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긴급진단] ‘레전드’들이 말하는 한국 축구 쇄신책 

“세계 1위 잡았다고 세계 1위 된 건 아니다” 

모스크바·카잔(러시아)=박린 중앙일보 기자
이영표·안정환·박지성·김호·차범근·신문선의 쓴소리 “벼락치기 더는 안 통해…준비 안 됐는데 어떻게 운에 맡기나”

▎6월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1대 2로 패한 한국의 손흥민이 이용을 위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축구는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실패했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을 2대 0으로 꺾었지만, 조 3위(1승2패)에 그치며 탈락했다. 꼭 잡아야 했던 스웨덴과 1차전에서 수비에 치중하다가 0대 1로 패했다. 멕시코와 2차전에서는 페널티킥을 내주며 1대 2로 무릎을 꿇었다.

결과적으로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이어 2회 연속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독일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지만 목표로 내걸었던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축구팬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운 성적표다.

한국 축구는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4년 뒤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한국 축구 새 판 짜기가 절실한 이유다. 한국 축구가 쇄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러시아월드컵을 현장 취재하면서 이영표(41) KBS 해설위원, 안정환(42) MBC 해설위원, 박지성(37) SBS 해설위원을 만났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주역인 세 사람은 한국 축구를 향해 애정 어린 쓴소리를 했다. ‘영원한 야당’ 신문선(60) 명지대 기록정보과학 전문대학원 교수,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대표팀을 이끈 김호(73) 대전 시티즌 사장도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한국 축구 레전드’ 차범근(65) 전 대표팀 감독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2002년 6월 18일 한·일월드컵 당시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골든골을 넣은 뒤 환호하는 안정환.


1. 경기장서 선수를 뛰게 만드는 ‘명장’이 필요하다


▎2010년 6월 12일(현지 시간)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 넬슨 만넬라 베이 스타디움에서 한국 대 그리스전이 열렸다. 후반 두 번째 골을 터뜨린 뒤 기성용과 환호하는 박지성.
한국 축구는 최근 2개 대회 연속으로,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감독을 교체하는 일이 발생했다.

우선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1년 앞두고 홍명보 감독에게 급작스레 지휘봉을 맡겼다. 결국 한국 대표팀은 1무2패, 본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1년여 앞두고 4년 전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울리 슈틸리케(64·독일) 감독의 지휘 아래 2년 9개월이란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 지난해 6월에야 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이다. 최종예선에서 졸전을 거듭한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하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월드컵 최종예선 9, 10차전을 남기고서야 신태용(48)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경쟁국 감독들은 4년 동안 치밀하게 대회를 준비했지만 신 감독은 본선 직전까지도 수비수를 테스트했고 자신의 축구 색깔을 제대로 입히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영표 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을 진작 바꿨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지성 위원은 멕시코와 2차전 패배 후 “강팀과 약팀의 전력 차가 드러난 경기였다. 면밀한 준비를 통해 수비 조직력을 튼튼하게 다졌어야 했다”며 “전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월드컵 준비를 많이 했어야 했는데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았다. 조직력을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는데 결국 월드컵에선 이런 결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안정환 위원 역시 “우리는 언제까지 월드컵 참가에만 목표를 두고 진출하는 것에 급급해야 할까. 신태용 감독의 능력 여부를 떠나서 월드컵을 앞두고 계속해서 다급하게 감독이 바뀐다. 미리 준비했다면 감독을 교체할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감독을 신뢰하든지, 아니면 제대로 투자해 세계적인 감독을 모셔와야 한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7월 말에 계약 기간이 만료된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는 10명 남짓 국가대표 감독 후보를 정했고, 신 감독도 후보에는 포함시켰다.

김판곤 축구협회 대표감독선임위원장은 “유명한 감독보다는 유능한 감독을 뽑겠다”고 말했다. 루이스 판할 전 네덜란드 감독, 에르베 레나르 모로코 감독,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멕시코 감독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감독의 의지와 높은 연봉(약 30억원) 등이 변수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 16강전에서 패배한 스페인은 페르난도 이에로 감독이 자진사퇴한 지 하루 만에 루이스 엔리케(48) 새 감독을 곧바로 선임했다. 전술 능력, 리더십, 융화 가능성 등을 다각도로 검토한 지도자 인재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반면 한국은 인재풀도 사전준비도 없다 보니 진행이 더딜 수밖에 없다.

