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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사랑학 개론(9)] 니체의 ‘아포리즘’ 

“연애결혼의 아버지는 실수요, 어머니는 필요다”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사랑하는 사람보다 말 잘 통하는 사람과 결혼하라…고독은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돼

▎정통 멜로 연극 [멜로드라마]에서 키스 신을 선보이고 있는 배우 박원상(오른쪽)과 전수경. 결혼 10년차 부부를 비롯한 다섯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파격적인 소재와 치밀한 구성으로 풀어 나갔다.
사랑의 성공 가능성을 수치화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물론, 사랑과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가 결혼을 ‘사랑이 성공한 결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결혼이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결혼을 사랑과 연결해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사랑=섹스’라는 등식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아무리 결혼 후 집안이 두루두루 화평하고, 애들 건강하고 훌륭하게 잘 커도 부부 사이에 ‘사랑=섹스’ 문제가 있으면 뭔가 빈 것 같다. 섹스를 유일 기준으로 삼아 부부 유형을 분류한다면, 네 종류다. 섹스도 있다. 섹스만 있다. 섹스만 없다. 섹스도 없다.

우리는 사랑에도 종류가 있다고 배웠다. 서양식 분류에 따르면 에로스·스토르게·필리아·아가페가 있다. 에로스만 사랑이 아니다. 스토르게도 필리아도 아가페도 사랑이다.

동서양은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다. 서양의 필리아에 해당하는 것은 우정(友情)이다. 우정도 사랑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우정은 “친구 사이의 정(情)”이다. 그렇다면 정(情)은 또 무엇인가?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다. 정(情) 또한 에로스·섹스 못지않은 사랑의 한 유형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사랑은 없는데 그놈의 정 때문에 산다’는 말은 잘못됐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정도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 정이란, 우정이란 어떤 의미인가. 또 부부간 우정의 핵심은 무엇인가?

프랑스 문호 앙드레 모루아(1885~1967)는 행복한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행복한 결혼은 항상 너무 짧은 듯한 긴 대화다.”(모루아는 조건을 보고 중매결혼한 사람은 결혼 후 사랑을 확보해야 하고, 연애결혼한 사람은 결혼 후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루아의 대선배인, 독일 철학자·시인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또한 ‘대화’를 행복한 결혼의 핵심으로 이해했다.

“그 무엇이든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우상의 황혼])고 말한 니체가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24세에 스위스 바젤대 교수가 됐지만, 건강 악화로 유럽 각지를 떠돌았다. 생전에 11권이나 되는 책을 출간했으나 팔린 부수는 500권 남짓이었다. 어릴적부터 약골이라 평생 두통·복통·눈 질환에 시달렸다. 1889년 1월 3일 완전히 실성해 정신병원에 수용됐다. 실성한 이후 11년을 더 살았다. 광인이 된 니체는 자신이 유명해진 것도 몰랐다.

100년 앞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랑과 결혼을 고민


▎1. 에드바르트 뭉크가 1906년에 그린 프리드리히 니체 초상화. / 2. [사랑과 미움의 아포리즘] 표지. / 3. [니체의 말] 표지.
행복을 따지는 것에 대해 그는 분노할지도 모른다. 그의 관심은 개인적 행복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의 탄생에 기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 너무 일찍 나온 ‘포스트모던 철학자’였다. ‘가장 오해받는 철학자’라 불리는 니체는 자신의 사상이 한 100년 후에야 제대로 이해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니체 하면, 우리는 초인(超人),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죽었다’를 떠올리게 된다. 니체는 위버멘시(Ubermensch) 관념을 전개했다. 한자어로는 초인(超人)이다. 초인은 “기성 도덕을 부정하고 민중을 지배하는 권력을 행사하면서, 자기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실현한 이상적인 인간”이다. 위버멘시는 영어로 수퍼맨(superman)이나 오버맨(overman)이 된다. 공자의 군자(君子) 또한 수퍼맨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공자와 니체는 시공을 초월해 둘 다 ‘업그레이드’된 인간이 만드는 보다 좋은 세상을 꿈꿨다.

