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김해완의 쿠바탐험 | 부에나비스타, 아바나(7)] 세계 최고 쿠바 의료복지의 허와 실 

의사들이여, 세상을 ‘근치(根治)’하라 

김해완 작가
수준 높은 의술과 세계가 부러워하는 무상의료 구축…의사 처우 낮고 병원 의존도 높아 비효율성 갈수록 심화돼

▎의대를 겸한 아바나 중심의 깔릭스또 가르시아 병원 정문에는 체 게바라의 사진과 함께 그의 명언이 붙어 있다. “단 한 명의 사람 목숨이 이 땅에서 가장 부유한 인간의 재산보다 몇 만 배는 더 가치 있다.”
5년 전, 난생 처음 외국살이를 하러 가는 나에게 어머니는 선물을 주셨다. 돌로 만들어진 전기 찜질기였다. 이 주먹만한 돌멩이는 그 후로 몇 번이고 나를 구했다. 배탈이 나든 몸살감기에 걸리든, 아랫배부터 찜질하면 증상이 훨씬 완화되었다.

그러나 꼭 효과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찜질기를 아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살았던 곳은 병원비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미국, 그것도 뉴욕이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식코(Sicko)]에 나오는 에피소드처럼,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면 봉합 가격을 비교한 후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러니까 의료 보험도 없는 외국 유학생이 병원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픈 날에 홀로 침대에 누워서 찜질기를 사용하고 있노라면, 괜히 우울해졌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자가치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해하면서도, 돈 때문에 병원에 갈 수 없는 처지가 서글펐다. 이 작은 돌멩이에 내 건강을 의존해야 하다니 이 얼마나 초라한가!

이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었을까? 뉴욕 생활을 접고 아바나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쿠바에는 ‘병원비’라는 게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빈손으로 들어가서 빈손으로 나오는 곳이 바로 병원이다. 휘황찬란한 뉴욕에 비하면 아바나는 초라한 도시일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의료 수준은 이곳이 월등한 것이다. 아디오스, 전기 찜질기. 이제 내가 이 돌멩이에 의지할 일은 없으리라!

이상 실현한 공공의료의 지상낙원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는 깔릭스또 가르시아 병원 뒷편. 아바나 시내에서 구급차의 출동은 드물다. 마을 단위의 종합클리닉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쿠바, ‘국경없는의사회’나 품을 법한 소망을 국가 단위에서 실현시킨 거의 유일한 나라다. 쿠바 혁명은 의료의 개념을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 탈바꿈시켰고, 이 원칙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이 의료철학은 수많은 사람을 매료시켰다. 다큐멘터리 [식코]의 말미에서 무어 감독은 배를 타고 몰래 쿠바로 건너간다. 돈 때문에 병원 치료를 포기한 미국 환자들과 함께였다. 이 발칙한 계획 때문에 그는 미국 정부와 소송에 시달려야 했지만, 덕분에 전 세계인은 똑똑히 보게 되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쿠바는 미국의 각종 방해 공작 속에서도 ‘의학 인본주의’의 불씨를 지켜냈다는 것을.

누구는 의심할 것이다. 이는 좌파(?) 감독의 의도적인 ‘프로파간다’ 아닌가! 그러나 아바나에서 9개월 동안 살면서 직접 병원을 이용해 본 사람으로서 말하겠다. “이곳의 의료 시스템은 환상적이다!”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 병원은 낡디낡았고, 의약품은 늘 부족하며, 생활 습관도 웰빙과 거리가 먼 곳이 바로 쿠바다. 그러나 이처럼 불리한 조건 속에서 의사들과 환자들은 제1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전문적인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 대조적인 풍경이 너무 낯선 나머지, 마치 ‘환상(fantasy)’처럼 보이는 것이다.

