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ZOOM UP] 라이브 카페, 그 촌스러움의 미학 

시간의 흔적에서 새것을 찾다 

사진 전민규 기자
옛 건물의 자취 소품 삼아 색다른 취향 만들어내…십수 년 자리 지킨 곳은 그 자체로 ‘청춘의 기록’, 인디밴드들의 모태 역할도

2000년대 말 홍대앞 라이브 카페는 하나둘 무너져 갔다. 높은 임대료 부담 때문이었다. 살기 위해 인근 서울 상수동과 망원동으로 터전을 옮겨 갔다. 그러나 이주는 새로운 변화를 낳기도 했다. ‘새것’만을 쫓던 사람들이 과거를 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빚어낸 ‘뜻밖의 풍경’을 찾아냈다.


서울 마포구 포은로 일대는 ‘카페거리’로 유명하다. 용산구 이태원에 있는 경리단길에서 이름을 따 ‘망리단길’로도 불린다. 500m 남짓한 거리에 각양각색의 카페가 촘촘히 들어서 있다.

그러나 거리 끄트머리에서는 빛 바랜 간판을 내건 동네 수퍼마켓과 노래주점들을 볼 수 있다. 소도시 골목 같은 정경 사이로 묵직한 베이스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길가의 벽돌 건물 2층에 다소 외설적인 느낌을 풍기는 네온등 불빛이 눈길을 끈다. ‘아이다호(IDAHO)’라는 이름을 내건 라이브 카페였다.

“초록빛 바다 그곳으로 너와 함께 떠나고 싶다….”(도마, ‘너무 좋아’)

밤 8시쯤 찾은 아이다호는 만석이다. 공연 시작 30분을 앞두고 2인조 포크 밴드 ‘도마’가 무대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아이다호 강경훈(32) 대표는 홀 서빙으로 분주했다.


▎1. 각종 마이너 문화 잡지와 수제 열쇠고리나 티셔츠 등이 홀 한가운데에 당당히 진열돼 있다. 아이다호가 ‘복합 문화공간’을 자처하는 이유다. 2. 2층에 있는 가게로 올라가는 계단. 보랏빛 조명과 벽을 가득 메운 전단이 ‘마음에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3. 화장실 맞은편 작은 공간에 마련된 기획전시장. 무속신앙을 익살스럽게 비튼 전시물들이 진열돼 있다.

▎1. 아이다호를 찾는 손님들은 공연에 만족하는 만큼 가수를 후원한다. ‘버스킹’(길거리 공연) 같은 자유로움을 풍기는 요소다. 2. 아이다호는 옛 헬스장이 남긴 흔적들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했다. 궁서체로 쓰인 팻말이 계산대 위에 걸려 있다. 3. 깨진 석고상, 낡은 브라운관 텔레비전, 녹다 만 양초 등 개별로 있으면 ‘버려질 것’들이 한데 모여 흥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가 꾸민 취향을 경험하러 오는 거죠”


▎이리카페 한편에는 LP판과 서적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문인과 음악인들에게는 더 없이 매력적인 작업 공간이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 ‘이리카페’로 가는 거리 모습. 많은 주민이 거주하는 지역답게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홍대앞 근처에 살던 강씨는 2014년 망원동으로 집을 옮기기로 했다. 비싼 임대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머무를수록 질박한 동네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집 주변에 가게를 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예전에 헬스장이었던 곳이에요. 헬스장의 흔적들을 살리되, 그대로 살리지 않고 일종의 소품으로 사용한 거죠. 그렇게 해서 친숙하면서도 이질적인 공간을 만들어냈어요. 순전히 제 취향대로 꾸민 셈인데 그 취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어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마포구 상수동에 있는 ‘이리카페’에서는 매주 화요일 밤 ‘이리 버스킹’이 열린다. 5월 1일 무대에 오른 가수 박세라(29)씨는 존 레넌의 ‘Imagine’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박씨는 “나흘 전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기념하는 곡”이라고 덧붙였다. 노래가 끝나자 공연을 기획한 가수 손준호(40)씨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저기 악보 쓰시는 분이 계시네요. 박수는 치지 않기로 합시다.”

공연장에 짙게 밴 ‘청춘의 땀냄새’


▎클럽 빵의 이름은 먹는 ‘빵’이 아니라 감옥을 뜻하는 ‘빵’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단순한 간판 디자인이 세월을 짐작케 한다.

▎클럽 빵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는 밴드 ‘클로젯 로켓’. 때묻은 스니커즈와 찢어진 청바지에서 ‘청춘의 냄새’가 풍겨난다.

▎공연장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인디밴드들의 CD앨범. 홍대앞 주변의 라이브 공연장은 여전히 인디문화를 키워내는 요람 역할을 한다.
어느새 예술·문화인의 아지트가 된 이곳은 2년 전에 폐업 위기를 겪기도 했다. 건물주가 바뀌면서 임대료 문제가 걸림돌이 됐단다. 손씨는 “이리카페를 지키려고 음악인 수십 명이 단체카톡방을 만들어 대책회의를 갖기도 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다행히 임대료를 조금 더 올리는 수준에서 계약을 맺어 지금까지 ‘상수동 터줏대감’ 역할을 해오고 있다.

마포구 와우산로에 있는 클럽 ‘빵(BBANG)’은 인디 음악의 성지(聖地)로 꼽힌다. 1994년 이화여대 후문 앞에 처음 문을 연 이래 24년째이고, 홍대 앞에서만 14년째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풍운의 꿈을 품고 결성된 많은 밴드가 이곳의 문을 노크하고 거쳐 갔다. 4월 27일 무대에 오른 5인조 록 밴드 ‘클로젯 로켓’의 리더 노종현(26)씨도 그중 한 명이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청춘의 땀 냄새’가 있거든요. 클럽 곳곳에 선배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어 더 좋아요. 요즘은 전자음악(EDM)이나 힙합이 인기라 밴드가 비주류가 돼 버렸지만 여기서 공연하면서 세상을 바꿀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겨나요.”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 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1806호 (2018.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