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업

Home>월간중앙>경제.기업

[기업소식] 대한적십자사 혈액사업 60년사 

생명 나눔 통한 인도주의 실현 

이동엽 월간중앙 인턴기자
1952년 한국전쟁 도중 수혈 시작… 2014년 연간 헌혈 인구 300만 명 돌파

국내에서 근대의학 수혈용 혈액이 처음으로 선보이게 된 것은 6·25 한국전쟁 중 부상자의 치료를 위해 쓰인 혈액이라 할 수 있다. 1952년 가을, 국군 부상병들에게 수혈용 혈액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해군 혈액고(blood bank)’가 창설됐다. 이어서 육군에서도 육군 관할 5개 병원에 ‘수혈부’를 창설하기 위한 교육이 1953년 11월부터 약 1개월간 육군 중앙병리연구소에서 실시됐다. 이 교육을 받은 군의관들은 각자 소속 병원으로 돌아가 1954년 2월부터 정식으로 수혈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군에서부터 시작된 혈액사업은 1954년 6월 7일 국립 혈액원을 보건사회부 별관에 개원하게 됐다. 그러나 당시의 어려운 사회 여건상 헌혈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일부 가족 헌혈 외에는 대부분 매혈자로 문전성시를 이뤘을 뿐 아니라 혈액의 암거래와 공혈자의 건강악화 및 혈액의 질적 저하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야기됐다.

1955년부터 1957년까지 3년간 직업적으로 매혈을 하기 위해 국립혈액원을 찾아왔던 사람들의 통계를 보면 5489명 가운데 학생은 1411명(약 26%)이었고, 무직자는 1925명(약 35%)이었다. 전체 매혈자 중 여성 매혈자도 약 40%를 차지했다.

보건사회부는 혈액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하면서 세계 각국의 혈액사업 실태를 조사한 끝에 동 사업을 적십자사로 이관하기로 했다. 1958년 1월 27일 보건사회부와 대한적십자사는 국립혈액원 이관에 따른 인수인계를 모두 완료했다. 마침내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의 시대가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1987년부터는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AIDS 바이러스 창궐을 예방하기 위해 전 헌혈자에게 HIV 항체 검사를 실시했다. 1984년 5월에는 제6차 아·태지역혈액사업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해 대한적십자사 혈액사업발전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며, 1989년 12월에는 연간헌혈인구 100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1987년부터는 일찍이 도입된 헌혈자 관리를 위한 전산 시스템을 개선했고, 1996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초고속통신망을 이용한 혈액 전산관리로 선진화를 이룩했다. 이후 IT선진국에 맞게 꾸준히 프로그램을 유지·보수한 결과 현재 대한적십자사가 개발해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혈액정보관리프로그램(BIMS: Blood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은 해외 수출 작업을 진행할 정도로 선진화돼 있다.

헌혈 인구는 꾸준히 늘어 1995년도에는 연간 헌혈 인구 200만 명을 돌파했다. 2014년에는 의료기관 혈액원을 포함해 300만 명을 돌파했다. 1997년 12월에는 선진국 수준인 전 국민 헌혈율 5%대를 조기에 달성했으며, 수혈용 혈액의 자급화와 함께 성분제재 보급율 100%를 넘어서 헌혈 운동은 일단 대한적십자사가 이 사업을 국민운동 차원으로까지 끌어 올리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매혈에서 출발한 혈액사업을 단시간 내에 헌혈로 정착시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적십자이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도주의(humanism)’다. 이는 인류의 평화와 복지를 증진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적십자 운동의 시작이자 끝이다. 헌혈운동만큼 이 이념에 부합되는 사업도 없다고 할 수 있다.

- 이동엽 월간중앙 인턴기자 ldy20197@naver.com

/images/sph164x220.jpg
201807호 (2018.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