잠시 이 이상한 나라로 의료 투어를 떠나 보자. 쿠바에서 가장 기본적인 진료가 이루어지는 단위는 동네 병원이 아니다. 바로 가정의다. 이들은 집집마다 직접 방문해 병을 예방하고, 체질 개선에 조언을 주며, 정기적으로 당국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가정의의 간단한 처방으로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 경우, 환자는 각 마을마다 있는 종합클리닉(policlínico)으로 보내진다. 이 둘은 무니시피오(municipio: 한국으로 치면 행정구역 상 면이나 군에 해당하는 단위) 병원에 속해 있는데, 쿠바의 보건부에서 근무하는 박사 에두아르도 사세아(Eduardo Zacea)의 논문에 의하면 이 첫 번째 단계에서 80%의 환자가 치료된다고 한다.

만약 병이 이미 진행된 후라면 어떻게 할까? 환자는 지방 병원으로 옮겨지게 된다. 지방 병원의 임무는 치료를 진행하면서 합병증의 발생을 막는 것이다. 만약 상황이 더 악화한다면, 환자는 국립 병원으로 옮겨져 전문의가 지휘하는 진료를 받는다. 환자들 중 5%가 국립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언제 생길지 모르는 응급 상황을 위해서 국립 병원의 20~30%의 병실은 늘 비워져 있다고 한다. 이처럼 크고 작은 병원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총체적인 의료시스템을 이룬다.

여기서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첫째는 공공성이다. 어떻게 병원들 사이에 이런 유기적인 협력이 가능한 것일까? 국가가 의료 통제권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는 전체 의료비의 96%가 국가 세금에서 지출되고 있을 정도로 절대 다수의 병원이 국가 소유다. 그래서 이곳의 의료시스템은 SNS(Sistema Nacional de Salud), 즉 국민 건강 시스템이라고 불린다.

둘째는 예방 의학이다. 시약품 하나, 환자복 하나, 의사 한 명이 귀한 쿠바에서는 치료보다 예방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 처음부터 발병의 싹을 잘라서 치료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것이다. 쿠바 의학이 백신 개발에서 특히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로, 쿠바 의료시스템의 꽃은 가장 많은 전문의가 모여 있는 종합병원이 아니라,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가정의와 종합클리닉이다. 이것은 가능한 ‘큰 병원’에서 ‘비싼 치료’를 받아야 좋다는 우리네 상식과 배치된다. 역시, ‘환상적인’ 의료 국가가 아닐 수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의약품이 귀한 쿠바에서는 자연 환경을 치료에 활용하는 대안 의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바나의 동쪽에 있는 삐날데리오(Pinal de Rio) 지방의 한 의학 연구소에 있는 피부병 치료용 목욕탕. 진흙과 햇빛, 미네랄이 풍부한 물을 이용한 치료법을 연구하는 곳이다.
과연 이 색다른 시도는 실제로 어떤 결과를 냈을까? 쿠바의 의료시스템이 이룩한 성과는 세계보건기구(WHO)도 인정할 만큼 뛰어나다. 이 나라의 건강 지표는 선진국과 거의 차이 나지 않는다. 쿠바의 영아사망률은 지난 40년 간 4.6%에서 0.7%로 떨어졌고, 기대수명은 77세에 육박한다. 이 눈에 띄는 진전은 매일 800명에서 1000명의 환자들이 부담 없이 드나드는 종합클리닉 덕분이다. 몇 달 전, 내가 가스통에 성냥으로 부주의하게 불을 붙이다가 화상을 입고 병원에 뛰어갔을 때, 의사가 내게 요구했던 것은 신분증 하나뿐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에 역시 공짜는 없는 법이다. 이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에 상관없이 통용되는 진리다. 내가 병원에 들어가서 돈 한푼 내지 않고 그대로 걸어 나오는 동안, 대가는 다른 형태로 지불되고 있다. 바로 비효율성이다. 우선 환자는 치료를 받기까지 기약 없는 기다림을 감수해야 한다. 비싼 돈을 지불하는 민영 병원에서도 고작 10분 상담을 받으려고 두 시간씩이나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잦은데, 일반 병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런 만성적인 지연은 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환자에게 큰 걸림돌이 된다. 가령, 노인은 무릎 관절염의 통증이 심해도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지 않는다. 단 30분의 치료를 위해서 하루를 통째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매번 그를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기다려 주고, 보살펴 준단 말인가? 병원비는 무료인 대신 시간이라는 자원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하물며 약국을 이용하는 일도 간단치 않다. 약국에 약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들은 필요한 약을 발견할 때까지 여러 약국을 돌아다닌다.

