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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사랑학 개론(8)] 문학에 담긴 사랑의 ABC-에우리페데스의 '메데이아' 

최악의 ‘악녀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그리스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서양 최초의 페미니즘 작품…작가인 에우리피데스는 보편성을 바탕으로 약자들 편에 선 사람

▎프레데릭 샌디스 (1829~1904)가 그린 메데이아(1866~1868년께 작품). [메데니아]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 사진:구글문화원
매 분마다 새로운 노래가 나온다는 주장이 있다. 천문학적인 수치로 쏟아지는 대부분의 노래는 사랑을 주제로 삼는다. 최소한 50~60%, 사실상 99%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랑 노래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곡은 에디트 피아프(1915~1963)가 작사하고 노래한 ‘사랑의 찬가’(1949)다. 가사는 이렇다.

“푸른 하늘이 우리 위로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땅이 꺼질 수도 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온 세상을 무시한다
사랑이 내 여러 아침에 흘러 넘치는 한
내 몸이 네 손 아래에서 떨리는 한
이런저런 문제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 사랑이여, 네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나는 세상 끝까지 갈 것이다
머리를 금발로 물들일 것이다
네가 요구한다면
달을 따러 갈 것이다


거금을 훔치러 갈 것이다
네가 요구한다면
내 조국을 부인할 것이다
내 친구들을 부인할 것이다
네가 요구한다면
사람들이 나를 비웃어도 된다
나는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네가 요구한다면
내 조국을 부인할 것이다
내 친구들을 부인할 것이다
네가 요구한다면
사람들이 나를 비웃어도 된다
나는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네가 요구한다면
만약 어느 날 삶이 내게서 너를 빼앗아 가도
네가 죽고 네가 나로부터 멀리 있다고 해도
별로 중요하지 않아,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왜나면 나도 죽을 것이기 때문이지
우리는 영원을 우리 몫으로 갖게 될 것이다
모든 영원함의 푸르름 속에서
하늘 안에서는 문제가 더 이상 없다
내 사랑이여, 너는 우리가 사랑한다고 믿는가
하느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하신다”


어떤 사람은 다소 섬뜩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 노래다. ‘사랑의 찬가’를 영어로 번안한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If You Love Me)’(1954년)에서는 원래 가사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 ‘조국과 우정까지 부인할 수 있다’는 대목은 삭제됐다.

서구 문화를 낳은 정경(Canon) 중 하나


▎귀스타브 모로(1826~1898)가 그린 [이아손과 메데이아](1865). / 사진:아트리뉴얼센터(ARC
사랑하는 남자가 죽으면 따라 죽겠다는 ‘사랑의 찬가’의 여주인공이 만약 배신을 당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시름시름 앓으며 한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처절하게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 [메데이아]의 주인공 메데이아가 그런 경우다. [메데이아]는 아이스킬로스(기원전 524~456), 소포클레스(기원전 496년께~406)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인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4 혹은 486년께~406년께)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서구 문화를 낳은 정경(正經·Canon) 중 하나다. 첫 공연은 431년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 때였다. 3등을 했다. 아마도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메데이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극장에 모인 1만7000명에 달하는 관객은 [메데이아]의 주인공인 메데이아와 이아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춘향이나 장희빈, 장녹수를 잘 아는 것처럼. 그렇기에 새로운 작품의 재해석이 신통치 않으면 외면당하기 일쑤. 그리스 신화에서 메데이아의 아들들은 메데이아가 도망친 다음 코린토스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는 두 아들을 제 손으로 죽인다.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메데이아의 줄거리는 이렇다. 바람난 남편의 배신에 분격한 메데이아가 복수를 위해 남편 이아손의 새 아내와 새 장인을 죽이고, 아들 둘을 죽인다는 이야기다. 이아손의 수호신은 그리스 신화 최고의 여신 헤라, 제우스의 배우자다. 헤라는 이아손을 돕기 위해 메데이아가 이아손과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콜키스의 공주인 메데이아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손녀다. 마법사인 메데이아에게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다. 모든 신화 속 영웅이 그렇듯, 이아손은 일련의 ‘미션 임파서블’을 성공시켜야 한다. 영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다. 그중 대표적인 게 왕권과 태양을 상징하는 황금양모(Golden Fleece)를 얻는 것이다. 이아손을 돕기 위해 메데이아는 가족을 버린다. 친동생을 죽이고 아버지와 조국을 배반한다. 호동왕자를 위해 자명고를 찢어버린 낙랑공주가 연상된다. ‘사랑의 찬가’의 노랫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때가 있다.

