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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차 한잔] 영화 '변산'으로 돌아온 ‘은교’ 김고은 

“체중 8㎏ 늘었지만 ㅠㅠ ‘연기 아름답다’는 말에 용기 얻었죠 ^^” 

고규대 영화평론가
2012년 [은교]로 신고식, 2016년 [도깨비]로 스타덤…이젠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인지 꼼꼼히 따져보고 작품 선택할래요!

배우 김고은(27)이 [변산]으로 돌아왔다. 2012년 [은교]로 데뷔했으니 어느덧 7년차다. 김고은은 주로 미성숙한 여자아이를 연기해 왔다. 하지만 [변산]에서는 ‘미완’의 상대를 품어 주는 인물로 변모했다. 월간중앙이 김고은과 만나 새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 못 다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2년 데뷔 시절의 김고은. 성숙미가 풍기는 지금과 비교해 보면 풋풋한 느낌을 준다.
"아웅~, 그렇게 부르지 마용~.”

볼에 바람을 불어넣더니 능청스럽게 웅얼거린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아직 해야 할 작품이 많다고 한다.

“요즘 신인 중 제2의 김고은으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는 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짧은 귀밑머리에 양손을 집어넣더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손사래를 친다.

“너무 고마운 말씀인데 그런 표현은 아니라고 봐요. 잉~ 부담스러워요. 얼마 전에 영화 [아가씨]를 봤는데 너무 훌륭한 동료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내친김에 “10년 후에 제2 김고은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면 괜찮겠느냐”고 되물었다. 이번에는 “제2라는 표현은 전설 같은 전도연 선배님에게 어울리는 표현이죠~”라며 말꼬리를 길게 뺐다.

김고은은 데뷔 7년 차 배우다. 2012년 영화 [은교]로 놀라운 신고식을 치른 뒤, 2016년엔 드라마 [도깨비]로 화려한 스타덤에 올랐다. 범죄 스릴러 영화 [몬스터](2014), [차이나타운](2015), [성난 변호사] (2015)와 [계춘할망](2016), 인기리에 방영된 [치즈인더트랩](2016), [도깨비](2016) 등이 대표작이다. 올해 7월에는 영화 [변산]으로 대중과 다시 만났다.

“정지우 감독(영화 [은교] 감독)님과는 여전히 관계가 잘 유지되는 것 같아요. [은교] 촬영할 때 감독님이 저를 잘 살펴주셨죠. 안은미 대표(영화 [은교] 제작자)님도 저를 가끔 궁금하세요. 아, 참 정지우 감독님하고 영화 [변산] 개봉 전에 밥 같이 먹었어요. 저도 일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도 많고, 그때그때 상태도 다르고…. 그럴 때마다 가족 같은 마음으로 대해 주시니 한결 마음이 안정돼요.”

파격 노출과 뛰어난 연기로 주목받은 데뷔작


▎2012년 데뷔작 [은교]로 화제를 모았던 배우 김고은이 이번에는 [변산]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김고은은 선미 역을 맡기 위해 8㎏이나 몸무게를 늘렸지만 “연기가 아름답다”는 감독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김고은은 2012년 영화 [은교]에서 순수하면서 발칙한 여고생의 타이틀롤(Title Role) 한은교 역할을 맡아 주목받았다. 순수한 외양과 함께 두 남자 사이에서 파격적인 노출과 뛰어난 연기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은교] 스태프 가운데 학교 선배의 소개로 정지우 감독을 만나러 갔다. 간단하게 대사 한마디 준비해서 갔을 뿐이었다. 그게 김고은의 첫 오디션이자 생애 가장 큰 오디션이 됐다.

김고은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감독님이(영화 출연을) 하자고 하면 할 거냐고 물어보시기에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면서 “파격적인 부분들 때문에 마음의 결정을 못했는데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고 하시더라”고 했다. 김고은은 또 “그 후에 감독님께 ‘무엇 때문에 제게 확신이 드셨느냐’고 물었더니 호기심이 많아 보였다고 하셨다”고 회상했다.

김고은은 이 한 편의 영화로 단박에 충무로의 주목받는 스타가 됐다. 제49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신인여우상 후보에 올라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제21회 부일영화상, 제3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제13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제33회 청룡영화상, 제4회 올해의 영화상 등 신인배우상을 받았다.

[은교]의 정지우 감독을 만났을 때는 오디션이 전부 끝난 뒤였다. 300명이 넘는 ‘은교 후보’를 만났지만 꼭 맞는 배우를 찾지 못했던 정 감독은 뒤늦게 김고은을 보자 단 하루 만에 마음을 굳혔다. 정지우 감독은 자신이 영화 속에서 ‘이렇게 그려졌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던 은교의 이미지와 김고은의 이미자가 맞아떨어져 캐스팅했다고 했다.

