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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포커스] 민노총이 여의도 정치를 쥐락펴락? 

노동계 출신 與野 원내대표도 ‘속수무책’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최저임금법 개정 주도한 민노총 출신 홍영표 여당 원내대표 ‘수난’...문재인 정부 출범 기여한 촛불정국 동지 ‘총파업’ 선언에 긴장감 돌아

촛불정국 때 시위대를 이끌며 문 정부 출범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민노총이 투쟁 일변도 방식을 고집하면서 여의도 정치권의 새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민노총 관계자들이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에게 항의하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주도해 민노총의 공적이 됐다. / 사진:연합뉴스
노총이 여의도정치권을 쥐락펴락하면서 여의도정치권이 ‘민노총 포비아’로 술렁인다. 민노총은 최근 총파업 투쟁을 예고하며 유력 정치인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동운동가 출신 홍영표(61)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그 타깃이다. 홍 원내대표는 대우자동차노조 위원장을 지낸 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출신이다. 한국노총 상임위원장 출신인 김성태(60)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함께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지난 5월, 홍영표 원내대표 당선으로 노동운동의 주역들이 여야를 대표하는 정당의 원내대표를 맡게 되자 여의도정치권에선 ‘노동운동가들이 국회를 장악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두 사람이 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계와 대화·협력을 통해 주요 노동 이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는 등 기대치가 높았다. 청와대와 정부도 그 같은 기대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5월 28일 최저임금법 개정 후폭풍이 발목을 잡았다. 노동계가 개정안의 국회 통과 이후 기습시위를 벌이는 등 강경 투쟁으로 돌아섰다. 광화문 정부청사와 청와대 앞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를 규탄하는 촛불 행진과 문화제를 벌이며 정부를 압박한 민노총은 6월 30일에는 10만 명 규모의 전국노동자대회 등을 열고 총파업도 불사할 태세다.

민노총 표적시위에 시달린 여권 수뇌부


▎최저임금법 개정에 반대하며 민주당을 비판하는 민노총 조합원들. ‘촛불정신 망각, 적폐 세력과 야합한 민주당 정신 차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 사진:연합뉴스
민노총은 특히 6·13 지방선거 운동 기간에 최저임금법 개정을 주도한 홍영표 원내대표의 사퇴를 집요하게 요구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홍 원내대표는 1995년 민노총 출범을 이끈 산파역이다. 1983년 한국지엠(GM)의 전신인 대우자동차에 용접공으로 취업해 대우자동차노조 결성을 주도했다. 1985년 대우차 파업을 이끌며 김우중 회장과도 담판을 벌였던 그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노동조합법 위반 등 ‘전과’도 화려하다. 대우그룹 노동조합협의회 사무처장, 대기업노동조합연대회의 사무처장을 지냈고, 1995년 민노총이 출범할 때도 당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쟁의국장을 맡고 있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활동했던 골수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그런 그가 민노총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민노총의 타깃은 홍 원내대표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6월 9일 오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TK지역 격전지인 대구를 찾았다. 추 대표는 대구가 고향이다. 하지만 민노총 대구본부 조합원 수십 명이 캠프 건물 앞은 물론, 유세 현장까지 찾아와 정치권의 최저임금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유세 현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민노총 여성 조합원은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깎는 게 노동 중심 사회냐? 민주당은 각성하라”고 외쳤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유세 현장까지 와서 너무하지 않느냐?”라며 맞받아쳤다. 격한 말싸움이 벌어지면서 민주당원들의 제지를 받은 조합원들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노동자의 삶은 바뀐 게 없다. 박근혜 정권과 다른 게 도대체 뭐냐?”고 민주당을 비난했다. 추 대표는 서둘러 연설을 마치고 현장을 빠져나왔지만 조합원들이 좁은 골목길까지 쫓아와 거세게 항의하는 바람에 경찰의 경호를 받아 간신히 유세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추 대표의 봉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주도 지원 유세 때는 추 대표 등 당 지도부가 미리 기다리던 민노총 관계자들을 피해 돌아서 행사장으로 들어가야 하는 수모를 당했다. 전북 군산에서는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로 인해 악화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추 대표를 비롯해 이해찬 수석공동선대위원장, 홍영표 원내대표, 전해철 공동선대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차원에서 대대적인 지원유세를 벌이기로 했다가 민노총 전북본부의 ‘최저임금법 개악 반대’ 항의 시위로 군산 유세를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쯤 되면 집권여당의 수난이자 민노총 포비아다. 한여름인데도 여당인 민주당과 민노총 사이에는 차디찬 냉기가 흐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노총이 반대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홍 원내대표와 민노총이 충돌을 빚은 것이 사달이 났다.