니체는 다른 대가(大家)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주제·문제에 대해 우리가 귀담아들을 만한 한 말씀을 남겼다. 사랑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니체가 사랑을 단일 주제로 삼은 책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저작에서 사랑에 관한 것들만 뽑아 책을 만들 수 있다. 예컨대 [Aphorisms on Love and Hate(사랑과 미움의 아포리즘)]는 니체의 저작 중에서 사랑과 미움에 대한 것들만 뽑았다.

니체의 사랑관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즐거운 학문]도 권할 만하다. 니체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즐거운 학문]에 나오는 아포리즘의 향연을 통해 사랑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재구성할 수 있다.

[니체의 말] [니체의 말 II]는 니체가 한 말 중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 연관성 높은 이야기들만 따로 추린 책이다. 이 두 책은 초역(抄譯), 즉 “원문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뽑아서 번역함”의 산물이다. 두 책 모두 사랑을 별도 항목으로 제시한다.

‘개똥 철학자·페이스북 철학자’들의 대선배?


▎사진작가 구스타프아돌프 슐체가 1882년에 찍은 니체 사진.
이러한 텍스트를 통해 재발견하는 니체의 모습은 우리의 통념과 사뭇 거리가 있다. 얼핏 보면 니체는 ‘개똥 철학자’나 ‘페이스북 철학자’ 같기도 하다.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도 니체 수준은 되는데’하는 느낌을 받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니체는 ‘품격 있는’ 자기계발서 작가 같기도 하다. 그만큼 니체는 우리와 친숙한 철학자가 될 수 있다. [니체의 말]은 일본에서 10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니체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멘토가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

페미니스트들을 화나게 하거나 쉽게 동의하기 힘든 말도 했다. 이렇게. “복수할 때와 사랑할 때 여성은 남성보다 더 야만적이다.”([선악을 넘어]) “여성과 관련된 모든 것은 수수께끼다. 여성과 관련된 모든 것에는 한가지 해결책이 있다. 임신이다. 여성에게 남성은 수단이다. 목표는 항상 아이를 갖는 것이다.”([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에겐 여러 종류의 애정이 있다. 여성의 모든 애정 속에는 반드시 모성애라는 사랑이 포함돼 있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는 사물과 현상의 여러 측면을 드러내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말도 많이 했다. 게다가 그의 말은 과격하다. 독설가였다. 일종의 충격화법을 구사했다. 맥락에서 벗어나(Out of Context) 니체를 인용하고픈 유혹에 우리는 취약하다.

니체를 허무주의자·반그리스도교·여성혐오 사상가로 몰아세울 수도 있는 말을 그가 실제로 했다. 하지만 그는 허무가 아니라 가치로 충만한 말들, 친기독교적 말도 많이 했다. 다음과 같은 말은 친페미니즘적인 게 아닐까. “완벽한 여성은 완벽한 남성보다 더 높은 유형의 인간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는 “신(神)이 존재한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여동생에게 보낸 편지])라고 말했다. “지식인은 원수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친구를 미워할 수도 있어야 한다”([이 사람을 보라])처럼 그리스도교를 비꼬는 듯한 말도 했다.

하지만 니체는 사랑을 중시하는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활동했기 때문에, 그 또한 사랑의 문제를 중시했다. 니체를 반(反)그리스도교 사상가라고 단정짓기엔 그의 생각과 그리스도교 가치관 사이에 사랑이라는 교집합이 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삶을 사랑한다. 우리가 사는 데 익숙하기 때문인 아니라 사랑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허용, 욕심부리는 것조차 허용해야


▎상아로 만든 판에 조각된 [사랑의 신]. 14세기 후반 작품으로 미국 월터스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사랑을 위해 행해지는 모든 것은 항상 선과 악을 초월해 일어난다”는 그의 말을 반그리스도교적으로 이해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니체의 이 말 또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성경적’일 수도 있다.

