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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인물] ‘35년 최고령’ 정명호 서울고검 검사의 인생열전 

“검사는 매너와 정의감 갖춘 샐러리맨이어야” 

문병주 중앙일보 사회 부데스크
실무 검사로만 35년째, 검사장 승진 누락 시 ‘용퇴’ 관행 깨고 항소심 현장 지켜… 매너 강조하는 ‘평생 검사’의 표본, 내부 갈등에는 “검찰 자정 능력 믿어 달라”

▎정명호 검사가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와 법원청사 사잇길을 지나고 있다.
"살인 외에도 무고까지 죄명이 14개가 적용됐습니다. 법정 최고형이 선고된 건 당연합니다.”

5월 17일 오후 3시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법정 404호. 검사석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학생 딸의 친구를 추행하고 살해해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어금니 아빠’ 이영학(36) 사건 항소심을 맡은 정명호(61)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였다.

이영학은 2005년 11월 9일 MBC [생방송 화제집중]에 방송돼 ‘어금니 아빠’로 알려졌다. 거대백악종이란 유전병을 앓고 있는 딸을 위해 미국까지 가서 후원금을 모금하는 등 눈물겨운 부성애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줬지만, 고가의 외제 차량을 모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매달 생계 급여 109만원과 장애 수당 등을 포함해 16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이영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성 매수자와 성매매 여성을 모집하고 성관계 장면을 몰래 촬영한 뒤 성인 사이트에 올려 수익을 챙기기도 했다.

이런 과거가 수사에서 드러나자 1심 재판부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우리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2016년 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5명을 살해한 임모(29) 병장에 대한 대법원의 사형 확정 판결 이후 2년 만에 사형선고가 나온 것이다.

항소심 재판 첫날 이영학 측은 예상대로 어떻게든 사형을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심신미약’을 호소하는 게 주 전략이었다. 검찰은 물론 법원도 1심에서 “이영학에게 교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더욱 잔인하고 변태적인 범행을 저지르기에 충분해 보인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에서도 이 판단을 계속 유지하게 만드는 게 정 검사의 역할이다.

이날 오전부터 6시간 동안 재판정을 지킨 정 검사는 현직 대한민국 최고령 검사다. 1983년 사법연수원(13기)을 수료하고 인천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35년째다.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황교안 전 국무총리,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과 함께 연수원 생활을 했다. 문무일(57·연수원 18기) 검찰 총장도 그보다 연수원 기수로는 다섯 기수 아래다.

화려한 공직 경력을 자랑하는 몇몇 동기들과 달리 그는 여전히 검사장급 검사가 아니다. 서울고검(조은석 고검장) 소속으로 각종 항소심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매주 이틀은 이날 같은 생활을 한다. 일주일에 30~40건의 재판에 공판관여를 하고 있다.

대검 중수부만 2년8개월, 손꼽히는 ‘특수통’

정 검사는 10년차가 되기 전에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를 거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2·4과에 몸담으며 검사들의 로망인 ‘특수통’으로 자리 잡았다. 중수부에서만 2년8개월을 근무했다. ‘율곡비리 사건’ ‘슬롯머신 사건’ 등 수많은 특수 수사에 참여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그는 1991년 중수부에서 진행한 수서비리 사건 수사를 꼽는다.

수서비리 사건은 개발제한구역이었던 서울 강남구 수서·대치 지역 공공용지 3만5500평에 대해 서울시가 26개 주택조합에 아파트 건축 허가를 내주면서 불거졌다.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에서 갑자기 “공공 개발한 택지를 특정 주택조합에 공급함으로써 무주택 서민용 아파트 공급에 차질이 예상되나, 건설부에서 ‘공급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데다 국회건설위원회가 주택조합원들의 청원을 받아들인 점을 감안해 특별 공급키로 했다”고 밝힌 것이다. 서울시의 이 같은 발표는 특혜행정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중수부가 칼을 빼 들었다.

정 검사가 참여한 수사팀은 정태수 당시 한보그룹 회장으로부터 국회의원 5명 등에 뇌물을 줬다는 자백을 받아 현직 국회의원들을 구속시키기도 했다. “정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는 국회의원들과 대질을 시켜주면 자기가 자백을 다 받아주겠다고 큰소리치더군요. 그런데 실제로 그랬어요. 자신이 준 뇌물 액수가 검찰에서 진술한 것보다 더 많기 때문에 다 자백을 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더군요.”

