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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섭의 검은대륙 아프리카를 가다(4)] 과거의 기억 담은 ‘돌의 나라’ 짐바브웨 

37년 독재 수렁 벗어나 옛 영광 재현을 꿈꾸다 

김성섭 작가
세계자연유산을 5곳이나 품고 있어 ‘아프리카의 스위스’로 불리는 나라.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고 ‘식량 창고’로도 불리며 한때 아프리카 최강국이던 짐바브웨. 하지만 지금은 아프리카 최빈국을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고 있다. 37년간 철권 통치를 하던 무가베는 권좌에서 내려갔지만 긴 세월 짐바브웨를 휩쓸고 간 독재자의 상흔은 여전히 깊다.

▎‘그레이트 짐바브웨’ 전경. 짐바브웨의 주요 부족인 쇼나족이 11~15세기에 세운 왕국의 유적이다. 쇼나족이 이룬 독특한 석조 문명을 상징하는 이곳은 남부 아프리카 도시 유적 중 가장 유명한 곳이다.
짐바브웨(Zimbabwe)는 주요 부족인 쇼나(Shona)족 말로 ‘돌로 만든 커다란 집’이라는 뜻이다. 기원전부터 독특한 석조 문명을 갖고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국명처럼 짐바브웨는 돌과 인연이 많다. 이 땅에는 11~15세기에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쇼나족이 세운 쇼나 왕국이 있었다. 이들은 마치 남미의 잉카문명을 연상시키듯 주변에 풍부한 돌을 이용해 많은 석조 건축물을 남겼다. ‘그레이트 짐바브웨’ 유적이다. 돌의 나라답게 국경 부근에서부터 크고 작은 돌산이 많다. 쇼나족은 여기서 나는 돌로 전통 방식에 따라 조각한 다양한 모양의 ‘쇼나 조각’을 주요 관광상품으로 팔고 있다. 쇼나의 돌조각은 세계적인 조형예술품으로 극찬을 받고 있다. 면적(39만㎢)은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의 1.7배에 이른다. 하지만 인구는 남북한의 5분의 1도 안 되는 1400만 명이다.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문맹률이 10% 미만으로 교육을 잘 받은 인적 자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유럽인들은 일찍이 짐바브웨를 ‘아프리카의 진주’ 또는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불렀단다. 자연환경이 그만큼 아름답다. 1인당 GDP는 903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다. 하지만 한때 ‘아프리카의 식량 창고’ ‘아프리카의 빵바구니(bread basket)’라고 불릴 만큼 광활한 경작지와 우수한 토양 조건 덕분에 미래의 희망이 엿보이기도 한다. 풍부한 광물자원은 또 다른 희망이다. 다이아몬드, 금, 석탄은 물론 세슘, 크롬, 리튬, 니켈 등 200여 종에 달하는 광물을 세계 여러 나라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1994년 수교했다. 이듬해인 1995년 수도 하라레에 주 짐바브웨 한국대사관을 개설했다. 짐바브웨는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명예영사관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으며 주일 대사가 겸임한다. 북한과는 1980년 수교했다. 사실 우리나라도 1980년 대에 수교 요청을 했지만 독재자 무가베는 이를 물리치고 북한과 수교를 맺었다. 독재자는 서로 통한다고 할까. 김일성과 무가베는 친구처럼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이후에도 무가베의 짐바브웨는 ‘북한의 좋은 친구’로써 국제사회에서 후원자 노릇을 해왔다. 짐바브웨는 북한 입장에서 아프리카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던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후에도 무가베 정권과 북한의 관계는 끈끈하게 이어졌다. 무가베는 북한에 동상을 주문하고 무기 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북한의 외화벌이 기관들이 짐바브웨에서 담배 농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유엔의 대북 제제가 발동된 이후에도 무가베 정권은 이에 동참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독재자 무가베는 쿠데타 세력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짐바브웨와 북한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도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북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와의 관계가 돈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우리 기업도 짐바브웨 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 문화상품은 이미 10년 전에 짐바브웨 현지에 진출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 중심에는 드라마 [대장금]이 있다. 2008년 짐바브웨의 국영 방송인 ZTV는 [대장금] 방영 개시에 맞춰 주 짐바브웨 한국대사관 후원으로 시청자 퀴즈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480만 명이 응모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었다고 한다. 전 국민의 30% 정도가 참여한 것이니 얼마나 호응이 컸는지 짐작이 간다. 그해 연말에는 [대장금] 에세이 공모전도 현지에서 열렸다. 5명의 수상작을 선발하는데 1600여 명이 몰려 현지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드라마 '대장금' 열풍이 불다


