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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숲의 눈으로 본 세계 

살아 있는 것들은 생각한다 

김기흥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말(言)은 소통의 다양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해… 아마존 부족에게서 자연과 관계 맺는 새 지평 찾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차이점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다. 마치 백인이 유색인종과 조우한 뒤에 백인 정체성을 확립한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특히 언어를 사용해 외부세계를 표현하기 때문에 ‘자연’은 ‘나’와 확연하게 분리된 객체로 느껴진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오직 ‘생각하는 나’만이 실재한다”고 선언한 것은 우리 인간의 사고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최근 인류학은 인간의 시선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캐나다 인류학자인 에두아르도 콘은 1996년부터 4년간 에콰도르 동부 아마존강 상류의 아빌라 마을에서 루나족(族)과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 연구를 했다. 콘은 루나족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전혀 다른 관계방식을 찾아냈다. 루나족은 아마존 숲에 살고 있는 멧돼지와 재규어 심지어 숲의 정령의 시선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며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콘이 책에서 보여주는 숲의 모습은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편견을 완전히 전복시킨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만이 언어라는 기호를 사용해서 사고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콘의 설명은 전혀다르다. 개미, 양털원숭이, 멧돼지, 재규어 등의 비(非)인간도 자체적인 시각으로 생각하며 우리를 바라본다. 즉, 생각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콘은 주장한다.

숲도 생각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간과 같이 언어적 상징체계를 이용해서 소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어 없이도 소통하고 사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필자는 덩치가 큰 골든 리트리버와 함께 산다. 아침이 밝으면 이 녀석은 침대 옆에 와서 필자를 깨우곤 한다. 그리고 묘한 표정과 눈빛을 보낸다. 배고프니 빨리 일어나서 밥을 달라는 것이다. 필자가 이 녀석의 기호를 읽고, 이 녀석 역시 필자의 행동을 제 나름의 기호로 이해한 것이다.

저자가 루나족과 동고동락하며 찾은 것도 바로 ‘언어를 넘어서는 기호작용’이다. 미국의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는 기호를 세 가지 형태로 나눴다. 우선 사물과의 유사성에 기초한 ‘도상(아이콘)’과 사물과 상호영향 관계에 있는 기호인 ‘지표(인덱스)’가 있다. 지표는 도상처럼 실제 사물을 생긴 대로 묘사하지는 않아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빨갛게 물든 낙엽이 가을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을이 없다면, 낙엽도 없다.

그리고 실제 사물과 분리돼 해석만으로 이뤄진 기호인 언어가 있다. 한국어에서 가을이 ‘가을’로 불린다고 한들, 자연현상인 가을과 한국어 ‘가을’은 필연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저 우리가 그렇게 부를 뿐이다. 개가 언어를 사용할 수 없어도 인간과 소통이 가능한 까닭은 바로 아이콘과 인덱스를 활용해 기호작용을 한다는 데 있다.

인간의 시각만으로는 온실가스와 북극의 빙하, 북극곰, 대도시의 빈민들, 심지어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까지 다양한 비인간과의 관계를 해결할 수 없다. 아무리 우수한 과학기술이나 정치적 합의라도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서 창궐한 에볼라 바이러스가 그렇다. 사람들은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산림자원을 개발하는 일이 무척 ‘합리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산림훼손의 결과 사람들은 에볼라를 옮기는 박쥐와 접촉하면서 에볼라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합리성의 비합리적 결과다.

인간중심의 시선으로는 이 모든 복잡한 관계를 예측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저자가 제안한 인간과 비인간 간의 대안적 관계성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숲의 시선에서 산림개발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콘의 저작이 인류에게 던지는 화두는 가히 혁명적이다.

※ 김기흥 - 포항공과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영국 에딘버러대에서 과학기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런던대와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연구했다. 저서로 [광우병 논쟁] [질병의 사회적 구성] 등이 있다.

201807호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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