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영삼의 한자 키워드로 읽는 동양문화(7)] 미(美): 권력 테크놀로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의 감성 

부·권력·계층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린 존재 

하영삼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원시적 아름다움 美, 문학적 아름다움 詩, 기술적 아름다움 藝…세속적 이해관계 벗어나 세상 변화시키는 능력의 발아(發芽)이기도

▎아름다울 미(美)는 양(羊)과 대(大)로 이뤄진 글자다. 살찌고 큰(大) 양(羊)이 유용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고, 원시축제에서 양가죽을 덮어쓰고 아름답게 치장해 춤추는 모습이라는 해석도 있다. 대관령 양떼목장에서 어린이들이 즐겁게 뛰놀고 있다.
1. ‘아름다움’이란?

꽃이 폈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정원의 한구석을 수북하게 덮었고, 또 한쪽에서 수국이 드디어 꽃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장미는 한창이더니 선 붉은 꽃잎을 무수히 낙하시키고도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 전에는 모란과 작약이 화려한 자태를 뽐냈고, 철쭉·영산홍·동백·개나리·튤립·수선화·매화·목련도 폈었다. 이제 튤립과 수선화가 진 자리에서 백합이 한창이고, 조금 있으면 치자와 라일락 꽃이 짙은 향기를 발할 것이다. 모두 지난여름, 바닷가 한 모퉁이 작은 주택으로 이사하고 누리게 된 호사다.

꽃을 두고 아름답지 않다고 할 이가 있을까? 이름 없는 풀이라고 해도 도로 사이로, 시멘트 틈 사이로 자신의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잡초이기를 멈추고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꽃이 된다.

아름다움은 이렇게 부·권력·계층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전통적으로 지식인이나 기득권층에서 예술을 더 많이 향유하고 더 많이 소유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유희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미를 즐기는 인간’이란 뜻의 ‘호모 에스테티쿠스(homo aestheticus)’처럼 ‘아름다움’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미(美)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이는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을뿐더러 쉽지도 않다. 미에 관한 학문인 미학에서도 미에 대한 정의는 시대에 따라 다르고, 이론가에 따라, 때로는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게다가 사람들은 왜 아름다운지를 모르면서 아름다움을 숭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서양에서 말하는 ‘미학(aesthetics)’의 어원인 ‘아이스테시스(aisthesis)’는 ‘이성과는 다른 감각적인(sensible) 것’을 말한다. 하지만 미학에 대한 정의는 대부분 ‘감각적인 것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 감각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적인 관념이나 경험적 감각 아래에 깊숙이 깔려 있는 오래된 무의식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화 과정에서 축적된 우리의 의식 깊숙이 자리하는 느낌까지 담아내는 미를 정의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그러나 정의하기 어렵다고 해서 그 미적 표현이 진(眞)이나 선(善)에 비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는 감각 혁명을 통해서 별것 아닌 것의 반란을, 없느니만 못한 것으로 취급됐던 것이 지배적 인식의 지형을 뚫고 나와 인간의 인식 지도를 변경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호에서는 한자의 어원을 추적해 봄으로써, 동양의 고대사회에서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구현했는지, ‘미’ 인식이 어떻게 변화돼왔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2. 농경사회의 생명을 위한 찬사, 꽃


