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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북핵 해체는 결국 돈! 누가 지갑 열까 

‘핵폐기는 인류의 갈망과 재정 지원의 합작품이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핵, ICBM 폐기와 인력 직업 전환에 22조원 이상 초기비용 소요…국제기구 ‘북한지원 컨소시엄’ ‘북한신탁기금’ 통한 신속한 지원도 가능

▎소련 해체 이후 폐기를 앞둔 대륙간 핵미사일 SS-19를 둘러보는 우크라이나의 군 간부들.
폼페이오 장관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평양을 방문해 고위급 회담을 했지만 북한은 미국의 요구가 ‘강도’라는 거친 표현으로 반발했다. 화끈한 선물을 기대했던 평양 입장에서 빈손으로 입국한 폼페이오 장관과 김정은 위원장 간에 면담은 수용할 수가 없다. 종전선언 및 제재 완화에다 경제적 보상을 기대하는 평양과 새로운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용어로 포장한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로 압박하는 워싱턴은 함께 갈 길이 멀다. 양측은 선물을 주기보다는 받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미군 유해 송환 비용 등 돈 문제에 대한 미국의 ‘노코멘트’는 평양의 심기를 거스르기에 충분하다.

북한 비핵화의 종착지는 결국 돈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1991년 북한 외무성 지시로 이스라엘과 접촉해 아랍국가들이 요구하는 미사일 폐기 비용으로 10억 달러를 요구했다고 회고록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기술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의 핵무기가 체제보장 무기이기도 하지만 한편 외화벌이 수단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비핵화 비용은 크게 단계와 과정을 기준으로 ‘초기’ ‘중기’ 및 ‘후기’ 비용으로 나눌 수 있다. 초기 비용이란 비핵화 1단계에서 핵시설 폐기와 핵무기 및 ICBM 해체에 소요되는 직접경비다. 중기 비용은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당근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대로 비핵화가 20% 이상 진행되면서 에너지 지원을 위한 경수로 건설 및 중유 제공, 북한 핵물리 과학자들의 직업 전환 등에 쓰이는 돈이다. 군인들의 총을 내려놓게 하려면 지갑에 달러를 채워 넣어야 한다. 마지막 후기 비용은 비핵화 대가로 먹고살기 위한 경제 원조나 국채 탕감 등을 포함한다.

우선 녹슨 핵무기와 물질, 운반수단인 미사일을 철거 및 해체하는 것도 뭉칫돈이 필요하다.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은 2105년 발간된 회고록 [핵 벼랑을 걷다(My Journey at the Nuclear Brink)]에서 소련이 해체된 이후 우크라이나 등 신생 독립국에 남겨진 핵병기를 제거하는 예산 조달을 위한 의회와 행정부의 가교 과정을 자세히 기술했다. 페리 전 장관은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80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800기의 핵탄두를 해체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북한판 ‘넌-루거 프로그램’의 주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화성-15형’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는 1994년부터 2년간 핵무기 기지가 있는 삐르보마이스끄시를 네 차례나 방문해 4단계로 무기 해체를 진행했다. 우선 탄두를 제거해 핵분열성 물질을 빼내고, 미사일을 제거·분해해 고철로 이용하고, 격납고를 파괴한 후 마지막에 미사일용지를 농업용지로 전환했다. 2년 후 죽음을 부르는 미사일 기지는 생명의 상징이자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환금(換金)작물로 생각하는 해바라기 밭으로 변모했다. 그 지역 농민들은 해바라기를 수확한 후 사진을 찍어 감사편지와 함께 장관직을 마치고 스탠퍼드대 교수직로 돌아간 페리 전 장관에게 보냈다. 이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가 ICBM을 해체하는 작업도 미국의 재정 지원으로 이뤄졌다. 구소련 지역 핵무기와 ICBM의 철거 및 해체는 평화에 대한 인류의 갈망과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재정적인 지원이 결합된 특별한 성과물이었다.