“민노총 억지… 투쟁 일변도 옛 방식은 안 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노동운동가 출신인 두 사람은 민노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5월 21일 밤 11시경,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고용노동소위원회 회의가 한창이었다. 회의에서는 민노총·한국노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여금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를 주도한 홍영표 원내대표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실을 나서다가 마침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경자 민노총 수석부위원장 일행과 인사를 나누다 한마디한 것이 화근이 됐다. 홍 원내대표는 김 부위원장에게 “누가 봐도 불합리한 건 고쳐야지 그냥 갈 수는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산입범위 문제는 지난해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서 문제가 돼 노사가 8개월 동안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해 결국 국회로 넘어온 사안이다. 더 이상은 노동계에만 맡겨두면서 최저임금법 수정을 지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김 수석부위원장이 즉각 반발했다. “최저임금심의위에서 노사가 합의할 수 있다. 민노총·한국노총·경총이 합의해 6월에 최저임금 산입 범위 논의를 끝낼 수 있다. 경제 주체들을 믿을 수 없다는 건 국회가 오만한 거다. 국회 논의를 멈춰 달라”고 요구했다. 언성이 높아지면서 참다못한 홍 원내대표가 이렇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민노총이 너무 고집불통이다. 양보할 줄을 모른다. 민노총에 산입범위 논의를 맡길 수 없다.”

홍 원내대표는 정치인이 된 이후 민노총 지도부가 시대착오적인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노동계도 과거의 투쟁 일변도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통 큰 양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런 생각이 민노총 간부와의 설전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드러난 것이다. 심야에 벌어진 두 사람의 설전은 옆에 있던 홍 원내대표 보좌관이 말리면서 겨우 진정됐지만 그 후유증은 컸다. 민노총은 당장 홍 원내대표의 발언과 최저임금법 개정에 반발해 “노사정대표자회의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집권여당과의 대화채널을 닫아버린 것이다.

홍영표 원내대표도 강대강으로 맞섰다. 그는 추진력이 강한 스타일이다. 정치권에 입문한 뒤부터 선 굵은 스타일로 유명하다. 홍 원내대표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으로 있을 때 국회는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 등 노사 이슈를 여야 간 큰 마찰 없이 모두 처리했다. 홍 원내대표는 민노총의 반대에도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결국 개정안이 5월 28일 국회에서 의결되자 노동계가 벌떼처럼 일어났다. 한국노총은 최저임금 심의위의 근로자 위원 5명을 사퇴시켰다. 민노총과 한국노총은 최저임금심의위를 비롯한 사회적 대화기구 불참과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것을 두고 “값싼 쇠고기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소에 물을 먹여 쇠고기 중량을 늘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 거냐”며 가세했다.

홍영표, 배수의 진 “민노총 주장 맞으면 사퇴”


▎가석방으로 풀려난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왼쪽)과 김명환 현 민노총 위원장. 하반기에 민노총의 강성 투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 사진:연합뉴스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은 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을 선언하면서 “집권여당이 지지율만 믿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홍영표 원내대표의 태도를 강하게 문제 삼았다고 한다. 노동계가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설득해 임금 체계 전반을 논의하려 했는데 홍 원내대표가 ‘어차피 노동계는 합의 안 할 것이다. 대안도 없다’는 논리로 무산시켰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여당 원내대표가 수차례 ‘노동계는 양보를 모른다. 억지 부리는 집단’이라며 충돌을 만든 부분이 문제다. 이런 태도로 촛불 시민이 쥐어준 사회 대개혁 과제를 받아 안을 수 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부와 뭐가 다르냐’며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것이다.

민노총의 반발로 홍영표 원내대표가 야심차게 추진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법 개정안도 빛이 바랬다. 홍 원내 대표는 기존 노사뿐만 아니라 청년·여성·비정규직·중소기업·소상공인 대표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출범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 이에 따라 기존 노사정위원회 명칭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바꾸고, 위원도 기존 10명에서 18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 여야 의원 67명이 공동 발의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을 선언하면서 법안을 주도한 홍영표 원내대표가 머쓱해졌다.