이런 ‘체증’은 오늘날 쿠바가 맞닥뜨린 현실의 벽을 반영한다. 문제의 본질은 이것이다. 시스템은 훌륭하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할 역량이 부족한 것이다.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성능 좋은 차를 갖고도 정작 가솔린이 없어서 멀리까지 끌고 갈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 시스템을 운전하는 ‘가솔린’은 바로 돈이다. 돈이 부족하다. 쿠바가 내부적으론 여전히 고집스럽게 사회주의 원칙을 지키고 있을지라도, 소련의 동구권 시장이 사라진 상황인 만큼 세계 무역시장에 의존해서 살아야 한다. 특히나 의료는 수입이 절실한 영역이다. 쿠바에는 필수 의약품과 최신 의료 기기를 자급할 생산 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바가 세계 시장에 수출할 수 있는 품목은 값싼 설탕뿐이고, 미국의 경제 봉쇄 때문에 운신의 폭도 몹시 좁다. 쿠바의 무역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데이터베이스 회사인 Statista에 의하면 쿠바의 경상수지는 2017년 기준 80억 미국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낙후돼 가는 의료 인프라도 대체하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쿠바는 돈으로 충당할 수 없는 부문을 의료 인력으로 대체해 왔다. 쿠바의 높은 의료 교육 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유명하다. 19세기에 황열병이 모기에 의해 전염된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카를로스 핀라이(Carlos Finlay)라는 쿠바 의사였고, 20세기에 홀연히 나타나 쿠바에 혁명을 일으킨 체 게바라도 의사였다. 1959년 혁명 이후, 봉사 정신을 철저하게 교육받은 수많은 젊은 의사가 쿠바의 시골로 파견되었다. 이들은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면 단 열 가구뿐이어도 종합클리닉을 세웠다. 부족한 자본을 ‘사회관계 자본’으로 극복한 모범적인 사례인 셈이다.

그러나 의료 인력도 새로운 위기를 맞이했다. 소련의 지원이 끊긴 1990년대부터 쿠바 정부가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수많은 의사룰 외국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국내에 부족해진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쿠바의 의대들은 입학 문턱을 낮췄고, 그 부작용으로 교육의 질이 전체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게다가 과잉 진료라는 예기치 못한 부대비용도 생겼다. 병원 문턱이 낮아지자 사람들은 사소한 문제에도 의사를 찾고, 처방에 의존하는 습관이 생겼다. 또한 약값이 싸다는 이유로 약을 과하게 복용하고, 그 결과 몸에 내성이 생겼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의료 인력이 아무리 많이 배출돼도 극복될 수 없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걸까?

근치(根治)와 포기 사이에서


▎아꾸뿐뚜라(Acupuntura)’라고 쓰인 연구실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혈자리 도표가 들어 있다.
세상 어디나 그렇듯, 쿠바에도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다. 그러므로 이곳을 ‘의료복지 천국’이라거나 ‘공공의료 실패국’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쿠바는 1959년 혁명이 탄생시킨 의료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있을 뿐이다.

