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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사랑학 개론(7)] 문학에 담긴 사랑의 ABC-돈 후안 

카사노바와 견줄 서양 엽색가의 아이콘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햄릿·돈키호테·파우스트와 함께 유럽 문학이 탄생시킨 4대 캐릭터로 꼽혀…공연과 팬터마임, 인형극 등 민중의 사랑받으며 끊임없이 재해석돼

▎돈 후안과 석상을 묘사한 프랑스 화가 알렉상드르-에바리스트 프라고나르(1780~1850)의 작품. / 사진·라마
"열 여자 싫다는 남자 없다”는 말이 맞는다면, ‘일부일처’ 제도에 바탕을 둔 백년해로는 공염불이다. 정말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뭇 여성이 쇄도하는 남성도 있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여성을 유혹하려는 남성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중세 신화와 전설, 민담에 뿌리를 둔 돈 후안이 그런 경우다. 돈 후안은 전형적인 ‘나쁜 남자’다. 돈 많은 귀족 난봉꾼인 그는 ‘혼인 빙자 간음’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한다. 납치도 한다. 화간이건 강간이건 거리낌이 없다.

그는 굉장히 쉽게 첫눈에 반하고 쉽게 싫증을 낸다. 결혼을 미끼로 관계한 후 관심이 사라지면 도망간다. 귀족, 농민, 수녀 등 닥치는 대로 상대한다. 그에게 여성은 그저 정복의 대상일 뿐이다. 특히 귀족 처녀를 좋아한다. 모차르트(1756~1791)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는 그가 2065명의 여성을 ‘전리품’으로 삼은 것으로 나온다. 그는 당시 그리스도교의 가치였던 참회·회개라는 것을 모른다. 그에게 닥친 운명은 결국 ‘지옥행’이다. 그가 실존 인물이라는 근거는 없다. 수많은 연구자가 그의 역사적 실존을 주장했으나 딱 들어맞는 인물은 없다.

그의 이름은 라틴 알파벳으로 ‘Don Juan’이다. Don Juan은 국적에 따라 우리말로 다르게 옮겨야 한다. Don Juan이 스페인어일 때는 돈 후안, 프랑스어라면 동 쥐앙, 영어의 경우엔 돈 주안으로 표기한다. 이탈리아어로는 돈 조반니(Don Giovanni)다. 돈(Don)은 스페인어에서 남자 귀족에 대한 존칭이다. 후안은 세례 요한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따라서 돈 후안을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요한 공(公)’이다. 요한은 ‘주님은 은혜로우시다’이라는 뜻이다. 세례 요한은 지극히 금욕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돈 후안은 리버티니즘(libertinism, 방탕·난봉, 자유 사상)을 표상한다. 또한 그는 신(神)의 은총·은혜보다는 공의(公儀)를 자극한다.

전형적인 ‘나쁜 남자’의 상징


▎스페인 세비야에 있는 돈 후안 동상. 돈 후안은 ‘나쁜 남자’이지만 유머감각이 뛰어난 자유사상가이기도 했다. / 사진·베르톨트 베르너
돈 후안은 중세가 허물어져 가는 현장을 배경으로 태어났다. 중세를 지배하던 교회의 가르침, 천국과 지옥 등 모든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흔들림 속에서 돈 후안이 나왔다. 돈 후안은 ‘나쁜 놈’이다. 무절제하다. 하지만 희곡·시·오페라 작품에 나타난 그는 지극히 매력적이기도 하다. 그는 원초적이다. 용기 있고 생생하며 다채롭다. 유머감각도 뛰어나다. 기성 도덕에 도전하기에 뭔가 쿨(cool)해 보인다. 그는 반체제 운동가다. 자유사상가다. 돈 후안은 햄릿·돈키호테·파우스트와 함께 유럽 문학이 탄생시킨 4대 캐릭터다. 돈 후안의 명성을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전파한 것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1787)다. 프랑스 문호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는 [돈 조반니]가 햄릿과 바다(sea)와 더불어 “신(神)이 만든 3대 작품”이라고 찬양했다. 독일 문호 괴테(1749~1832)는 자신의 [파우스트](1808, 1832)를 ‘돈 조반니’급 오페라로 만들어 줄 작곡가가 없다는 것을 한탄했다.

하지만 돈 후안의 원조는 티르소 데 몰리나(1584~1648)가 쓴 희곡 [석상(石像)에 초대받은 세비야의 유혹자](1630)다. 몰리나는 필명이다. 본명이 가브리엘 테예스로 스페인 수사였다. 이 희곡의 주인공은 세비야의 기사인 ‘돈 후안 테노리오’다. 스페인어에서 “그는 테노리오다(Es un Tenorio)”는 영어로 “그는 레이디킬러다(He’s a lady-killer)”라는 뜻이다.