지금은 고인이 된 최명부 당시 중수부장과 관련한 일화도 소개했다. “건설부 주택국장이 중수부에서 조사받을 때 맞았다고 주장하면서 병원에 입원해 물의를 빚게 되자 중수부장이 전 검사들을 소집했어요. 그리고는 피의자에게 절대 손을 대지 말라고 하면서 ‘때려서 자백 받으려면 이만기를 부르지 너희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하시더군요.”

정·관계 부정부패 저승사자 ‘대검 중수부’

피의자들 중 뇌물로 받은 100만원권 수표 200장을 비닐로 싸서 집 화장실 변기 물통 뚜껑 바로 밑에 테이프로 감아 숨겨두고 사용했던 한 국회의원에 대한 일화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수표 190장을 압수했는데 일련번호 200장이 빠져 있어 수표 추적을 다시 하겠다고 하자 시간을 끌더니 갑자기 양심선언 형식으로 폭로를 해버리더군요.” 당시 평민당에 돈을 전달한 이원배 의원은 “한보 측으로부터 2억원을 받아 당비로 받아 나눠 사용했으나 순수한 뜻에서 받았으며 수서 사건에는 청와대 비서진뿐 아니라 노태우 대통령도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는 양심선언을 했다. 수사 결과 청와대 고위층의 개입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 났다.

그는 중수부가 2013년 4월 폐지된 것에 대해 “수사기관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는데 중수부는 긍정적 면이 더 컸다”며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부정부패와 비리척결의 상징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중수부는 제5공화국 초기인 1981년 출범했다. 이듬해인 1982년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사건을 맡아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의 처삼촌 이규광씨를 구속하고, 수서 비리사건(1991),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1995),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현철씨가 연루된 한보 비리사건(1997) 등 대형 사건을 전담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벌여 여야를 불문한 인사와 기업인들을 단죄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를 구속한 세종증권 비리 수사와 이듬해 ‘박연차 게이트’ 수사, 급기야 2009년 5월 중수부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폐지론에 힘이 실렸다. 이후 대선에 출마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중수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결국 직접 수사 기능이 없는 ‘반부패부’로 개편되며 현판을 내려야 했다.

“검사장은 안 됐지만 검사라는 직업이 좋아”


▎정 검사는 1983년부터 검사 외길을 걸어왔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왼쪽),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운데),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오른쪽) 등이 그의 연수원(13기) 동기다.
일선 지검 부장, 차장 직을 수행했던 그는 2009년, 잠시 검사 생활을 접어야 할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검사장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에는 독특한 용퇴 문화가 있다. 검사장 승진 대상에서 누락될 경우 스스로 물러나는 관행이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준다는 좋은 의미를 품고 있지만 전관예우의 원인이 된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정 검사는 당시 선택의 기로에서 초임 검사 시절을 되돌아봤다고 했다. “검사들은 상당히 희소성이 있었고, 자긍심도 대단해 검사들이 세상의 모든 불의를 없애고 정의를 실현한다든지 검사가 아니면 누가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수 있겠나 하는 등의 아주 당당하고 원대한 포부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초임 검사로서 대한민국에서 부정부패를 전부 척결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상적인 꿈을 한껏 가지고 검사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가 초임 검사 발령을 받은 인천지검의 경우 1983년 9월 당시 검사장과 차장, 부장 2명, 검사 8명 등 총 12명이 전부였다. 현재 인천지검에는 101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검사장 승진에서 누락되고 나니 개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했는데 변호사보다는 검사를 업으로 생각하라는 식구들의 만류가 있었지요.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직업이란 생각도 컸고요. 그 결정에 결코 후회가 없어요.”

이후 그는 줄곧 고검 검사로 재직했다. 올 1월에는 1심에서 무죄가 난 강간사건 항소심에서 피해자를 설득해 증인으로 법정에 세워 가해자가 징역 3년형을 받게 했다. 지난 5월 초에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 사건 항소심에서 공소장을 변경해 가해자를 징역 2년6개월에 법정구속시키는 일도 있었다.

정 검사는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실감나는 세월이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한자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딱 그 뜻이다.

“어물전 망신시키는 꼴뚜기 같은 검사 되지 말아야”

그야말로 검찰 변화의 산증인인 그에게 최근 발생하고 있는 각종 검사 비리와 내분, 그리고 수사권 조정 같은 이슈들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후배들과의 대화라면 편하게 할 수 있겠지만 기사를 통해 의견이 나가는 건 부담스럽다”면서도 에둘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영화에 나오는 검사의 모습은 대부분 권력 추구형이다. 시민들도 아직까지 검사들이 권력 지향적이라고 생각한다.