홍 원내대표의 수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법안 통과 이후 전국 각지에서 민노총 조합원들의 ‘공적’이 됐다. 지방선거 운동 기간에 홍 원내대표의 지원유세 현장마다 어김없이 민노총 조합원들이 게릴라식 기습 시위를 벌였다. 민노총 관계자들은 울산·군산·구미·천안·서울 송파 등 홍 원내대표가 가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손 팻말과 확성기로 “최저임금 삭감법 폐기하라” “홍영표는 사퇴하라” “최저임금 도둑! 홍영표는 물러가라!”고 외쳐댔다. 홍 원내대표는 울산에서는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를 방문했다가 시위대에 막혀 1시간 동안 옴짝달싹 못하는 수난을 당했다. 민노총 관계자가 “적폐 세력과 야합해 최저임금법을 개악한 원흉 홍영표는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라”고 외치자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노총 물러가라”고 맞대응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지전도 벌어졌다. 홍영표 원내대표의 보좌관 출신인 청와대 일자리수석실 정한모 행정관이 6월 6일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여성 TF 단체 카톡방에서 민노총 관계자에게 “소상공인이나 기업주는 다 땅 파먹고 장사하는 것 아니다. 박근혜 정부 때처럼 민주노총 본부가 털리고, 위원장이 구속돼도 무서워 아무 말 못 하던 시기가 아니지 않느냐. (민노총의) 내부 파벌 싸움, 외부 투쟁도 모두 변해야 한다”고 했다.

이 발언에 민노총 관계자가 “무례한 태도”라고 하자, 정 행정관은 “그럼 우리 당 선거판 따라다니며 방해하면서 공식 루트는 다 거부하는 게 예의 갖춘 행동은 아니라고 본다”고 대응하며 설전이 벌어졌다. 두 사람 사이에 벌어졌던 카톡방 설전은 민노총이 6월 7일 성명을 내고 “청와대 행정관이 사실 왜곡과 근거 없는 내용으로 민주노총을 비방·음해했다”고 밝히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결국 정 행정관이 카톡방 참가자들에게 사과하면서 일단락됐지만 또 다른 국지전의 가능성은 여전하다.

사태가 왜 이렇게 커졌을까? 우선 양자 간 입장 차이가 크다.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은 정기상여금 25% 초과분과 복리후생비 7% 초과분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정기·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상여금과 수당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시차를 두고 늘려 간다는 절충안 형식으로 통과됐다. 민노총은 이를 두고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연봉 2500만원 미만의 노동자들이 피해를 당하게 됐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저임금 삭감법, 최저임금 개악법이 됐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홍 원내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는 저임금 노동자에게 집중돼야 한다”며 “입법 결과로 중위임금인 2500만원 이하 노동자 323만 명을 더 보호할 수 있게 됐다. 민노총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고 법안도 폐기하겠다”고 배수진을 친 상태다.

촛불정국 주도한 동지에서 갈등 상대로


▎노동계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옛 노사정위원회)가 본래 기능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사진:연합뉴스
진실은 무엇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은 상여금을 산입범위에 포함한다. 최저임금을 업종·지역·연령별로 달리 적용하는 국가도 많다. 우리나라는 최저임금이 오를수록 대기업 정규직 고소득 근로자의 임금이 덩달아 오르는 구조다. 개정안대로 산입범위를 개편하면 상대적으로 임금이 조금 많았던 계층이 영향을 받는다.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면서 고임금 근로자의 무임승차를 방지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연봉 2500만원 이하 근로자에게는 영향이 없지만 고임금 근로자의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대기업 노조 조합원이 많은 민노총에게는 아무래도 불리한 구도다. 많은 노동계 전문가도 이번 개정안이 임금 격차 해소 차원에서 바람직한 개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민노총은 “최저임금 개악법을 주도해 놓고 스스로 잘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홍영표 원내대표의 태도가 오만하기 그지없다”며 홍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정가에서는 ‘사퇴’라는 배수진을 친 홍영표 원내대표가 어떤 방법으로든 타협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본다. 이와 관련, 홍 원내대표는 최근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된 항목을 통상임금과 연결시키는 문제를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장기적으로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항목이 늘어나면 노동계가 오히려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로 설득할 예정이다.