▎금문의 화(華)
꽃의 사전적 의미가 ‘종자식물의 번식기관’이듯, 꽃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다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피워낸다. 나비와 벌을 유혹해 수정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꽃과 꽃꼭지가 숭배의 대상인 시대도 있었다. 꽃이 단순히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만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자 지상 최고의 인간에 대한 숭배와 결합된 것은 정착농경사회에서 생존의 관건이었던 ‘곡식’과 ‘씨’에 대한 숭배와 결합하면서다. 한자에서 꽃이나 꽃꼭지를 뜻하는 화(華)·영(英)·제(帝) 등이 최고의 개념을 갖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화(中華)나 화하(華夏)에서처럼 지금은 ‘꽃’보다는 중국인들이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더 많이 쓰인다. 그렇지만 오른쪽 금문의 예시에서 보듯이 화(華)는 화사(華奢)하게 핀 꽃이 흐드러진 모습을 그렸으며, 이로부터 ‘꽃’이라는 의미가 나왔다. 강소(江蘇)성의 한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암각화를 보면 사람 얼굴을 한 꽃을 피운 그림이 등장하는데 이는 꽃이 그들의 조상이라는 꽃 토템을 극명하게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씨방이 부푼 모습을 그린 帝가 지고 지상의 천제(天帝)는 물론 황제(皇帝)를 지칭하게 된 것이나, 英(꽃부리 영)이 영웅(英雄)에서처럼 최고의 인간을 뜻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화(花)는 화(華)가 일반적인 ‘꽃’에서 중국인들의 숭배 대상이 돼 자신들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변하자 일반적인 꽃을 지칭할 목적으로 다시 만들어진 글자다. 따라서 화(華)·영(英)·제(帝) 등에서 볼 수 있듯 꽃은 농경사회에서 발아한 미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름다움의 원천으로 간주되지만, 꽃은 쉬 시들고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며, 그 종류도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미 일반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발전하지는 못 했다. 모란·매화 등 특정 꽃에 대한 언급은 많지만, 아름다움의 표상으로서 꽃 일반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모든 꽃을 그 종류에 상관없이 선호하지는 않는다. 미적인 것은 외양의 아름다움 그 자체만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인간의 가치 판단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떤 꽃은 독성이 있어서 어떤 꽃은 알레르기를 일으켜서 외면당하기도 하고, 또 어떤 꽃은 그 자태가 화려하지 않아서 주목받지 못 하기도 한다.

또 시대에 따라 특별히 사랑 받는 꽃도 있었다. 예컨대 중국 진(晉)나라 때는 국화, 당나라 때는 모란, 송나라 때는 연꽃이 선호됐다. 국화는 서리가 내려도 절개를 잃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모란은 그 화려한 자태 때문에, 그리고 불교가 숭상되면서 연꽃이 꽃 중의 꽃이 됐다. 연꽃은 진흙에서 자라났으나 순결하기 그지없는 하얀 꽃을 피우며, 물결이 아무리 유혹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굴곡지지도 않고 잔가지도 없이 꼿꼿하게 서 있고, 은은한 향기는 멀수록 더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특정 꽃에 대한 선호는 꽃에 대한 판단과 그 시대의 특정 이념이 녹아 있다.

그래서 우리가 미를 구분할 때는 아름다움 일반을 지칭하는 단어로서 원시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글자인 미(美), 그리고 문학적 아름다움을 논할 때는 시(詩)가, 그리고 기술적 아름다움을 논할 때는 예(藝)가 사용된다고 볼 수 있다.

3. 미(美)와 양(羊)


▎수국 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휴대폰 카메라 앞에서 저마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순수한 ‘미’를 말하기는 어렵다. 원시시대의 예술이나 한자 미(美)의 어원을 살폈을 때 아름다움에 대한 지각은 유용성에 입각한 인간의 생존과 안녕의 추구와 무관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단순히 경험적이고 현상적 차원의 지각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원시 공동체에서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신적인 힘에 대한 숭배도 미의식의 형성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한자인 미(美)는 양(羊)과 대(大)로 이뤄졌다. 그런데 아름다움과 양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예술의 지향점인 미(美)에도, 도덕의 지향점인 선(善)에도, 윤리의 지향점인 의(義)에도, 효도의 상징인 양(養)에도, 상서로움을 대표하는 길상(吉祥)에도 양(羊)이 그 구성요소로 들어 있다.

양은 인간이 가축화한 6대 가축 중에서도 가장 앞자리에 자리해 인간의 손에 가장 먼저 길들여져 인간을 위해 바쳐진 동물이었다. 원시수렵 시절, 양은 맛 좋은 고기에 훌륭한 단백질의 공급원이었을 뿐 아니라 인간이 추위를 이기고 동물과 구별되게 하는 ‘옷’까지 제공하는 더없이 유용한 동물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순하고, 군집(群集)생활을 해 인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존재였다.


▎경기도 양평군 팔당호 주변 연꽃·수생식물 정원인 세미원에서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당장 내일의 생존조차 담보하지 못 하던 원시수렵시절, 이러한 양은 인간에게 대단히 유용한 동물이었다. 이 때문에 황하 이북 지역을 살았던 하(夏)·상(商)·주(周) 등 고대 중국문명에서 양(羊)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했다. 본격적인 농경시대에 진입한 주(周)이전까지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수렵을 거쳐 목축과 원시적인 정착 농경을 위주로 하던 상(商)나라 때의 갑골문에는 양(羊)이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여러 가지 상징으로 등장한다.

