적 행위가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회복하는, 우주의 ‘메’를 확립해 평안을 가져오는 전쟁으로 해석한 것이다.

리더는 자신의 이야기를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영감을 줄 수 있는 내러티브로 만드는 사람이다. 내러티브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에토스다. 지금부터 4500년 전에 먼 이라크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우리가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그 안에 내러티브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루브르박물관으로 가서 이 부조물을 보고 전쟁의 기원, 기술 혁신의 시작인 바퀴의 기원, 그리고 우주의 원칙을 엿보고 싶어 한다. 자신에게 물어 보자. 나만의 내러티브는 무엇인가?

※ 배철현 -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셈족어와 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 쐐기문자가 기록된 베히스툰비문의 권위자다. 2003년부터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에 개원한 미래혁신학교 건명원(建明苑) 운영위원이다. 저서로는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심연]이 있다.

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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