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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이슈] 방송계 스테디셀러 ‘먹방’ ‘쿡방’의 사회심리학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허기 달랜다 

이은주 서울신문 기자
음식은 ‘소확행’의 아이콘이자 흥행의 보증수표… 1인 가족, ‘혼밥’ 느는 추세에 ‘사람 사는 냄새’에 대한 그리움

▎사람은 누구나 가족이라는 따뜻한 콘셉트로 시청자들에 어필하는 JTBC [한끼줍쇼].
30대 회사원 김연지씨는 요즘 이영자의 ‘먹방’(먹는 방송)에 푹 빠졌다. 매번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만 실패하는 그녀에게 이영자의 먹방은 알 수 없는 해방감을 안겨준다. TV에는 허리 사이즈가 한 줌도 채 되지 않는 여배우들이 왔다갔다하고, 세상은 그들의 기준에 맞춰 평가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마치 차량의 내비게이션처럼 전국 방방곡곡의 맛집을 찾아 다니는 ‘맛비게이션’ 이영자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인생 뭐 있냐? 마음 편하게 맛있는 것 먹는 게 행복이지”라는 외칠 때 묘한 통쾌함을 느낀다.

연지씨가 ‘먹방’에 빠진 것은 5~6년 전쯤이다. 인터넷 유튜브에서 다이어트 때문에 평소 엄두도 못 내는 고칼로리 음식을 먹고 또 먹는 이들의 ‘먹방’을 신기하게 바라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파 TV에도 ‘먹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먹방’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마다 그녀의 엄마는 “쯧쯧. 실 없게스리 왜 남이 먹는 걸 보고 있느냐”며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하지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이후로 TV에서 수많은 ‘먹방’이 앞다퉈 등장해 그녀의 눈과 귀는 물론 허기진 마음까지 맛있게 채워줬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먹는 것으로는 성이 안 찼는지 음식을 만드는 과정까지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국경을 초월한 미남 셰프들까지 등장해 형형색색의 재료들로 환상적인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의 취향 저격이다. 주변에 ‘동지’들이 점점 늘어나는 듯하다. 어느새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외국인들의 ‘한식 먹방’까지 보여주는 프로그램(tvN ‘윤식당’)까지 생겨났다. 어느새 ‘먹방’, ‘쿡방’은 기본 시청률을 보장하는 방송계의 ‘흥행 불패’ 아이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것이다.

누구보다 스마트하고 논리적인 당신, 혹시 TV 속 ‘먹방’이 나오면 돌리던 채널을 잠시 멈추고 TV에 시선을 고정하게 되는가. 이것은 결코 창피해하거나 숨길 일이 아니다. 먹는 행위야 말로 생존을 위한 가장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행위다. 하지만 우리는 어찌된 일인지 마음 편하게 밥 한 끼 먹기가 쉽지 않다.

아침엔 출근 시간에 떠밀려 굶기가 일쑤이고, 점심 때 회사 상사와 일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불편해 아무리 비싼 밥이라도 그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 퇴근 후 집에서 반찬이 몇 가지 없어도 고추장에 쓱쓱 비벼먹을 때 그제야 한 끼를 제대로 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무지 무언가를 먹기 어렵다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밥을 먹는 것은 자신의 현재 심리와 직결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안부를 물을 때 “식사는 하셨느냐”는 말로 갈음하기도 한다.