작품에서 돈 후안은 이사벨라와 관계한다. 자신을 이사벨라의 정혼자인 옥타비오 공작이라고 속임으로써 가능했다. 도망가다 난파한다. 일련의 돈 후안 작품에서 도망은 중요한 주제다.(난봉꾼의 또 다른 호칭은 ‘도망자’다. 난봉꾼은 살아남기 위해 도망가야 한다. 자칫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데도 난봉꾼이 난봉꾼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돈 후안의 연쇄 염문 행각은 계속된다. 어촌 처녀 티스베아를 혼인빙자 간음의 희생자로 삼는다. 귀족 가문 소녀 아나(Ana)를 유혹하다가 딸을 위해 복수하려는 소녀의 아버지 곤살로를 죽인다. 또 도망친다. 혼례를 치르고 있는 아민타를 유혹해 관계한다. 우연히 곤살로의 무덤과 그의 석상을 발견한다. 수염을 뽑는 등 석상을 희롱하며 석상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돌로 된 유령은 돈 후안의 죽음을 알리는 전령으로 식사 시간에 도착한다. 곤살로의 석상은 돈 후안을 지옥으로 데려간다. 마치 돈 후안의 최후를 장식하는 배경음악처럼 노랫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하느님의 경고를 우습게 아는 자여, 이르지 않는 때가 없고 죄지은 자는 반드시 벌을 받느니라.”

돈 후안은 ‘강한 심장과 용기’를 자신의 최고 자산으로 삼는 인물이다. 용기보다는 뻔뻔스러움이 그에게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돈 후안은 곤살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딸을 능욕한 것이 아니오. 그녀는 이미 내 유혹을 알고 있었소.”

하지만 죽음이 다가오자 돈 후안은 굴복한다. “성직자를 불러 고해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게 해 주시오”라고 곤살로 석상에게 애걸한다. 이미 늦었다. 돈 후안의 마지막 말은 “몸이 탄다. 몸이 타! 아 이제 나는 죽는구나!”였다.

종교계 비판으로 공연 금지되기도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티르소 데 몰리나 입상. 돈 후안의 원조는 몰리나가 쓴 희곡 [석상에 초대받은 세비야의 유혹자]다. / 사진· 루이스 가르시아
이에 곤살로는 이렇게 말한다. “바로 하느님의 의(義)가 나타난 것이다. ‘죄지은 자, 반드시 벌을 받는 법.’” 상선벌악(賞善罰惡)이 구현된 것이다.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은 상선벌악을 이렇게 정의한다. “착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일. 가톨릭교의 네 가지 기본 교리 가운데 하나이다.”

유명한 신학자이기도 한 몰리나의 희곡 중 80편이 남아 있다. 메르세드 수도회 수사인 그의 집필 의도는 흥청망청 인생을 낭비하며 ‘나는 아직 젊다. 즐기자. 죽기 전에 참회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경고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천벌을 받는다’는 관념과 상당히 유사한 관념이 그 당시 스페인의 가톨릭 문화에서도 있었다. 천벌(天罰)은 “하늘이 내리는 큰 벌”이다. 가톨릭에서 궁극적인 천벌은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것이다. 돈 후안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런데 죄에도 ‘작은 죄’와 ‘큰 죄’가 있다. ‘큰 벌’은 ‘큰 죄’를 지은 자에게 내려야지 ‘작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내린다면 뭔가 이상할 것이다.

그렇다면 돈 후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가톨릭 교리는 큰 죄, 작은 죄를 어떻게 구분할까?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에 정리가 잘 돼 있다.

▷대죄(大罪)=하느님을 거역하고 인간의 자유 의지로 행동하여 구원이 없는 죽음에 이르는 죄. 고해성사로 용서받을 수 있다 한다.

▷소죄(小罪)=고해성사를 아니하고도 용서받을 수 있는 가벼운 죄.

큰 죄, 작은 죄에 대한 일반인의 생각과 가톨릭 전통은 상당히 다르다. 예컨대 주일 미사에 빠지는 것도 고해성사로 용서받지 못하면 지옥에 갈 수 있는 대 죄다. 또 돈 후안은 수많은 여성을 능욕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저질렀지만 그가 회개하고 고해 성사를 받았다면 천국으로 갈 수 있었다.

[석상에 초대받은 세비야의 유혹자]는 단순히 ‘매력적인 색마’를 다룬 흥미로운 이야기이기 이전에 ‘몰리나’라는 신학자의 고민이 담긴 텍스트다. 몰리나 작품의 종교성은 또 다른 역작 [불신으로 인해 지옥에 떨어지다](1635)에서도 잘 나타난다. 극단적인 경우 평생 악인으로 산 사람이 단 한 번의 선행으로 구원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평생 착하게 산 사람이 믿음이 약해져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패러독스를 다룬 작품이다.