김고은의 학교 선배인 장모씨가 우연히 학교 후배들이 하는 연극을 보다 김고은을 눈여겨보게 됐고, 영화 [은교] 오디션에 그를 추천했다. 김고은은 캐스팅된 후 장씨가 운영하는 소속사와 계약을 맺고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은교]는 소설가 박범신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전국적 명성을 가진 70대 원로시인 이적요(박해일 분)와 그의 제자 서지우(김무열 분)가 순수한 미소와 묘한 관능미를 지닌 17세 여고생 은교를 사이에 놓고 갈등에 빠진다는 치정(癡情) 멜로극이다.

“편안하고 싶다면 연기하지 말아야”


▎[변산] 스틸컷 속 선미 역의 배우 김고은.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김고은은 전라 노출은 물론이고 이적요의 제자 서지우(김무열 분)와의 파격적인 정사신 등을 소화해야 했다. 당시 김고은의 나이 21세였다. 막상 출연을 결정했지만 베드신 때문에 아버지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은교] 시나리오를 받아 든 아버지가 영화 속 설정을 보고 “출연 안 된다”며 방으로 확 들어가는 바람에 무산되나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20분 정도 지난 후 방에서 나온 아버지는 소설 속 이미지가 어울리는 것 같다며 어렵게 출연을 허락했다. 김고은은 “아빠가 얼굴에 그늘이 진 채로 나오시더니 ‘해도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나중에) 아빠가 [은교]를 책으로 읽었을 때 내가 떠올랐던 적이 있었다고 하시더라”고 기억했다.

“그 순간의 감정을 선택하는 게 연기 같아요. 사실 편안함을 선택한 적은 없어요. 음, 아마 편안한 작품은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편안하고 싶다면 연기를 하지 말아야죠. 최근에는 유쾌한 분위기를 현장에서도 많이 느끼고 있어요.”

김고은은 1991년 7월 2일 서울 태생으로 한 살 많은 오빠가 있다. ‘고은’이라는 이름은 이름처럼 곱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김고은은 4세 때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 등에서 10년가량을 살았다.

그 덕분에 중국어에 능통하다. 어릴 적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영상을 접하게 됐다. 그런 인연으로 시나리오 작가 등 영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안고 계원예술고교에 진학했다. 예고 재학 중 교사의 권유로 연극에 출연하면서 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에 입학하게 됐다.

김고은은 [은교]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베드신 등 연기의 본질보다 다른 부분에 집중된 탓인지 잠시 공백기간을 가졌다. 김고은은 [은교]를 촬영하느라 잠시 휴학했던 학교로 복학했다. 동기들과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단편영화를 함께 찍으면서 여느 연기과 학생과 다름없이 2년을 보냈다.

김고은은 2014년 영화 [몬스터]로 스크린에 복귀할 당시의 인터뷰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연기할 때 즐기면서 하자는 것이다. [은교] 때는 힘들었던 기억이 안 났다. 마냥 행복하게 즐기면서 했는데 [은교]가 끝나고 ‘아, 지금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잠시 슬럼프 거쳐 '치즈인더트랩'에서 연기 변신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홍이 역을 맡은 김고은. / 사진:전소윤(STUDIO 706)
“학창시절의 저와 달라진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쉬운 과정만 따라간다면 누군가 내 자리를 잡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요. 영화 [변산]의 선미를 보면 고교 시절에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잖아요. 하지만 성인이 돼서 작가이자 공무원이 되죠. 아마 여러 가지 사건, 여러 가지 생활을 겪으면서 선미라는 아이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요? 저 역시 성장하면서 그런 과정을 겪었다고 봐야겠죠.”

김고은은 [은교] 이후 복귀작인 범죄 스릴러 영화 [몬스터]에 출연하는 등 여전히 만만치 않은 캐릭터를 주로 소화했다. 영화 [차이나타운]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지하철 보관함 10호에 버려져 차이나타운의 실질적 지배자이자 모두에게 ‘엄마’라 불리는 보스(김혜수)에 의해 범죄조직의 일원으로 길러지는 일영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제54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공식 스크리닝에 초청을 받았고 김고은은 칸 레드카펫을 처음 밟았다. 또 같은 해 개봉된 사극 무협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는 롤모델로 꼽아왔던 전도연과 출연했다. 영화 [성난 변호사]에서는 신입 검사 진선민 역을 맡았다.

그럼에도 김고은은 [은교] 이후 빅 히트작은 없었다. 줄곧 스크린에서 무겁거나 독특한 인물을 연기했다. 김고은은 2016년 초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을 시작으로 변화를 꾀한다. 김고은은 영화 [계춘할망]으로 친근한 캐릭터를 이어가더니 로맨스가 중심이 된 [도깨비]로 ‘퀀텀점프(대약진)’에 성공한다.