이영표 위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자신이 생각하는 ‘명장’에 대해 “전술·전략보다 선수를 뛰게 하는 감독”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는 “같은 선수가, 같은 경기장에서, 같은 팀과 경기해도 벤치에 누가 감독으로 있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명장과 그렇지 않은 감독의 차이가 있다”며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의 멘털은 감독이 결정한다. 한 경기에서 내공도 네 공도 아닌 상태로 떨어지는 게 평균 40~50번 정도 된다. 선수들이 그 공을 따내는 건 감독의 능력이다. 이란이 줄기차게 뛸 수 있었던 것은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에 올려놓은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을 예로 들었다. 이 위원은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은 엄청나게 뛰었는데, 체력 훈련만으로 된 게 아니라 히딩크 감독의 평소 한마디가 쌓여 만들어진 결과”라며 “네덜란드 프로축구 PSV 에인트호벤 시절 히딩크 감독은 3~5분짜리 스피치를 자주 했다. 그걸 들으면 잔잔했던 마음이 ‘내가 이 사람을 위해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단지 스피치가 좋은 게 아니라 평소 교감이 형성돼 영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 철저한 준비와 강철 체력이 필요하다


▎2002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승리를 거둔 직후 이영표(10번)·이운재 등이 환호하는 관중에게 태극기를 들어 화답하고 있다.
스웨덴과 러시아는 이번 월드컵에서 예상을 깨고 8강에 진출했다. 운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를 통해 실력 차를 좁혔다. 스웨덴은 조별리그에서 한국을 1대 0으로 꺾었다. 얀네 안데르손 스웨덴 감독은 “스카우트가 한국 대표팀 비디오 클립 1300개를 가져왔고, 그것을 20분으로 압축해 선수들에게 보여줬다”고 털어놨다. 스웨덴은 다른 경기에서도 객관적인 전력에서 뒤지는 만큼 탄탄한 수비로 상대 공격을 막아냈다. 4-4-2 포메이션을 고수하면서 끈끈한 조직력을 선보였다.

개최국 러시아는 32개 참가국 가운데 FIFA 랭킹이 최하위인 70위다. 하지만 상대팀보다 한 발 더 뛰는 축구로 돌풍을 일으켰다. 러시아는 예상을 뒤엎고 16강에서 ‘무적함대’스페인을 멈춰 세웠다. 러시아 선수들이 뛴 총거리는 무려 146㎞에 달했다. 스페인보다 9㎞를 더 뛰었다. 러시아 미드필더 알렉산드르 골로빈(CSKA 모스크바)은 홀로 15㎞ 이상 뛰었다.

멕시코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은 독일을 꺾은 뒤 “6개월간 전략을 짰다”고 고백했다. 비록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이란은 극단적인 수비축구로 선전했다. 인구 34만에 불과한 아이슬란드도 얼음 성벽 같은 수비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무승부 성적을 냈다.

안정환 위원은 “철저히 준비하고 자기색깔이 있는 팀들이 좋은 성적을 냈다. 월드컵은 벼락치기가 아니다. 준비가 안됐는데 결과를 운에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영표 위원도 “월드컵은 시작한 다음에 뭔가 하면 늦는다. 월드컵은 이미 그 전에 시작된 것이고, 그전에 준비한 게 월드컵에 나타나는 거다. 월드컵 대회 중에 크게 바뀌는 건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한국은 준비가 완벽하지 않았다. 한국은 스웨덴과 1차전에서 0대 1로 졌다. 올 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에서 18골을 터트린 손흥민을 윙백처럼 쓰는 수비적인 전술을 썼다. 유효슈팅 0개에 그치는 졸전이었다.

안정환 위원은 “스웨덴전은 전체적으로 다 아쉬웠다. 가장 중요한 건 역습을 펼칠 때 선수가 없었다. 자신감이 없었는지 불안했던 건지 골을 넣어야 했는데 공격이 안 됐다”고 말했다.