가장 많이 연극·영화로 만들어진 그리스 비극


▎장프랑수아 드 트로이(1679~1752)가 그린 [메데이아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이아손](1742). / 사진:내셔널갤러리
메데이아, 이아손 커플은 코린토스에 정착해 행복하게 산다. 아들 둘을 낳았다. 남편 이아손의 ‘출세주의’ 본능이 화를 낳았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와 자식들을 버리고 코린토스의 공주 크레우사와 결혼하려고 한다. 이아손은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자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준 메데이아를 배신한 것이다. 메데이아 앞에 나타난 이아손은 자신이 크레우사 공주와 결혼해야 아들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 같지 않은 말을 늘어 놓는다. 때가 되면 두 가정을 합치고 메데이아를 첩으로 삼겠단다. 크레우사의 아버지 크레온 왕이 나타나 메데이아에게 아들들과 함께 코린토스를 떠나라고 명령한다. 딱 하루를 준다. 메데이아는 하루라는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메데이아는 상심과 분노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여러 가지 옵션이 있다. 자살할 수도 있다. 이아손과 크레우사와 크레온을 죽이고 두 아들과 도망갈 수도 있다. 메데이아는 결국 크레우사와 크레온뿐만 아니라 자식들을 죽이기로 결정한다. 모성애 때문에 잠시 갈등하지만, 극단적인 복수를 선택한다. 남편을 살리고 자식들을 죽이기로 한 배경에는, 우연히 메데이아를 보러 온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가 있다. 메데이아의 오랜 친구인 아이게우스는 자식이 없어 고통스러워한다. 메데이아는 자식이 없는 고통을 이아손에게 선물하기로 결심한다. 마법사인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에게 아이를 얻을 수 있는 비방을 주는 대신, 아이게우스는 안식처를 보장한다. 서로 윈윈이다.

집안의 가보로 내려오는 가운과 왕관에 독을 묻혀 크레우사에게 선물로 가장해 보낸다. 새 신부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딸을 부둥켜안은 크레온 또한 고통스럽게 죽는다. 복수에 성공한 메데이아는 할아버지 헬리오스가 보낸, 날개 달린 용들이 끄는 전차를 타고 아테네로 떠난다. 두 아들의 시신을 안은 모습을 망연자실한 이아손에게 보여주고 나서. 메데이아는 이브, 트로이의 헬렌, 살로메, 성모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와 더불어 서양 문명사, 문학사의 의식적, 무의식적 여성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메데이아는 최악의 악녀다. 그럼에도 에우리피데스는 관객·독자들이 메데이아와 공감하게 만든다.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재주 덕분일 것이다. 어쩌면 메데아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주인공에게 약하고 관대하다. 가상의 주인공의 허물을 눈감아주는 것처럼, 정치 무대의 주인공들인 지도자들의 부도덕성 또한 용인되는 경우가 많다.

관객들이 무자비한 보복을 펼친 메데이아와 공감하게 만들려면, 또 다른 편견의 벽을 넘어야 했다. 메데이아의 고향 콜키스는 흑해 지역에 있다. 지금은 그리스와 ‘같은 동네’이지만,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콜키스는 세계의 끝이었다. 그리스인들에게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야만인이었다. 그리스인들에게 그리스는 법과 질서의 세계, 그리스 밖은 무질서의 세계였다. 비평가들은 [메데이아]는 ‘시원적’ 페미니즘 작품으로 인정한다. [메데이아]는 20~21세기에 가장 많이 연극·영화로 만들어진 그리스 비극이다. [메데이아]는 미국에서 연극·뮤지컬 분야 최고의 상인 토니상(Tony Awards)을 3번(1948, 1982, 1994)이나 받았다. 페미니즘 운동의 발전과 [메데이아]의 메시지가 맞아떨어졌다. 이런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메데이아는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인 사회의 희생자다. 메데이아는 모든 여성을 대표해서 여성에게 가해진 남성의 잘못을 보복한 것이다. 메데이아는 능력이 남성 영웅과 대등하다. 지적이다. 남을 조종하는데 능하다. 그는 겉으로 드러난 혹은 감춰진 인간의 약점과 욕망을 파고든다. 메데이아는 서양 문화가 우리나라 문화와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흔히 우리 문화를 한(恨)의 문화라고 한다. 한(恨)은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다. 한풀이(“한을 푸는 일”)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 한은 뭔가 승화하고 삭혀야 할 감정의 문제다. 서양 문화에는 보복이 곧 한풀이라는 것을 [메데이아]가 예시한다.