로맨스가 중심이 된 [도깨비]는 김고은의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한 매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당시 [상속자들] 등 내놓는 작품마다 성공 신화를 써 국내 최고의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은숙 작가가 김고은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됐다.

김고은은 여주인공 지은탁 역에 캐스팅돼 공유·이동욱 등 남자 스타들과 호흡을 맞췄다. 이 드라마에서 김고은은 슬픈 운명을 타고난데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주변을 밝히는 긍정형 캐릭터 지은탁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 20.5%(닐슨유료플랫폼 기준)를 기록했고,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김고은은 제5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남다른 의미였던 작품이 [도깨비]였죠. 돌이켜보면 김은숙 작가님과 공유 선배님을 따라가기만 했던 게 아닌가 싶어 감사해요. 그 덕분에 대중적 인지도를 얻게 됐죠. 대신 책임감이 생기게 된 거 같아요. 김고은이라는 배우를 더 많은 분들이 많은 알게 되셨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배우로, 인간으로 책임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김고은은 7월 초 개봉된 영화 [변산]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 영화는 도통 되는 일이 하나 없는 무명 래퍼 학수(박정민)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고향 변산으로 돌아가 초등학교 동창 선미(김고은)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욕심난다고 다 할 수는 없어”


▎데뷔 7년차인 김고은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욕심난다고 무조건 다할 수는 없다. 캐릭터의 소화 여부를 꼼꼼히 따져보겠다”고 말했다.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극중 선미는 고등학교 때는 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부족한 소녀였다 천천히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당찬 캐릭터다.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학수의 말에 변산의 노을을 모티브로 사랑에 대해 쓴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영화는 학수의 고향·아버지·자아를 찾는 흐름으로 이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 선미의 성장기를 다루기도 한다.

“선미가 멋진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친구가 하는 말들이 돌직구가 아닌데도 듣고 보면 직언이더라고요. 말을 돌려서 하는 선미의 성격상, 그 한마디에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던 거 같아요. 원래 혼자 생각하고, 삭히고, 글로 표현하는 인물인데 소중했던 첫사랑을 위해 노력한 거죠. 관객들 역시 어른스럽다고 받아들일 것 같다고 저를 받아들일 거 같아요.”

영화 [변산]을 촬영하기 위해 8㎏ 가까이 살을 찌우기도 했다. 화면으로 살찐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 이준익 감독님이 그 모습을 보고 ‘연기가 아름다워’라는 말을 해줬는데, 그 말에 용기를 얻고 그 뒤로 신경 안 썼다고 눙쳤다.

“그래도 다이어트를 두 달 가까이 하느라 고생했어요. 원래 살이 안 찌는 체질이기는 했지만 먹고 싶은 걸 참는 건 진짜 우울했어요. 어떤 때는 먹고 싶은 음식 사진을 보면서 잠든 적도 있다니까요(웃음).”

김고은은 어느덧 한 작품을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이 됐다. 자기가 현장을 아우르는 역할을 해내는 게 책임감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많은 스태프 등 제작진이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신경을 쓰는 게 버거울 수도 있다. 영화 [차이나 타운] 촬영 당시 전부는 아니어도 중요한 역할을 맡은 덕분에 그 스트레스를 알게 됐다.

“그동안 선배들이 계셔서 혼자서 짊어진 건 아니었지만, 주요한 롤을 맡았을 때 제가 겪었던 압박·스트레스가 있었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최대한 많이 덜어주려고 신경 많이 썼어요.”

김고은은 인터뷰 내내 영화 연기를 하는 것처럼 갖가지 표정을 지었다. ENG카메라 앞에 서는 건 편해도 스틸 카메라 앞에서 표정 짓는 건 어렵다며 입을 삐죽 모으기도 했다. 가끔 쑥스러운 듯 손가락을 배배 꼬기도 하고, 가끔 진지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고 말을 꺼내기도 했다.

“저는 모든 촬영장을 다 사랑합니다.”

인터뷰 도중 툭 내뱉은 김고은의 말에서 단단한 연기 욕심을 엿볼 수 있었다. 김고은은 이제 작품을 선택하는데 시나리오·감독·배우 등 주변 여건만큼 신경 쓰는 게 있다. 바로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인지 표현이 가능한 캐릭터인지 따져본다.

“욕심난다고 해서 무조건 다 할 수 없지 않나요? 어느 시기에 표현하고 싶고, 갈증을 느끼는 감성들이 있을 텐데 그거에 맞게 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고규대 영화평론가, 이데일리 연예전문기자 bluuee@hanmail.net

201808호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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