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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의 한반도 워치] 감정적인 비핵화 비관론을 경계한다 

트럼프, 김정은 두 정상 간 신뢰는 굳건 

김영희 안보·국제문제 칼럼니스트
김정은의 대전환 의지 변하지 않는 한 비핵화와 북·미 관계는 진전…한국은 남북관계 개선에 속도 내고, 통일 아닌 평화 정착에 방점 둬야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정상회담을 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싱가포르 6·12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속았다’.

‘지킨다는 보장도 없는 김정은의 약속만 믿고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 같은 큰 선물을 김정은에게 안겼다’.

‘김정은에게서 받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북한을 핵국가의 지위에 올려놓은 김정은은 결코 핵·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7월 6~7일 세 번째로 평양을 방문한 것은 트럼프를 향한 미국 주류 언론, 의회 의원, 한반도를 연구하는 학자와 전문가, 정부 관리의 상당수가 이렇게 트럼프를 비판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전망을 어둡게 보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폼페이오는 이번 평양 방문에서 국내에 팽배한 비판과 회의론을 잠재울 가시적인 성과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폼페이오가 평양에 체류하는 기간 그를 만날 것으로 예상됐던 김정은은 삼지연의 감자밭에서 겉보기에 한가하게 농업 지도를 하고 있었다. 김정은은 의도적으로 평양을 비워 미국에 대한 불만의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폼페이오는 협상 카운터파트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의 회담이 유익했다고 말하면서 평양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김정은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것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폼페이오가 강도 같은(gangster style) 요구만 했다고 맹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외무성 성명은 워싱턴의 불 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결과를 가져왔다. ‘워싱턴의 여론은 비핵화의 운명이 의문에 빠졌다’([월스트리트 저널]), ‘비핵화 협상이 길어지고 어려울 것이라는 뚜렷한 신호다’([워싱턴 포스트]), ‘아주 나쁜 신호다’(조셉 윤), ‘폼페이오 장관은 돼지에게 립스틱을 칠하려고 했다’(빅터 차)라는 거친 수사(rhetoric)로 폼페이오의 빈손 귀국을 맞았다.

싱가포르에서 트럼프를 만나 뒤 “지켜보라,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김정은은 무엇이 불만이었을까? 북한은 미국이 요구만 하고 북한이 원하는 것은 주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진 것 같다. 북한의 쇼핑리스트(shopping list)의 맨 윗자리에 있는 것이 종전선언이다.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에 의한 종전선언은 4·27 판문점 선언에 담겨 있고 김정은-트럼프의 싱가포르 선언은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했다.

북한의 지연전술이 넘어선 안 될 선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트위터에 공개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국전쟁 휴전 65돌이 되는 7월 27일을 전후하여 종전선언을 하자는 데 합의했다. 한국은 미국과 사전에 논의를 하고 그런 합의를 한 것이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다. 전쟁을 끝내는 진짜 문서는 평화협정이다. 그래도 김정은은 종전선언을 북한의 체제 안전을 위협하는 미국의 적대정책을 끝내는 조치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본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귀국 즉시 평북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폐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싱가포르를 떠났다. 김정은은 트럼프가 종전선언에 동의했다는 자신감을 갖고 트럼프와 헤어졌다. 그러나 북한은 미사일 시험발사장을 폐쇄하지 않았다. 미국은 종전선언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7월 27일은 코앞에 닥쳐 왔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9월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 때 김정은 위원장까지 유엔에 참석하여 종전선언을 하자고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 하고 싶었지만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두 번째 만남은 미국의 어딘가에서, 바람직하기론 워싱턴이나 플로리다주에 있는 그의 별장 마라라고에서 이루어지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북한은 지금까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미군 유해의 일부를 송환하는 조치를 취했다. 미국은 한·미 합동군사 연습을 중단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데 제동이 걸려 워싱턴의 이 방 저 방의 벽장에서 비핵화 회의론과 냉소(cynicism)라는 해골바가지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비핵화 회의론자(denuke-sceptics)들의 트럼프 공격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성급하다. 그들은 트럼프가 하는 일은 전부 반대한다. 크리스토퍼 힐, 빅터 차, 조셉 윤 같이 과거에 북한과 협상을 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패한 것을 트럼프 정부가 해낼까 봐 조바심을 낸다. 네오콘 잔재들과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은 3세기경 페르시아에서 창시된 종교 마니교(Manichaeism)의 눈으로 북한을 보려고 한다. 세상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보고 악은 무조건 파괴의 대상이라는 시각이다.