[메데이아]는 여러 의문을 제기한다. 그중 하나는 ‘자식이란 무엇인가’이다. 자식은 사랑의 결실이다. 하지만 사랑이 사라지면, 자식은 찬밥 신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아손도 메데이아도 자식을 버렸다. 아이들은 아무런 죄 없이 죽어가야 했다. 자식은 내가 낳았으니 내 소유일까. 내 소유니 아무렇게나 해도 될까. 심지어 죽여도 될까.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이기도 하다. 보복도 정의의 한 요소이긴 하지만, 적절한 보복의 테두리는 무엇일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지만, ‘백배 천재로 갚는 것’도 정의일까.

마키아벨리와 비슷한 작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849~1917)가 그린 [이아손과 메데이아](1907). / 사진:jwwaterhouse.com
연극사에서 에우리피데스가 수행한 역할은, 어쩌면 도덕과 정치를 분리하며 현실주의를 내세운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와 비슷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1513)에서 당위의 정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정치를 이론화했다. 에우리피데스 또한 있는 그대로의 세상,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보여준다. 에우리피데스의 출생지는 살라미스다. 그가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 당일에 태어났다는 전설도 있다. 살라미스 해전은 그리스 함대가 페르시아 함대를 살라미스 해협에서 맞아 격파한 전투다. 이 해전은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0~449)에서 그리스가 승리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머지않아 그리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에 휩싸인다. 이 전쟁은 “아테네 주도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주도의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결국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밀린 전쟁이다. 에우리피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결말을 못 보고 별세했다.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두 전쟁 사이의 그리스, 아테네는 가장 창의적인 시대를 구가했다. 얄궂은 일이다. 그 시대 그리스 사람들은 싸우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달했다. 기원전 408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23년차였을 때 에우리피데스는 마케도니아의 아르켈라오스의 초청을 받아 아테네를 떠난다. 아마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아테네, 그리스에 대한 실망이 원인이었겠지만, 그가 마케도니아에는 가본 적도 없다는 설도 있다. 에우리피데스는 회의주의였을까 아니면 ‘확신주의자’였을까. 그는 신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찬 인물이었을까. 그는 신성모독죄로 고발되기도 했다. 그는 서양 최초의 페미니즘 작품을 썼지만, ‘여성을 혐오한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결국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메데이아]와 같은 작품을 독자가 직접 읽어보고 직접 판단해야 한다. 에우리피데스가 쓴 작품은 92편이다. 어떤 20세기 추산에 따르면 67편이다. 그 중 남아 있는 것은 18편 혹은 19편이다. [레소스]가 다른 에우리피데스 작품과 스타일이 다르다는 주장 때문이다.

가장 비극적인 시인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가 그린 [자기 자식들을 막 죽이려는 참인 메데이아](1862). / 사진:요크 프로젝트
위대한 극작가, ‘고대의 셰익스피어’라고도 할 수 있는 그에 대해 확실하게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설과 어머니가 시장에서 약초를 팔 정도로 빈한한 가문 출신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그는 두 번 결혼했는데 두 번 다 결혼생활이 비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은둔자의 삶을 선택했는데 해안가에 있는 동굴에서 홀로 살았다는 주장도 있다. 에우리피데스는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께~399),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기원전 428년께~347년께)과 비슷한 시대를 살면서 고민했다. 그들의 시대는 공포, 비관, 회의, 혼란의 시대였다. ‘물론 인류 역사에서 그렇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풍이 자신이 제시한 드라마의 원칙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에 에우리피데스를 좀 못마땅하게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에우리피데스의 위대함을 부인할 수 없었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리피데스를 “가장 비극적인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에우리피데스는 아테네 사회를 비판했고 아테네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아마도 상당수 한국 독자들에게도 [메데이아]는 불편한 작품으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 [메데이아]는 1세기 로마에서 재발견됐고 16세기 유럽에서 재발견됐다. [메데이아]가 끊임 없이 재발견되고 부활하는 이유는 에우리피데스가 항상 여성을 포함해 사회적 약자에 섰기 때문이다. 그는 보편성을 바탕으로 약자들 편에 섰다. [메데이아]는 부정의한, 불공평한 사회나 국가 체제의 정의를 위해 어느 정도까지 개인적 복수가 가능한가를 묻는 작품이다.

-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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