이처럼 ‘먹방’과 ‘쿡방’이 인기가 높은 것은 사람들의 정신적 허기를 달래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실제로 음식을 먹지 않아도 ‘먹방’을 보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사실 ‘먹방’은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과 가장 관련이 높다. 늘 시간에 쫓기고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은 현대인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업을 중단하고 바로 며칠씩 휴가를 내고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대신 ‘가성비’를 따져봤을 때 가장 짧은 시간에 확실한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마음 편하게 맛있는 음식을 한 끼 먹는 것이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이영자의 ‘먹방’이 인기를 모은 이유도 전국의 휴게소나 동네의 숨겨진 맛집 등 맛있게 한 끼를 먹고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유용한 맛집 정보를 알려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영자가 전국의 휴게소를 투어하며 직접 먹어보고 그 맛을 입증한 서울 만남의 광장의 말죽거리 소고기 국밥, 안성휴게소의 소떡소떡(소시지+떡꼬치 구이)과 맥반석 오징어, 서산 휴게소의 어리굴젓 백반, 강릉 휴게소의 알감자, 보성 녹차 휴게소의 꼬막 비빔밥 등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그녀가 언급된 휴게소 음식의 판매율이 200% 급증할 정도다. 그 결과 이영자에게는 ‘휴게소 완판녀’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영자 휴게소 맛집 리스트는 여행 필수 아이템이 됐고 한국도로공사 휴게소 팀장은 직접 이영자에게 감사 인사까지 전했다. 뿐만 이영자의 아껴둔 맛집을 소개하는 ‘이영자의 맛집 지도’도 인터넷 상에서 화제를 모았다.

밥 먹는 것은 자신의 현재 심리와 직결돼


▎방송인 이영자가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김치만두로 아로마 세라피를 하고 있다. / 사진:MBC
특히 경기 불황이 심해지면서 ‘먹방’과 ‘쿡방’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외식을 할 때는 가성비 좋은 맛집을 찾아 다니고 주말에는 집에 있는 재료로 맛있는 ‘집밥’을 만드는데 관심이 쏠린 것이다. 외식비를 지출하기 보다는 집에서 맛과 영양을 갖춘 음식을 만드는 ‘쿡방’은 몇 년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 불황일 때는 불안감으로 인해 의식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경제적으로 끼니도 해결하고 색다른 취미 활동의 하나로 요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이와 동시에 주부들 사이에는 냉장고 속 식재료를 버리지 않고 음식을 만드는 ‘냉장고 파먹기’가 유행했고, 이를 활용한 프로그램이 바로 JTBC [냉장고를 부탁해]다. 이 프로그램은 스타들의 냉장고를 직접 스튜디오에 공수해 유명 셰프들이 조리하는 방법을 대결 구도로 보여준다. 흔히 집에 있는 재료들도 셰프의 손을 거치면 훌륭한 레스토랑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공감대를 얻었다. 이 프로그램은 5% 안팎의 꾸준한 시청률을 보이며 2014년 11월부터 4년 가까이 장수하고 있다.

집에서도 충분히 외식 못지않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로 성공한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 바로 [집밥 백선생]이다. 이 프로그램의 카피는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에 누구나 집에서 쉽게 요리를 할 수 있는 생활밀착 예능프로그램’이다. 외식 창업의 대가 백종원은 이 프로그램에서 누구나 집밥을 갖고 맛집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만능 간장’ ‘만능춘장’의 레시피를 공개해 공감을 얻었다. 찬밥, 신김치, 명절 음식 등 집밥을 활용하는 백선생의 요리법은 인기를 모았고 시즌 3까지 방송됐다.

다이어트 강박으로부터의 해방


▎tvN 먹방 프로그램 [윤식당]은 외국인들까지 등장시킨다.
[집밥 백선생] 시즌 2를 연출했던 tvN 고민구 CP는 “삶이 팍팍해지고 사는 게 어려워지면서 취직해서 돈 모아 집을 사는 거시적인 목표에 매달리기보다 작은 데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면서 “보여주기식 쿡방이 아니라 실제 조리 시간과 동일하게 속도를 맞춰 시청자들이 누구나 쉽게 따라 하도록 하는 것이 [집밥 백선생]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시달리는 게 바로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다. 특히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보는 것이 바로 다이어트지만 성공을 했다고 하더라도 요요 현상으로 다시 살이 찔 것 같은 두려움, 실패했을 때의 위축감 등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문에 다이어트를 할 때 마음껏 먹지 못하는 데 대리만족이라고 느끼고 싶어서 ‘먹방’을 본다는 여성들이 은근히 많다. 최근 또다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는 학원 강사 김모씨는 “다이어트를 할 때 대리 만족을 느끼기 위해 먹고 싶은 음식을 남동생이 대신 먹도록 하고 그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리 ‘먹방’의 경우는 먹는 소리까지도 중요하다. 최근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개그맨 표인봉의 딸 표바하는 다이어트를 위해 아빠가 치킨을 먹는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 영상을 정성 들여 녹화해 화제가 됐다. 바하는 아빠가 바삭바삭한 치킨 껍질을 먹는 소리를 중점적으로 담았다. 이유는 “허기가 질 때마다 영상을 보면서 배고픔을 잊기 위해서”였다.