▎짐바브웨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쇼나 부족이 만들었다고 해서 ‘쇼나 조각’이라고 부른다. 쇼나 조각이 보여 주는 돌의 오묘하고 다양한 색채는 세계인들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3월 국내에서도 쇼나 조각 특별전이 열렸다.
[대장금]의 영향으로 현지에서는 ‘어머니’ ‘장금’ 등의 한국말도 유행했단다. 당시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에서 한류 열풍의 진원지 역할을 한 셈이다. 머나먼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사는 이들도 우리와 비슷한 감성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짐바브웨에는 우리나라처럼 ‘대보름’이나 ‘추석’ 같은 명절은 없지만 보름달을 좋은 징조로 여긴다. 보름달이 뜨면 정신이 병든 사람도 제정신이 돌아온다고 여긴다. 또 보름달 주변이 황금빛으로 물들면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국기는 가운데에 검정을 중심으로 위 아래로 빨강, 노랑, 초록 순으로 배치돼 있다. 깃대 쪽으로 검정 테두리의 흰 삼각형에 노랑 독수리가 빨강 별 위에 앉아 있다. 빨강 별은 동유럽권과 연대를, 독수리는 국조(國鳥)로 평화와 전진을 나타낸다.

짐바브웨는 198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영어가 공용어고 토착어도 쓴다. 대통령 임기는 6년이며 의회에서 선출된다. 의회는 상하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제는 1987년 도입됐는데 무가베에 의해서였다. 원래 무가베는 독립 투사 출신이었다고 한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직후 무가베는 총리 중심제 아래서 초대 총리에 올라 정치적 실권을 잡았다. 그리고 대통령제로 권력 체제를 바꾼 후 스스로 초대 대통령에 취임해 장기 집권을 이어 간 것이다. 총리에서 대통령까지 37년에 이르는 긴 시간을 절대 권력자로 군림한 무가베의 말년은 결코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 독립투사로서 한때 민중의 영웅이던 그는 권좌에서 물러난 후 법의 심판대에 오를 걱정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외신에 따르면 짐바브웨 의회는 무가베에게 소환장을 보냈다고 한다. 무가베는 독재정권을 유지하려고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자금을 조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2016년에 채굴한 16조원어치의 다이아몬드의 행방이 묘연한 것과 관련해 그는 의심을 받고 있다. 조용히 삶을 정리해야 할 94세의 무가베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머리를 식히러 떠난 여행 중 너무 무겁고 심각한 생각을 한다고 타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게 꼭 현지의 볼거리만을 정신 없이 뒤쫓는 시간은 아니다. 방문하는 나라의 사회상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굳이 ‘여행’과 ‘관광’의 차이를 설명하기도 하지 않았을까.