1991년 미국 상원의 공화당 샘 넌(민주), 리처드 루거(공화) 의원이 주도한 넌-루거(Nunn-Lugar) 프로그램은 구소련 국가들의 핵무기를 폐기할 때 자금과 장비를 지원했다. 공식 명칭은 ‘협력적 위협 감축 프로그램(CTR)’이다. 미국은 이 프로그램에 따라 16억 달러 규모의 정부 예산을 마련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에 있는 수천 기의 핵무기를 제거했다. 전직을 위해 과학자 및 관련 기술자들의 직업 훈련 비용도 포함했다.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및 핵물질 제거에 3억 3750만 달러, 핵통제 프로그램에 3860만 달러, 핵무기 부대 인력의 민간 직장 전환에 2억6390만 달러 등 총 6억 달러를 투입해 1840개의 핵탄두를 제거했다. 우크라이나의 핵과학자와 기술자 4500여 명을 민간 직업으로 전환하는 데 미국은 1억8000만 달러의 비용을 지출했다. 북한이 보유한 최소 20기 이상의 핵무기는 물론 ICBM 등의 폐기와 1만여 명의 기술자 및 관련 인력의 직업 훈련 비용을 포함한다면 최소 200억 달러(약 22조원) 이상의 초기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비핵화 예산 조달 과정에서 행정부와 의회 간에 헌신적인 조정자 역할을 했던 샘 넌 의원은 1996년 10월 18일 러시아의 핵포기 현장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내가 지금까지 미사일을 사는 데 찬성하고, 폭격기며 잠수함을 사는 데 찬성표를 던졌지요. 국방을 위해서 그것들이 다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껏 내가 찬성한 가장 훌륭한 예산은 우리가 힘을 합쳐 지금 대규모 살상무기를 해체할 수 있도록 해준 예산입니다.”

북한판 넌-루거 프로그램의 가동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재원 조달이 불가피하다.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로 비핵화를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화려한 유혹에도 두둑한 금고가 있어야 한다. 지난 5월 말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김영철 통전부장에게 과시했던 뉴욕의 야경과 같은 장밋빛 청사진을 평양에서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초기 종잣돈이 필요하다.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미 국무부는 창밖을 내다보는 김 부장의 사진을 공개하며 “화려한 맨해튼 스카이라인은 북한을 위한 밝은 미래”라고 부제를 달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이게 뉴욕이다. 멋진 랜드마크가 수없이 많다’는 듯 뿌듯한 얼굴이었고 ‘이 모든 게 북한 당신 것이 될 수 있어’ 라고 암시하는 듯했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장밋빛 미래 평양의 야경으로서 비핵화에 대한 확실한 시각적인 당근이다. 필자는 2005년 평양 방문시 고려호텔의 맨 위층인 45층 회전전망대 식당에서 북한의 야경을 관찰한 바 있다. 한 시간에 천천히 한 번 회전하는 회전전망대에서 바라본 평양의 밤은 ‘마포종점’이라는 우리의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불빛만 아련한데’처럼 어두웠다.

밤거리가 어둡다는 필자의 지적에 동석한 민족경제연합회 참사는 평양 시내에 전력을 공급하는 북창화력발전소의 전기 생산이 부족해서 소등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북한 최대 화력발전소로 평안북도 북창군에 위치한 북창화력발전소는 생산용량이 160만㎾이지만 설비 결함 문제로 인하여 50만㎾ 생산에 그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뉴욕 맨해튼의 야경은 구미가 당기는 가상현실 비전으로 서방의 호주머니를 어떻게 열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실리추구형 ‘아파트(condominium) 동맹’의 귀결점


▎지난 6월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전망대에 올라 시내 야경을 보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 일행.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의 주장대로 오랜 기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핵무기를 만들었던 만큼 평양으로서는 금전적 대가 없는 일방적인 포기는 불가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대가로 완전한 체제안전보장(CVIG: guarantee)을 요구했지만 절반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핵심이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 및 주한미군 감축과 동시에 평양은 스스로 먹고살 길을 찾아야 한다. 가공할 위력의 핵무기와 ICBM도 직접적으로 2500만 인민의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 및 기와집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김정은은 트럼프와 정상회담 이후 3차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을 차단하는 동시에 미국을 상대로 비핵화 단계별로 경제적 당근을 챙기기 위해 주판알을 튕길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초 백악관에서 김영철 통전부장을 접견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카지노 사업가답게 돈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대북 경제원조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에게 그는 “한국이 그것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중국과 일본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많은 돈을 쓸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명분으로는 물리적 거리를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수천, 6000마일 떨어져 있다. 그런데 그들(한·중·일)은 이웃 국가”라고 말했다. 특히 “이미 한국도 준비해야 할 것이고 일본도 마찬가지”라고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돈’ 발언은 미국 행정부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북원조의 상당부분을 한·중·일로 돌리겠다는 의미다. 북한판 넌-루거 프로그램의 주체는 미국이 아니라는 입장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실제로 미국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북핵문제에 현금 투입을 기피해 왔다.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도 북한 핵 동결의 대가인 46억 달러의 경수로 건설 비용을 한국과 일본 및 EU 등에 70%, 20% 및 10% 각각 부담하게 했다. 미국은 매년 50만t의 중유만 북한에 지원하는 데 국한했었다.