현재 ‘먹방’의 인기를 불러온 인터넷 ‘먹방’은 이런 현대인들의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 불러온 하나의 현상이다. 1인 방송 플랫폼 아프리카 TV에는 먹방 채널만 약 1만5000개가 넘는다. 밴쯔, 입짧은햇님 등 인기 BJ들은 지상파 TV에도 진출하는 스타가 됐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대신’ 먹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 한 끼에 피자 1~2판, 3~4인용 중국집 세트는 혼자 너끈히 먹는 이들의 식비는 한 달에 대략 300만~500만원가량에 달한다. 이들이 먹방을 하는 동안 방송 시청자들은 실시간으로 대화창에 “다이어트 때문에 힘든데 이런 음식을 대신 먹어 달라”, “지금 병원에서 있어서 몸이 아픈데 이런 음식을 먹고 싶다” 등 각종 고민과 훈수를 쏟아낸다.

또 최근에는 ‘탈코르셋 운동’과 함께 ‘먹방’을 보면서 다이어트에 대한 해방감을 느낀다는 이들이 많다. ‘탈코르셋 운동’은 사회에서 ‘여성스럽다’고 정의해 온 것들을 거부하는 움직임으로 짙은 화장이나 과도한 다이어트 등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회에서 마른 몸매의 여성이 되기를 강요하는데 따라 부자연스럽게 식욕을 억제하고 살을 빼는 데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남과의 비교 때문에 억지로 살을 빼기 보다는 스스로 느끼는 행복감과 ‘잘 먹고 건강하게’ 사는 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늘었다. 이영자의 먹방이 인기를 끈 것도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을 비트는 해학과 재미에 그 이유가 있다. “한 번 본 사람은 잊어도 한 번 먹은 음식은 못 잊는다”, “1일 1식은 병원 갔을 때나 하는 것”, “첫 입은 설레고 마지막 입은 그립다”, “식탐은 있고 시간은 없다”는 재치 있는 ‘맛 어록’을 쉬지 않고 발사한다.

음식으로 함께하는 희로애락


▎JTBC [냉장고를 부탁해]는 꾸준한 시청률과 함께 장수프로그램 반열에 들었다.
다이어트에 지친 시청자들이 사랑하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 바로 코미디TV의 [맛있는 녀석들]이다. 2015년부터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먹방’의 원조로서 케이블TV에서 방송됨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못지않은 입소문으로 장수하고 있다. 개그맨 유민상, 김준현, 김민경, 문세윤 등이 먹는 모습에 병원에서 입맛이 없어진 이들이 식욕을 되찾았다는 소감도 잇따른다.

김준현은 “제일 무서운 맛은? 내가 아는 맛”, “고기 먹다 체하면 냉면으로 쑥 눌러줘라”, “케첩은 지우개를 찍어 먹어도 맛있고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 등의 코믹한 어록으로 시청자들의 입맛을 돋운다.

CJ E&M 방송 부문 김지영 홍보부장은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먹방과 쿡방은 일종의 정신적인 해방구”라고 말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도 ‘먹방’과 ‘쿡방’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경쟁 논리와 물질 만능주의에 지친 한국인에게 먹방과 쿡방은 허울이나 형식을 떠나 소박하고 편안함 속에 인간의 기본적인 ‘먹는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면서 진짜 행복을 추구하려는 심리와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코믹한 어록으로 시청자들의 입맛을 돋우는 코미디TV의 [맛있는 녀석들]. / 사진:[맛있는 녀석들]유튜브 캡처
‘먹방’이 인기를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본래 ‘식구’라는 말은 밥을 같이 나눠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요즘은 핵가족화 및 가족의 해체로 인해 식구가 함께 모여 밥을 먹는 것은 경우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식구끼리 밥을 먹는 것이 일상이지만 이제는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일종의 ‘행사’가 됐다.

