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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동향] 4대 승계 목전에 둔 LG家의 고민 

‘부자 3대’ 속설 깨고 ‘가전 명가’ 되찾을까 

양희동 이데일리 기자
‘장자 승계’ 구씨 가풍 따라 40세 구광모 상무 상속 작업 한창… 1조원 달하는 상속세·계열 분리·성장동력 발굴 등 남은 과제도 산더미

▎LG그룹의 4대 승계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구씨 일가가 철저히 지켜온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고(故) 구본무 회장(왼쪽)의 뒤를 이을 구광모 상무(오른쪽)는 LG의 성장동력을 발굴해내야 할 임무가 주어졌다.
"제가 꿈꾸는 LG는 모름지기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입니다.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하겠습니다.”

1995년 취임사에서 글로벌 기업의 꿈을 얘기했던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지난 5월 20일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4위 LG그룹은 이제 구 회장의 장남인 4세 경영인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이끌게 됐다. 올해 마흔 살의 구광모 상무는 LG가(家)의 장자 상속 원칙에 따라 2004년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입적됐다. 이후 2006년 LG전자에 재경부문 대리로 입사해 12년간 국내외 현장을 거치며 경영 수업을 받았고, 6월 29일에 열리는 ㈜LG 임시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 선임과 함께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선친 구본무 회장은 취임 후 23년간 오늘날의 LG그룹을 사실상 설계하고 만든 인물이었다. 구 회장은 취임 당시 연 매출 30조원 규모의 내수 기업 LG를 전자·디스플레이·화학 등을 중심으로 연 매출 160조원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LG그룹 수장이 된 지 불과 2년 만에 IMF 외환위기라는 큰 파고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정부의 빅딜 요구로 LG반도체(현 SK하이닉스)를 넘기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구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전자 분야를 중심으로 디스플레이, 전기차용 배터리, 자동차 부품 사업 등에 과감한 투자를 추진했다. 액정표시장치(LCD) TV용 패널의 세계 1위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용 패널 독점 생산 기술 확보 등 눈부신 성과도 이뤄냈다. 또 ‘영속 기업’을 위한 해답은 연구개발(R&D)과 인재에 있다는 신념과 의지로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 단지 ‘LG 사이언스파크’를 완공했다.


구 회장은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2003년 LG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GS·LS그룹 등의 계열 분리 작업도 순조롭게 마무리 해 지배구조 측면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구광모 상무는 확실한 1등이 없는 LG그룹에 신성장 동력을 발굴·육성하고 기업을 한 단계 더 도약시켜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받아들었다. 또 약 1조원에 달하는 ㈜LG의 지분 상속 문제를 해결하고 숙부인 구본준 부회장의 계열 분리를 통해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 방안도 조기에 찾아야 한다. 여기에 ‘부자 3대(三代) 못 간다’는 속설을 불식시키고 4세로서의 경영 능력도 스스로 시장에 증명해야 한다.

구 상무는 등기이사 선임과 함께 7월부터 ▷하현회 ㈜LG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등 전문경영인 6명의 조력을 받아 LG그룹의 총수로서의 행보를 시작할 전망이다.

구 상무가 안정적으로 LG그룹을 경영하기 위해선 선친의 ㈜LG 지분 상속과 숙부인 구본준 부회장의 계열 분리 작업 등이 먼저 순조롭게 이뤄져야 한다. 또 임시 주총에서 구 상무가 등기이사로 선임된 이후에는 그룹 총수에 걸맞은 직책과 권한 등도 LG가의 가족회의를 통해 신속하게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 상무가 LG그룹 후계자로 지목된 이후 재계의 최대 관심사는 구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을 주식과 상속세 규모다. 구 상무가 LG그룹을 문제없이 승계받기 위해서는 구 회장의 ㈜LG 지분을 상속받아 최대 주주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이 지분 상속은 구 상무의 그룹 내 지배력 강화의 핵심요소다.

㈜LG와 같은 상장사 주식은 상속시 사망일을 기준으로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간 단순평균주가를 평가해 상속세를 계산한다. 이를 기준으로 구 회장 보유 주식의 평균가를 3월 20일 이후 주가 기준으로 1주당 8만원 정도로 잡으면 총 평가액은 1조5600억원가량이 된다. 따라서 전체 상속세 규모는 세율(50%)과 최대 주주 할증률(20%) 등을 감안해 약 9300억원에 이른다.