가치를 우선하는 동맹 대신에 실리추구형 ‘아파트(condominium) 동맹’을 선호하는 통념적이지 않은 지도자인 만큼 자신은 비핵화를 성공시킨 대가로 미국 달러는 저축하겠다는 복안이다. 부동산 사업으로 부를 축적했던 비즈니스 지도자로서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모든 판단 기준은 돈에서 시작하여 돈으로 종결되는 전기전결(錢起錢結)식 사고방식의 표현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안보를 책임졌던 NATO조차 회원국이 GDP 대비 2%의 국방비를 부담하지 않으면 와해시키겠다는 지도자라 돈 문제만큼은 비핵화 과정에서도 사활적인 관심사다.

비핵화 1차 돈줄은 남북협력기금


▎지난 6월 워싱턴 백악관에서 북한 김영철 통전부장을 만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원조보다는 민간 투자를 부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최근 미국인들의 세금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대신 미국 민간 부문의 투자와 대북 진출, 기술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나라면 우리로부터 경제원조는 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원조 대신 미국 기업이 직접 북한에 들어가 사업을 하거나 투자를 하는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과거 미국 콜로라도 소재 오로라 광물회사가 북한이 세계 매장량 2위를 자랑하는 함경남도 단천의 마그네사이트 클링거를 수입했던 경험을 언급한 것이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은 전임 정권들이 북한에 대한 식량이나 에너지 원조 등에 막대한 돈을 지원, 핵·미사일 개발을 돕는 결과만 낳았다면서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비핵화 때까지 제재 지속’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미국의 ‘선(先)비핵화’는 북한의 ‘선(先) 경제지원’과 단계적·동시적으로 정확하게 매칭(matching) 되거나 혹은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이 평양의 일관된 입장이다. 향후 양측이 정상회담은 물론 고위급 실무회담에서 접점을 찾기 어려운 핵심 부분이다.

여하튼 한·중·일의 직접 지원이든, 미국 기업이 개별적으로 투자하든 북한 비핵화에 병행하는 정확한 대칭 그림인 데칼코마니(decalcomanie)는 단순 제재완화를 넘어 경제적 보상 혹은 화끈한 지원이다. 북한은 비핵화의 일보를 디딜수록 한반도 평화라는 고상한 문장을 사용하겠지만 비례해서 돈줄의 출구와 경로를 확실하게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평양은 돈줄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비핵화의 속도를 늦출 것이다.

평양 권력층의 돈에 관한 극단적인 관심은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다. 북한이 경제적 지원과 보상에 얼마나 목을 매는지는 북한 외교관들의 행태를 파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05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에 2500만 달러가 동결되자 김계관 등 당시 북한 외교관들은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전 세계 60개의 북한 외교공관은 평양 외무성에 수시로 외화벌이 사업의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싱가포르 합의문에 포함된 미군 유해 발굴사업도 매력적인 외화벌이 사업이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2005년 5월 26일 내놓은 ‘대북 해외 지원’ 보고서는 미 국방부가 1993년부터 미군 유해 수습을 위해 북한에 지급한 돈이 2800만 달러(약 303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북한 경제지원을 위한 돈줄은 비핵화 과정과 비핵화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1차 금고는 남한의 남북협력기금이 될 것이다. 수출입은행이 수탁기관인 남북협력기금은 올 상반기 기준으로 1조6000억원 규모다. 기금은 남북 교류·협력의 촉진과 민족공동체 회복에 기여할 목적으로 1990년 1월 제정된 ‘남북협력기금법’ 에 의거해 설치됐다. 향후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기금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정부와 여당은 내년 예산에 대폭 증액을 검토 중이다. 최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남북교류 확대를 위한 예산 확보를 위해 국회 남북특위를 구성키로 함에 따라 내년도 남북협력기금의 증액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각종 남북교류와 지원이 핵심인 판문점선언의 이행을 위해서는 기금 증액이 불가피할 것이다.