“검사의 이미지가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너무나 왜곡되고 있다. 권력과 결탁한 일부 소수의 검사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검사가 묵묵히 소신껏 일하며 오히려 어떻게 보면 샐러리맨에 가깝게 소시민적이고 겸손하며, 일반 회사원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조용하다. 오히려 그런 검사들에게는 자긍심을 좀 더 가졌으면 하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어떻게 보면 소수의 문제 있는 검사들이 어물전 망신을 꼴뚜기가 시키듯이 대다수 검사의 좋은 이미지를 훼손시킨다고 봐도 무방하다.”

‘검사는 이런 것이다’고 정의한다면?

“검사에 대해 가끔 ‘검사 같지 않다’라든지 ‘검사치고는 인상이 괜찮고 성격이 괜찮다’ ‘검사치고는 생각보다 점잖은 것 같다’는 등의 칭찬들을 하시는데 도대체 검사들에 대한 인상이 얼마나 나빴으면 당연하고도 일반적인 얘기가 칭찬이 되는지 아연할 따름이다. 나 스스로는 검사는 항상 마음가짐이 바르고 복장도 반듯하고 늘 미소를 잃지 않으며 점잖은 신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공무원의 복장 자율화가 시행되고는 있지만 저는 검사들은 항상 점잖고 품위 있는 복장을 갖추는 것이 당연하고 좋다고 본다. 또한 검사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야말로 무사나 무관이 아닌 문관일 뿐이다. 판사에 준하는 준사법기관으로서 펜으로 말하는 직업이다.”

현재 검찰의 뜨거운 현안 중 하나가 수사권 조정이다.

“이 문제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신뢰’와 ‘국민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최근에 친소를 불문하고(심지어 제 직업이 검사인지 모르는 분들을 포함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검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다가도 자신의 법률 문제에 대해 수사기관에 갈 필요가 있게 될 경우 경찰과 검찰 중 어디에서 조사받기를 원하느냐고 물어보면 거의 전부 검찰이라고 대답한다. 아직까지는 경찰에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기피해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수사권 조정 문제는 인위적으로 경찰과 검찰의 위상이나 권력 실세 기관의 필요에 따라 조정돼서는 안 되고 순리적으로 경찰과 검찰 중 어느 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더 받고 있느냐, 어느 쪽이 국민의 이익에 더 부합하느냐에 따라 조정돼야 한다.”

검찰이 현재처럼 수사지휘를 해야 한다는 건가?

“기본적으로 검찰은 소수의 조직이고 몸보다는 머리를 쓰는 조직이다. 이에 반해 경찰은 조직원의 수가 많고 머리보다는 발로 뛰는 행동이 중요한 조직이다. 그렇다면 힘들고 어렵고 정말로 깊은 생각과 전문적 법률 지식이 대단히 요구되는 경제사범·조세·증권·첨단기술(IT) 등 수사는 검찰이 전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고, 민생침해 범죄나 조직폭력·마약 같은 손이 많이 필요하고 인원이 많이 필요한 분야는 경찰에서 수사를 전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근래 고위급 검사부터 초임 검사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았다. 감찰 강화 말고 방법이 없을까?

“감찰이나 내사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관리·견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 검사가 얼마나 청렴하고 부패에 물들지 않는가 하는 것은 그야말로 검사의 기본적인 소양과 정신에 있다. 검사를 선발할 때나 초임 검사 때부터 검사의 기본적 정신 자세에 대한 비중을 높여 신중하게 선발하고 초임 검사에 대해서는 기본 정신 자세에 대한 교육을 정말로 강화해야 한다. 검사의 능력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지만 기본 정신 자세나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검사를 오래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강원랜드 수사단의 항의 사태, 안미현 검사의 기자회견 등 기존 검찰 조직에서 보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근본적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최근 적폐 수사 및 성추행 관련 ‘미투 선언’ 등 검사들이 관련된 여러 수사가 진행되면서 일부 검사들이 구속되거나 자살하는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빈발했다. 이 때문에 검사들의 조직 지도부에 대한 불신감과 실망감이 다소 불거지고 있는 것처럼 비치고 있는 것 같다. 또 검사들의 심기가 다소 불편한 것처럼 보여지거나 일부 소소한 사건에도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최근 일련의 다소 불행한 사태와 관련해 조직 수뇌부의 배려가 검사들이 기대한 만큼 못 미치는 미흡함에 대한 일부 아쉬움과 섭섭한 감정과 불편한 심기가 약간의 견해 차이로, 부분적으로 다소 과민하게 표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과거에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검사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질과 문제해결 능력을 믿고 기다리면 검찰 조직 스스로 점차 안정을 찾고 제자리를 찾아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년(만 63세)을 2년 정도 남기고 있는 그의 바람은 “끝까지 검사로서 재판정에 서는 것”이다. 검사로서 이루고 싶은 마지막 소명이기도 하다. 그가 검찰을 떠나더라도 서울고검 청사에는 그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을 것이다. 검찰청사 앞뜰에 자리 잡은 박병희 조각가의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작품 남쪽 기둥에 그의 얼굴 부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부조는 2012년 서울고검 청사가 건립될 때 만든 것으로, 가로세로 길이가 7m, 높이 4.9m에 달하는 거대한 청동 조각상의 일부다. 당시 서울고검을 대표하는 검사 중 한 명으로 정 검사가 뽑혀 작품의 모델이 됐다. 모델이 된 배경을 묻자 그는 “후배들로부터 인기 있는 선배라는 뜻 아니겠냐”며 웃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말처럼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있을 수 없고, 평소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고 후하게 대하면 사람들이 모두 적이 아닌 아군이 되어 세상 일이 순조롭게 된다고 믿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검사는 정의감 있는 평범한 샐러리맨”