니체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대편에게 결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결점을 스스로 고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람은 좋은 인간으로, 어쩌면 신과 비슷한 완전성에 끊임없이 다가가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즐거운 지식])는 그의 말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돼라”([마태복음 5:48])를 연상시킨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선악 개념을 완전히 뛰어넘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악인이 있다고 봤고 악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악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증오한다는 점이다.”([아침놀])

니체는 사랑이나 결혼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을까. 사랑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 결혼 특히 연애결혼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애결혼의 아버지는 실수, 어머니는 필요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부정·긍정을 떠나 그는 정확한, 심지어는 냉혹한 객관성으로 사물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했다. 사랑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 속에는 항상 얼마간 광기가 담겨 있다. 하지만 광기 속에도 항상 얼마간 이성이 담겨 있다.”([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큰 이기주의는 무엇일까. 사랑받고 싶다는 요구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랑에 대한 그의 견해는 그의 초인 사상과 결코 분리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밀접했다. ‘사랑은 초인이 되려는 자의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그의 다음 말에서 읽을 수 있다. “사랑은 사람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계속 주시하려는 눈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사람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끌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아침놀])

불행한 결혼은 우정 결여 탓


▎맞잡은 노부부의 손. 깊은 주름에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말을 보면 니체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처럼 초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 것 같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이에게 완전히 몰두한다. 연인을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소중한 존재라 여김으로써 최고의 사랑을 느낀다. 제일과 본분에 매진할 때도 이처럼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하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실 니체는 사랑 예찬론자, 사랑 지상주의자에 가까웠다. 사랑과 존경을 동시에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존경보다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라고 했으며 “사랑은 허용한다. 사랑은, 욕심을 부리는 것도 허용한다”([즐거운 지식])고 했다.

니체에게 사랑은 자기애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었다. 니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독하다고 주장했다. 그가 내놓은 해결책은 이것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의 성공 가능성, 승률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니체의 방책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사랑보다는 우정을 결혼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사랑은 식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니체는 한동안 ‘연쇄적인 일부일처제(serial monogamy)’를 현행 결혼 제도의 대안으로 진지하게 고려했다. 그 자신은 2년으로 끝내는 결혼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니체는 우정에서 답을 찾았다. “불행한 결혼의 원인은 사랑의 결여가 아니라 우정의 결여”라고 본 그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로서 최고인 남자가 최고의 아내를 얻는다. 좋은 결혼은 우정에 필요한 재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를 다음과 같이 대화를 결혼을 결정할 때에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했다. “결혼할 때 당신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라. ‘노년 때까지 이 사람과 대화를 잘할 수 있을 것인가.’ 결혼 생활에서 모든 다른 것들은 덧없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와 같은 결혼서약에 대해 시큰둥했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우리는 행동을 약속할 수 있지만, 감정을 약속할 수는 없다. 감정은 우리의 의지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영원한 사랑이나 영원한 미움이나 영원한 믿음을 약속하는 것은 자신의 권한 밖에 있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는 다음과 같은 결혼 서약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한, 나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으로 당신을 대할 것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돼도 나는 당신을 전과 같은 행동으로 대할 것이다. 동기는 전과 다르겠지만.”([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남녀 차이 받아들여야 행복 결혼의 길 열려

[즐거운 학문]의 아포리즘 363번에서 니체는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각각 다르게 이해한다”며 “여성처럼 사랑하는 남성은 노예가 된다. 여성처럼 사랑하는 여성은 완전한 여성이 된다”고 말했다. [방랑자와 그 그림자]에서는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서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행복한 결혼의 길이 있다.

니체는 순결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어른처럼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육욕은 종종 사랑을 너무 빨리 자라게 한다. 그래서 그런 사랑의 뿌리는 약하기 때문에 쉽게 뽑힌다.”([선악을 넘어])

니체는 결혼이 결과적으로 모든 이를 위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이런 의미에서다. “결혼은 대부분의 보통사람을 위해 고안됐다. 위대한 사랑이나 위대한 우정에 필요한 능력이 없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결혼은 사랑뿐만 아니라 우정이 가능한 희귀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니체 전집(SämtlicheWerke)] 10권, 192쪽]

그리스도교인으로 죽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니체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그리스도교식 장례 후 교회에 묻혔다.

- 김환영 중앙일보 지식전문기자

201808호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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