혼돈 속의 짐바브웨와 무가베 얘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지난해 11월 군부 쿠데타 이후 짐바브웨는 에머슨 음난가그와가 대통령에 올라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다. 무가베의 오랜 집권 결과는 처참했다. 짐바브웨는 경제적 파탄은 물론 인권 탄압과 정적 암살, 부정부패의 심화가 겹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무가베는 1년 전 자신의 생일 때 93㎏의 케이크 등 21억원을 들인 호화판 잔치를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해 국민의 원성을 샀다. 높은 실업률과 물가 상승 등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국민의 생활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0년을 전후로 진행한 무가베 정권의 토지개혁은 혼란을 더했다고 한다. 4000명에 이르는 백인 지주의 땅을 강압적으로 빼앗았다. 짐바브웨 고등법원이 토지 몰수를 불법으로 판결했지만 무가베 정권은 법원을 압박해 대법원에서 판결을 뒤집기도 했다. 후유증은 컸다. 토지 몰수 과정에서는 폭력사태가 잇따랐다. 또 국내 농산물 생산이 급감해 식량 부족 사태가 일어났다고 한다. 가뭄까지 겹쳐 당시 짐바브웨는 최악의 기근에 시달렸다. 곡물을 대량으로 수입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만들어 내느라 중앙은행은 화폐를 마구 찍어냈고, 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가져왔고 물가는 하루에 두 배씩 올라갈 때도 있었다. 서방 세계와의 관계도 최악이었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등이 주도하는 경제제재까지 겹쳤다. 짐바브웨의 경제 상황은 처참했다. 아프리카의 식량창고였던 짐바브웨는 이렇게 무너졌다. 당시 현지에서는 무가베를 흉보거나 비판하는 것은 금기시됐다. 이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 스위스의 한 여성 여행객은 무가베를 비판했다가 유죄판결을 받고 200달러의 벌금을 냈다고 한다.

무가베의 몰락은 그의 부인과도 관련이 있다. 무가베는 자신의 비서 출신으로 41세나 어린 그레이스(Grace Mugabe)와 10년의 불륜 관계 끝에 결혼했다. 그레이스의 사치와 정치적 전횡은 심각했다고 한다. 무가베는 부인의 횡포를 방치했고 오히려 그녀에게 권력 이양까지 시도했다가 권좌에서 쫓겨났다. 이 때문에 각국 언론들은 무가베도 문제였지만 영부인 그레이스가 더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호화 명품을 좋아하여 ‘구찌 그레이스’라는 별명을 얻으며 해외토픽에도 자주 오르내리던 인물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과 분수를 알고 살아야 함을 이곳에 와서도 실감한다.

하지만 현지 언론에 따르면 새 정권은 사임한 무가베에게 퇴직 위로금으로 108억을 지급하며 올해 생일도 공휴일로 지정했단다. 쫓겨난 독재자이지만 그는 여전히 호화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다. 정치보복을 하지 않고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겠다는 것인지, 아직 권력층에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해서인지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짐바브웨야말로 과거의 적폐를 청산할 기로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쿠데타 후 임시로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음난가그와는 오는 7월에 새 대통령을 정식으로 선출하겠다고 했다. 또 외국 여러 나라와의 관계 개선에도 나서고 있다. 음난가그와는 지난 4월초 취임 후 첫 해외방문지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새 대통령이 선출된 후에는 서방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연 2억%를 넘나드는 하이퍼인플레이션과 실업률 90% 등 심각한 경제파탄을 극복해 아프리카 최빈국이라는 오명을 씻겠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진주’라는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도 짐바브웨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짐바브웨 정부는 이란, 인도, 중국,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과 관계를 개선하는 ‘동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의 ‘신(新) 남방정책’과 맞물리는 접합점이 될 수 있다.

소장용으로 인기 있는 ‘50조’짜리 지폐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왼쪽)과 41세 연하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 남편에게 대통령직을 물려받으려던 그레이스의 권력욕은 기득권 약화를 우려한 군부의 반발을 불러 왔다.
짐바브웨의 수도는 하라레(Harare)다. 인구 120만 명의 도시다. 우리나라의 천안시와 하라레는 2016년 우호협력 도시 협약을 맺어 교류 협력을 하고 있다. 두 도시가 교류를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라고 한다. 국내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해외 교류를 모색하는 것은 긍정적인 시도로 보인다. 시장이 하라레를 방문했고, 하라레시에서는 공무원들을 천안시에 연수를 보내 교육을 받는 등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고 있다. 하라레는 산업화의 기반과 국제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도시계획이 잘된 곳으로 평가받는다. 실제 현지에 가보니 도심 중심부는 현대식 고층빌딩과 세계 유명 호텔들이 자리 잡고 있다. 또 바둑판처럼 정교하게 배치된 도로망과 건물 등은 여기가 아프리카 최빈국이라는 짐바브웨가 맞나 싶을 만큼 전체적인 도시 기반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과거 짐바브웨가 아프리카 최강국인 시절의 명성을 이곳 하라레에서 엿볼 수 있다.