북한의 핵탄두와 핵물질과 미사일을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로 반출해 미국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해체해야 한다는 리비아 모델을 주장해 논란을 부른 백악관 안보보좌관 존 볼턴이 대표적인 매니키언이다. 그에게 북한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악의 존재다. 다행히 트럼프가 그를 견제하고 폼페이오에게 비핵화 협상의 운전대를 맡겼다.

그러나 북한의 지연전술이 어느 선을 넘게 된다면 볼턴 같은 매니키언들에게 개입할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톱다운 방식의 비핵화 절차를 단순화해서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김정은-트럼프간 포괄적 합의→ 고위급 실무자들이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보상에 관한 이행 조치 협상→ 대북 제재의 단계적 완화→ 평양과 워싱턴에 각각의 연락사무소 개설→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이 순서의 초기 단계에 종전선언이 들어가고 북·미 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은 순서가 바뀌거나 거의 동시에 시행될 수 있다.

그런데 생각을 좀 해보자. 폼페이오의 3차 방북은 두 번째 단계인 고위급 실무협상의 시작에 불과하다. 첫 번째 협상에서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다고 협상 동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북한 외무성 성명도 말미에 미국에 대한 신뢰는 여전함을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심각한 장애물이 나타나면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로 나서 김정은과 트럼프를 만나 돌파구를 만들 여지도 남아 있다. 김정은-트럼프 2차 정상회담도 원칙적으로는 합의가 돼 있다. 아직은 가동되지 않고 있지만 북·미 정상 간에는 직통 전화도 설치된다.

지금까지의 모든 북·미 핵 관련 합의는 실무진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번은 전 세계가 손에 땀을 쥐고 주목하는 가운데 두 나라 정상이 만들어낸 합의다. 실무급의 협상에 장애물이 생기면 정상들이 개입할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 톱다운 방식의 최대 장점 아닌가.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쏟아져 나오는 회의론과 비판은 설득력이 없다. 트럼프의 반(反)자유주의적인 행동, 백인 우월주의, 미국 제일주의, 반(反)이민 정책, 반(反)자유무역 정책이 국내외에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다. 그런 것들이 비핵화 회의론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원점에서 보면 낙관론의 요소가 더 강해


▎양강도 삼지연 감자가루공장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전망이 밝은 면도 있다. 들끓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트럼프는 7월 12일 폼페이오가 가지고 온 김정은의 친서를 트위터에 공개했다. 공개하면서 백악관은 친서의 한글본에 ‘각하’라는 표현 여섯 번, 영문본에 각하에 상응하는 ‘His Excelleny’라는 표현을 여섯 번 썼음을 강조했다. 싱가포르에서 조성된 트럼프에 대한 김정은의 신뢰가 건재함을 나타내는 것임에 틀림없다. 북·미 정상 간 상호 신뢰, 그것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가 아니었던가.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북한 김 위원장으로부터 아주 멋진 편지, 아주 위대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썼다. 트럼프의 트레이드마크인 과장이 읽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신뢰한다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친서에 이렇게 썼다.

“조미 사이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는 나와 대통령 각하의 확고한 의지와 진지한 노력, 독특한 방식은 반드시 훌륭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대통령 각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과 신뢰가 앞으로의 실천과정에 더욱 공고해지기를 바라며 조미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진전이 우리들의 다음 번 상봉을 앞당겨 주리라 확신합니다.”