스웨덴전에서는 무엇보다도 선수들이 체력 문제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영표 위원은 “선수들이 공격하려는 마인드는 있었지만 체력적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나가야 하는데 나가지 못했다”며 “정신과 육체는 상호 연관성이 있다. 멘털이 체력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체력이 멘털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월드컵 직전에 가진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에서야 고강도 체력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스페인 출신 피지컬 코치를 영입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영표 위원은 “월드컵에서 우리보다 강한 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상대보다 더 뛰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한국 축구가 2002년 4강, 2010년 16강에 간 것도 그 덕분”이라며 “2014년 월드컵에서 체력적으로 준비가 잘 안 됐을 때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경험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충분한 준비가 이뤄지지 못했다. 단계적으로 했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박지성 위원도 “세계 축구 기류가 전술적으로 좀 더 수비적으로 변모하는 느낌이 든다. 모든 선수가 수비에 가담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어떻게 보면 진화했지만 재미가 줄어드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앞으로 한국 축구는 수비에 중점을 두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회에서 전력이 약한 팀들은 모두 수비에 중점을 두고 경기를 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도 우리가 골을 많이 넣은 건 아니었다. 얼마나 상대를 압박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축구를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다”는 말을 덧붙였다.

3. 벨기에처럼 키우고, 일본처럼 도전해야


▎한국 축구의 ‘원조 대쪽’ 김호 대전 시티즌 사장.
러시아월드컵 4강팀 벨기에는 ‘황금세대(Golden Generation)’로 구성됐다. 황금세대는 비슷한 나잇대 잘하는 선수들이 몰리면서 해당 국가 팀의 전력이 급상승하는 시기를 뜻한다.

벨기에의 인구는 1150만 명밖에 불과하다. 면적은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다. 홈그라운드에서 열렸던 유로2000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은 뒤 2006년 유소년 시스템을 전면 개혁했다. 모든 유스팀은 성인 국가대표팀과 동일한 유기적인 4-3-3 포메이션을 쓰고, 8세 이하팀 리그에는 아예 성적표를 아예 없애 승리 대신 축구를 즐기게 했다.

그렇게 성장한 선수들이 케빈 더 브라위너(27·맨체스터시티), 로멜로 루카쿠(25·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에덴 아자르(27·첼시) 등 20대 중반의 스타들이다.

4강 진출팀 잉글랜드 역시 어린 선수들을 키워 평균연령을 26.1세로 대폭 낮췄다. 잉글랜드는 지난해 17세와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했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전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청소년 축구를 위한 12가지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규정 중에는 ‘선수들이 스스로 개선점을 생각할 수 있도록 코치는 경기 중 지시 금지’, ‘한 팀이 4골 앞서면, 다른 팀이 3골 차로 따라붙을 때까지 후보 선수를 출전 시키는 파워플레이’ 같은 파격적인 조항이 포함됐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퍼스트 터치(First Touch)가 아쉬웠고 크로스도 부정확했다. 한국 축구도 벨기에나 잉글랜드처럼 유소년 시절부터 장기적인 구상과 적극적인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영표 위원은 “사실 체력 강화도 근본적인 방책은 아니다. 월드컵 같은 대회에서 단기간에 약팀이 할 수 있는 임시 방편일 뿐”이라며 “한국 축구가 기술적으로 튼튼하고 전술적으로 강해지기 위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하는데, 결국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바로 유소년부터 정책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비수 출신인 김호 사장은 “수비수의 기본은 ‘인터셉트를 하라, 공격수가 돌아서지 못하게 하라, 몸싸움을 하라’는 것인데 그게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어릴 적부터 인조잔디에서 운동을 하다 보니 화상·발목 부상 등을 우려해 태클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방어 기술도 둔해졌다”고 말했다.

벨기에 프로축구 주필러리그는 체계적으로 유망주를 키워내 빅리그에 진출시킨다. 경기 엔트리 중 23세 이하 선수들이 대거 포함된다. 잉글랜드·스페인·독일 리그와 ‘힘 대 힘’, ‘돈 대 돈’으로는 승산이 없다. 그래서 좋은 선수를 키워클럽 재정을 살찌우고 대표팀의 경기력을 높이는 쪽으로 정체성을 설정했다.