▎서울고검 청사를 배경으로 선 정명호 검사. / 사진:김경록 기자
최성남 서울고검 송무부장(24기)은 “예전 같으면 고검 검사는 뒷전으로 물러난 사람 취급을 받기 일쑤였지만 법원 재판이 공판중심주의로 변하면서 고검 검사의 위상과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정 검사는 검사의 사명감을 끝까지 지키고 있는 ‘평생검사’의 표본”이라는 게 후배이면서 직급으로는 상사이기도 한 최 부장의 말이다.

서울고검은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 인사에서 고연차 검사들을 공판부에 투입했다. 공판검사 12명 중 연수원 20기 이상 고참이 6명이나 된다. 노련한 고참 검사들이 실무에 투입되자 곧바로 변화가 나타났다. 최근 5개월간 1심에서 전부 무죄가 선고된 사건 28건이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서울고검 공판검사들의 활약이 이룬 성과였다. 이 중 10명은 법정구속까지 됐다. 정 검사가 담당했던 친족강간 사건 역시 그중 하나다.

정 검사가 생각하는 검사는 ‘정의감 있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김웅 인천지검 검사(연수원 29기)가 쓴 베스트셀러 [검사내전]에서 김 검사는 한 선배 검사로부터 들은 말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자신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이라는 것. 즉 배가 어디로 가는지를 걱정하기보다는 자신이 맡은 철판을 꼭 물고 있는 것.’

정 검사 역시 35년 동안 묵묵하게 철판을 꼭 물고 있는 나사못 같은 존재로 남길 원하는 것 같았다. 두 달여간 재판정 안팎에서 네 차례 지켜본 그의 겉모습과 말투에는 그가 강조했던 매너가 배어 있었다. “제가 그려온 검사의 이미지는 ‘매너 좋은 신사’입니다. 복장도 반듯하고, 마음가짐도 바르며 늘 미소를 잃지 않는 그런 사람 말이죠.” 액션영화 [킹스맨](매슈 본 감독, 2015)에서 매너 있는 영국 신사 첩보원으로 그려진 콜린 퍼스의 명대사(“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를 빌리자면 “매너가 검사를 만든다”쯤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아무리 복장 자율화 시대라고 해도 항상 점잖고 품위 있는 복장을 갖추라고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정 검사는 후배 검사들에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도 자주 한다. “그야말로 모든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으로 공직 생활을 하면서 조그마한 일도 신중을 기하고 남으로부터 쓸데없는 혜택을 받지 말라는 뜻으로 새기자는 겁니다.”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는 나름의 방법도 제안했다. “검찰총장의 임기를 3~4년으로 늘리고 이를 헌법으로 보장한다면 정권에 따라 색깔을 달리한다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20년 10월이면 무려 37년간 입었던 검사복을 벗게 된다. 생일이 10월 12일이어서 정확히 2020년 10월 11일 자로 정년퇴임이 예정돼 있다. 퇴직한 후의 ‘인생 이모작’도 이미 계획을 세워뒀다. “보람 있는 사회봉사 활동을 많이 하려고요. 기회가 닿는다면 특히 어린 청소년을 대상으로 법률 봉사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 문병주 중앙일보 사회 부데스크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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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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