[석상에 초대받은 세비야의 유혹자]는 1652년 이전에 이탈리아어로 번역됐다. 이탈리아의 극단들이 돈 후안 이야기를 프랑스로 전파했다. ‘프랑스의 셰익스피어’라고 해도 좋을 몰리에르(1622~1673) 희곡 [동 쥐앙 또는 석상의 잔치](1665)는 15회 공연 후 공연이 금지된다. 종교계의 비판 때문이다. 대폭 순화된 형태로 공연됐다. 몰리에르의 원본 그대로 공연된 것은 한참 뒤인 1841년이다. 몰리나의 돈 후안은 가톨릭이었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오자 고해성사를 받으려고 했다. 몰리에르의 동 쥐앙은 무신론자였다. 또 몰리에르의 동 쥐앙은 몰리나의 돈 후안과 달리 위선적이고 비겁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바이런의 풍자시 ‘돈 주안’으로 부활


▎돈 후안의 명성을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전파한 것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다.
19세기, 20세기가 되자 돈 후안, 동 쥐앙은 영국에서 돈 주안으로 부활한다.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1788~1824)의 풍자시 ‘돈 주안’(1819~1824)은 1만6000행에 달한다. 바이런의 ‘돈 주안’은 그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은 “사회와 인생에 관한 예리하고 기지가 넘치는 풍자가 돋보이는 작품이다”라고 칭찬한다. 미완성 작품이다. 바이런은 돈 주안이 프랑스혁명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는 것을 구상했으나 마치지 못 했다.

이제 돈 주안은 유혹자가 아니라 여성들에게 쉽게 유혹당하는 나이브한 남성이다. 오히려 그가 희생자다. 바이런의 돈 주안은 혼인 빙자 간음 같은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운명이나 돈 주안의 매력이 여자들을 끌어당긴다. 운명의 명령으로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사랑의 의미를 찾는 로맨틱한 영웅으로 묘사된다.

두 문장이 눈길을 끈다.

“복수는 달콤하다. 특히 여성에게.(Sweet is revenge−especially to women)”

“쾌락은 죄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죄가 쾌락이다.(Pleasure’s a sin, and sometimes sin’s a pleasure)”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의 희곡 [인간과 초인(Man and Superman)](1903)에 나오는 돈 주안은 니체의 초인 사상의 세례를 받은 돈 후안이다. 쇼는 자연선택을 통해 인류하며 초인으로 진화하며, 남녀가 결합할 때 선택의 주체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보았다. 모든 문화에서 결혼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여자라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는 아포리즘의 대가다. 아포리즘은 생각의 요약이요, 생각할 거리다. 그의 [인간과 초인]은 다음과 같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평생 가는 행복! 그 어떤 살아 있는 사람도 그런 행복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행복은 지상의 지옥일 테니까.(A lifetime of happiness! No man alive could bear it: it would be hell on earth)”

“결혼이 인기 있는 이유는 결혼이 최대한의 유혹과 최대한의 기회를 결합하기 때문이다.(Marriage is popular because it combines the maximum of temptation with the maximum of opportunity)”

“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적응시킨다. 비합리적인 사람은 고집스럽게 세상을 자신에게 적응시키려고 한다. 그러므로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 있다.(The reasonable man adapts himself to the world: the unreasonable one persists in trying to adapt the world to himself. Therefore all progress depends on the unreasonable man)”

남자들은 돈 후안 통해 대리만족


▎오페라 [돈 조반니]의 한 장면. 오페라에 그치지 않고 무언극과 인형극으로도 공연되는 등 민중의 사랑을 받았다.
돈 후안과 카사노바(1725~1798)는 서양 엽색가 역사의 양대 산맥이다. 카사노바는 [돈 조반니] 초연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둘의 차이점은 뭘까? 영국 소설가 앤서니 파월(1905~2000)은 [카사노바의 중국 식당](1960)에서 이렇게 말했다. “돈 후안은 그저 권력을 좋아했을 뿐이다. 그는 명백히 관능(官能, sensuality)이 뭔지 몰랐다. 반면 카사노바는 의심할 나위 없이 관능적인 순간을 가졌다.”

돈 후안은 엄청 나게 인기 있다. 무언극(팬터마임), 인형극으로도 공연돼 민중의 사랑을 받았다. 돈 후안 테마는 러시아 시인·소설가 푸시킨(1799~1837)의 [석상 손님](1830), 프랑스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1803~1870)의 단편소설 [연옥의 영혼들](1834),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1802~1870)의 [마라나의 동 쥐앙](1836) 등을 통해 쉴 새 없이 재해석되고 다시 태어났다.

돈 후안 이야기는 왜 이렇게 인기가 높을까? 어쩌면 “열 여자 싫다는 남자 없다”는 통념의 보편성에 해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돈 후안’을 통해 대리만족을 충족시키는 것일까?

[석상에 초대받은 세비야의 유혹자]는 스페인 황금기(1492~1691)의 산물이다. 풍요는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이지만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풍요는 사람의 행동과 생각을 흔든다. 기존의 신념체제, 종교체제, 도덕관념이 흔들린다. 사랑은 허공에 떠 있는 게 아니라 시공 속에 존재한다. 모든 사랑은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눈을 팔지 않는 사회체제는 가능할까.

※ 김환영 -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지은 책으로 [따뜻한 종교 이야기] [CEO를 위한 인문학] [대한민국을 말하다: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 33선] [마음고전] [아포리즘 행복 수업] [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말하다] 등이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중남미학 석사, 정치학 박사)에서 공부했다.

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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