러시아월드컵 16강에 진출한 일본은 아시아팀이지만 유럽프로축구 진출에 적극적이다. 한국 축구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일본의 세네갈전 선발명단 11명 중에 10명이 유럽파였다. 공격수 오사코 유아는 독일 쾰른, 미드필더 시바사키 가쿠는 스페인 헤타페, 수비수 나카토모는 터키 갈라타사라이 소속이다.

일본 선수들은 유럽 중하위권팀이라도 과감하게 이적한다. 일본 J리그팀들 역시 선수의 유럽 이적을 가로막지 않고 보내준다. 가가와는 2010년 세레소 오사카를 떠나 이적료 4억원에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

반면 멕시코전에 출전한 한국 선발 11명 중에 유럽파는 손흥민(토트넘)·기성용(스완지시티)·황희찬(잘츠부르크) 3명에 불과했다. K리그 MVP 이재성(전북)은 이번 월드컵에서 세계와의 격차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월드컵을 현장 취재한 재일 스포츠 칼럼니스트 신무광씨는 “한국 선수들은 돈과 안정(경기 출장)을 중시하는 반면 일본 선수들은 꿈과 인생 경험(해외 생활)을 중요시해서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은 병역 문제가 걸려 있어 급하게 결과를 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 선수들은 마치 옆 나라에 단기유학을 가듯이 자유롭게 도전한다. 현재 유럽 1, 2부 리그에서 뛰는 일본 선수는 3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4. 축구협회를 혁명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 대표팀을 이끌었던 차범근 전 감독.
신문선 교수는 “러시아월드컵은 준비부터 실패했고, 대한축구협회와 정몽규 협회장의 탓”이라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이어 “1986년 멕시코월드컵 당시에는 적금을 해약하고 원정 응원을 온 팬들이 있었다. 월드컵에만 관심 갖는 사람을 ‘국뽕’이라 욕하는데, 요즘엔 그 국뽕마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며 “한국에서 ‘축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해졌다. 축구협회의 책임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교수는 “1993년부터 시작해 범(汎)현대가에서 회장(정몽준-조중연-정몽규)을 맡은 게 26년째다. 사람들은 축구협회를 ‘정가네 축협’이라고 부른다. 정몽규 회장은 2013년 선거 때 ‘1000억원이 안 되는 협회 예산을 3000억원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지만 지키지 않았다”며 “축구협회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축구를 잘 아는 축구인이 협회를 맡아야 한다. 사람 몇 명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또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2패 뒤 벨기에와 3차전에서 무승부를 거둔 건 선수들이 죽기 살기로 뛰어서 이뤄낸 성과다. 이번 독일전도 모든 경기 지표에서 뒤졌지만 선수들이 해낸 성과”라며 “독일전 승리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한국 축구가 환골탈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축구협회가 이 우산 속에 숨어 버린다면 한국 축구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호 사장은 “정 회장 주변에 ‘예스맨’ 대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현장 목소리가 전달돼야 한다”며 “또한 축구협회 수입과 지출을 깨끗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표 위원은 축구협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축구 전체의 혁명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위원은 멕시코와 2차전을 앞두고 “2014년 브라질월드컵 이후 모든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변해야 한다’고 했고, 축구계도 ‘변하겠다’ ‘바꾸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뒤로 4년이 지났는데 뭐가 변했고, 뭐가 바뀌었나. 더 두려운 건 4년 후에도 이 말을 또 반복할 거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러시아월드컵에서 좋은 경기를 펼친 약팀들의 공통점은 많이 뛰고 수비적으로 견고하다는 데 있다. 좋은 선수들이, 좋은 프로그램으로, 좋은 지도자들에게 축구를 배우면 잘할 수 있다”며 “답은 나와 있는데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아는데 안 하는 거다. 앎과 모름의 차이는 지식의 차이가 아니라 행동의 차이다. 행동하지 않는 앎은 모름”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축구협회만의 잘못은 아니다. 협회 안에 계신 분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 어떤 목적 없이 무조건 협회를 공격하는 사람도 있다”며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는 게 아니라 한국 축구가 뭔가 문제고 뭘 해야 하는지 본질적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위원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한국 축구는 혁명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지금 혁명을 해서 유스(youth)부터 적용하면 그 선수들이 자라는 시간까지 15년이 걸린다. 그런데 지금 안 하면 언제 하겠느냐. 100년, 200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지성 위원 역시 멕시코전 패배 후 “오늘 결과가 대한민국 축구의 현실이다.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4년 후에도 이런 패배는 거듭될 것이다. 선배로서 나 또한 책임감을 느낀다.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전 세계적으로 축구의 인기가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한국만 반대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K리그뿐 아니라 국가대표팀, 유소년 축구 등 모든 부분에서 전반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며 “단숨에 모든 걸 바꿀 순 없다. 결과적으로 축구인들이 힘을 합하고 희생하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정환 위원도 “독일을 잡았지만 16강에는 오르지 못했다. 세계 1위를 잡았다고 우리가 세계 1위가 된 건 아니다. 한국 축구는 독일을 꺾었듯이, 그동안 할 수 있는데 못했던 것일 뿐”이라며 “벼락치기로 월드컵에 나가는 건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힘을 합해 당장 탈락한 순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5. 팬과 언론도 성숙해져야 한다