양(羊)으로 구성된 한자들. 고대 중국에서는 산양(goat)과 면양(sheep)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양으로 통칭했다. 그러나 갑골문의 자형에 근거할 때, 양(羊)은 면양보다는 산양에 가깝다.

(1) 첫째, 토템으로서의 양이다. 초기 중국인들의 삶에 더없이 중요했던 양, 그들은 양을 숭배 대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양에 제단을 뜻하는 시(示)가 더해진 것이 ‘상서롭고’ ‘복’을 뜻하는 상(祥)이다. 또 강(羌)이나 강(姜)은 부족명인데, 양(羊)에 ‘사람’을 뜻하는 인(?)과 여(女)가 더해졌다. 여(女)는 모계사회를 반영했기에 초기 단계의 한자에서 사람을 대표하는 글자로 많이 등장한다. 여하튼 강(羌)이나 강(姜)은 갑골문에서도 상나라를 위협하는 서북쪽의 강력한 민족으로 등장하는데 양을 토템으로 삼았던 민족으로 보인다. 지금도 중국의 서부 사천성 등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이름이기도 하다.

(2) 둘째, 정의로운 신으로서의 양이다. 양이 토템으로 숭배됐기에 양은 분쟁을 해결해 주고, 정의의 심판을 내려줄 수 있는 동물로 인식됐다. 이를 반영한 글자가 선(善)과 상(詳)과 의(義) 등이다. 선(善)은 원래 선(?)으로 써, 양(羊)과 경(?)으로 구성됐는데 언(言)이 둘 결합해 만들어진 경(?)은 말의 분쟁과 다툼을 뜻한다. 그래서 선(?)은 다툼이나 분쟁이 일어나(?) 해결되지 않을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신성을 지닌 양(羊)에게 의지했던 고대 습속을 반영한다. 고대 중국에서 양은 정의의 신으로 등장하며, 정의의 양은 보통 ‘뿔을 하나 가진 양(一角羊)’으로 등장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해태 즉 해치라는 동물이다. 법(法)의 옛날 글자인 법(?)에는 해태를 뜻하는 치(?)가 들어 이를 반영했다. 또 상세하다는 뜻의 상(詳)도 신격을 지닌 해태(羊) 앞에서 구체적 진상을 상세하게 언급하다(言)는 뜻을 담았다. 정의의 의(義) 역시 양(羊)에 아(我)가 더해져서 정의롭다는 뜻을 지닌다.


▎양(羊)으로 구성된 한자들. 고대 중국에서는 산양(goat)과 면양(sheep)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양으로 통칭했다. 그러나 갑골문의 자형에 근거할 때, 양(羊)은 면양보다는 산양에 가깝다.
(3) 셋째, 음식으로서의 양이다. 양은 고기 중에서 최고의 고기로 잘 알려져 있다. 양(養)은 글자 그대로 양(羊)과 식(食)의 결합으로, 양이 주된 식량임을 말한다. 농경사회를 살았던 우리에게는 소고기가 최고이지만 유목민들에게는 양이 최고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양고기가 유행해 빠르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羔(새끼 양 고)는 양(羊)과 화(?)로 이뤄져 양을 불에 굽는 모습인데, ‘어린 양’이 주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美)가 더해진 글자가 ‘국’을 뜻하는 갱(羹)이다. 양고기로 끓인 수프가 최고의 맛난 음식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선(羨)은 선망(羨望)에서처럼 부러워하다는 뜻인데 양고기를 보면서 침을 흘리는 모습(?)을 담았다. 또 膳(반찬 선)에도 양(羊)이 들었는데, 양이 중요한 요리 대상이었음을 말해 준다. 귀한 고기는 귀한 이에 대한 대접이자 선물의 대상이 됐을 것이고, 이 때문에 선물(膳物)이라는 뜻까지 담겼다.

육고기는 부패하기 쉬워 생선처럼 언제나 신선함을 생명으로 삼는다. 냉장 시설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 때문에 양(羊)과 어(魚)가 결합한 선(鮮)은 신선과 선명함, 그리고 깨끗함의 상징이 됐다. 우리나라의 옛 이름 조선(朝鮮)은 이런 뜻을 반영했다. ‘해가 떠오르는 아침(朝)처럼 선명하고 아름답다(鮮)’는 뜻이다.