특히 최근에는 1인 가구가 늘고 ‘혼밥족’이 늘어나면서 외로워진 현대인들이 누군가와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올리브TV의 [밥블레스유]가 요즘 방송가 최고의 ‘먹방’ 프로그램으로 떠오른 이유도 단순히 ‘먹방’뿐만 아니라 10년이 넘는 그들의 사골 국물처럼 오래된 우정이 기본이 됐기 때문이다.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 김숙 등 연예계 4인의 절친이 꾸미는 이 프로그램은 음식을 먹으면서 시청자들의 고민도 함께 풀어준다. 시청자들은 전 남자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받으려 연락했다가 오히려 욕만 먹었다는 사연, 수지 닮았다고 말하는 친언니 때문에 민망한 동생, 7년간의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첫 끼를 앞둔 사연 등 절친한 친구 사이에나 털어놓을 수 있는 사소하지만 예민한 고민거리가 답지한다.

이 프로그램은 요즘 남성 예능 위주의 방송가에서도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밥블레스유] [서울메이트] 등 인기 예능을 제작하는 박상혁 올리브TV CP는 “여자 예능은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불협화음이 나는 경우가 많은데 [밥블레스유]를 보면 네 명의 절친한 그들의 내밀한 속내와 숨겨진 역학 관계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 CP는 “[서울메이트]의 경우도 외국인 출연자가 한국 음식을 어울려 먹는 장면이 나올 경우는 시청률이 두 배 가까이 뛸 정도로 음식을 통해 소통하는 데 대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먹방’이 주는 관계에 주목해 성공을 거둔 또 하나의 프로그램은 바로 JTBC [한끼줍쇼]다. MC 강호동과 이경규가 숟가락을 들고 무작정 어느 동네의 초인종을 눌러 한 끼를 함께 하는 이 프로그램은 처음에는 사생활 침해 논란 등을 빚었다. 하지만 ‘한 끼’를 함께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족이라는 따뜻한 콘셉트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성공했다. MC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의 식탁에서 음식을 함께 나누며 삶에 얽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찾아 가는 ‘먹방’과 집밥이 주는 푸근함을 결합한 콘셉트가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음식은 평등…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


▎시청자들의 고민도 함께 풀어주는 올리브TV의 [밥블레스유].
사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혼밥’, ‘혼술’의 시대에 음식을 통한 소통은 예능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각종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도 인기를 모았다.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는 1인 가구의 외로움을 달래는 맛깔스러운 음식 ‘먹방’으로 시즌2까지 방송되며 공감을 자아냈다. 먹방을 드라마 소재로 적용한 대표적인 이 작품은 익숙한 음식들을 극 전개 속에 녹여내며 보는 재미를 더한다. tvN [혼술남녀]도 서로 다른 이유로 혼술하는 청춘들의 고민을 그려 주목을 받았다.

일본 영화 [심야식당1]은 지난 2015년 국내에서 개봉해 13만 명을 동원하며 인기를 모았고 지난해에는 시즌2도 개봉했다. 국내에서는 김승우 주연 [궁]의 황인뢰 감독이 연출한 20부작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심야식당]은 음식을 통해 위로받고 새로운 인연을 이어 가는 소시민의 삶을 소탈하게 그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음식을 통한 위로와 관계의 형성은 국내외를 막론한 보편적인 소재인 셈이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하루 세 끼 음식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소재”라면서 “음식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함께 요리하는 과정을 통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문화 속 ‘먹방’과 ‘쿡방’의 인기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고도 압축성장 시대에는 밥 먹는 것은 ‘끼니’를 때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식사 시간을 여유 있게 가지는 것은 일종의 사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주 5일제의 정착 등으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음식이 주는 근본적인 치유력에 집중하는 이들이 늘었다. 또한 바쁜 생활 속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가장 근본적이고 단순한 과정이 주는 여유를 즐기는 이들이 생겨났다.