▎한국 축구의 ‘영원한 야당’으로 불리는 신문선 명지대 교수.
한국 축구대표팀은 6월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일부 몰지각한 팬은 선수단을 향해 계란을 투척했다. 하마터면 손흥민이 맞을 뻔했다.

한국 선수들은 독일과의 3차전에서 118㎞를 달린 끝에 2대 0으로 승리했다. 월드컵 조별리그 48경기를 통틀어 가장 많이 뛴 기록이다. 한 독일팬은 독일 [키커] 기사에 ‘한국 대표팀이 귀국하는 자리에 계란이 날아들었다고? 그렇다면 한국에 패한 독일은 벽돌을 던져야 하나’라는 댓글을 남겼다.

대표팀 선수들은 대회 기간 일부 팬의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부진했던 중앙수비수 장현수(FC도쿄)와 스웨덴전에서 페널티킥을 내준 김민우(상주)는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일부 선수의 가족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해야 하는 일도 벌어졌다.

차범근 전 감독은 “이제는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비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차 전 감독은 “월드컵 시즌만 되면 매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경기를 하기도 전에 선수들은 엄청난 비난에 휩싸인다”며 “2002년 월드컵 전에도 히딩크 감독을 향해 얼마나 욕을 퍼부었나”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차 전 감독은 또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고 겁을 먹으면 몸이 굳고 경직되는데 스웨덴전이 딱 그랬다”며 “우리처럼 시작하기도 전에 욕을 먹고 기죽었던 팀이 어디 있나. 경기에 관한 비판이라면 수용할 수 있지만 누구도 가족까지 거론하면서 비난할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차 전 감독은 이어 “이제는 축구대표팀에 용기와 격려를 주는 분위기로 바뀌어야 할 때다. 한국 사회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안정환 위원은 “우리 국민들도 대표팀에 대해 애정이 있어서, 지는 게 싫어서 질타하는 거다. 대표팀이 이겨내야 하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다만 월드컵에서 지면 팀이 진 거고, 감독이 진 거고, 협회가 진 거고, 국민도 진 거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서 모두가 합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을 향한 아쉬운 목소리도 나왔다. 한 언론은 스웨덴과 1차전에서 장현수(도쿄)의 패스미스 여파로 박주호(울산)가 다쳤고, 김민우(상주)가 페널티킥을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비난 여론에 편승한 억측 기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신문선 교수는 “대표팀이 월드컵 직전 세네갈과의 평가전을 비공개로 했다. 월드컵 기간 훈련 대부분을 세트피스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대표팀을 향한 관심을 고조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며 “하지만 언론은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스포츠 산업이 아닌 경기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쓴소리했다.

- 모스크바·카잔(러시아)=박린 중앙일보 기자 rpark7@joongang.co.kr

201808호 (2018.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