‘구광모의 LG’, 4세 경영 체제 안착의 조건


▎1995년 구본무 회장 취임 당시 연매출 30조원의 LG그룹은 160조원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 취임식에서 사기(社旗)를 들고 있는 구본무 회장.
구 상무가 선친의 지분 전체를 상속받을 경우 현 시점에선 1조원에 가까운 거액의 상속세를 마련할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상속세 분할 납부나 주식으로 세금을 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지만 승계의 속도나 지배력 측면 등을 감안할 때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 상무가 지분 전체가 아닌 어머니 김영식 여사 등 다른 상속자들과 함께 자기 몫만 상속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럴 경우 구 상무는 손쉽게 최대 주주에 올라설 수 있고 본인 부담 상속세도 2000억원 안팎으로 대폭 줄일 수 있다.

민법(제1009조)에 따르면 구 회장이 보유한 ㈜LG 주식 1945만8169주(11.28%)에 대한 배우자 및 직계비속의 법정 상속분은 별도 유증(유언에 따른 증여)이 없었다면 부인 김영식 여사와 자녀 구광모 상무, 구연경씨, 구연수씨 등 4명이 각각 ‘1.5대 1대 1대 1’의 비율로 받게 된다. 배우자와 자녀의 상속 순위에선 모두 1순위지만, 상속분은 배우자에게 50% 가산하게 돼 있다. 이에 따라 구 회장 보유 지분을 법정 비율에 따라 물려줄 경우 김 여사는 3.75%, 구 상무 등 자녀 3명은 2.51%씩 지분을 나눠 받게 된다.

재계에선 구 상무가 법정상속분만 받더라도 최대 주주의 지위를 확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 상무가 자기 몫인 2.51%를 상속받으면 ㈜LG 지분율은 기존 6.24%와 합해 총 8.75%로 늘어나고 최대 주주로 올라선다. 이어 김 여사가 기존 지분(4.20%)과 상속분 3.75%를 더해 7.95%로 2대 주주, 구본준 부회장이 7.72%로 3대 주주가 된다. 여기에 향후 구 상무가 친아버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보유한 지분 3.45%를 증여 또는 상속으로 추가 확보한다면 그의 지분율은 구 회장보다 많은 12.2%까지 늘릴 수 있다.

LG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LG가는 ‘장자 상속 원칙’이 확고하고 최대 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47%에 달하기 때문에 구 상무가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선친의 지분을 모두 상속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용퇴 앞둔 구본준 부회장, 계열 분리 대상 촉각


▎2010년 미국 전기차배터리 공장 기공식에서 구 회장이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구본준 부회장의 계열 분리 작업도 LG그룹 승계에서 또 다른 핵심 사안이다.

LG가는 전통적으로 후계자가 정해지면 경영에 참여했던 다른 오너 일가는 계열 분리 수순을 거쳐 왔다. 구본무 회장이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는 과정에서도 구 회장의 형제(구본능·구본식)와 구 명예회장의 형제(구자승·구자학·구자두) 등이 희성그룹과 LF·아워홈·LB인베스트먼트 등으로 분가한 바 있다.

구 회장의 형제 중 유일하게 LG그룹에 남았던 구본준 부회장은 그동안 반도체·전자·디스플레이·화학 등 핵심 사업을 두루 관여하며 중추 역할을 해왔다. 특히 구 회장의 병세가 악화된 지난해 이후에는 사실상 총수 역할을 대행하며 그룹의 신성장 사업을 진두지휘 해왔다. 얼마 전 LG전자와 ㈜LG가 공동으로 1조4440억원에 사들인 오스트리아 차량용 헤드램프 업체 ‘ZKW’의 인수합병(M&A)도 구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구 부회장의 LG그룹 내 위상과 무게감을 감안할 때 그가 가지고 나갈 사업에 대한 예측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구 부회장의 계열 분리 가능성이 언급되는 사업 분야는 ▷ZKW 등 자동차 전장 부품 계열 ▷전자 부품 계열 ▷상사 계열 등이다. 구 부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LG지분 등을 정리하면 1조원가량을 확보할 수 있고, 이 자금을 통해 가지고 나갈 사업의 지분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계열 분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계열 분리가 거론되는 사업들이 그룹의 핵심 또는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고 있는 분야라 쉽게 분리 결정을 하기 어려우리란 지적도 나온다. 한편에서는 구 부회장이 직접 키워온 핵심 분야를 놔두고 비핵심 계열사를 선택하진 않을 것이란 시각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LG그룹 내부에서도 구 부회장의 독립 가능성은 높게 점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선 극도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LG그룹 관계자는 “구 부회장의 계열 분리와 관련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재계에선 구 부회장의 계열 분리 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구광모 상무가 임시 주총에서 등기이사에 오르고 LG그룹의 총수로서의 행보를 본격화하기 전에 LG가의 가족회의를 통해 그 윤곽이 정해질 것으로 재계에선 예상하고 있다.