4. 원시시대 美(미): 유용성과 더 나은 삶 위한 주술적 축제가 어우러질 때

그렇다면 양(羊)과 대(大)로 이뤄진 미(美)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이에 대해 사람들은 두 가지 해석을 제공한다. 첫째는 살찌고 큰(大) 양(羊)이 유용했기 때문이라는 유용성에 근거한 해석이요, 둘째는 원시축제에서 볼 수 있듯 양가죽을 덮어쓰고 아름답게 치장해 춤추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이 나왔다는 해석이 있다.

갑골문과 금문의 형체에 비춰볼 때 양(羊)은 산양의 모습으로 뿔을 강조해 그렸다. 좀 더 원시적 의미에서 대(大)는 크다는 뜻 외에 앞을 보고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원적으로 양의 가죽을 쓰고 양의 뿔로 장식한 건장한 사냥꾼 혹은 투사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봤을 수도 있고, 양가죽을 쓰고서 춤을 추는 모습을 원시사회의 풍습과 연결시키면 사냥의 성공을 비는 주술 행위를 아름답다고 여겼을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양이 지니는 의미를 감안할 때 두 번째 해석이 첫 번째 해석보다 근원적 어원에 가깝다. 그러나 두 해석이 배치된다고는 할 수 없다. 당시의 사회에서 양고기와 양의 젖은 식량으로 쓰였고, 가죽과 털은 옷으로 쓰였으니, 아름다움의 근원이 유용성에 있다고 할 것이요, 양가죽을 쓰고 양 뿔로 장식한 사람은 아마도 부족에서 족장과 같은 중요한 인물이 주도하는 축제가 아름다움과 연결됐기 때문이다.

또한 족장과 같은 중요한 인물이 가진 힘이 아름답다고 여겨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시시대의 주술이나 축제가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유용한 것, 선한 것, 신성한 것이 다 같이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됐을 것이며, 인간에게 해로운 것은 추한 것으로 간주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美)에 대한 해석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최초의 어원사전 [설문해자]에서는 미(美)를 두고 감(甘)이라고 풀이했다. 감(甘)은 달다는 뜻인데, 이 시대에 이르면 ‘양가죽을 덮어쓴 사람’, 혹은 ‘큰 양’의 실용적 의미의 ‘아름다움’이 맛이라는 미각으로 옮겨 갔다.

즉 원시수렵시대 자신들의 생존을 담보해 줄 수 있었던 영웅을 반영한 미(美)가 농경사회의 정착과 발달을 거치면서 풍족한 식량혁명을 이뤘기에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식량의 양이 아니라 ‘맛’이라는 음식의 질이 향유의 대상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아름다움’의 대상은 당시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맛난 음식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식욕은 인간의 가장 원시적 욕망의 하나이다. 그러나 음식이 생존을 위한 대상에서 벗어난 지금, 생존을 위한 ‘빵’이 아름다움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5. 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가?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며 철학자·역사학자·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아름다움’의 관점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아름다움의 정의도 달랐고, 접근도 달랐다. 그리스 때는 살아 있는 신체를 통해 이상적인 미를 찾았고 영혼과 육체가 조화를 이룬 그것을 조각품으로 체현(體現)했다. 그러다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시대에 이르면 부분의 조립을 통해 자연을 표현하는 ‘이상적 미’, 시선을 통해 영혼을 표현하는 ‘정신적 미’, 실용성을 지닌 ‘유용한 미’, 각 부분의 ‘조화와 비례로서의 미’, 어디서든 빛날 수 있는 ‘광휘로서의 미’ 등 다양한 개념과 정의가 등장한다.