음식이 주는 치유에 가장 먼저 주목한 이는 바로 나영석 PD다. 그는 한적한 시골에서 자급자족한 유기농 음식들로 하루 세 끼 식사를 하는 [삼시세끼] 시리즈로 돌풍을 일으켰다. 삭막한 도시 생활에서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린 이들이 농촌에서 나는 작물과 어촌에서 직접 잡은 생선으로 식사를 조리하는 과정은 도시인들에게 일종의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늘 자신을 시골 출신이라고 밝혀온 나PD는 “도시적인 남자들이 자연의 시간에 맞춰 생활하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할 것”이라면서 “도시의 삶에 찌든 사람들에게 씨를 뿌려서 밥을 해먹는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판타지”라고 말했다. 사실 직접 농사를 지어 재배한 식재료로 밥을 해먹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은 금요일 밤마다 이들의 ‘슬로 라이프’를 통해 얻어진 건강한 음식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다.

이처럼 음식은 사람의 다치고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지닌다. 지난 2월에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교사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여주인공 혜원(김태리)은 갑자기 엄마와 함께 살던 시골집에 내려온다. 내려온 이유를 묻는 친구의 질문에 혜원은 “배고파서”라고 답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혜원은 밤조림, 오이채 콩국수, 양배추 오코노미야키 등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직접 해 먹으면서 도시 생활에서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한다. 또한 음식으로 엄마의 따뜻한 마음을 추억하고 자신을 떠난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한다.

음식이 주는 근본 치유력에 집중


▎tvN의 [수미네 반찬]은 엄마의 손맛을 내세운 프로그램이다. / 사진:tvN
이역만리 해외에서 진수성찬을 맛봐도 가장 질리지 않고, 가장 힘이 되는 것이 바로 엄마의 음식, 집밥이다. 그 속에는 엄마의 정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쿡방’으로 가장 인기를 모으는 [수미네 반찬]의 김수미는 바로 그런 엄마의 손맛을 내세운 프로그램이다. 김수미표 ‘쿡방’에는 정확한 계량한 레시피도 나오지 않는다. ‘는둥만둥’ ‘노골노골’ ‘자박자박’ 등 그녀만의 언어가 있을 뿐이다. 김수미는 “엄마가 열여덟 살 때 돌아가셨는데 직접 요리를 배운 적이 없다. 엄마 손맛을 기억하면서 요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입덧이 심할 때 엄마표 풀치 조림을 먹었다”며 자신의 요리에 얽힌 사연을 소개한다.

이처럼 음식은 만들어주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사람마다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최근 ‘쿡방’은 전통적인 오랜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허무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남성 셰프들이 인기를 끌면서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라는 용어가 나오는 등 요리하는 남자가 사회적으로 각광을 받았기 때문.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요리는 여성의 전유물이었지만 쿡방은 남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 놓고 있다. 이처럼 쿡방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면서 가부장적인 남성상이 점차 힘을 받지 못하는 사회적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 지상파 예능국 PD는 “요리 잘하는 여자, 요리 못하는 남자는 재미없지만 그 반대가 되면 신선함과 의외성 때문에 예능이나 드라마 소재로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요리 잘하는 미남 셰프의 등장에 연령에 상관없이 여성 시청자들은 환호했고, 양성평등에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젊은 남성들에게 셰프는 따라하고 싶은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선영씨는 “전통적인 여성이 영역에 새롭게 진출한 남성들에 대해 대중이 신선함을 느끼는 것”이라면서 “남을 위해서 요리를 하는 모습은 친근함과 로맨틱한 이미지를 주기도 하지만 자기 관리를 잘한다는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쿡방은 ‘솥뚜껑 운전’이라고 폄하됐던 요리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고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변화시켰다. 여성들의 사회적인 지위가 올라가면서 요리하는 남성에 대한 판타지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에 tvN [오 나의 귀신님], MBC [맨도롱 또똣], SBS [기름진 멜로] 등 셰프를 남자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이처럼 음식은 단순히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채우고 건강하게 하는 존재다. 음식을 먹는 행위를 통해 세상에서 상처받은 스트레스를 달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발전시키고, 때로는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해준 음식으로 마음의 안식과 위로를 얻는다. 음식을 먹는 것과 해준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 영혼과 직결된 일이다. 음식만 건강하고 즐겁게 먹어도, 또 그런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오늘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안부 대신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오늘 누구와 함께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 이은주 서울신문 기자 erin823@naver.com

201808호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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