구 상무의 향후 그룹 내 위상과 직책 등도 등기이사 선임과 함께 구체화될 가능성이 크다. 최소 지주회사 팀장급 이상(부사장 이상)으로 승진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선 구 상무가 LG그룹의 총수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만큼 부회장이나 회장으로 곧바로 승진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마흔이란 나이보다 총수라는 역할이 주는 무게감이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 부친의 타계나 은퇴 등으로 자리를 이어받은 대기업 총수들은 20~30대의 젊은 나이에 회장직에 오른 사례가 적지 않다. 최태원(58) SK그룹 회장은 선친인 고 최종현 선대 회장이 세상을 떠난 1998년, 38세의 젊은 나이에 회장직에 올랐다. 또 김승연(66) 한화그룹 회장은 1981년 아버지 고 김종희 전 한국화약그룹(현 한화그룹) 회장이 별세하자 불과 29세에 회장으로 취임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LG가의 장자승계 원칙하에서 총수로 낙점된 구 상무는 나이와 상관없이 회장 승진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LG의 핵심 ‘전자’에 드리운 그늘


▎1995년 구 회장(왼쪽 둘째)과 허창수 당시 LG전선 회장(왼쪽 셋째)이 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LG그룹 총수로서 구광모 상무 앞에 놓인 주요 사업의 당면 과제들은 결코 녹록지 않다. 그중에서도 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자동차 전장 부품, OLED,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등을 담당하는 LG전자·LG디스플레이·LG유플러스 등 핵심 계열사들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과 치열한 경쟁 속에 놓여 있다. 이들 전자·통신 사업은 그 성패 여부가 곧바로 LG그룹의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에 구 상무의 향후 경영 방향과 전문경영인들과의 역할 분담 등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LG그룹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LG전자는 자동차 전장 부품, OLED, AI, 로봇 등 대부분의 신성장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최대 계열사다. 2018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구 상무가 LG전자의 B2B(기업 간 거래) 사업본부 산하ID(Information Display) 사업부장을 맡은 것도 이 회사의 그룹 내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자 사업에서 구 상무의 조력자가 될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은 고졸 출신으로 회사에 입사해 30년 넘게 세탁기 연구 개발에 매진하며 ‘Mr.세탁기’란 별명이 붙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조 부회장은 LG 세탁기를 글로벌 1위로 올려 놓았고 트윈워시·스타일러 등 혁신 제품을 선보이며 프리미엄 생활가전 시장을 개척해 왔다. 단독 CEO(최고경영자)로 취임한 첫해인 2017년엔 매출액 61조3963억원, 영업이익 2조 4685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며 ‘조성진 매직’이란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과 구본무 회장 부자(父子). LG가(家)는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 이후로 3대에 걸쳐 장자승계 원칙을 철저히 지켜 왔다.
하지만 생활가전과 OLED TV 등 승승장구하고 있는 가전 분야와 달리 스마트폰 사업은 오랜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MC사업본부는 올 1분기까지 1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회사 수익에 전혀 기여하지 못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지난해 말 사장단 인사를 통해 MC사업본부장이 교체되기도 했다.

조 부회장이 얼마 전 스마트폰 사업에 대해 내놓은 해법은 ‘믿고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이다. 전략 스마트폰 ‘G7 씽큐(ThinQ)’는 이런 조 부회장의 철학이 반영된 제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본기에 충실하고 완성도 높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고객의 신뢰를 쌓아 가겠다는 것이다. 과거 뒷면 가죽 커버를 선보인 ‘G4’나 모듈형 방식을 적용한 ‘G5’ 등 혁신에 치중해 외면당했던 전작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AI와 사물인터넷(IoT), OLED 디스플레이 등 혁신의 최전선에 있는 스마트폰 분야에서 제품의 안정성만을 추구해서는 사업을 성장시키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부분에서 구 상무의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

계열사 직접 경영 대신 미래 먹거리 발굴


▎LG는 디스플레이와 자동차용 배터리 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2004년 LG필립스LCD 파주공장 기공식. LG화학 전기차배터리 공장 시제 전기차를 직접 몰고 있는 구본무 회장.
구 상무는 나이가 젊은 만큼 혁신 기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LG에서 각 사업 간 협업과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시너지팀에서 근무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최신 IT 기술 동향에도 관심이 많아 콘퍼런스나 포럼 등에 참석하고 파트너사와의 협력을 직접 챙겨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 상무가 맡고 있는 ID사업부는 디스플레이 산업의 핵심 성장 분야인 사이니지(실내외 광고용 디스플레이) 사업을 주력으로 수행하는 조직으로 전자·디스플레이·ICT·소재부품 등 주요 사업 부문과의 협업도 활발하다. 이로 인해 최근까지 미국과 유럽·중국·싱가포르 등 글로벌 현장을 누비면서 사업 성과 및 경쟁력 확보에 주력해 왔다.

