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아시안게임 | 특별기획] ‘태극마크 총책임자’ 이재근 진천선수촌장 

“국가대표와 함께하는 세계적 명소로 만든다” 

글 정영재 중앙일보 스포츠 선임기자
건립 당시 일본 JNTC, 프랑스의 입셍 선수촌 참고해 설계…전 세계 어딜 가도 이보다 선수 지원 완벽하게 해주는 곳은 없어

▎이재근 진천선수촌장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진천선수촌의 규모·시설·비전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 촌장은 “선수촌을 국가대표 선수들과 어울리는 세계적인 스포츠 명소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진천선수촌 전 지역을 견학·체험의 공간으로 바꾸는 공원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꿈나무·생활체육인·저개발국 선수들과 공유하는 프로그램은 단계별로 시행 중입니다. 개촌(開村) 1년 만에 1만2000명이 다녀갔습니다. 모든 국민이 국가대표 선수들과 어울리는 세계적인 스포츠 명소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지난해 1월 부임한 이재근(68) 초대 진천선수촌장은 의욕에 넘쳤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선수촌 이전, 개촌식, 태릉선수촌 보존, 평창올림픽 경기력 향상이라는 4대 과제와 씨름했다. 하나씩 매듭이 지어지면서 그는 진천선수촌을 세계적인 스포츠 대공원으로 꾸미려는 계획을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다.

진천선수촌이 모델로 삼은 곳은 어디인가?

“미국은 생활체육 위주라 우리 콘셉트와 잘 맞지 않았다. 엘리트 선수를 육성하는 쪽은 일본·중국·프랑스가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JNTC(Japan National Training Center)와 프랑스의 입셍 선수촌을 많이 참고했다. 일본은 층별로 15개 종목을 분산 수용하며, 옆에는 스포츠 의학 시설이 붙어 있어 훈련과 임상·치료·재활 등을 한꺼번에 한다. 프랑스는 학교처럼 저층으로 꾸몄고, 학교는 아니지만 학점을 인정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종목 특징에 맞춰 공간을 재배치했다.”

전체 조성 경비와 1년 운영비 어느 정도인가?

“땅값과 토목·건설비, 집기 구입 등을 모두 합쳐 5130억원이 들었다. 1년 예산은 1000억원 정도다. 경상경비가 230억원이고 나머지는 선수 수당과 지도자 급여 등 강화훈련비로 나간다. 국가대표 선수뿐만 아니라 꿈나무 발굴, 청소년대표 후보 육성 등 엘리트 체육의 총체적 베이스를 떠받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건물 배치의 기준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훈련은 집중해서, 생활은 편리하게’다. 400m 트랙이 있는 육상장을 중심으로 집중훈련시설을 배치했고, 중심생활영역에 식당과 숙소, 메디컬 센터, 편의시설을 모았다.”

세계적으로 스포츠 내셔널리즘이 퇴조하는 추세인데 한국은 거꾸로 가는 건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스포츠의 근간이 엘리트 스포츠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나. 올림픽과 각종 국제대회를 통해 엘리트 선수들이 국격을 높이고 해외에 대한민국을 알렸다. 스포츠는 세계 공통 언어이고 어디에서도 통할 수 있는 무기다. 우리 엘리트 체육인들이 국민에게 준 감격과 환희와 결속·희열·감격·에너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그러나 추세는 엘리트에서 생활체육으로 넘어가고 있다.

“생활체육 인구와 규모가 점점 커지는 건 사실이다. 또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합쳐지면서 한정된 예산을 두 군데로 나눠야 하는 문제도 생겼다. 그러나 이제부터 엘리트 투자는 그만하고 생활체육으로 가자는 주장은 성급하다. 만약 올림픽 같은 데서 엘리트 스포츠가 추락하면 그 실망감과 허탈감은 엄청날 것이다. 일본이 1964년 도쿄올림픽이 끝난 뒤 생활체육으로 급선회했다가 엘리트의 몰락으로 큰 낭패를 봤다. 생활체육을 선도하는 건 역시 엘리트 스포츠다.”

이재근 선수촌장은 ‘선출’(선수 출신)이 아니다. 공무원으로서 경상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을 오래 맡았고, 전국시도체육회 사무처장협의회장도 역임했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을 밀어붙이던 2015년, ‘통합을 위한 통합은 반대한다’며 정부 안에 반기를 들었다.

당시 외로운 싸움을 함께한 사람이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이다. 그때 뜻이 맞았고, 이 회장의 신임을 얻어 초대 진천선수촌장의 중책을 맡게 됐다. 이 촌장은 “난 엘리트 출신은 아니지만 엘리트와 생활체육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한국 스포츠의 두 주체가 진천선수촌을 통해 윈-윈 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겠다”고 했다.

이 넓은 시설을 극소수 엘리트에게만 제공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이다. 태릉선수촌은 외부인을 통제했지만 진천에서는 엘리트와 생활체육의 시너지효과를 내야 한다. 대표선수들의 훈련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생활체육인에게 개방할 생각이다. 생활체육인과 꿈나무들이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체험코스, 견학코스 등을 꾸밀 계획이다.”

靑 대표 후보 등 꿈나무 발굴에도 역점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데 문제는 없나?

“그동안 국가대표는 열심히 훈련을 해서 메달을 따는 데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학습권이 우선이다. 교육법 시행령이 지난해 5월 개정돼 이동수업을 학점으로 인정하게 됐다. 이곳에 강의실을 만들어 대학생 선수들은 수·토요일 이동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문제는 중·고교생이다. 이들을 위해 인근 5개 학교(충북체고·광혜원 중-고·진천중·진천상고)에서 위탁교육을 하고 있다. 일반 학생과 함께 수업을 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는 등 다소간 어려움이 있지만 그걸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부 개인종목 선수 가운데는 국가대표 선수촌의 입촌을 꺼리는 이들도 있지 않나?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 선수촌처럼 영양·의무·트레이닝·장비 등에서 완벽한 지원을 해주는 곳은 없다. 수영 같은 개인종목에서 스폰서를 받는 선수는 굳이 안 들어와도 상관없다. 우리는 부담을 줄이고 유망주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다.”

이곳 선수촌을 공원처럼 꾸미겠다고 했는데.

“지난해 9월에 선수촌이 개촌됐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 태릉선수촌과 대비 면적은 5배, 수용 인원은 3배에 달하는 진천선수촌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모든 시스템을 전산화 자동화해야 한다. 이게 가장 시급한 일이다. 두 번째로는 개방에 따른 준비가 필요하다. 세계 최대 스포츠 대공원이라는 큰 그림이 성공하려면 그 안에 볼거리 즐길거리, 체험 콘텐트가 있어야 한다. 충청북도·진천군과 협력해 주변 환경 정비도 해야 한다. 논밭뿐인 선수촌 입구부터 가로수나 아치 등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서울이나 지방 대도시에서 오는 교통편과 도로망도 확충해야 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시설이 워낙 좋은데 국제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여지는 없는가?

“대회를 하려면 관중 수용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훈련용으로 지어져서 그럴 공간은 거의 없다. 이런 거대한 시설을 지으면서 관람석도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게 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만 국가대표 선발전 등 내부 대회는 계속 열린다.”

이 촌장은 “선수촌은 국가대표라는 원석을 뽑아 갈고 닦아 보석으로 만드는 가공공장이다. 태릉에 있든 진천으로 옮기든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더 친근하고 가보고 싶은 공간으로 다가서야 한다. 그 변화를 맨 앞에서 이끌겠다”고 말했다.

- 글 정영재 중앙일보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 사진 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201808호 (2018.07.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