최근 남북이 논의한 철도, 도로 연결 사업의 경우만도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이상준 국토연구원 박사는 경의선, 경원선, 동해선의 총 철도 연결 사업비용은 최대 37조6000억원(경의선 7조9000억원, 경원선 14조9000억원, 동해선 14조8000억원)에서 최소 4조3000억원(경의선 9000억원, 경원선 1조7000억원, 동해선 1조7000억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대치는 새로 시설을 건설하는 기준이고 최소치는 개·보수 수준의 비용이다. 이 외에 항만 및 전력 등의 SOC는 물론이고 먹는 문제 해결을 위해 농업기반 구축 및 비료, 농약, 농기계 등 농자재 공장 건설까지 포함하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산림 협력 등의 환경 분야까지 포함하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된다. 남북협력기금의 규모는 조족지혈일 수밖에 없으며 정부 여당이 증액을 강조하는 이유다.

“투자처가 부족하지 돈이 부족한 시대는 아니다”


▎2007년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 시험운행 당시 경의선 열차가 북으로 향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필자는 2003년 통일부 요청으로 ‘남북협력기금의 현황과 효율적인 중장기 운용방향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향후 수요가 증가할 남북협력기금의 획기적인 조달 방안을 제시하고 비즈니스 차원의 운용 방안을 조사했다. 하지만 획기적인 방안 마련은 용이치 않았다. 경직성 예산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예산 편성 구조상 기금을 재정에서 조달하는 것은 한계가 있음에 따라 당시 다음과 같은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특별법 제정을 통한 통일목적세 신설, ▷통일채(統一債) 등 장기 국공채 발행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수익에 대한 관세 부과 ▷동북아 개발은행(가칭) 설립안 ▷도로, 철도, 항만 및 발전소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에 투자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스 ▷연간 예산 1% 대북사업 투입 ▷통일복권 발행 ▷해외자금 조달 ▷‘북한지원 국제 컨소시엄(가칭)’ 구성을 통한 자금 조달이다. 현행법상 북한은 대외경제협력기금의 지원 대상이 아님에 따라 지원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어느 제안도 대규모 기금을 위한 도깨비 방망이식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미래가치가 불확실한 북한에 투입되는 자금에 관한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특히 한국 경제의 조세부담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준조세 성격의 기금이 증가하는 것은 조세저항을 피할 수 없다. 결국 협력기금 사용은 통일비용의 사전집행으로 중장기적으로 통일비용을 축소시킨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의 고속도로에 올라탄다면 북한 경제의 유력한 자금줄은 국제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금융단체장을 맡고 있는 고위 인사는 남북 경협 세미나에서 필자에게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국제금융기구는 투자처가 부족하지 돈이 부족한 시대는 아니다. 북한에 투자 환경만 조성되면 자금 이동은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한국계인 김용 세계은행 총재,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태국장, 투자은행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각종 국제금융기구 등의 요인들은 국제기구의 북한 투자에 대한 긍정적인 환경이 될 수 있다.

현재 북한 경제의 돈줄이 차단되는 1차 장벽은 유엔 안보리 제재안이다. 2016년 1월 4차 핵실험 이후 유엔은 북한을 대상으로 5차례의 제재결의안을 채택했다. 금융제재는 2270호(2016년 3월)와 2321호(2016년 11월) 결의안에 포함돼 있다. 2270호는 북한 내 외국 금융기관을 폐쇄하고 거래를 금지했으며 북한 금융기관의 해외지점 폐쇄와 거래를 금지했다. 2321호는 북한과의 무역을 위한 공적·사적 금융 지원을 금지시켰다. 북한 금융의 손발을 일단 묶어 놓은 셈이다.

국제금융기구의 가입 조건, 평양 현지실사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본부. 북한은 투명성을 요구하는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꺼릴 수도 있다.
다음 장벽은 테러지원국 지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다고 발표했다. 2008년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한 지 9년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발표하며 “북한은 핵 초토화로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것에 더해 해외 영토에서의 암살 등을 포함해 국제적인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행동을 반복해 왔다”고 지적했다.