이 철학의 창시자는 물론 체 게바라다. 아르헨티나에서 총을 들고 찾아온 이 젊은 의사는 의료의 개념을 뒤바꿔 놓았다. 체에게 의사란 ‘병원’에 앉아서 제 발로 찾아온 ‘환자’를 상담하는 전문직이 아니었다. 의사가 싸워야 할 상대는 병(病)이다. 그리고 병은 언제나 사회적이다. 개개인이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체질은 다 다르지만, 이것이 병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인간 집단이 형성해 온 ‘라이프스타일’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병은 환자의 삶 속에서 자라나며, 개인의 삶은 사회라는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 엮이고 또 풀리는 그물코다. 이는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가 속해 있는 사회 전체를 ‘치료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혁명이다. 의사는 병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 사람을 병들게 하는 사회와, 사회의 병든 구조를 내면에서 재생산하는 개인의 습속을 모두 바꿔야 한다.

쿠바 식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예방 의학이고,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병의 뿌리를 뽑고 체질을 바꾸는 ‘근치(根治)’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예방이든 근치든, 우리는 의학 용어를 개인적인 규모에 적용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체는 의학의 지평선을 병원 너머로 끝없이 확장시켰다. 1960년에 의대생들에게 한 연설을 보면, 체가 근치라는 개념을 얼마나 넓은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앞으로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왜 의사가 또한 농부가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그가 새로운 영양식품을 파종하는 법을 배우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농업과 가능성의 측면에서 볼 때 지구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 중 하나일지 모르는 작고 가난한 쿠바에서, 새 식품을 소비하려는 열정과 영양 구조를 다양화하려는 열망의 씨앗을 사람들 사이에 심는 법을 그가 어떻게 배우는지 볼 것입니다.”(1960년 8월 19일, 의대생과 건강 근무자들에게 한 연설 중에서)

근대의학이라는 구멍


▎아바나의 한 동네 약국에서 사람들이 약을 받으려고 줄 서 있다. 약이 부족하지만 정부 보조금 덕분에 평균적인 약값이 한화로 200원도 채 안 된다.
식생활은 건강의 기본이다. 이 사실에서 출발한 체는 의사에게 새로운 영양식품의 개발, 생산, 분배의 임무를 지운다. 여기에는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데 방해가 되는 제도가 있으면 바꾸라는 뜻까지 함축돼 있다. 의사가 농부도 되고, 상인도 되고, 행정관도 돼야 하는 판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사회 이슈가 건강과 관련되어 있기에, 쿠바 의사들은 시도 때도 없이 ‘해결사’이자 ‘노동 제공자’로서 콜을 받는다.

그러나 근치는 원칙으로서는 이상적이지만 실제로는 실현 불가능한 과업이다. 그 어떤 인간도 생로병사를 피해갈 수 없듯이, 그 어떤 사회도 완전한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 체도 이 어려움을 알고 있었기에 의사라는 직업을 “창조자의 일”에 비유했다. 그러나 말은 쉽고 실행은 어렵다. 식민지의 유산, 왜곡된 경제 구조, 미국의 경제 봉쇄와 같은 장애물이 산적해 있는 쿠바에서, 근치는커녕 건강 상태를 현상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처럼 목표는 요원한데 노동 강도가 세다면 제 아무리 진정성과 열정 충만한 의사라도 지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쿠바의 젊은 세대 사이에는 의사지망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치료하려는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는 성찰 없이 기존 시스템에 순응하는 관료주의가 자리하게 된다. ‘포기’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쿠바 의료시스템의 진정한 위기는 바로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변하는데, 체의 초창기 정신을 되살릴 계기는 부재하다는 것. 아바나를 벗어나서 시골로 갈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체는 “농촌에 가서 농부들에게 배우라”고 의사들에게 명령했지만, 그의 철학은 농촌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이런 시도와 실패를 오롯이 쿠바의 탓으로만 돌린다면 이는 공정한 판단이 아닐 것이다. 쿠바의 한계는 근대의학의 한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쿠바 의료시스템의 문제는 가난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 혹은 국가가 의료 사업을 독점하면서 생기는 비효율성 때문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가난과 비효율성은 근대의 진짜 얼굴이다.