업계에선 구 상무가 향후 LG그룹의 총수로서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전장 사업 분야 등에 접목할 신성장 동력을 찾는 일에 업무를 집중시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회사의 안정적 운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미래 먹거리를 찾는 역할 분담이 이뤄질 것이란 분석이다.

LG디스플레이와 LG유플러스 등도 한상범 부회장과 권영수 부회장 등이 지금과 마찬가지로 경영 전반을 이끌면서 OLED와 5G 등 핵심 분야에 대한 신기술 발굴과 시장 개척 등에선 구 상무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LG유플러스의 경우 4세대 LTE 후발 사업자로서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을 17% 선에서 20%대까지 끌어올리긴 했지만 여전히 업계 3위에 머물고 있다. 이로 인해 구 상무는 앞으로 LTE보다 50배 빠른 5G가 2020년부터 상용화되면 AI·IoT 등 관련 신사업에 투자를 집중해 시장 주도권을 확대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구 상무가 각 계열사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며 “전문경영인들은 현재 사업에 대한 주요 결정과 판단을 내리고 구 상무는 미래를 준비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의 무역 분쟁과 중국 내 투자 지연 등에서도 구 상무가 역할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LG전자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인해 관세 폭탄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를 발동,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에 대해 총 120만 대에 한해 20% 초과 관세, 초과분은 50%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LG전자는 내년에 가동할 예정이던 테네시주 세탁기 공장의 가동 시점을 올 3분기 말로 앞당기며 조기 진화에 나선 상태다.

LG디스플레이는 LCD에서 OLED로의 사업 전환에 가속도를 붙이기 위해 중국 광저우 OLED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관할 당국의 반독점 심사 지연으로 투자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LG디스플레이는 LCD 패널 가격의 급격한 하락세로 올 1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서며 주가도 연초 대비 30% 가까이 하락했다.

구 상무가 LG그룹의 총수로서 각국 정부나 고객사와의 갈등이나 마찰을 해결하기 위해 소통 창구로 나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의 총수들은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직접 글로벌 행보에 나서고 있다.

이런 총수 역할을 염두에 두고 구본무 회장이 경영 수업의 일환으로 구 상무에게 글로벌 현장을 자주 챙겨야 하는 ID 사업부장을 맡겼다는 해석도 지난 인사 직후 나오기도 했다.

그룹 모태 ‘화학’ 사업 성장의 밑거름으로


▎구 회장은 인화(人和)를 LG의 지향으로 삼았다. 직원들과 격 없이 소통하길 즐기고, 인재 육성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LG화학과 LG생활건강 등 화학 사업은 그룹의 모태로 LG가 내수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성장하는 밑거름이 돼왔다.

박진수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LG화학은 1947년 창립 이후 70년 넘게 지속 성장하며 연 매출이 25조원을 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러나 중화권 기업들이 탄탄한 내수를 기반으로 배터리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중국 정부도 한국 업체들을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현재 상황은 만만찮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 집계에서 LG화학은 일본 파나소닉, 중국 CATL·BYD 등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지난해까지 세계 2위 전기차 배터리 업체였던 LG화학이 2018년에 들어 중국의 거센 공세로 4위로 밀려난 것이다.

중국 내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전기 버스·트럭 수요에 대한 혜택이 고스란히 중국 업체에 돌아간 결과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LG화학 등 한국 업체들은 중국 정부의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빠지면서 세계 최대 중국 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다.

구 상무는 앞으로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 시장에서의 해법과 새로운 수요처 발굴 등을 박진수 부회장과 함께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2020년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계획에 대비해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기술력을 높이고 전력저장장치(ESS) 등 고부가 가치 제품 확대 등 향후 시장 변화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악재가 해소된 LG생활건강은 올 들어 실적 개선세가 두드러진다.

그룹 내 최장수 CEO인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지속적인 M&A와 자체 사업 정비로 ▷화장품 ▷생활용품 ▷음료 등 3대 분야가 균형을 이루는 기업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 덕분에 사드 보복에 따른 중국 관광객 급감 상황에서도 화장품 사업이 경쟁사들에 비해 타격을 덜 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 상무도 현재 사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가 외부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며 “국내 생활용품 시장은 불확실성이 큰 탓에 내실을 다지기 위한 유통 재고 축소 등 사업 건전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양희동 이데일리 기자 eastsun1210@nate.com

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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