짐바브웨에서는 외환 사용이 자유롭다. 이것도 과거 극심한 인플레이션의 여파 때문이다. 짐바브웨는 2009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100조원의 화폐를 발행했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으로 자국 화폐 사용을 포기하고 외환 상용을 공식적으로 허가했다. 물물교환, 물건과 화폐의 교환도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공산품의 대부분을 수입해서 쓰는 실정이어서 물가가 매우 비싸다. 따라서 현물이 있으면 나중에 쓸 곳이 생긴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 쓰던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많다. 한 여행객은 한국에서 가져간 선크림을 짐바브웨 상점 주인에게 발라주었더니 좋다고 하며 당장 사고 싶어해 하는 수 없이 팔았단다. 선크림을 주고 짐바브웨 화폐 한 장을 받았는데 엄청난 고액권이었다. 0을 세보니 무려 13개나 되더란다. 50조짜리 짐바브웨 달러였다. 그는 지금도 이 돈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데 묵직하고 든든함이 느껴진단다. 짐바브웨 화폐는 유통용이라기 보다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소장용으로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 말로 웃픈 얘기라고 해야 할까.

현지에서 들은 흥미로운 얘기가 또 있다. 짐바브웨 보건부 장관이 최근 에이즈 예방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는 자국 성인 남성의 13.5%가 에이즈 환자로 추산돼 콘돔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는데 정작 중국산 수입품인 콘돔 크기가 너무 작아 짐바브웨 남성들의 항의가 많다고 했다. 실제로 콘돔의 크기가 작은 것인지 신축성이 떨어지는 불량품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에 에이즈까지 짐바브웨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는 산적해 있는 현실이다.

앞서 잠비아편에서 빅폴을 자세히 다룬 바 있다. 짐바브웨는 잠비아와 함께 빅폴을 공유하고 있다. 어느 쪽에서 빅폴을 봐야 진면모를 느낄 수 있는지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어떤 이는 짐바브웨 쪽에서 빅폴을 바라보는 게 수량이 더 풍부해 보는 맛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딱히 동의할 순 없다. 양쪽에서 다 보라고 권하고 싶다. 뷰포인트를 지정해 팻말까지 설치해 놓았으니 1번부터 15번까지 빠트리지 말고 차근차근 보라는 말이다. 폭포를 배경으로 한 쌍무지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겼다 사라졌다 하니 급하게 생각할 게 아니다. 야간에 보는 달 무지개는 한층 더 아름답고 특히 보름달이 뜰 때면 환상적인 무지개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안전 문제다. 직각에 가까운 깊은 낭떠러지가 펼쳐지는데 콘크리트나 철제 가드 레일 등 안전 시설이 없다. 돌이나 바위로 된 뷰포인트엔 항상 물보라로 인한 물기가 촉촉하게 배어있어 무척 미끄러울 수밖에 없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풍경 감상에만 넋 놓고 있다 보면 자칫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흰 블라우스 입고 아프리카를 누빈 백인 여성


▎무가베 집권 시기 짐바브웨인들은 극심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큰 경제적 고통에 시달렸다. 2008년부터 약 1년간 유통된 짐바브웨의 100조 달러 지폐.
지난 편에 다 하지 못한 세계 3대 폭포 얘기를 풀어볼까 한다. 다른 폭포와 비교하면 빅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다. 우선 수량은 나이아가라가 240~830만㎥로 가장 많고 넓이는 이구아수가 2.7㎞로 가장 넓으며 높이는 빅토리아가 108m로 가장 높다. 이구아수와 빅폴이 울창한 정글 속에 있어 신비감도 더하고 산책로를 따라 트래킹을 하다 보면 하루로는 모자라다. 하지만 나이아가라는 바로 도시 옆에 있어 몇 시간이면 충분히 볼 수 있고 두 폭포에 비하면 대자연의 웅장함을 느끼기엔 좀 부족한 느낌이다. 넓이나 높이로만 따지면 세계 3대 폭포보다 더 넓고 더 높은 폭포도 있다.