친서에서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와의 2차 정상회담을 독촉하는 것이다. 틀릴 각오하고 과감한 예측을 한다면 김정은과 트럼프는 9월 유엔 총회 기간 중에 미국의 어디선가 다시 만날 것이다. 둘은 친서에 비핵화에 관한 언급이 없다. 이 부분이 트럼프의 의도와는 반대로 워싱턴 회의론자들의 기를 살려 줬다. 가령 빅터 차는 그것 보란 듯 “그런 편지를 공개했다고 해서 폼페이오의 3차 방북에 뭔가 더 있었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김현기, 강태화. 중앙일보 7월 14일자)

그러나 따지고 보면 김정은 위원장의 그런 화법도 협상 전략의 하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판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가 아니라 김정은이라는 불편한 사실이다. 문재인-김정은-트럼프가 함께 돌려야 할 판이 김정은에게 사실상 독점되고 있는 것은 불길하다. 김정은이 너무 나가면 트럼프가 돌발적인 반응을 보여 판 자체가 깨질 걱정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3일 싱가포르에서 낙관론을 폈다. “북·미 양 정상이 국제사회에 약속했기 때문에 실무협상에 우여곡절이 있어도 약속을 지킬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버티기 작전으로 종전선언과 대북 제재 완화 같은 보상을 더 많이 받아내려고 하는 배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있다고 의심한다. 미·중 무역전쟁의 와중에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진행되는 것은 불운이다. 그러나 시진핑 입장에서도 비핵화의 판이 깨지는 것을 바랄 리 없다. 한반도 사태가 2017년으로 되돌아간다면 시진핑 주석도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게 체면이 깎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말한 대로 실무협상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논쟁으로 어려운 과정을 겪을 수는 있다. 그러나 현 사태의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비관론보다는 낙관론의 요소가 더 강하다.

북한 인민들은 선악과(善惡果)를 먹어버렸다


▎7월 6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실은 비행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그 원점은 김정은 위원장의 대변신 배경이다. 그는 북한을 핵국가의 반열에 올려 미국의 적대정책에 대한 충분한 억지력을 확보했다고 확신했다. 그는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했다. 선언하면서 당과 군과 인민은 경제 건설에 매진할 것을 촉구했다. 핵·경제 병진 정책에서 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남북, 북·미 대화에 나섰다. 김정은의 대전환 동기와 의지가 변하지 않는 한 거북이 걸음으로라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는 전진할 것이다. 이제는 북한 인민들의 삶이 획기적으로 나아지지 않으면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500여 개의 장마당에서 북한 인민들은 선악과(善惡果)를 먹어버렸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가다 서다를 되풀이하는 동안 한국은 대북 국제제재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지향점을 확실히 정의하는 것이다. 남북한의 어떤 정권도 공식적으로 통일을 포기한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 항상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그러나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은 한반도 평화다. 평화 정착이 최우선이다. 통일이 끼어들면 평화 정착의 정책에 혼선이 일어난다.

한반도 평화를 통일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재래식 사고다. 그러나 평화는 통일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달성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베를린에서 한 쾨르버재단 연설, 일명 베를린 선언에서 그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은 북한 붕괴도, 무리한 통일도 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남북한이 평화롭게 사는 동안 어느 시기가 되면 통일은 저절로 올 것이다.” 해석하면 이렇다. 통일은 통일정책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통일정책 같은 건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한반도 평화다.

비핵화 협상의 어려움은 트럼프 스스로 싱가포르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그는 비핵화가 과학적으로,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인정했다. 남북한이 1953년 정전 이후 처음으로 전쟁의 위기를 완전히 벗어날 기회를 맞았다. 작년 한 해 우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 위험에 얼마나 전전긍긍했던가! 북핵의 위협은 한반도와 일본에만 해당된다고 믿은 미국은 무책임한 대북 선제공격론을 폈다. 그러다 11월 29일 북한이 뉴욕과 워싱턴을 사정권에 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성공하자 비로소 북핵의 위협에 실존적 위기를 느껴 북한을 협상 상대로 인정하고 나왔다. 이것이 지금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사태의 본질이다. 미국의 트럼프 비판자들, 회의론자들, 그 장단에 춤을 추는 일부 한국인이 마음에 깊이 새길 문제의 핵심이란 말이다.

※ 김영희 - 1958년 22세 나이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딘 필자는 82세가 된 지금까지 현장을 누비는 영원한 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중앙일보 편집국장, 임원 등을 거치고 최근까지도 중앙일보 대기자 및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올해로 기자 활동 60주 년을 맞는 그는 외교·안보·국제 뉴스의 한 우물을 판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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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호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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