미국법은 테러지원국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에 대해 무조건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돼 있다.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됨에 따라 미국 대외원조법 규정상 미국 및 국제금융기구의 원조가 금지된다. 브레튼우즈협정법에 따라 IMF의 원조가 금지된다. 동시에 국제금융기구법에 따라 국제금융기구의 원조가 금지된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의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유엔 제재가 해제되고 테러지원국에서 벗어나야 하며 원칙적으로 국제금융기구 회원국이 돼야 한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은 일단 3단계로 구분된다. 첫째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 이후 단계, 둘째 가입 이전 자금 조달 단계, 셋째 국제금융기구의 자금지원을 전제하지 않는 ‘북한지원 컨소시엄(가칭)’ 구성 단계다.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될 경우 국제금융기구 가입에는 북한의 의지가 중요하다. 북한이 경제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국제금융기구 가입이 절실하나 북한으로서는 IMF의 평양 현장실사 등 북한체제를 외부에 투명하게 개방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이 있다. 국제금융기구 가입을 위해서는 북한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국제금융기구 가입 이전에도 자금 지원이 가능하나 과거 팔레스타인 등 예외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북한이 세계은행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최대 주주국인 미국,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세계은행에 가입할 경우 연 10억~45억 달러의 차관 검토가 가능하다.

북한은 1997년 2월 최초로 아시아개발은행(ADB) 가입을 정식으로 신청했으나 대주주인 미국(12.7%)과 일본(12.7%)의 반대로 거부됐다.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후인 2000년 9월에도 정식으로 가입 신청을 했으나 미사일 문제 등 안보 현안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입이 거부됐다. 미국은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을 희망한다면 안보적 위협을 해소하고 투명한 경제체제로의 전환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엘렌 라슨(Larson) 미국 국무부 경제·기업·농업담당 차관은 2002년 4월 9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21세기 위원회’ 오찬 연설에서 “북한이 아시아개발은행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국제통화기금 가입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2001년 3월에도 한성렬 외무성 부국장이 북한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 IMF 및 IBRD(세계은행) 관계자에게 가입 의사를 표명했으나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미국은 세계은행이나 IMF가 북한에 경제교육 또는 연수 등 비공식적인 기술적 지원(technical assistance)을 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이를 넘는 자금 지원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제금융기구의 자금 지원은 원칙적으로 회원국에 제한돼 있기 때문에 미가입국인 북한이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자금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신탁기금(trust fund) 조성을 통해 팔레스타인, 유고 등에 지원한 예외 사례가 있다. 이들 국가에 대한 지원은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국제금융기구 가입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과 국제금융기구 가입이 주요 관계국 간에 합의되더라도 그 실현에 다소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해 이행됐다.

국제금융기구 가입 전 긴급자금 지원 가능


▎개방 정책을 채택한 뒤 외국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온 베트남 도심의 야경.
예를 들어 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刷新) 개혁을 통하여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했지만 실제 자금지원은 각종 절차 때문에 1993년에나 이뤄졌다. 미국은 1992년 하노이에 임시 연락대표부를 설치하고, 부분적인 엠바고 해제를 통해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을 허용하는 등 베트남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이행절차와 로드맵을 제시했다. 미국이 1993년 7월 국제금융기구의 베트남 융자 재개를 허용함으로써 베트남은 IMF 지원 아래 본격적으로 외자 도입을 추진하고, 아시아 주변국 직접투자 유치와 외국인직접투자(FDI) 환경 개선을 추진했다. 예외 사례는 국제금융기구 가입 전 과도기에 긴급 자금 지원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는 점과 국제금융기구 정식 가입과 비교하여 외환보유고 등 IMF의 조건이 크게 완화돼 북한의 관심이 크다. 베트남은 1995년 베트남전에서 사망한 미군의 유해를 적극 송환하는 등 요구조건을 120% 수용하며 16년간 전쟁을 했던 미국과 수교했다. 세계은행과 베트남과의 파트너 관계는 베트남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2017년 3월 기준으로 세계은행은 225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 신용대출 및 양허성 자금 대출 등을 베트남에 지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 방문 후 7월 9일 베트남에 가서 베트남의 기적이 김정은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언급으로 비핵화의 사후 보상을 비유했다.