또 니체는 질서의 척도로 이해될 수 있는 평온한 조화를 뜻하는 ‘아폴론적 미’와 현상을 넘어선 혼란스럽고 유쾌한 ‘디오니소스적인 미’를 등장시켰다. 그리고 산업 혁명 이후 20세기 초반 속력을 찬미한 미래주의 시기에는 효율성의 상징인 기계가 아름답고 매력적인 존재로 변했고, 기계의 결정체라 할 자동차가 모든 아름다움의 대표로 자리 잡았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지금은 초연결성을 구현해 주는 ‘스마트함’이 모든 아름다움의 척도가 됐다. 그리고 어쩌면 미래사회에서 인공지능(AI)이 이 모든 것의 정점에 놓일지 모른다. 적어도 인간을 위협하지 않고 인간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종복으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요염함을 뜻하는 염(艶)은 풍(豊)과 색(色)으로 구성됐다. 생산과 다산이 미덕이었던 농경사회에서는 풍만한 여성이 ‘아름다움’의 상징이 됐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날씬함을 뜻하는 瘦(파리할 수)는 병(?)의 일종으로 인식됐다. 당나라 미인 양귀비도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키도 크지 않고 날씬하지 않은 퉁퉁한 여인 그 자체로 그려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미’가 시대에 따라서 변화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이며, 그래서 믿을 수 없는 것인가? 문명이 발달하면서 유용성이나 주술과 같은 생존을 척도로 삼기보다는 아름다움은 좀 더 고차원적인 관념의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미가 물질적인 대상의 형식 구조 속에 표현되는 자연의 객관적인 법칙”이라고 주장했고, 플라톤이나 헤겔의 경우는 미를 이데아의 현현이나 절대적 이념이 현상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봤다.

미(美)보다는 좀 더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 예술의 정신은 시(詩)로 표현된다. [시경]에 의하면 뜻이 나아가는 바가 바로 시(詩)인데, 뜻이 마음(心)에 머물게 되면 지(志)가 되고 뜻을 읊어 표현하면 시(詩)가 된다. 시(詩)는 원래 언(言)과 지(之)로 구성돼 말(言)의 나아감(之), 즉 말로 이뤄지는 예술을 의미했으나, 이후 그 구성이 언(言)과 시(寺)로 변하면서 말(言)을 법도에 따라서 관리하게 되면(寺) 시(詩)가 된다고 봤다. 따라서 시(詩)의 아름다움은 한편에선 자연의 법칙을 구현한 것에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뜻(진리)이 표현된 말은 아름답다는 뜻이 됐다.

서양의 ‘art’가 무엇인가를 만드는 기술이라는 뜻이듯이, 동양에서는 예(藝)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예(藝)의 어원은 ‘나무를 심다’는 뜻으로 농경사회의 생존환경을 반영했지만, 나무는 다 자란 나무가 아니라 묘목을 쥐고 있는 모습을 형상해 예술이 오래되고 화석화된 관습의 반복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했다.

미를 “감성에 의해 인식되는 최고의 것”으로 정의해 미가 학문으로서의 위상을 얻게 하는데 크게 공헌한 바움가르덴(Alexander G. Baumgarten, 1714~1762)조차도 미가 변화하는 감성에 의거한 것이기에 명확한 지식과는 반대로, 혼란스러운 지성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미적 판단은 혼란스러운 지성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는 잠재 능력의 발현이 아닐까? 우리는 꽃이 아름다워서 보는 것이지, 꽃이 주는 유용성 때문에 꽃을 아름답다고 여기지만은 않는다.

꽃이 반드시 인간에게 식량을 제공해 주고, 때로 미세먼지를 제거하고, 공기를 정화해 주기 때문에, 반드시 그 이유로 우리가 꽃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만은 아니다. 길가의 들꽃 때문에 우리가 순간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아름다움에 빠지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나 돈과 연결된 수많은 욕망과 이해관계를 벗어나 돈과 자본에 종속돼 있는 우리의 감각을 해방시켜 주는 순간이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칸트는 미를 “지식 대상이나 욕망 대상에 연결된 감각 형식에서 해방된 무관심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러한 세속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사물을 보고 느끼는 능력에서 세계를 변화시키고 창조하는 능력이 발아하는 것은 아닐까?

노자가 2500년 전에 “세상 온갖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사실 아름다움이 아니다. 세상 온갖 사람들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추함은 사실 추함이 아니다”고 말했듯이, 인간의 미감은 우리를 길들이는 온갖 권력의 테크놀로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의 씨앗을 담지(擔持)하고 있다.

※ 하영삼 -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세계 한자학회 상임이사. 부산대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 어원과 이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시대] [허신과 설문해자] [갑골학 일백 년] [한어문자학사] 등이 있고, [한국역대한자자전총서](16책) 등을 주편(主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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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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