베네수엘라의 앙헬폭포(Angel Falls)는 총 높이 979m, 물줄기만 807m이나 수량이 적어 떨어지면서 중간에 물보라로 다 퍼져버린다. 바닥까지 떨어지는 양은 아예 없다. 메콩강의 라오스와 캄보디아 국경에 있는 코네 폭포(Khone Falls)는 폭이 무려 10.7㎞지만 높이가 2~3m로 아주 낮아 그냥 흐르는 물인지 폭포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3대 폭포는 어느 한 가지만 보지 않고 높이·폭·수량을 비롯한 접근성까지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아시아 최대의 폭포는 중국의 황과수(黃果樹) 폭포로 세계 4대 폭포에 끼워주는데 대륙별 안배 차원인 것 같다. 황과수는 넓이 81m 높이 74m이고 수량은 빅폴 등과는 비교할 수 없다. 세계 3대 폭포는 그 규모가 크다 보니 모두 두 나라의 국경에 걸쳐 있다. 나이아가라는 미국과 캐나다, 이구아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빅토리아는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경계에 있다. 모두 두 나라에 각각 전망대가 설치되어 양쪽을 다 보려면 번거롭지만 출입국 심사를 받고 넘어다녀야 한다.

빅폴을 떠나기 전 탐험가이자 전도사였던 리빙스턴 얘기 중 지난 편에 빠뜨린 대목을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자. 리빙스턴은 영국으로 돌아가 국민적 영웅이 됐지만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와 탐험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내는 말라리아로 죽고 나일강의 발원지를 찾겠다던 그 역시 1873년 잠비아 북부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장기가 모두 꺼내져 보름 동안 햇빛에 건조된 후 미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현지인 추마(Chuma), 수시(Susi) 두 청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는 조국 영국으로 돌아갔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아프리카를 찾은 유럽인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노예무역에 종사했거나 황금을 찾아서이지 순수한 탐험을 목적으로 아프리카 땅을 밟은 이는 많지 않다. 리빙스턴처럼 노예로 끌려가지 않도록 현지인을 보호하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며 의술을 베푼 사람은 별로 없었다.

또 한 명의 영국인 탐험가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바로 메리 킹슬리(Mary Kingsley, 1862~1900)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런던 근처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요리사(하녀)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먼 나라 여행에 많은 시간을 보냈고 어머니는 건강이 나빴다. 그녀는 학교도 가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커튼이 드리워진 방에서 혼자 공부했다고 한다. 나이 서른에 부모님을 여읜 그녀는 30대 초반인 1893년 서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이후 1년 6개월을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30년 이상 아프리카 곳곳을 탐험한 리빙스턴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로선 남자들도 탐험하기 쉽지 않았던 아프리카를 여성의 몸으로 누비고 다녔다니 탐험 기간만으로 평가할 일은 아니다. 그녀는 현지인들의 음식을 먹고 그들의 마을을 찾아 함께 지냈다. 항상 하얀 면 블라우스와 긴 치마를 입고 생활했다고 한다. 호신용으로 총은 지니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사용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현지인들에게는 낯선 백인 여성이었지만 모두가 그녀를 친구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아프리카의 많은 것을 연구하고 글로 남겼다. 현지인들의 단순한 생활상뿐 아니라 법과 종교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만 여겼던 유럽인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려 애썼다. 일부에선 그녀의 이런 활동을 두고 아프리카를 수탈하기 위한 정보수집으로 깎아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37세가 되던 해, 현지인들을 돕고자 남아프리카의 한 병원에 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그리고 바다에 묻혔다. 그녀는 위대한 탐험가였고 지리학자였으며 또 인류학자였고 작가였다. 그녀의 삶을 기록한 책 [아프리카로 간 메리 킹슬리]는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있다.

‘거미줄도 모이면 사자를 묶는다’


▎지난해 11월 짐바브웨는 쿠데타가 일어나 37년 무가베 독재시대의 막을 내렸다. 쿠데타에 성공한 짐바브웨 군인들이 수도 하라레 거리를 지나가는 가운데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 사진·연합뉴스
아프리카 여행 중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아마도 현지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메리 킹슬리나 리빙스턴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생긴 깨달음인 것 같다. 현지인들의 문화와 결합한 언어 습관을 알면 더 깊고 넓게 보인다. 여행기를 빌어 현지인들이 쓰는 속담과 경구 몇 가지를 소개하는 이유다.