집권당인 민주당으로서도 민노총을 달랠 선물을 준비하는 등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 됐다. 가뜩이나 최저임금 문제로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기치로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지만 오히려 양극화는 심화됐고, 인건비 부담이 커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원성은 커진 상태에서 결국 경제에 주는 부담을 줄이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최저임금법을 개정하는 카드를 꺼냈지만 노동계와 비정규직, 취약계층 등 핵심 지지층의 반발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지지층인 민노총과의 충돌이 길어질수록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민노총이 정치권을 장악하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최근 노동계 상황이 민주당에 유리하지 않다. 민노총 내부 사정에 밝은 이들 상당수는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안 파동이 제대로 봉합되지 않으면 하반기에는 현재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온건파를 대신해 강성인 ‘현장파’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고 예상한다. 민노총 내부는 10여 개의 다양한 계파가 존재하지만 크게는 다수파인 중앙파와 국민파, 그리고 현장파로 구분된다. 김명환 현 민노총 위원장은 이중 온건협상파인 국민파로 분류된다. 철도노조위원장을 지낸 그는 민노총 부산본부 전신인 부산·양산본부 지도위원으로 일할 때 부산·양산본부 자문변호사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강경파로 알려진 쌍용자동차노조위원장 출신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은 민노총 내 소수파인 현장파로 분류된다. 그는 2014년 민노총의 첫 직선제 위원장으로 당선돼 ‘박근혜 퇴진’을 내걸고 촛불정국 전까지 강경 투쟁을 지휘했다. 당시 현장지도부를 구성했던 한 전 위원장과 이영주 전 사무총장이 민노총 활동에 복귀하면서 이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은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을 하다 5월 21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이영주 전 사무총장도 6월 9일 국민 참여재판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이들의 복귀는 민노총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위와 파업 등을 통한 노동계의 요구가 거세질 것을 예고한다.

실제 최근 가석방돼 출소한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 과정을 보면 국회 안에도 노동자와 약자 편에 선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다”며 민주당의 행태를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주 전 사무총장도 풀려난 뒤 “이제 민주노총이 두 번째 승리를 향해 나아갈 때”라며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가 보장되는 세상, 모든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싸우고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민노총 내의 현장파는 민주당이 집권 이후 노동계를 홀대하고 있다고 본다. 근본적인 노동개혁 추진에 머뭇거리는 등 노동자를 인정하지 않았던 과거 정권과 다른 게 없다고 비판한다. 그렇게 되면 촛불정국을 주도하는 등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가까워졌던 집권 여당과 민노총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는 촛불정국 때 힘을 보탠 민노총이 시간이 갈수록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족쇄’가 될 것으로 예측하는 시각이 많았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룬 뒤에는 노동계의 요구가 분출할 것이고, 이를 제대로 누르거나 해결책을 찾지 못할 경우 민노총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기득권이 된 민노총에게 민주당이 ‘양보’를 주문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 문제도 그런 맥락일 수 있다.

민노총 ‘현장파’ 강경 목소리 커졌다

해결 방법은 없을까? 노동계와 시민사회계는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기구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옛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문성현)가 제 기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민노총이 양보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다시 들어와 대화를 통해 노동 이슈들을 풀어가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한 시민사회의 압력도 필요하다. 합리적인 시민세력이 중재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90년대 의약분쟁을 중재했던 경실련처럼 파워 있는 중립적 시민단체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이들도 많다.

정부도 법질서를 위반하는 민노총의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공권력 집행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금처럼 정치권에 민노총의 입김이 세진 데는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민노총에 약한 모습을 보여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영주 전 민노총 사무총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전 사무총장은 2015년 11월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 총궐기 집회에서 불법·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경찰관 75명이 다치고 경찰 버스 43대가 부서졌다. 이 전 사무총장에게는 체포영장이 발부됐지만 촛불정국을 타고 2년여 동안 민노총 사무실에 은신해 체포를 피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경찰이 정부·여당의 눈치를 보면서 체포 의지가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이 전 사무총장이 민주당사를 점거한 뒤에야 체포했다.

민노총의 기물 파손이나 폭력시위 등 과격한 투쟁 행태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월에도 최저 임금법 개정 문제로 민노총 시위대가 국회 정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몸싸움을 하며 격렬하게 대치하는 바람에 철제 정문이 휘어지는 사태가 빚어졌다. 국회 경내에 진입해 본관 앞 계단과 분수대 앞에서 기습 시위하는 조합원들을 방호원들이 제지하는 과정에서 국회 직원 한 명이 넘어져 뇌진탕 증세로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다. 국회가 민노총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민노총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민노총이 총파업에 들어가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정부가 물러섬 없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 지도자의 뚝심과 확고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 철도노조를 굴복시킨 마크롱 대통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국영철도공사의 방만 경영과 비효율을 혁파하겠다며 내놓은 ‘국철 개편안’이 최근 압도적인 지지로 프랑스 의회를 통과했다. 철도노조가 3개월간 파업으로 맞섰지만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고 뚝심으로 버틴 마크롱이 89년 철옹성 노조의 저항을 누른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비효율과 적폐에 메스를 대는 개혁을 추진할 때는 국가 지도자의 뚝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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