국제금융기구 가입 이전에 단기적인 지원방안으로 가칭 동북아개발은행 및 아시아태평양개발은행 등이 참여하는 ‘북한지원 컨소시엄’이 있다.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이 추진되는 동안 우리 정부는 세계은행에 ‘북한신탁기금(Trust Fund for Democratic People‘s of Korea)’을 설립하는 안을 미국, 일본 및 EU 등과 협의할 수 있다. 북한은 IMF 가입 시의 엄격한 자료 제출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아도 된다. ‘컨소시엄’의 대표기관과는 일정 수준의 정책협의(policy dialogue)를 통해 지원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북한 비핵화가 상당부분 진전되면 ‘특별신탁기금 컨소시엄’은 세계은행 주도의 자문그룹(consultative group)으로 개편이 가능하다. 양자 간 지원보다 다자 간 지원이 지원국과 수혜국 양측의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또한 지원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더불어 식량지원과 같은 단순한 소비성 지원에 따른 기부자의 피로(donor fatigue)를 방지하고 개발원조(development aid)를 본격화할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와 함께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각종 의무사항을 이행,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면 자금 지원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할 경우 IMF의 빈곤감소 및 성장지원제도(PRGF, Poverty Reduction and Growth Facility) 자금, 세계은행의 국제개발협회(IDA, International Development Association) 자금, 아시아개발(ADF, Asian Development Fund) 자금 등 국제금융기구의 양허성(讓許性) 자금 지원이 검토될 수 있다. 이들 양허성 자금은 무상지원환산율(grant element)이 최소 80% 이상으로서 현재 북한의 국민소득 수준으로 볼 때 북한은 지원 대상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북한의 경우도 동북아 안정에 중요한 지역으로서 외교적인 고려가 가능하다. 최근 중국 시진핑 주석이 강력하게 추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주로 동남아 지역에 자금이 집중되고 있어 북한 투자를 위해서는 북·중 관계의 이해가 부합돼야 한다. 단기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 지원이 가능하나 금액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비핵화 대가 10년간 최대 2150조원?

북한이 비핵화를 진정성 있게 진행하면서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한 후 IMF와 세계은행의 개혁 프로그램을 성실히 이행할 경우에는 착한 행동에 대한 각종 경제적 수혜가 가능하다. IMF와 세계은행이 주도하는 중채무국 외채문제 해결전략(HIPC Initiative) 및 쾰른 제안(Initiative)을 활용한 외채 탕감이 가능하다. 2017년 기준 북한의 외채는 대략 4조원 선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을 러시아를 포함한 파리클럽 채권국이 빌려줬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과 영국의 유라이즌 캐피털 연구소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개최된 후 북한이 비핵화를 하는 대가로 10년간 2조 달러(약 2150조원) 규모의 청구서를 내밀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수치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이 동독에 공여한 비용(1조2000억 달러)을 기준으로 남북한의 경제 수준을 감안해 뽑은 액수라고 [포춘]은 설명했다. [포춘]은 “북한은 동독이 가지지 못했던 핵무기를 가졌다는 점에서 요구하는 대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미국의 물가 상승, 미국의 금리 인상, 세계 주식 약세 등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포춘]의 전망치는 한반도의 통일을 전제로 해 일반적인 추계보다는 높다. 또한 지난해 5월 홍콩 시사잡지 [쟁명(爭鳴)]은 북한이 향후 10년간 중국과 미국, 일본, 러시아, 한국으로부터 600억 달러의 무상원조를 제공받고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조건으로 3년 기한으로 핵무기 단계적 폐기와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중단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공통점은 북한의 비핵화 진행과 함께 적지 않은 뭉칫돈이 소요된다는 주장이다.

최근 들어 일본 정부도 동북아 정세 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의 관심이 돈 문제에 있다는 점을 들어 아베 총리는 재정적 부담을 내세우며 발언권을 높이고 있다. 일본의 대장성 및 외무성 전문가들은 1930년대 수립한 ‘동북아 공영권 건설을 위한 조선반도 전략지도’를 꺼내 놓고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북한에서 가동 중인 발전소와 중화학공업 및 항만, 철도, 도로 등 시설의 80%는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미 양측이 비핵화 실행을 위한 후속 조치에 주력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경제적 보상과 비핵화 과정을 정확하게 계량화시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돈에 집착하는 양 지도자의 속성에 부합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서명한 계약(contract)과 악수를 김정은 위원장이 지킬 것을 기대한다고 트위터에서 밝혔지만 공허한 느낌이다. 죽도록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결혼식을 올리고 살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집을 장만하고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 싱가포르에서 환상적(fantastic)인 회담을 했지만 구체적인 캐시플로(cash flow)가 담보되지 않으면 향후 회담은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행되지 않는다”라는 1814년 빈 회의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 남성욱 -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주립대학원에서 응용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민주평통 사무처장, 한국북방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대 북한의 식량난과 협동농장 개혁] [북한의 IT산업 발전전략과 강성대국 건설]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201808호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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