근대의 민낯은 뉴욕, 런던, 서울에 없다. 아바나, 마닐라(필리핀), 포르토프랭스(아이티)에 있다. 지난 500년 동안 제1세계는 제3세계의 자원을 값싸게 이용함으로써 오늘날 근대적인 삶의 양식을 구축해 왔고, 제3세계도 ‘발전하기만’ 한다면 이 굴레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선전해 왔다.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날 제3세계 도시의 기본 양식은 이미 근대적으로 세팅되어 있다. 단지 이들에게는 이 양식을 효율적으로 굴리는 데 필요한 자원을 값싸게 끌어올 제4세계, 제5세계가 없을 뿐이다. 즉, 제3세계는 ‘아직’ 발전하지 못해서 제1세계처럼 살 수 없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희생양과 가난의 재생산을 필요로 하는 근대의 구조적인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근대 의학에서도 똑같은 패러독스가 제기된다. 기술 자체만 보면 근대 의학은 분명 발전했다. 그러나 이 발전도 역시 수많은 자원을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다. 너무 비싸다는 소리다. 그래서 근대 의학은 그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지역에서 개인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미국 의료와 쿠바 의료는 근대 의학의 이런 구멍들이다. 이 둘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의학을 훌륭하게 진전시켰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에 종속된 의학은 아무리 발전한다 한들 생명을 구할 수 없다. 개인이나 국가가 돈이 없다면 최신 의약품이 등장해도 그림의 떡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무료로 제공하는 의학 서비스 역시 생명을 보호할 수 없다.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 서비스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만들고, 국가가 의료 자원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을 경우 다른 대안 없이 순식간에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체가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새로운 쿠바를 꿈꿨을 때, 그 꿈의 본질은 역시 근대화였다. 저들은 제1세계와 같은 발전을 이룩하되, 그들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근대화된 쿠바에서 사람들이 더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신선한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른다. 체의 꿈이 진정 ‘근치’였다면, 그 꿈은 제 1세계 반열에 끼는 데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양식을 다시 고민하는 데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먼 병원보다 옆의 찜질기가 낫다

현재 나의 전기 찜질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의료복지 천국인 이곳에서 그 쓸모를 다하고 구석에 처박혀 있을까? 아니다. 애초의 기대는 철저하게 빗나갔다. 이곳에서도 찜질기는 제 역할을 다하느라 바쁘다. 두통, 복통, 생리통, 몸살감기가 닥칠 때마다 이 돌멩이는 든든한 건강 지킴이 역할을 한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찜질기를 함께 돌려쓰고 있다. 평생 찜질기를 본 적 없는 아바네로들은 이것을 ‘마법의 돌’이라고 부른다. 이런 작은 기계 하나만 있으면 병원 갈 일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며 부러운 표정도 짓는다.

어쩌면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이런 작은 찜질기인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는 수단들 말이다. 물론 병이 깊어지면 의사는 꼭 필요하겠지만, 삶의 길목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자잘한 질병질환을 누구도 완전히 피할 수 없다. 누구나 아프고, 누구나 죽는 건 자연의 이치다. 다만, 이런 숙명적인 고통을 긍정하고 생명의 한계를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내 몸의 주인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삶의 길은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의사도 해줄 수 없는 ‘근치’는 환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갈 수 없는 미국에서든, 또 시간이 없어서 병원에 갈 수 없는 쿠바에서든 진정한 건강을 기원했던 체의 꿈은 살아남을 것이다.

※ 김해완 - 1993년 생. 십대에 중졸백수를 자처했으나 지금은 평범한 이십대 청년백수다.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둔 후 남산강학원에서 5년 동안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읽고, 쓰고, 같이 사는 법을 익혔다. 2014년 초부터 미국 뉴욕에 떨어져 좌충우돌 여러 나라의 청년과 함께 생활한 후 2017년 9월부터는 쿠바 아바나에 정착해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른 10대의 탄생] [리좀, 나의 삶 나의 글]이 있다.

201807호 (2018.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