아프리카 속담은 구전돼 온 ‘비문자 문학’이다. 이 중에는 우리네 속담과 흡사한 것들도 제법 있다. ‘거미줄도 모이면 사자를 묶는다’(티끌 모아 태산이다), ‘선장이 많으면 배가 요동친다’(사공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춤 못 추는 사람이 마당에 돌 많다고 한다’(일 못하는 목수가 대패 탓한다), ‘뱀에 물렸던 사람은 지렁이도 무섭다’(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개구리 길이는 죽은 다음에야 알 수 있다’(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 ‘코끼리들 싸움에 들풀이 고생한다’(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선장이라고 선원의 일을 잊지 마라’(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 등등.

인간의 삶이란 게 아프리카든 아시아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속담이나 간단한 경구는 저마다 사용되는 지역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의 경구들 중에는 사자나 표범이 자주 등장한다. ‘사자가 가젤보다 빠르면 가젤을 잡아먹고, 사자가 가젤보다 느리면 굶어 죽는다’, ‘발톱을 가졌다고 다 사자는 아니다’, ‘사자와 놀지 마라. 그랬다가는 사자 입에 손을 넣게 된다’, ‘표범의 꼬리를 잡지 마라. 만약에 잡았으면 놓지 마라’ 등이다. 으스스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경구들이다.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것도 있다. ‘잔잔한 바다는 노련한 사공을 만들지 못한다’, ‘고양이를 본 쥐는 이미 쥐구멍을 봐둔다’, ‘이웃이 곤란할 때 크게 웃는 자는 바보다’와 같은 경구는 새겨들을 만하다. 노인과 관련한 경구들도 흥미롭다. ‘노인이 앉아서 보는 걸 아이는 산꼭대기에서도 못 본다’, ‘노인이 뱀을 보고도 도망치지 않으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들은 노인의 지혜와 그들에 대한 공경심 등을 표현한 것이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혹은 현지에서 들은 아프리카 속담과 경구는 대략 100여 개 정도다. 이것만으로 아프리카의 문화, 습속 그리고 현지인들의 생각과 내면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쳐 아프리카 땅에 구전된 속담을 통해 현지인들의 철학과 삶의 일부분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번 짐바브웨 편에서는 관광지에 대한 얘기보다는 그곳의 정치, 사회상 그리고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담았다. 사실 짐바브웨는 15세기 대 짐바브웨 왕국의 수도로 번성하다 16세기 중반 버려진 도시인 카미 유적지, 사파리 투어로 유명한 마나풀스 국립공원 등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다섯 군데나 된다. 관광지로 너무나 유명한 이런 곳을 방문한 소감과 느낌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단순한 관광객으로서가 아닌 ‘여행자’로서 다소 무겁고 지루하더라도 방문지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은 나라도 있었다. 짐바브웨가 그런 나라였다. 어쩌면 최근 권좌에서 쫓겨난 무가베를 통해 본 짐바브웨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탓일 수도 있다. 또 전직 대통령 두 분이 감옥에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떠올라 그런 생각이 들었을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편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북핵 위기를 해결 국면으로 이끌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줘야 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넬슨 만델라의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프리카에서 노벨평화상 개인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 김성섭 - 1979년 순경으로 입직해 2017년 6월, 37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퇴직했다. 경남 하동서장, 파주서장, 서울청 홍보담당관, 서울 중부서장을 거쳐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을 지냈다. 역사에 해박한 필자는 파주서장 시절 파주 경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박물관 개관에 힘써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7년 12월 과천서장을 끝으로 퇴직한 구본숙 전 총경과 부부 사이로 경찰 역사상 첫 순경 출신 부부 총경이라는 타이틀이 있다. 현재 아프리카 여행기 책 출판을 준비하면서 아프리카 현지에서 자원봉사 활동 계획도 세웠다.

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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